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교육'은 인간'의
결함을 숨기려는 데 있다
개인은 사회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치안이 불안한 사회'는 곧 개인에게 불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는 개인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다. 세월호 집회 때 시민이 도로를 점거하면 불법 집회가 되지만 경찰이 "치안을 이유로 차벽 " 을 설치하면 불법이 아니다. 명백한 시민 보행권'을 침해하는 행위'인 데도 말이다. 네가 하면 로맨스이고 내가 하면 불륜이냐 ? 이처럼 사회와 개인은 불평등 관계'에 놓여 있다. 개인 입장에서 보면 사회는 패대기치고 싶은 대상'이다. 더군다나 공정 사회'가 아니라면 " 패대기 욕망 " 은 극에 달할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그래요....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 썩어빠진 사회'랍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부모는 자식에게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이 말은 썩어빠진 사회'를 도우라는 뜻이 아닌가 ? 부모가 돼서 이 사회의 공모자'가 되라는 소리나 작작하고 있으니 통탄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당당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 " 저는 사회에 필요 없는 인간이 되겠습니다 ! "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 필요 > 는 관념과 물건 따위를 지시하는 단어'와 어울려야지 엉뚱하게 사람 옆에 붙으면 안된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 우리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 " 이라고 귓속말로 은밀하게 말한다면 그 사람은 열에 아홉, 당신을 소모품 따위로 취급하는 인간이다. 백만돌이 에너자이저인 당신이 팔팔할 때에야 우야우야 떠받들겠지만 백만 스물 하나에서 백만 스물 두우우우우울'이 되는 순간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다. 조직에 의해 제거된 희생자는 한때 조직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인물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필요한 인간과 불필요한 인간 따위로 모집단을 나눌 수 없다. 인간을 < 필요 - 인간 > 과 < 불필요 - 인간 > 으로 나누는 사회는 파시즘 국가'가 될 위험이 있다. 히틀러는 장애인, 집시, 유대인을 악(불필요한 인간)으로 취급했던 위험한 인간이 아니었던가. 그는 인간을 " 빠떼리 " 를 삽입한 automan쯤으로 취급한 인물이었다. " 빠떼리가 다 된 놈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 " 이런 놈에게는 빠떼루를 줘야 한다. 권정생은 이오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상대가 선할 땐 나도 선한 것이고 상대가 악할 땐 나도 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 자체가 악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선한 것도 아니라 다만 어리석다는 것뿐입니다.
지나친 지혜로움은 사악을 유발시키고, 지나치게 착한 것은 어리석음의 원인이 됩니다. 아담과 이브가 몰락하게 된 원인도 그들은 지나치게 착했기 때문입니다. 선한 사람은 절대 앞뒤 결과에 대한 계산을 하지 못합니다. " 이 깊은 통찰 앞에서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사회는 끊임없이 " 권선징악 " 을 유포하지만 악랄한 놈일 수록 성공하는 사회'다. 그 옛날, 이솝의 주인이 노예였던 이솝을 어여삐 여겨 이런 젠차로 서로 사맛디 아니했던 노비'를 자유인 신분으로 풀어준 이유는 이솝 우화가 주인의 법'에 충실했다는 데 있다. 노예였던 이솝이 동료들에게 꾀부리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 현실에 만족해라, 욕심을 부리지 마라 -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예뻐하지 않을 주인이 있을까 ? 이솝(우화)는 삶의 지혜'가 담긴 책이 아니라 후흑학에 가깝다.
후흑학이란 후 : 厚 두터울 후'에 흑 : 黑 검을 흑'이 결합한 말로 뻔뻔하고 음흉한 놈이 권력을 얻는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학문이다. 멀리 볼 것 없다. 이승만으로 시작하는 한국 정치사'를 보면 답이 나온다. << 이솝 우화 >> 는 고대 그리스의 << 용비어천가 >> 에 지나지 않는다. 후흑의 달인'은 누구보다도 지나치게 착한 놈은 어리석은 놈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한국 사회'가 끊임없이 < 착한 사람 > 을 호명하는 이유'이다. << 이솝 우화 >> 를 읽고 자란 아이는 결국 주인의 법에 길들여진 노예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 이 책은 도덕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복종에 대해 가르친다. 기득권 세력이 보기에 이보다 " 아름다운 세뇌 " 는 없다. << 잔혹 동시 >> 가 어른 사회에서 격렬한 반감을 일으킨 원인'은
이 시집이 " 어린이-다움 " 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 詩(학원 가기 싫은 날)에서 시인'은 어른이 요구하는 길들여진 동심'을 거부한다. 한국 사회'는 사회가 요구하는 " - 다움 " 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 위플래시 " 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다워야 하는데 남자답지 않은 남자는 즉각 << 사내새끼가... >> 로 시작되는, 앙칼진 말풍선 공격을 받고, 여자다워야 하는데 여자답지 않은 여자 또한 << 감히 여자가... >> 따위로 시작하는, 앙칼진 말풍선 공격을 받는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다워야 하는데 아이답지 않은 아이'는 되바라진 아이'가 된다. 정상적인 어른이라면 이 詩에서 아이의 상처를 보고 아파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 시 때문에 자신이 상처를 입었다고 징징거린다. " 아이가 고사리손으로 한 대 때려서 아팠쪄요 ? " 이처럼 사회가 요구하는 성 역할을 위배하면 응징이 따른다.
예쁜 동심은 사회가 만든 허구'다. 천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사탄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사탄 없는 천사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마찬가지다. 예쁜 동심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나쁜 동심도 있다는 사실을 긍정해야 한다. 잘못된 교육은 인간의 결합을 숨기려는 데 있다. 권정생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