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자의 품격 : 의자를
보면 계급이 보인다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그림 두 점'이 있다. 하나는 자신이 늘 앉던 의자 정물화'이고, 다른 하나는 고갱이 즐겨 앉던 의자 정물화'이다. 두 그림 가운데 어느 쪽이 고갱의 의자'일까 ?


a. b.
이 그림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더라도 고흐와 고갱의 성질머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면 맞출 수 있는 확률은 높아진다. < a > 는 고흐의 의자'이고, < b > 는 고갱의 의자'이다. 누가 보아도 a는 b에 비해 소박하고 화려하지 않아 고흐를 연상시킨다. 또한 의자 색깔을 보면 빈 의자에 앉은 주인'이 누구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더군다나 팔걸이 의자는 조용하고 다소곳하며 왜소한 고흐보다는 남성적이며 덩치가 큰 고갱에게 어울린다. 무엇을 먹었느냐가 그 사람의 계급을 말해준다면, 어떤 의자에 앉아 있느냐도 그 사람의 계급을 말할 수 있다.

나무 의자'인 경우 : 민무늬보다는 무늬가 화려한 의자가 품격 있는 고급 의자'다. < 무늬 > 는 곧 목수의 품삯'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품격 있는 의자들은 등받이나 팔걸이'에 화려한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드라마 속 회장님 거실에 거만하게 자리잡은 비룡 무늬 의자를 떠올려 보라. 겸손한 사람도 회장님 의자'에만 앉으면 거만해 보인다. 자리가 사람을 거만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여기 의자'가 있다. 평소 의자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은 그 차이'를 잘 모르겠지만, 이 의자들은 다른 의자에 비해 독특한 구석'이 있다. 등판을 보면 장식이 화려하다. 목수가 한 끌 한 끌 정성을 들인 티가 난다. 의자 다리'도 솜씨 좋은 가구 장인의 내공이 느껴진다. 그런데 정작 의자 바닥(좌석)은 쿠션이 전혀 없는,
딱딱한 나무판으로 되어 있다. 방석 없이 오래 앉아 있기에는 불편한 의자'다. 맥도날드 매장에 배치된, 딱딱한 의자를 보면 답이 나온다. 맥도날드 의자의 딱딱함은 오래 앉아 있지 말라는 경고'다. 박리다매 전략을 구사하는 맥도날드'는 무엇보다도 테이블 회전율이 중요하다. 손님이 후딱 먹고 후딱 떠나야 한다. 그렇기에 안락한 환경'은 테이블 회전율'을 느리게 만든다. 포장마차에서 사용되는 의자가 등받이가 없는 플라스틱 의자'인 이유 또한 테이블 회전율 때문이다. 취객이 소주 한 병 시켜 놓고 세월아, 네월아, 오월아 ! 하면 골치 아프니깐 말이다 한마디로 대저택 복도에 놓인 의자는 보기 좋은 떡이기는 하나 맛은 없는 떡'이다. 이 의자는 주로 19세기 미국 대저택 현관 복도에 놓여 있던 의자'였다. 주인이나 손님의 코트를 받기 위해 하인이 대기하면서 틈틈이 앉아 있는 의자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인이 이용하는 의자이니 편안할 필요는 없지만 화려한 실내 인테리어에 맞는 품격'을 맞추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디자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건축사가 에이드리언 포티는 << 욕망의 사물 >> 에서 이 의자를 두고 " 한 계층에게는 보이기 위해, 다른 계층에게는 사용되기 위해 디자인된 일종의 잡종이었다. " 라고 논평한다. 주인이나 손님이 이 의자'에 앉을 리는 없다. 그들 엉덩이는 소중하니까. 그렇다고 지랄같은 19세기 귀부인의 성정에 대해 손가락질 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그때는 의자'라도 두었지, 요즘 21세기 고용주는 서비스 노동자의 의자를 걷어찼다. 21세기 서비스 노동자는 하루종일 서서 일을 한다. 이처럼 의자'를 보면 어느 정도 계급이 보인다. 사무실 의자'도 계급에 따라 다르다.
설령, 같은 디자인의 의자'라고 해도 직급이 높을 수록 등받이 높이'가 높아진다고 한다. 직급이 높은 사람은 의자에 푹 파묻히고, 직급이 낮은 사람은 머리를 기댈 수 없는 낮은 등받이 의자'에서 일을 한다.

a.

b.
두 그림 가운데 누가 더 직급이 높은가는 말풍선을 지우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보스는 노동자'들이 머리통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는 꼴'은 두 눈 뜨고 볼 수 없다. 하급 노동자'가 등받이 높은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집을 제외하고는 극장이나 피시방이 유일하다. 어쩌면 영화관이나 피시방은 영화를 보거나 오락 따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등받이 높은 의자'에 앉아 보고 싶은 욕망이 작동한 탓은 아닐까 ? 의자에 달린 " 팔걸이 " 도 등받이 높이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한다. 권위를 내세우는 마초일수록 팔걸이가 달린 의자를 선호한다. 좌식 문화에 속했던 조선 시대'에도 왕은 팔걸이에 해당되는 곳에 팔을 걸치고 앉아 있지 않았나 ?
그렇다면 등받이가 가장 낮고, 팔걸이가 없으며, 바닥이 딱딱한 의자'에 앉는 대표적 계급은 누구일까 ? 반짝, 머릿속 번개가 지나가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다. 학생이다. 학교 의자는 등받이가 가장 낮고, 팔걸이가 없으며, 바닥이 딱딱한 의자'에 앉는다. 어른들은 등받이 높은 의자에 몸을 파묻고 팔걸이에 팔을 걸친 어린 놈'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속으로 어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 이처럼 의자'를 보면 서열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