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주부와 배트맨

                                      난세의 영웅'이라는 말이 있듯이 태평세월에서는 영웅'이 있을 수 없다. 영웅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악당의 패악질에 의연히 일어나 그들과 싸우는 존재다. 그러니 악당이 아니었다면 영웅이 나서서 그들과 싸울 이유는 없다. 역설적이지만 영웅이 자주 탄생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그런데 영웅이 많은 사회보다  더 안 좋은 사회는 " 영웅을 갈망하는 사회 " 다. 한국 사회'가 그렇다. 세상은 악당들이 장악했는데 맞짱을 뜰 영웅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대중은 영웅을 열망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열망은 결핍의 결과인 셈이다. 진짜 영웅이 없다 보니 가짜 영웅'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지 쩨쩨한 결핍'이라도 메울 수 있으니까. 비록 그것이 " 헛것 " 이라고 하더라도 심리적 포만감은 발생한다. 환자가 가짜 약을 진짜 약이라고 믿고 먹으면 진짜 약의 효능이 발생하는 심리적 < 뻥 > 을 플라시보 효과'라고 하는데 대중이 진짜 영웅 대신 허수아비'를 내세우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대중은 가짜 영웅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영웅이란, 그래요...... 그런 존재'입니다.

요즘 한국 사회가 내세우는 가짜 영웅은 아빠와 엄마'가 대세'다.  흔한 말 가운데 하나가 아빠는 나의 영웅'이란 표현이 아니었던가 ! 슈퍼맨이 없으니 아빠가 영웅이 되어 바지 입고 그 위에 파란 빤스를 걸친다. 신파와 통속이 대세인 한국 사회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아빠는 나의 영웅. 내가 시간 날 때마다 신경숙의 << 엄마를 부탁해 >> 를 까는 이유는 당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는커녕 대중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가짜 영웅을 들러리'로 내세웠다는 데 있다( 예상치 못한 흥행을 거둔 << 7번 방의 기적 >>도 포함된다. 이 영화는 < 엄마를 부탁해 > 의 아빠 버전이다. 이 영화에서 아빠는 바보이지만 영웅으로 등장한다). 결국 신경숙은 책을 팔기 위해 가짜 약을 판매한 것이다.

신경숙은 약장수다. 여기에 문단은 북 치며 화답을 하니 " 날이면 날마다 쏟아지는 대중소설이 아니에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어, 어어어어어마어마한 걸작입니다. 자,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  얼쑤, 니미.... 지랄이 풍년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과연, 악당 때문에 영웅이 탄생하는 것일까 ? 내가 보기에는 악당 때문에 영웅이 탄생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영웅 때문에 악당이 탄생하기도 한다. 좋은 예가 " 일베의 탄생 " 이다. 일베는 좋은 아빠'에게 반기를 든 후레자식들이다. 그들은 386 혹은 486세대로 대표되는 좋은 아빠의 허위'를 보고 자란 세대'다.  자신이 믿었던 영웅의 이중인격을 지켜본 것이다. 정의로운 척하지만 사실은 헛것인 존재. 일베는 진짜 아빠에게서 위선을 본다. 조커가 배트맨에게서 느끼는 혐오와 같다.

팀 버튼의 << 배트맨 >> 시리즈와 크리스토퍼 놀란의 << 배트맨 >> 시리즈는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다르게 접근한다. 팀 버튼이 연출한 << 배트맨 >> 은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배트맨이 등장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연출한 << 배트맨 (이하 다크 나이트) >> 은 배트맨을 물리치기 위해 악당이 등장한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 전자는 악당을 제거하기 위해 영웅이 탄생하게 되지만 후자는 배트맨을 제거하기 위해 악당이 탄생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전자에서 원인이 악당이고 결과가 영웅의 탄생인 반면, 후자에서는 원인이 배트맨이고 그 결과가 악인의 탄생인 셈이다.  그러니까 영화 << 다크 나이트 >> 에서 악인들이 고담을 쑥대밭으로 만든 원인은 " 배트맨 " 때문이다.

배트맨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고담은 평화로운 도시'가 되었을 것이다. 일베와 조커가 겹치는 대목'이다. 한국은 아비 없는 사회다. 후레자식들은 좋은 아빠인 척하는 진짜 아빠 대신 가짜 아빠'를 내세운다. 진짜 아빠는 영웅이 아니라 후줄근한 아저씨'라는 사실을 간파한 후다. 백선생(백종원)과 차주부(차승원)가 좋은 예'이다. 그들은 아빠로서 자식에게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mbc프로그램 << 마이 리틀 텔레비전 >> 에서 백선생은 네티즌의 온갖 지적에 대해 권위를 내세워서 상대방을 윽박지르지 않는다. 초고추장'에게 사과하라는 네티즌의 황당한 주장에도 이렇게 말한다. " 초고추장 님, 미안해유. 헤헤헤 "  그리고 백선생은 자기가 만든 요리'가 진짜 으뜸 요리'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 그럴싸하쥬? " 라고 말할 뿐이다. 

바로 이 점'이 2,30대 시청자를 사로잡은 비결이다. 이 매력적인 가짜 아빠는 자식들에게 완벽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 그럴싸하면 된 " 다고 말하며 가끔은 " 있어보이려고 " 하는 욕망을 탓하지 않는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열망은 결핍의 증후이다. 한국 대중이 백선생과 차주부에게 열광한다는 사실은 좋은 아빠와 좋은 엄마가 없다는 데 있다. 악식가 황교익은 백선생을 엄마를 대체한 캐릭터라고 지적했지만, 내가 보기에 백선생은 아빠의 대체자'다. 시청자는 진짜 아빠와 가짜 아빠를 교환하고 싶어 한다.  가짜 아빠는 나긋나긋하다. 자식에게 완벽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 괜찮쥬..... 완벽한 놈이 되기보다는 그냥 그럴싸한 놈이 되는 게 속 편한겨. 그려, 안 그려 ? " 라고 묻는다.

시청자들이 이 방송에서 욕망하는 것은 위장(의 포만)이 아니라 위로'다. ​그럴싸하쥬, 라는 유행어'는 시청자를 위로한다. 스펙을 완벽하게 갖추어야만 취업을 할 수 있고 결혼을 할 수 있는 세대'에게 이 " 그럴싸함 " 은 설탕처럼 달콤하다. 어때유, 이 글 괜찮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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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7-20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괜찮아유~~~~ㅋㅎㅎ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0 12:18   좋아요 0 | URL
곰구만유(고맙구만유)

stella.K 2015-07-2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건 난 잘 모르겠고~~오. 아무튼 난 백종원이 좋긴 헙디다.
지는 <마이 리틀...>을 한번인가 두번뿐이 못 봤고, 집밥 보면 그건 남자들을 위한
요리 프로란 생각이 들긴해요.
소유진이 시집 잘 간 것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1 11:55   좋아요 0 | URL
백종원의 장점은 오리지널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없으면 없는 대로, 실수하면 실수한 것대로 만드는 레시피가 인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