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   아저씨와  선생님


                                                 한국인은 밥을 좋아한다. 모 가수는 라면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라면을 먹을까, 라며 한숨을 쉬었지만 배부른 소리'다. 우리에게 밥이 없었더라면....... 아,  상상할 수 없구나.  가수 이선희는 노래 < 아름다운 강산 > 에서 밥을 대놓고 찬양했다. " 밥, 밥, 밥, 밥, 밥 ! 봐라, 봐라, 봐라, 밥 ! "  신세대 아이돌 그룹도 동참한다. 크레용팝은 << 밥밥밥 >> 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 밥,밥,밥,밥,밥, 바바바밥... " 밥을 찬양한 사람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삼일절이면 쇼바 높이 올린 오도방을 끌고 나온 폭주족들이 분노의 도로를 질주하며 외쳤다. " 봐라, 봐라, 봐라, 밥 ! " 이처럼 남녀노소 모두 밥을 좋아한다. 밥이 한국인에게 인기 있었던 이유는 그림을 쉽게 가르쳐준다는 데 있다. 그를 따라하다 보면 근사한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그가 웃으면서 말한다. " 참, 쉽쥬 ? "

그림을 가르쳐주는 남자, 화가 밥 로스 씨 이야기'다. 우리는 그를 " 밥 아저씨 " 라 부른다. 밥은 밑그림 없이 바로 유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더군다나 30분 속성으로 말이다. 유화 물감 특성상 작업 시간이 길다는 점은 감안하면 놀라운 속도'다. 페인트 붓처럼 넓은 붓으로 한 번 스윽, 붓질을 하면 구름이 되고 나무가 되고 물 위의 반영이 되었다. 마술 같다고나 할까 ?  그가 항상 말하고는 했다. " 그림을 그릴 때 실패할까, 걱정하지 마세요. 다시 그리면 되니까....... " 돌이켜보면 그가 그린 그림은 < 이발소 그림 > 이었다.  제2의 피카소가 되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열심히 밥 아저씨가 가르쳐 주는 대로 그림을 그렸다가는 좋은 화가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이발소에 걸릴 그림이니까.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

밥 아저씨가 가르쳐준 것은 피카소 같은 위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집밥 백선생은 밥 아저씨의 재림'이다. 그는 음식 만들기에 자신이 없는 88세대'에게 음식을 쉽게 만들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준다. 밥 아저씨'가 " 참, 쉽쥬 ? " 라고 말한다면, 백선생(혹은 백주부)은 " 그럴싸하쥬 ? " 라고 말한다. 여기서 < 참 쉽쥬 ? > 와 < 그럴싸하쥬 ? > 는 같은 말이다. 그들은 모두 < 오리지날 > 에 대한 욕심'보다는 < 복사본 > 에 만족한다. 백선생의 " 그럴싸하쥬 " 라는 표현은 원본에 대한 100% 재현이 아니라 2% 부족한 재현이지만, 이 2% 부족한 결과에 대해 스스로 만족한다. 왜냐하면 짧은 시간 안에 원본에 가까운 재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밥 아저씨가 말하는 " 참, 쉽죠 ? " 와 같은 심리적 동인이다. 시간 대비 결과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30분을 투자해서 그럴싸한 그림이 만들어졌으니 그것에 만족한 것이다. 만약에 그가 1년에 걸쳐 그린 작품이 그저 " 그럴싸한 수준 " 에 그쳤다면 만족했을까 ? < 백선생의 집밥 음식 만들기 > 가 관통하는 것은 오리지널'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기'이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입말인 < 그럴싸하쥬 > 와  <고급지쥬 > 는 오리지널을 욕망하지만 그럴 수 없는 짝퉁을 위로한다. 불초(不肖)는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는 뜻이다. 불초는 자신이 이상적인 존재라 믿는 아버지(오리지널, 그럴싸한 것의 대상, 고급진 것의 대상)를 닮지 못한 아들의 한(恨)이 서린 단어다. 그래서 불초소생(不肖小生)이라는 말에는 1인자가 되지 못한 2인자의 설움이 담겨 있다.

그런데 백선생의 음식에는 그러한 열등감이 없다. 그는 처음부터 호텔 요리에 대한 욕망이 없었다. 그는 요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음식을 만든다. 음식을 만들되 요리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바로 백선생의 레시피'다. 먹고 사는 게 힘든 88세대'에게 이 레시피는 작은 위안을 준다.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는 게 죄는 아니다. 밥 아저씨와 백선생의 공통점은 30분 안에 그림(음식)을 완성한다는 점이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실수에 대한 긍정이다. 실수해도 괜찮다. 다시 하면 되니까 ! 배움의 모든 시작은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야구에서 처음 배우게 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두려움에 대한 극복이라고 한다. 공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기술을 배우게 된다. 그 아무리 방망이 휘두르는 기술이 뛰어나다 한들

공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타자는 결코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다. 밥 아저씨와 백선생은 그림과 음식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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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DOKU 2015-07-23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 밥, 밥, 밥, 밥 ! 봐라, 봐라, 봐라, 밥 ! 에서 터졌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3 17:40   좋아요 0 | URL
클론도 꿍따리사바라에서 밥을 좋아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꿍따리 사밥밥, 사밥밥..

수다맨 2015-07-23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백종원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ㅡ정확히 말하면 티브이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그가 정확히 무엇을 만드는지도 잘 모릅니다ㅡ오늘날 대중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단지 미식에 대한 무지나, 자극적 음식에 대한 말초적 열망으로 돌리는 태도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백종원이 어떻게 대중들의 `유사 엄마`가 되었고, 다수 대중이 값비싼 고급 음식보다 간단하면서도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끼니 해결을 얼마큼 바라는지 분석하는 게 더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음식을 만들`며, `음식을 만들되 요리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는 말씀은 정곡을 찌르는 진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3 17:42   좋아요 0 | URL
사실 한식대첩 같은 요리는 그림의 떡이죠.
요리하기 위해서 문어 60만 원 주고 사오면 그림의 떡 아니겠습니까.
입에 침이 고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현실....

백선생은 고걸 충족시켜주는 묘한 공감이 있습니다. 요리가 쉬워진다고나할까요....ㅎㅎ

요리와 음식을 구별했는데 요리는 뭔가 좀 고급스러운 레스토랑 느낌이고 음식은 집에서 먹는 일상적 먹거리`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