올해, 몇 포기 하셨습니까 ?
8월, " 해뼛 " 은 쨍쨍 ~ 로레알은 반짝 ! 여러분, 엘라스틴 하세요 ~ 나는 소중하니까 ! 편의점을 지날 때'였다. 편의점에서 송출하는 옥외 광고 소리가 기봉 씨 귓가에서 웅웅 울렸다. 나는 소중하니까, 나는 소중하니...... 나는 소소소소소...... 그는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며 편의점을 지나쳐 갔다.
이렇다 할 빽도 비젼도 지금 당장은 없고, 젊은 것 빼면 시체지만 꿈이 있어. 먼 훗날 내 덕에 호강할 너의 모습 그려봐. 밑져야 본적 아니겠니. 니 인생 " 걸어보렴 " 스무 살이 된 기봉 씨'는 벅의 << 맨발의 청춘 >> 이란 노래를 듣고 국토대장정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걸어보렴 ?! 인간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말도 아니요 글도 아니었다. 걷기'였다. 더군다나 기봉 씨는 남들보다 일찍 첫발'을 떼서 영특하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그때만 해도 첫발이 개 끗발이 되리라는 사실을 그 누가 알았으랴. 기봉 씨는 평소에 걷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래서 기봉 씨는 자기 인생을 걸어 보기로 했다. 해남 땅끝에서 통일전망대까지 ! 하지만 그는 롱 워크 경기가 시작된 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고 말았다.
그날 밤. 기봉 씨'가 속한 조(組)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기봉 씨가 속한 C조 김미영 팀장(조장)은 승부욕이 강한 리더'였다. 그는 자신이 이끄는 팀원이 단 한 명의 낙오도 없이 모두 완주하기를 바랐다. 낙오자 한 명은 그가 소속된 팀 전체의 실패를 의미했다. 역경을 딛고 자기 자신과 싸우는 것, 그것이 국토대장정'이 청년들에게 세뇌시키고자 하는 << 제 1덕목 >> 이었다. 김미영 팀장이 속삭였다. "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마 ! " 기봉 씨는 할 수 없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시 십 리도 못가서 발병이 났다. 여기저기서 기봉 씨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 그것은 기봉 씨에게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했다. 참고 견디는 수밖에.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그는 결국 " 걷기 " 를 포기했다.
말은 안했지만 그가 속한 C조 팀원의 원성이 자자했다는 후문'이다. 눈치 없는 기봉 씨'라고 해서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자신을 위로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경멸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미운 법. 그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 젖가락 마이싱이다, 시바 ! " 한국 사회는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정신을 청년 문화의 상징'으로 높게 평가한다. 도전 정신, 허, 허허헝그리 정신, 열정 페이 따위는 " 개고생 " 이란 표현의 순화어'였다. 이 청년 정신'은 대한민국 군사 문화와 맞물리면서 큰 호응을 얻는다. 이명박은 노골적으로 < 내가 해봐서 아는데 ㅡ 정신 > 으로 청년들에게 " 개고생 " 을 주문하고는 했다. 피똥 싸봐야 나중에 된 똥 눈다. 내 말 믿숩니까 ?
또한 박근혜는 < 아프리카 청춘 > 을 주문했다. 아프리카, 일자리 많아요. 호호호. ① 아프리카에 가면 일자리가 있고, ② 아프리카에 가면 일자리도 있고 말라리아도 있고, ③ 아프리카에 가면 일자리도 있고 말라리아도 있고 따발총도 있고, ④ 아프리카에 가면 일자리도 있고 말라리아도 있고 따발총도 있고 사자도 있는 아프리카 ! 포기는 악덕이고 극기는 미덕이 되었다는 이야기. 여기서 끝 ??! 반전은 지금부터'다. 정말, 이명박근혜'는 극기를 찬양하고 포기를 병든 정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 정반대'다.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부류는 < 포기 > 가 미덕이 되기도 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포기는 미더덕이 되었다가 앗, 뜨거 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시민들이 제풀에 지쳐서 빨리 포기하기를 바란다.
기봉 씨가 많으면 많을 수록 기득권은 더욱 견고한 산성을 쌓을 수 있다. 강철 군화 정권 때는 몸둥이로 때리면 되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명색이 대한민국은 오이시디 가맹점이 아닌가! 더군다나 장사 수완도 출중해서 모든 지표에서 항상 1위를 달리고 있다). 오히려 몽둥이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노조원들이 쉽게 포기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 드라마 << 송곳 >> 은 그 사실을 적나라(赤裸裸)하게 보여준다. 간부들은 노조원 팔에 고무줄을 질끈 묶은 후 주사를 놓는다. 주사기 속에 들어간 약물의 이름은 < 에이, 우리가 싸워서 이길 수 있겠어 ? > 다. 마찬가지로 이명박과 박근혜가 노리는 것은 새누리당은 옳고 민주당은 그르다가 아니다. 이런 전락은 대구를 제외하고는 대중을 선동하지 못한다.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 둘 다 똑같다( 그 나물에 그 밥) > 다. 정치 영역에서 보자면 < 둘 다 똑같다 > 와 < 발이 아파서 도저히 못 걷겠어요 > 는 동일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거 때만 되면 투표를 할 생각이 별로 없다. 둘 다 똑같으니깐 말이다. 포기가 빠를 수록 나쁜 권력은 더 많은 힘을 얻는다. 이처럼 기득권은 < 포기 > 에 대해서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 갑 > 은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불만 없이 버티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청년 정신이라고 숭배하지만, 정작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불만(파업)을 제기하면 포기가 빠를 수록 유리하다고 꼬득인다. 박근혜의 공포 정치'가 우리에게 주입시키고자 하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 공포 > 가 아니라 < 포기 > 다. 공포는 시민의 저항을 낳지만 포기는 국민의 순응을 잉태한다. 이수인이 당신에게 묻는다.
" 올해, 몇 포기하셨습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