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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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와 테오처럼     :    제가 겪어 보지

못한 같은 얘기는 쓸 수가 없습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있다. 미각도 중요하지만 시각도 중요하다는 의미로 내용에 앞서 모양에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반면, 보기 좋은 음식 먹을 거 없다는 속담도 있다. 모양은 반지르르한데 내용이 부실하다는 말. 요즘 유행하는 킨포크풍의 " 푸드 스타일리스트 " 라면 둘 다 새겨들어야 할 속담이다. 꾸미는 수작이 과하면 맛이 떨어지고 부족하면 먹음직스럽지가 않다. 음식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 김밥 위에 뿌려지는 < 깨 > 를 볼 때마다 기형도 詩 가 생각난다. 김밥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 값싼 식재료)을 숨기기 위해 먹음직스러운 깨를 잔뜩 뿌려 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기형도,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中 ).

시장 안에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먹거리 음식은 지나가는 행인을 유혹하기 위해 깨가 잔뜩 뿌려져 있다. 이처럼 깨가 잔뜩 뿌려진 음식은 대부분 가격이 저렴한 먹거리'다. 고급 요리'에 깨가 잔뜩 뿌려지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은가 ? < 깨 > 는 일종의 " 메이크업 " 에 속한다. 깨는 확실히 침샘을 자극하는 파블로프의 조건 반사'인 셈이다. 깨를 보면, 아......침이 고인다 ! 싱싱한 식재료가 아닐수록 < 화장 > 이 짙어지는 경향이 있다. 비린내가 많이 나는 생선 요리'는 온갖 독한 양념으로 비린내를 감춘다. 반면 싱싱하고 질 좋은 생선을 구할 수 있는 섬마을에서는 양념을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거제에서 먹은 " 대구맑은탕 " 은 일미 一味 였다. 이 요리에 들어간 식재료는 싱싱한 대구 생선과 소금 간이 전부였다.

문장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정성일 평론은 마늘, 생강, 양파, 대파 따위로 싱싱하지 않은 생선의 비린내를 감추려는 노력이 엿보였고, 신형철 평론은 김밥 위에 깨를 너무 많이 뿌려서 모래 해변에 떨어트린 아이스케끼를 씹는 식감이 전해진다. 겉은 화려한 수사'로 치장했으나 속은 황폐하다. 빈 깡통이 요란한 경우'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하나 없는 것이다. 당신의 취향을 저격하기 위한 글은 아니다. 이 글은 내 취향 고백일 뿐, 콩트는 콩트일 뿐이니 주먹 꼭 쥐고 괄약근 꽉 조이지는 마시라. 이오덕과 권정생이 30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사실, 편지'라는 게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다 보니 솔직함보다는 형식에 얽매인 것 같아 답답한 느낌을 받아서 서간 書簡 형식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남들이 신영복의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이나 김대중의 << 옥중서신 >> 을 읽으면 감동할 때, 나는 항상 시큰둥했다. <<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라는 冊도 선물이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땅을 치고 후회할 뻔했다. 그 옛날, 내가 거제에서 맛본 대구맑은탕 맛이 났다. 읽는 내내 압도당했다. " 선생님, 요즘 어떠하십니까 ? " 라는 말은 주로 이오덕이 권정생에게 묻는 안부'다. 어릴 때부터 병약하여 죽음의 문턱을 오락가락했던 권정생이었기에, 문학 후견인을 자처하며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이오덕은 항상 권정생의 건강이 걱정된 모양이었다. 이오덕은 권정생보다 12살이나 많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스승이었고, 때론 애틋한 연인처럼 보였다.

이 우정은 깊고 투명해서 아름다웠다. 무엇보다도 권정생이 쓴 편지'는 그가 단순한 동화 작가가 아니라 철학자'였다는 사실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그는 이오덕에게 보내는 1977년 7월 5일 자 편지에 다음과 같이 쓴다. " 제 동화가 무척 어둡다고들 직접 말해 오는 분이 있습니다만, 저는 결코, 제가 겪어 보지 못한 꿈 같은 얘기는 쓸 수가 없습니다. 쓰려고 노력하지도 않겠습니다. 팔 병신은 팔 병신다웁게 몸을 움직이고, 다리병신은 다리병신다움게 절뚝거리는 것이 정상이라고 봅니다. 잘못된 교육은 인간의 결함을 숨기려는 데서 비인화시켜 버린다고 봅니다. " 권정생은 동화'라고 해서 대책 없는 희망 고문'을 해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 몽실 언니 >> 와 << 강아지 똥 >> 을 보면 그의 철학이 엿보인다. 그렇게 그들은 나이'가 든다.

이오덕이 권정생에게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라고 묻던 안부는 세월이 흐르면서 바뀐다. 권정생은 칠순을 넘은 이오덕에게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라고 묻는다. 입장이 바뀐 것이다. 이 도치 倒置 가 묘하게 아프다. 이오덕은 2003년 8월 25일 숨을 거둔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편지는 2002년 11월 28일이 마지막이었다. " 죽음을 두려워 않는 용기를 도저히 저는 가질 수 없을 것 같 ( 1976.11.26 편지) " 다고 고백했던 권정생은 그가 마지막 남긴 유서에 다음과 같이 쓴다. 그가 지상에 남긴 마지막 편지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스물다섯 살 때 스물 두 살이나 스물세 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유언장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글이었다.

 

 

 

 

 

 

덧대기

 

박노해가 펜 대신 카메라를 잡고 전세계를 여행한 적이 있다. 목적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을 사진에 담는 것. 그가 담은 사진은 전시'를 거쳐 사진집으로 출간되었다. 가격은 10만 원이었다. 의, 아했다. 가난한 사람의 얼굴을 담았으나 역설적이게도 가난한 사람이 책을 사기에는 지나치게 비싼 고급 사진 책이었다. 권정생은 이오덕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지식산업사에 맡기셨다는 동시집은 조그맣게 소박하게 내어 주십시오. 그래야 책값도 헐해지고, 마음도 편해집니다. 될 수 있으면 아동 도서는 값이 싸고 소박하게 만들어 팔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그림보다 이해시키기 위한 그림이 더 낫고, 지속한 그림보다 차라리 그림이 없는 쪽이 좋을 것입니다 (1986.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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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5-05-10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는 전투적인 활동파(박노해, 김지하 등)였던 이들이 나중에는 권력과 주류와 손쉽게 타협하는 광경을 종종 보게 됩니다. 어쩌면 그들은 세상을 더 좋게 바꾸고자 하는 의지보다 자신의 입신 욕망과 인정 욕구가 컸기에, 결국에는 속류화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종편에 어쩌다 김지하가 나와서 한 번 봤는데, 갈수록 인간이 추해지더군요.
그에 비해 권정생은 고립과 침묵, 은둔의 자세를 한결같이 유지하지요. 본인 스스로도 ˝차라리 침묵하고 있는 쪽이 당당할지도 모릅니다(210쪽)˝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이니까요. 어쩌면 이러한 자세야말로 그가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을 만들어 주었고, 혼탁한 시류와 타협하지 않게끔 강건한 마음을 다져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중간본인 이 책이 다시 발간된 사실이, 올해 출판계의 크나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진가를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10 15:56   좋아요 0 | URL
앞으로 올해 날이 많이 남았지만 이 책이 올해 읽은 책 가운데 가장 탁월한 책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이 책 읽으면서 압도당했습니다. 참... 외로웠던 인간이었으나
그 외로움을 견디며 견딘 세월 앞에서 경외심이 들더군요. 이런 분이 10명만 있어도 기름진 문학판이 될 텐데
요즘은 어째 사쿠라만 남아서.....

지금행복하자 2015-05-10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진집 보고 허거덕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5-11 10:57   좋아요 0 | URL
아버지 칠순 기념 하기 위해 자식들이 돈을 모아 펴낸 고희 기념 자서전 같은 느낌이 듭니다.

돌궐 2015-05-11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오덕 일기 3권에서 김지하를 허벌나게 씹던 게 기억나네요. 전 이오덕 선생 글은 정말 누워서는 못 읽습니다. 바른 자세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11 10:5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김지하를 볼 때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엘리트 영웅주의에 빠졌던 인물이라고 말이죠.
황석영도 비슷한 구석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