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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 지구를 뒤덮다 - 신자유주의 이후 세계 도시의 빈곤화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07년 7월
평점 :
헬조선'이여, 엿이나 먹어라 !
좋은 영화'는 다양한 해석을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한 영화 << 블레이드 러너, 1980 >> 는 걸작'이다. 좌파적 상상력'으로 이 영화를 재구성하자면 : 지구를 벗어나 행성으로 쫒겨난 리플리칸트(Replicant)는 철거 용역에 의해 쫒겨난 철거민 혹은 이주노동자'처럼 보인다. 리플리칸트는 인간이 꺼려하는 3D직종'에서 일을 하도록 고안된 < 인조인간 > 으로 내구연한'은 4년이다. 그들은 < OFF-WORLD > 에서 디피컬트하며 Difficult, 더티하고 Dirty, 데인저러스한 Dangerous 일을 한다. 여기서 " 오프 월드 " 는 슬럼화된 지구를 벗어나 새롭게 건설된 신도시(신행성)이다. 예를 들면 " 두바이 " 같은 곳이다.
( 할리우드 주류 백인 중심 사회'에서 보자면 ) 슬럼化된 지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시아계 빈민이거나 마약 중독자 혹은 장애인'로 구성된 것을 보면 오프 월드라고 불리는 행성'은 상류층'을 위해 건설된 타워펠리스(신행성)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부자를 위한 동네'는 값싼 노동력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타인의 노동을 소비할 뿐 생산하지 못하는 그들은 99칸짜리 방을 소유한 대저택의 주인이지만 정작 주인 시중을 드는 필리핀 가정부'는 지붕 위 닭장 같은 헛간에서 잠을 잔다. 영화 속 리플리칸트'는 부자를 위한 행성'에서 허드레꾼으로 전락한 이주노동자'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ON-WORLD에서 쫒겨나 OFF-WORLD에서 막일로 살아가는 도시 빈민인 셈이다.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 멀리 볼 것 없다.
악랄한 원주민 정책을 펼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 갑 > 이다. 마이크 데이비스의 << 슬럼, 지구를 뒤덮다 >> 라는 책에서는 대한민국의 살인적인 원주민 정책을 비판한다.
근대 올림픽은 특히나 어두운, 그러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나치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노숙자들과 슬럼 주민들을 베를린 지역에서 무자비하게 쓸어버렸다. 이후 멕시코,아테네, 바르셀로나 등의 올림픽에서도 도시재개발 및 강제퇴거가 수반되었다. 가난한 주택소유자, 스쿼터, 세입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이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이루어진 것은 단연 1988년 서울 올림픽이었다. 남한의 수도권에서 무려 72만 명이 원래 살던 집에서 쫒겨났다. 한 가톨릭 NGO는 남한이야말로 " 강제퇴거가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남아공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나라 " 라고 했을 정도다.
- 슬럼, 지구를 뒤덮다 142 쪽 중
영화 << 블레이드 러너 >> 를 사회주의자의 " 좌파적 똘끼 " 로 보면 리플리칸트'는 토건족의 불도저'에 밀려서 고향인 지구'에서 쫒겨난 원주민이요, 철거민'이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하여 고향을 등지고 멀고 먼 타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팬트하우스 지붕 위 닭장 같은 헛간에서 잠을 자는 이주노동자'다. 하지만 로이를 필두로 한 4인의 리플리칸드는 다시 지구로 잠입힌다. 무리 가운데 우두머리인 로이'가 찾아가는 타이렐社 펜트하우스는 철거 예정 건물 세입자가 오른 용산 망루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은 모두 집주인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찾아간다. < 용산 망루 > 에 올랐던 자영업 노동자도, 로이도 어쩌면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 쫒겨나지 않을 권리 " 에 대해 말이다.
로이가 집주인'인 임대업자 타이렐'에게 " 더 살고 싶단 말이야, 이 씨댕아! " 라고 고함을 쳤을 때, 나는 < 살다 > 라는 단어가 < LIFE > 가 아닌 < LIVE > 로 들렸다. 남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 비극은 내 가족과 이웃의 일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 국민은 " 리플리칸트 " 가 되어 갔다. 상위 2%이 재벌'이 부를 독점하고 중산층은 붕괴되어 하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국가와 결탁한 자본 세력은 상류층을 위한 도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도시 계획'이란 이름으로 원주민을 쫒아내려 하고, 원주민은 살던 곳'에서 쫒겨나지 않으려고 반항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새드 무비'다. 공권력은 기득권의 창이지 가난한 자의 방패가 아니지 않은가 ! 결국 리플리칸트는 외각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가가 원주민이 살던 곳에서 동네 주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세입자를 내쫒았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 가난이 만들어내는 이윤 " 을 창출하기 위해 벼랑 끝 전술을 사용한다. 피도 눈물도 없는, 부르주아의 사려 깊은 탐욕이다. 가난이 만들어내는 이윤에 대해서 프랭크 스노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도시 주민들은 가난해졌는데 집세는 5배가 증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1m² 당 집세가 가장 비싼 방은 슬럼에서 가장 열악한 곳이었다. 가장 열악한 방들은 절대적인 임대 비용이 가장 낮았기 때문에 수요가 가장 많았던 것이다. 불행히도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슬럼 숙소에 대한 수요도 늘어났고, 이로 인해 전반적인 임대료 상승은 지불 능력이 가장 낮은 사람들에게 가장 가혹해졌다.
- 슬럼, 지구를 뒤덮다 112쪽
임대업자 입장에서 보면 빈민이 많아질수록 임대료는 오르게 되니 꿩 먹고 알 먹는 전략인 셈이다. 빈민의 똥구멍에서 콩나물이라도 착취할 태도다. 그들은 이 이윤을 바탕으로 도시 외각에 그들만의 오프 월드'인 비버리힐스, 오렌지카운티, 롱비치 따위를 건설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캘리포니아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그곳은 도시라기보다는 테마파크에 가깝다. 그리고 도심에서 쫒겨난 원주민은 오프 월드에서 허드레꾼으로 전락하게 된다, 영화 속 리플리칸트처럼 !
< 헐 > 이라는 부사는 국어사전에는 없는 단어'다. 굳이 뿌리를 따지자면 < 헉 > 에 가까운데, < 헉 > 이 놀라울 때 보이는 반응이라면 < 헐 > 은 어이없을 때 보이는 반응에 가깝다. 방구가 잦으면 똥을 싼다고 했던가. 어이없는 일이 너무 많아 < 헐 > 을 남발하다 보니 결국에는 어, 어어어어어 하다가 < 헬 > 이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 국호는 < 헬조선 > 으로 변경되었다. 쌍팔년도 이야기도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마당에, 창비 표기법으로 기술하자면 씹질세끼(17C)혹은 씨팔세끼(18C)로 퇴행한 " 헬조선 " 은 더 이상 치유가 불가능한 상태처럼 보인다. 이제 "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 는 믿음은 지나가는 민들레에게 줘야 한다. 어쩌면 그 순진한 믿음이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정의는...... 어쩌다 가끔 승리한다. 그게 진리'다. 일본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가 지적한 것처럼 국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국가가 관심을 가지는 부류는 최상위 부유층이다. 국가는 그들의 이윤에 봉사할 뿐이다. 당신은 최상위 부유층을 위해 허드렛일을 하도록 설계된 리플리칸트다. 그들이 청기 올리라고 하면 청기 올리고 백기 내리라고 하면 백기를 내려야 한다. 만약에 당신이 깃발 명령자에게 젊은 여자가 어디서 초면에 반말이야, 며 대들면 데커드 형사( 해리슨 포드 )가 나타나 당신 뒤통수를 저격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헬 오브 지옥'이다 ■
- 영화에서는 인간이 새로 건설한 행성을 " 오프 월드 " 라고 지시한다.
- PENT HOUSE는 옥상 가옥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