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통방통한 존재'다. 그는 본질을 꿰뚫는 천리안을 가졌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 결과를 원인으로 잘못 보는 것보다 더 위험한 오류는 없다. 나는 그것은 이성이 본질적으로 타락한 모습이라고 본다. "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김태훈 칼럼 논란도 결과를 원인으로 잘못 보는 과정에서 오는 오류'이다. 김태훈은 김 군이 드센 페미니즘 때문에 조국을 등지고 IS행'을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그 단서로는 김 군이 페이스북에 남긴 "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어요. " 라는 문장이다. 여기서 A << 원인 : 드센 페미니스트 >> 과 B << 결과 : IS행 >> 으로 나뉜다. 그런데 김태훈의 이분법은 틀렸다. 왜냐하면 A와 B는 모두 어떤 것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A와 B는 결과'라는 카테고리에 묶여야 한다. 그런데 김태훈은 니체가 말한 결과를 원인으로 잘못 본다. 그렇다면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 추측컨대, 원인은 김 군이 또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중학교 졸업 후 학업을 포기한 채 은둔형 외톨이로 지냈다는 것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왕따 경험은 수컷으로서의 자존감을 상실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그 상실에서 오는 증오가 상대적 약자인 여성에게 전이된 결과'가 " 드센 페미니스트 혐오 " 이다. 종합하면 A << 원인 : 은둔형 외톨이에서 오는 폐쇄적 생활 >> B << 결과 : 여성 혐오, IS 행 >> 이다. 김 군이 IS행을 선택한 심리적 동인은 여성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손가락질하고 괴롭혔던 수컷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IS는 훈련을 통해 하디바디로 탄생할 수 있는 하드바디 육성소'다. 그는 하드바디가 되어서 보란 듯이 자신을 놀린 수컷들 앞에 당당하게 나서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역설적이게도 그가 남성성을 과시하고 싶었던 대상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인 것이다. 김태훈은 페미니스트들이 김 군에게 무슨 짓을 했냐며 눈알 불알이며 주먹 불끈 쥐었지만 김 군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은 여성이 아니라 아마도 자신을 무시하고 괴롭힌 또래 남자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 추측이 맞다고 했을 때 김태훈은 엉뚱한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한 것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으니 글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그는 이 칼럼에서 페미니스트를 비판하거나 혹은 사이비 페미니스트를 비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그냥 드센 여자'를 신랄하게 까고 싶었던 것이다.
이처럼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강간 사건을 예로 들어 보자. 성폭행 당한 여자와 성폭행한 남자 가운데 어느 쪽이 결과이고 원인일까 ? 시간 순서상, 결과 다음에 원인'이 올 수는 없다. 이 말은 자식이 부모를 낳았다 라는 소리와 같으니까. 강간 사건에서 결과는 성폭행 당한 상황'이다. 어떤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는 항상 결과'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원인은 성폭행한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 원인 : 짐승 같은 놈 >> 때문에 << 결과 : 성폭행 당한 여자 >> 가 발생한다. 그런데 " 결과를 원인으로 잘못 보는 경우 " 가 발생하면 니체가 말한 것처럼 이성이 본질적으로 타락한 모습이 된다. << 원인 :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늦은 밤에 돌아다닌 여자 >> 때문에 << 결과 : 꼴린 남자 >> 가 여자를 성폭행했다는 식으로 호도된다.
한순간에 뒤죽박죽이 된다. 이런 수작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집단이 대한민국 남성들이다. 성 범죄 사건에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기에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 원인 : 여자가 적극적으로 거부 의사 표시 >> 를 하지 않았기에 << 결과 : 남자가 메지시를 잘못 읽고 >> 여성을 건드렸다는 주장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 원인 : 남자가 권력을 이용하여 >> 여자에게 겁을 주었기에 << 결과 : 겁에 질린 여자가 적극적으로 거부 의사 표시 >> 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식의 도치법은 피해자를 마치 가해자로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