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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우맨 감독판(1DISC) - 할인행사
폴 버호벤 감독, 케빈 베이컨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Holloween man
폴 베호벤 : " 어둡고, 무시무시하고, 긴장감 있는 이야기다. 이 모든 것이 플라톤의 << 국가론 >> 2권에 나오는 일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명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반지를 발견한 남자는 궁전으로 가서 여왕과 동침을 하고 왕을 죽인 다음 스스로 왕이 되었다고 한다. 플라톤은 인간이 내재적 도덕률 때문에 올바르고 겸손하게 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의 구속력에 어쩔 수 없이 순종하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말한다. "
ㅡ Interview with 제이 홀벤 中
계체량 심사를 위해 저울 위에 오르는 권투 선수의 조심스러운 발끝처럼 여왕은 마술 거울 앞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묻는다. " 거울아, 거울아 !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 " 거울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 바로 당신입니다 ! " 라고 대답한다. 여왕은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누구나 다 아는 백설공주 이야기'다. 모르면 간첩이고, 너무 많이 알면 빨갱이'다. 세월이 흐른 후, 여왕은 거울에게 다시 묻는다. 거울 속에는 여왕 얼굴 대신 백설 공주 얼굴 이미지가 아지랑이처럼 아른아른 피어오른다. 흑단 머리에 하얀 피부 그리고 새빨간 입술...... 말하는 거울은 들뜬 목소리로 대답한다. " 백설공주가 제일 예뻐여, 헤헷 ! " 여왕은 주먹 불끈 쥐며 괄약근 꽉 조인다.
그런데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판타지를 제거하고 사실적으로 각색하자면 " 말하는 거울 " 은 여왕의 자기 내면 목소리'일 가능성이 높고, 거울 속에 비친 얼굴도 자기 얼굴일 가능성이 높다.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얼굴(혹은 목소리)을 타자'로 오인'하는 경우'이다. 기괴한 풍경처럼 보이지만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 시행착오'이다. 개가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으르렁거리듯이, 사회화 과정을 학습하지 못한 생후 6개월 ~ 18개월된 신생아'도 처음 거울을 보게 되면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다. 그러니까 신생아'도 여왕처럼 거울 속에서 타자(라고 착각하는 자신)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신생아는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때 느끼게 되는 황홀감이란 ! 라캉은 이 과정을 " 거울 단계(상상계) " 라고 명명하면서 이 단계를 거쳐야 상징계'로 진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상징계란 말과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뜻한다. 이 말은 곧 사회화된 신체'를 의미한다. 라캉이 백설공주 이야기'를 분석했다면 << 여왕 >> 을 " 거울 단계 " 이론으로 설명했을 것이고, 프로이트라면 " 구순기 고착(자기애) " 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거울 단계와 구순기'는 서로 상응한다. 즉 거울 이미지에 집착하는 여왕은 인간의 자의식, 공격성, 경쟁, 자기애, 질투 그리고 이미지들에 매료되는, 상상계에 고착된 캐릭터'다. 거울 단계(상상계) 이전이 초법적인 어머니-영역이라면 말과 언어 학습을 통해 사회화 과정을 배우게 되는 상징계'는 법이 지배하는 아버지-영역'이라 할 수 있다.

폴 베호벤이 연출한 영화 << 할로우 맨, 2000 >> 은 태아와 산모가 분리되지 않은 모태(코라, chora) 상태를 탐구한다. 투명 인간이 된 과학자 세바스찬 케인'은 거울을 통해 자기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거울 이전 단계'로 퇴행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몸과 얼굴이 없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체면이 없다( 體面 : 몸 체, 얼굴 면 ). " 체면 " 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명예와 평가가 반영된 얼굴로 체면이 없다는 말은 수치심을 모른다는 것과도 연결된다. 정신분석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수치심이 없는 세계를 어머니의 세계(chora)로 구분하고 수치심이 있는 세계를 아버지의 세계로 나눴는데, 그에 따르면 고전 소설 << 로빈슨 크루소 >>에서 로빈슨 크루소'가 사는 무인도는 전형적인 어머니의 세계'가 지배하는 영토'다.
무인도에 고립된 사람은 체면을 차리기 위해서 굳이 타자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그는 격식을 차릴 필요도 없고, 법을 지킬 의무도 없으며, 벌거숭이인 채로 아무 데서나 똥을 산다고 해도 체면이 깎일 이유는 없다. 로빈슨 크루소는 얼굴은 있지만 체면은 필요 없는 존재다. 과학자 세바스찬 케인도 마찬가지'다. 그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고립된 인간은 아니지만 아무도 그를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처지'가 된다. 라캉의 지적질을 빌리자면 누군가가 나를 응시할 때 비로소 나는 존재한다. 이처럼 타자의 응시에 의해서만 < 나 > 는 존재하기에 투명 인간 케인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세바스찬 케인은 얼굴도 없고 체면도 없다.
체면이 없으니 체면 깎일 일도 없고 체면 차릴 일도 없다. 영화 << 할로우 맨 >> 은 체면을 잃어버린 남자의 욕망'을 다룬다.

▶ 세바스찬 케인'이 투명 인간이 되는 과정은 이 영화의 화려한 볼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이 장면은 매끄러운 피부 속에 감추어진 비체( 토사물, 피, 내장, 오물, 고름 따위)를 보여준다. 껍데기에 불과한 성인의 피부는 흉물스러운 비체'를 감춘다. 또한 이 장면은 피와 살이 완전히 돋지 않은, 채 자라지 않은 자궁 속 태아'를 연상시킨다. 세바스찬 케인은 시간을 거슬러 어머니의 분비물에 둘러쌓인 태아를 경험한다. 이 영화는 무에 대한 욕망, 타나토스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다룬다.

영화는 처음에는 공상과학영화'라는 공식에 충실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느닷없이 공포 영화'로 전환된다. 시작은 << 할로우 맨 >> 이었지만 끝은 << 할로윈 맨 >> 으로 치닫는다. 폴 베호벤은 성장 코드'를 반대로 진행하여 " 육체의 퇴행 " 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 육체의 퇴행 " 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 세바스찬 케인은 시간은 거꾸로 간다 ㅡ 버전 >> 이라 할 수 있다. 영화가 진행될 수록 그의 신체는 오물투성이로 뒤범벅이 된 비체( abjection, 卑體 / 非體 ) 가 되어간다. 아브젝션(abjection)은 라틴어 " abjectio " 에서 유래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공포 심리를 분석하면서 " ab jection " 을 선택한 이유는 주체(sub ject) 도 아니고 객체(ob ject) 에도 포함되지 않는, 주류 영토에서 추방당한 신체를 다루기 위해서다.
접두사 ab- 는 벌어진 틈, 분리, 제거'를 의미하는데 내던져 버리는 행위를 지시하는 " jectio " 와 결합하여 비참, 타락 혹은 비천한 상태라는 의미를 생성한다. 그러니까 << 비체 ㅡ 이미지 >> 는 집 안의 청결을 위해 분리 수거된 후 집 밖으로 내다 버려진 쓰레기 봉투 속 내용물과 비슷하다. 비체 이미지'는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하면서 버린 것 : 파 뿌리, 양파 껍질, 상한 음식, 애완견 배변 시트, 퉁퉁 불은 국수 몇 가닥, 시커멓게 탄 음식, 정액에 담긴 콘돔, 건강을 위해 살점에서 도려낸 비계 껍데기, 생리대, 가래, 더러운 오물을 닦은 휴지 따위'와 유사하다. 그것들은 항상 청결을 위해 분리되고 은밀하게 제거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 비체 " 라는 개념을 끌여들어서 말하고 싶었던 것도 이와 같다.
그녀는 몸의 청결을 위해 몸 밖으로 분리된 후 은밀하게 수거되는 목록에 주목한다. 비체 이미지는 몸의 구멍에서 쏟아낸 똥, 피, 오줌, 고름, 눈물, 토사물, 콧물, 침 따위'이다. 이러한 비체 분비물로 범벅이 된 신체는 청결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비체를 (전염성 강한) 질병에 걸린 육체'로 인식한다. 현대인에게 비체는 접촉 금지 대상'이다. 대표적 불가촉천민(접촉 금지 대상)'이 바로 드라큘라'인데 신체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드라큘라 또한 주체도 아니고 객체도 아닌 非體이면서 卑體이다. 투명 인간인 세바스찬 케인도 신체가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드라큘라와 동일하다. 영화 << 할로우 맨 >> 에서 세바스찬 케인'은 피 범벅'인 채로 관객에게 모습을 드러내는데 말 그대로 " 핏덩어리 " 이다.
이 모습은 마치 자궁 밖으로 적출된, 갓 태어난 태아의 모습을 닮았다. 이처럼 케인은 퇴행을 거듭할수록 더욱 폭력적으로 변한다. 관객이 피범벅이 된 케인'에게 느끼는 불쾌감은 폭력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더러운 비체 분비물'에 있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피범벅이 된 케인 이미지'는 성인 괴물'이 아니라 모태 속 불완전한 태아의 이미지'에 가깝다. 그는 " flesh and blood " 로 이루어진 완전한 신체가 아니라 " flesh 없는 blood " 로만 이루어진 비체'이다. 그는 어머니와 아이가 분리되지 않은 아버지의 법 이전 상태이자 원초적 어머니 영토인 상상계 이전의 코라 에 갇힌 존재'다. 그를 지배하고 조종하는 힘은 초법적 어머니'이다. " 코라 " 상태인 여성 괴물을 다루는 대표적인 영화는 << 엑소시스트 >> 와 << 캐리 >> 가 있다.
두 영화 모두 비체 이미지'인 " 초경 " 을 주요 모티브로 삼는다는 측면에서 공포의 근원은 여성성에 있다. 영화 << 엑소시스트 >> 는 " 어머니ㅡ몸 " 과 " 아이ㅡ몸 " 이 서로 분리되기 전 상태를 다룬다. 악령이 깃든 소녀가 발산하는 신경증은 어머니의 몸에서 분리되지 않으려는 태아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반면 << 캐리 >> 는 아이와 분리되기를 거부하는 어머니의 신경증을 다룬다. 캐리는 어머니의 몸 밖으로 배출되어 분리되고 싶어 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 << 할로우 맨 >> 의 세바스찬 케인 박사'는 << 엑소시스트 >> 에서 귀신 들린 소녀'와 심리적 동인이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폴 베호벤 감독은 퇴행을 거듭하는 비체 과정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플라톤의 << 국가론 >> 2권에 나오는 " 기게스의 반지 " 이야기를 빌려 인간은 과연 선한 존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나 또한 묻고 싶다. 인간은 과연 태어날 때부터 선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일까 ■
- 인문학자 강신주는 서울역 노숙자를 " 영혼 없는 좀비 " 라고 했는데, 그가 보기에 노숙자는 주체(subject)도 아니고 객체(object)도 아닌 분리 수거되어 밖으로 내다 버려진 존재(ab ject)에 불과하다. 그는 노숙자를 신체(주체+객체)가 아닌 " 비체:卑體'이면서 동시에 비체:非體 " 로 인식한다. 인문학을 가르치는 인문학자라는 명함치고는 꽤나 싼티나는 인식론'이다. 그는 신랄하게 자본주의를 비판했지만 노숙자를 노동 생산성이 결여된 존재로 인식하고 비체(영혼 없는 좀비)로 강등함으로써 그 누구보다 자본주의적 인간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했다.
- 코라 : 아직 충동의 쳬계 속으로 집결되지 않은 몸의 맥박들이 간헐적으로 상징적 담론을 교란시키는 전 오이디푸스적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