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영화를 추천합니다 !
공포 영화 장르'가 싸구려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동네 비디오 가게'가 큰 몫을 차지'했다. 집에서 구보로 20분은 넘게 걸리는 가게'였는데, 일을 끝내고 집에 오는 길에 (두 정거장 전에 미리 내려서) 출퇴근 도장을 찍는 게 일상이 되었다. 집 근처 비디오 가게 대신 굳이 이 가게'를 찾은 데'에는 내가 사는 지역구 내에서 테이프 보유량이 가장 많은 큰 규모를 자랑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최신 A급 할리우드 극장 개봉작 대여료'가 2000원'이었고 극장 미개봉 출시작이 1500원'일 때 철 지난(비디오 출시 1년이 지난) 공포 영화'는 대여료가...... 놀라지 마시라, 1000원에 세 편'이었다. 말 그대로 공포 영화 장르 비디오 테이프'는 싸구려'였던, 였던, 였던 것이었다. 가게 주인이 공포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박리다매한 속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는데 첫째는 미끼 상술 전략'이었다.
" 대여료 1000원에 세 편 " 이라는 광고에 속아 신규 가입한 고객이 많았다. " 공포 영화'에 한해서... " 라는 제약 조건을 감추었으니 멋모르고 들어왔다가 얼떨결에 가입하고 가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 세 편 묶음 판매 상품 > 이 구멍가게에서 파는 담배와 시장에서 파는 콩나물과 같은 역할을 했다. 담배나 콩나물은 모두 이윤 마진이 거의 없는 품목이다. 하지만 담배와 콩나물이 구멍가게와 시장 상인에게는 중요한 효자 품목이었다. 왜냐하면 손님들이 담배와 콩나물을 구매하면서 달랑 담배와 콩나물만 사지는 않는다는 특수성 때문이었다. 담배 하나 사면서 드링크 음료 하나 더 사거나 콩나물 사면서 그 옆에 놓인 두부도 사는 것이었다. < 세 편 묶음 공포 영화 판매 > 도 마찬가지'였다. 세 편 묶음 ㅡ 상품을 사면서 동시에 최신 화제작'을 구입하거나 아예 계획을 바꿔 최신 화제작으로 고르고는 했다.
공포 영화는 그런...... 존재였다. 공포 영화는 메인 요리가 아닌 스끼다시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 뉘'가 이 비극적 < 삼류 딴따라 스끼다시 플러스 원 미끼 떨거지 인생 > 을 원했으랴. 공포 영화는 태생부터가 담배와 콩나물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 티븨'라는 가전제품의 탄생은 곧 극장의 몰락을 의미했다. 극장용 활동사진을 집에서 드라마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은 대형 스크린 대신 작은 티븨 브라운관으로 시청해야 된다는 단점을 극복하고도 남았다. 결국 할리우드가 선택한 방식은 플러스 원 상품이었다.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는 가격으로 두 편'을 볼 수 있게 만드는 전략이었다. 그것이 바로 두 편 동시 상영이었다. A급 영화 한 편에 B급 영화 한 편을 끼워 파는 방식이었다. 당연히 끼워팔기 상품인 B급 영화가 A급 영화'보다 제작비가 비쌀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B급 공포 영화였으니 가게 주인이 5,60년대 할리우드 전략을 모방한 것은 영리한 계산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블랙컨슈머'에 해당되는, 그닥 반갑지 않은 고객이었다. 구닥다리 공포 영화 비디오 테이프'만 빌렸으니 말이다. 사실 공포 영화는 팔 할이 눈 뜨고는 도저히 못 볼 영화'였다. 형편 없는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주류 감성'이라고 불리는 뽕끼'와 잰 체하는 꼰대적 근성을 아예 포기하면 그럭저럭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장르가 공포 영화이기도 했다. 공포 영화를 깊이 있게 보(려고 노력하)는 순간, 이 장르 영화에도 풍부한 인문학적 성찰을 발견하게 된다. 다음은 타임아웃 선정 공포영화 100선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추천할 만한 영화 몇몇'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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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지원이 되지 않는 관계로 동영상 자료를 보고 싶은 분은 네이버 블로그 http://myperu.blog.me/220253678295
▶ Let's Scare Jessica to Death (1971) - John D. Hancock
깻잎 오소리 입말로 쌈박하게 번역하자면 " 우리, 제시카 부인'을 똥 쌀 정도로 허벌나게 겁줍시다잉 " 이 될까 ? 주인공 제시카'는 정신병원에서 막 퇴원해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귀농'한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이 영화가 뛰어난 점은 제시카가 경험하게 되는 무서운 장면과 귀에 맴도는 타자의 목소리가 정신분열 때문에 발생하게 되는 환영 幻影과 환청 幻聽'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더욱 재미있는 점은 제시카 스스로도 자신이 경험하게 되는 환영과 환청이 실재인지 허구인지를 알지 못해 전전긍긍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병적 증후가 재발하여 다시 정신 병원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영화는 끝까지 애매모호한 상태를 유지하다가 끝난다. 초저예산으로 만든 영화이지만 영화는 A급 심리 공포 영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특히 제시카를 연기한 여성 배우의 애매모호한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내가 아카데미 심사위원이었다면 이 배우에게 여우주연상을 주었을 것이다. 놓치면 후회할 영화'다.
▶ 신이 내게 말하길 God Told Me To , 1976 - 래리 코헨
조지 로메로 감독과 함께 정치색이 분명한 작가가 바로 래리 코헨'이다.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숭배하는 가치'를 공포 영화'라는 장치를 빌려 어두운 면을 폭로한다. 그가 주로 공격하는 것은 미국 / 자본주의 / 가부장제 / 젠더트러블'이다. 그의 전성시대는 70년대'였다. 그 정점에 << 그것은 살아 있다 >> 와 << 신이 내게 말하길 >> 이 위치한다. 래리 코헨 영화에는 정상적인 인간'이 하나도 없다. << 신이 내게 말하길 >> 은 밀교 密敎 를 추적하다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다는 내용인데 래리 코헨 영화답지 않게 꽤 세련된 영화'다. B급 영화답게 다른 영화에서 쓰다가 버린 필름과 소품을 재활용한 부분에서는 웃음이 난다.
▶ 마틴 Martin , 1977 - 조지 로메로
조지 로메로'가 작정하고 유럽 영화 스타일로 만든 영화'다. 나도 이렇게 심각하고 우아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만든 영화처럼 보인다. 물론 이 영화는 유럽 영화광들 사이에서 숭배받았다. 자신을 " 뱀뽜이어" 라고 생각하는 소년의 범죄 행각을 따라가다 보면 이 소년이 저지르는 범죄가 망상에서 비롯된 흡혈 모방 범죄인지 아닌지가 애매모호하다. 현대 뱀뽜이어 영화로는 << 렛미인 >> , << 어딕션 >> 과 함께 명불허전'에 속하는 걸작 영화'다. 이 영화에 홀딱 빠진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이 조지 로메로와 힘을 뭉쳐서 만든 영화가 바로 좀비 시리즈 2부에 해당되는 << 시체들의 새벽 >> 이다.
▶ 블랙 크리스마스 Black Christmas , 1974 - 밥 클락
이 영화는 슬래셔 무비의 모범 답안'이다. 다시 한 번 슬래셔 무비를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스타일로 번역하자면 피 튀기는 피범벅 활동 사진'인데 정작 << 블랙 크리스마스 >> 는 잔인한 장면이 별로 없다. 암시만 있을 뿐 장면을 노출하지는 않는다. 피 튀기는 피범벅 활동 사진의 전설이 되어버린 존 카펜터 감독이 연출한 << 할로윈 / 1978 >> 보다 4년 앞선 작품이란 점에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높게 평가해야 한다. 피'만 흥건한 요즘 슬래셔 무비'가 참고해야 할 우아한 슬래셔 무비'다. 맙소사, 우아한 슬래셔 무비'라니 !
▶ 쳐다보지 마라 Don't look Now, 1973 - 니콜라스 뢰그
내가 영화 수입사 사장이었다면 쌈박하게 " 눈 깔아라 ! " 라는 제목을 달았을 것이다. << 죠스 >> 극장 개봉 당시 제목이 << 아가리 >> 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썩 괜찮은 작명이지 않은가 ? 이 영화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장 뛰어난 공포 스릴러 영화 중 하나다. << 블랙 크리스마스 >> 가 잔인한 장면이 거의 없는 슬래셔 무비'이듯이, 이 영화는 사건이 거의 없는 스릴러 영화'다. 내용은 간단하다. 어린 딸이 물에 빠져 죽는다. 부부는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려고 남편 따라 베니스로 떠난다. 겉으로는 행복한 척하지만 결핍에 따른 균열은 곳곳에서 발생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감탄하게 되는 이유는 감독이 촘촘하게 쳐 놓은 그물망에 있다. 스릴러라는 장르 클리셰를 노골적으로 차용하면서도 식상하지가 않다. 신기한 대목이다. 영화를 다 보게 되면 다시 돌려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무릎 탁 치고 아 하게 만드는, 마약 같은 영화'다. " 맥거핀 효과 " 를 이처럼 영악하게 활용한 영화는 이 영화가 甲이다.
▶ 첸저링 The Changeling , 1980 - 피터 메닥
주류 할리우드 스튜디오 영화인데 만듦새가 끝내준다. " 귀신들린집 서사 ㅡ 영화 " 가운데 가장 탁월하다. 혹자는 이 분야에서 로버트 와이즈의 << 헌팅 / 1963 >> 을 최고로 치던데 그것은 클래식에 대한 예우 차원'이지 솔직히 말해서 << 헌팅 >> 은 메이져 A급 스튜디오 영화'치고는 그저 그렇고 그런 영화'다. 시각이 제거된 청각'이야말로 가장 무섭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증명한다. << 쳐다보지 마라 >> 가 이유 없는 타인의 응시'가 공포를 유발한다면, << 첸저링 >> 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소리 때문에 공포를 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