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파일럿 프로그램 : 아빠를 부탁해
알라딘 서재 글에 예언인 듯 예언 아닌 예언 같은 글을 쓴 적 있다. " 이명박 정권은 << 엄마를 부탁해 >> 서사가 작동하는 정부이고, 박근혜 정권은 << 아빠를 부탁해 >> 서사가 작동하는 정부가 될 것이다. "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교체되는 시점에 상영된 << 7번 방의 선물 >> 은 박근혜 정권의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적 영화였다. << 7번 방의 기적 >> 은 << 국제 시장 >> 으로 돌아왔다.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라는 70년대 박정희 클리쉐로 무장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 신파 최루성 격정 통속 쓰나미 드라마의 핵심은 그때 그 시절 가난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 이 자슥아, 너희가 이만큼 배터지게 먹고 살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가난했던 시절 아버지의 희생이 있었던 기라.... " 같은 맥락으로 영화 << 변호인 >> 을 해석할 수도 있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가 아버지를 강박적으로 호명하는 이유는 박정희'라는 강력한 아버지의 복원에 있다.
- 2014년을 마무리하며 中
한국인의 평균 티븨 시청 시간이 대략 3시간'이라고 한다. 일주일 평균 티븨 시청 시간이라면 양호할 텐데, 유감스럽게도 1일 평균값'이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뉴스 1시간 보고, 드라마 1시간 보고, 예능 1시간 보고 나서 자정 즈음에 잠자리에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정도면 " 삼시세끼 " 가 아니라 " 삼시시청 三時視聽 " 이니 삼식이 새끼'라는 소리 듣기 딱이다. 옛부터 티븨는 " 바보 상자 " 로 통했다. 한국인은 하루에 세 시간 정도'는 바보인 채로 살아간다고 말하면 서운하겠지만 사실인 것을 아니라고 말하기도 그래서 " 한국인은 하루에 세 시간 정도는 넋을 놓은 채 티븨를 시청하며 그날의 피로를 푼다. " 라고 고쳐 쓴다. 내 독서 경험에 비춰, 300페이지 분량인 책'을 다 읽는데 평균 5시간 걸린다고 했을 때
티븨 시청 시간을 고스란히 책을 읽는 데 투자하면 한달에 18권, 일년이면 대략 200권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기에 직장 생활하면서 책 한 권 읽기가 힘들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직장 생활 때문에 시간을 투자할 여유가 없다며 앓는 소리를 하지만 정작 티븨는 1일 평균 3시간을 소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바보 상자에서 쏟아내는 정보가 얼마나 값진 정보인지는 모르겠으나 기껏해야 점심 시간에 오가는 수다'에 활용될 뿐이니 그닥 좋은 정보는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독서 습관을 들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티븨'를 없애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이 티븨를 박살내고 책만 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우선 뉴스'는 볼 필요 없다. 짬짬이 직장 생활하면서 뉴스 기사'를 훑으면 되지 굳이 집에 와서도 뉴스를 보며 주먹 불끈 쥐며 괄약근 꽉 조일 필요가 있을까 ?
그리고 드라마와 예능은 때에 따라서 각각 하나씩 골라 보는 " 징검다리 시청 " 을 하면 된다. 월화 드라마를 시청하면 월화 예능은 포기하고, 수목 예능을 시청하면 수목 드라마는 포기하는 방식이다. 다이어트하는 사람이 당일 섭취한 칼로리를 기록하듯이 시청 시간을 기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시청 시간이 과하면 줄이고 부족하면... 굳이 늘릴 필요는 없다. 이런 식으로 티븨를 활용하면 1일 평균 3시간은 1시간 30분으로 줄어들게 되고, 절반으로 줄어든 시간으로 인해 그만큼 늘어난 시간은 독서에 투자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1일 티븨 시청과 1일 독서 읽기가 균형을 이루게 된다. 꽤 근사한 해결책이 아닐까 ? 생활 습관을 고치면 1년에 100권'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고 1년에 꼬박꼬박 100권 정도 읽는다고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멀리 볼 것 없다. 나를 보면 안다. 한번 삼식이 새끼'는 영원히 삼식이 새끼'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티븨 시청'보다는 그 시간에 책을 읽는 게 더 유익하다는 말은 진리'이다. 티븨와 책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티븨는 겉절이'다. 겉절이는 바로 먹어야 제맛이다. 하루만 지나도 맛을 잃는다. 방송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는 바로 그때에만 통용되는 커뮤니티'이다. 몇 년이 지나서도 이 드라마가 중요한 커뮤니티가 될 가능성은 제로'다. 반면 책은 오래 묵은 간장과 같다.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맛이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깊은 맛이 난다. 10년 전에 읽은 << 파우스트 >> 를 다시 꺼낸다고 해서 당신을 구닥다리'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번 명절 연휴에 온가족이 모여 떡국 먹으면서 sbs 파일럿 프로그램 << 아빠를 부탁해 >> 를 보았다. 가족 구성원은 모두 재미있다며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지만 내 눈에는 강석우와 딸을 다룬 챕터'가 끔찍하게 폭력적인 풍경처럼 보였다. 강석우는 친구 같은 아빠'가 아니다. 강석우는 그 누구보다도 더 가부장적인 아버지'다. 20살이 넘은 딸의 몸을 허락없이 마음대로 만질 수 있는 것은 스킨십이 아니다. 내 새끼'라는 이유로 느닷없이 다 큰 딸의 목덜미를 애무하거나, 팔뚝을 만지고, 자기 허벅지에 딸을 눕게 만드는 것을 가족끼리 통용될 수 있는 스킨십'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아버지는 딸을 완전체로 본다기보다는 아버지의 관리 아래에서 관리되어야 할 소유물 정도'로 인식한다. 딸도 마찬가지'다. 딸은 아버지에게 길들여져서 " 관리받는다 " 는 사실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딸은 주체적 독립체라기보다는 단순히 관리대상 종목'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가족이 직면한 문제점은 부모와 자식 간 관계가 " 남남처럼 데면데면하다 " 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대한민국 부모는 자식을 " 남남처럼 대우할 " 필요가 있다. 한국 부모는 자식을 완전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는다. 가족 동반 자살이 대표적이다. 가장'이 죽음을 선택할 때 물귀신처럼 자식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자식을 자기 소유물 정도로 여기기 때문이다. 가족구성원이 남남처럼 데면데면한 관계'가 좋은 관계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핏줄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가족은 운명공동체이기에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공동체적 운명을 강조하는 것은 폭력이라는 소리'이다. 강석우는 타자에 대한 존중 차원에서 자식을 남남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프로그램이 정규 방송으로 편성되어야 된다는 사실이 끔찍할 뿐이다. 요즘 방송은 가족끼리 다 해먹는다. 어린 자식'을 가족 예능'에 끌여들여서 자기 인지도를 높인다. << 아빠를 부탁해 >> 도 가족끼리 다 해먹는 전형적인 방송이다. 겉으로는 부녀지간의 소통을 다루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이경규 딸 이예림음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이고 강석우 딸 강다인도 같은 대학 동문이다. 그리고 조재현 딸 조혜정 또한 미국의 한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고 하고, 조민기 딸도 아나운서가 목표라는 점에서 네 명의 딸은 모두 미디어와 관련된 직업을 희망하는 지망생들이다. 아버지들은 마치 딸을 위해 두 팔 걷고 나선 모양새'다. 가족끼리 다 해먹는 이런 방송에도 시청자들이 애정을 가지고 지지해야 할까 ?
방송은 특정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연예인 가족끼리 나와서 가족끼리 힐링하는 방송은 공익이 아니라 편애'다. 가족끼리 다 해먹는 방송을 굳이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지상파 방송이라면 지향해야 할 소재가 아니라 지양해야 할 소재'다. 힐링은 당신들 가족끼리 모인 자리에서 자기 돈으로 해결하고 출세하려거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