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버린 감자'를 찾아서
우스갯소리‘로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는 말을 하고는 한다. 사소한 것은 하찮은 것이니 사소한 것을 두고 싸워서 이득을 취한다 해도 별로 얻을 게 없다는 소리’다. 그런데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한국 사회는 사소한 것을 너무 사소하게 생각하는 사회‘가 되어서 사소한(시시한) 사회가 되었다. 사소한 것이 모여서 중요한 것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거는 경향이 있다, 쩨쩨하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 지금 이사 온 곳은 ○○구(區)에서 나름 중산층이 모여 사는 곳에 해당된다. 東으로는 백화점이 있고, 西로는 대형마트가 있고, 南으로는 구청이 있으며 北으로는 국립보건원’이 있다. 모두 10분 거리 안에 위치해 있다. 반면 이사 오기 전에 살던 곳은 달동네’였다.
주말이면 여행객들이 가난한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어슬렁거리며 사진을 찍고는 했다. “ 포즈 좀 취해 주실래요 ? 스마일.... 아뇨, 아뇨... 좀 빈티지스럽게 웃어주세요. 달동네잖아요. 호호. ” 나는 이 달동네 초입에 살았다. 그래도 이 마을에서는 부잣집(비록 전세였지만)에 사는 사람으로 통했다. 마당 있고, 텃밭 있고, 30년 된 라일락 하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상황이 역전이 되었다. 가난한 동네에서 나름 번듯한 집에 사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그럭저럭 넉넉한 동네에서 가장 후진 집에 사는 사람이 된 것이다. 시바, 쪽팔리네 ! 뱀 머리로 사느니 용 꼬리‘로 사는 게 나은 것일까, 아니면 용 꼬리‘로 살다가 뱀 머리로 사는 게 나은 것일까 ?
그래도 좋은 점이 있다면 넓은 평지에 온갖 위락시설을 누릴 수 있는 편리성을 갖춘 곳이어서 밤이면 가끔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한다. 영화관 또한 걸어서 10분 거리’이다. 그런데 지난 주말(일요일 새벽 5시 57분경)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그날도 새벽 3시에 일어나 책을 읽고, 개 산책을 시키고 돌아오니 잠시 후 어머니가 새벽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셨다. 대뜸 집 앞에 감자 박스를 두었으니 가져오라는 명령이었다(어머니는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어서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한다). 냉큼 밖으로 나와 살펴보았으나, 웬걸 !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에다 둔 거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문득 잠시 마주쳤던 할머니가 생각났다(말이 할머니이지 환갑이 갓 넘은 사람이었다). 박스를 들고 어딘가 급히 가던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니 골목 끝에 그 할머니가 있었다. 할머니는 종종걸음으로 걷다가 왼쪽으로 꺾었다. 나는 따라잡기 위해서 뛰어갔으나 할머니는 사라지고 없었다. 할머니가 사라진 곳에는 거성 빌라 입구가 있었다. 그곳이 막다른 곳이니 하늘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면 그곳으로 들어간 것이 확실했다. 감자를, 잃어버렸다 ! 16,000원짜리 감자 상자. 어머니는 웃으면서 별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사실, 가난한 달동네 초입에 살 때에도 어머니는 집에 짐꾼(나)이 있을 때에는 늘 온갖 것들을 거리에 두고 오셨다(30계단을 올라야 집이 있기에 어머니는 늘 장바구니를 첫 번째 계단 아래 두고는 했다). 그것을 들고 오는 것은 내 몫이었다. 어느 때는 밥을 먹고 있을 때도 있었고, 잠을 자고 있을 때도 있어서 종종 한 시간 늦게 찾으러 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 달동네에서 8년을 살면서 어머니가 두고 온 물건을 도난 맞은 적은 없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달동네였으나 어느 누구도 남의 것에 손을 대지는 않았다. 거리에 놓아둔 장바구니를 말이다. 하지만 넉넉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동네는 원,샷,원,킬이었다. 단 한 번, 집 앞 거리에 두고 온 감자 박스는 몇 초 만에 누군가가 훔쳐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거성빌라를 찾았다. 얼추 살펴보니 좋은 빌라였다. 총 8가구가 사는데 주차장은 차를 15대 넘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주차장이 넓다는 것은 비싼 빌라라는 것을 의미했다. 밖에서 살펴보아도 빌라 규모는 가구당 50평은 넘어 보였다.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50평짜리 빌라에 사는, 차를 최소한 2대 주차할 수 있는 주차권을 가진 사람이 16,000원짜리 감자를 훔쳐?
집에 돌아온 나는 박스를 뜯어 유성 매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모월 모일 새벽 5시 57분, 감자 박스 가지고 거성빌라 속으로 사라지신 분. 제자리에 갖다 놓으십시오 ! 농담이 아니라 팻말을 만들어서 1시간 동안 그 빌라 앞에서 시위를 했다. 생각보다 쪽팔렸으나 이 모습을 베란다 같은 곳에서 보고 있을 그 할머니가 더 쪽팔릴 것이란 생각을 하며 버텼다. 안, 나오면 쳐들어갑니다. 허허허허. 물론 바늘 도둑이 자수를 할 리는 없었다. 집에 돌아오다가 문득 cctv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확인하니, 맙소사 ! 바로 그 거리에 cctv가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그 길로 경찰서를 찾아 도난 신고를 했다. 16,000원짜리 감자를 도둑맞았습니다. 눈물이 앞, 을 가립니다. 절차는 나름 신속했다.
감자 도난 사건은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넘어갔다. 형사가 와서 현장 검증을 마쳤다. 잃어버린 감자를 찾기 위해 꽤 애를 쓴 하루였다. 누군가는 쩨쩨하게 감자 몇 알 가지고 뭔 짓이냐고 말하는 이도 있겠으나 그런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자고 말이다. 좆대가리 같은 한국 사회는 사소한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소도둑보다 바늘 도둑이 더 얄밉다. 사소한 성적 농담이나 사소한 접촉이나 사소한 외면이나 사소한, 사소한, 사소한 기타 등등이 어쩌면 이명박과 박근혜가 탄생하게 된 동력이 되었을 거라고 말이다. 며칠 전, 감자 도둑이 잡혔다. 예상대로 거성 빌라 주민이었다. 바늘 도둑은 훔친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분실물을 취득한 것이라고 우겨서 벌금을 내는 선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잘 다듬은 머리 모양으로 보아 넉넉하게 사는 집 부인이었다. 나는 그 사람 들으라고 혼잣말을 했다. 시바, 지랄도 풍년이네. 들었을까 ? 들었을 것이다. 귓볼이 붉어진 모습을 봤으니까. 감자 값을 돌려받았다. 이 만원 주길래 사 천원을 건냈더니 선심 쓰듯 됐다는 손사래를 하길래 말했다. " 장난하세요 ? " 이 동네, 참...... 지랄도 풍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