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조현아 그리고 산낙지.
한때 인문학 분야에서 " ●● 사회 " 열풍이 불었다. 피로 사회, 투명 사회, 행복 사회, 감시 사회, 과로 사회...... 그런데 이러한 제목 설정은 새롭기는커녕 진부했다. 나 또한 이 열풍에 동참했다. 내가 내린 진단은 대한민국은 << 낙지사회 >> 였다 ㅣ http://blog.aladin.co.kr/749915104/6370810 해물탕 요리 전문점에 가면 가장 흔한 풍경이 손님이 보는 앞에서 살아 있는 낙지를 펄펄 끓는 냄비 속에 넣는 장면이었다. 낙지는 이내 뜨거운 국물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죽는다. 문제는 가게 손님들이 그 모습을 보며 즐거워 하는 태도에 있다. " 국물 맛이 아주 시원해요 ! " 그러니까 숨탄것의 고통 앞에서 당신은 혓바닥에 침이 고이는 것이다. 여기서 죽음은 볼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동물의 생명 윤리에 대한 인식은 진라면 국물에 밥 말아 먹은 모양이다.
이러한 풍경은 마치 로마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로마 경기장 안에 굶주린 사자와 노예를 풀어놓고 살육을 즐기는 방식 말이다. 그것은 몰락하는 증후가 아닐까 ? 최근 벌어진 통진당 해산 사태를 보면 해물탕 냄비 속 낙지'가 생각난다. 박근혜 정부는 정윤회 파동에 대한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백성 앞에 살아 있는 낙지를 펄펄 끓는 냄비 속에 넣는 이벤트를 마련하고, 백성은 우르르 몰려가 통진당의 사형 선고를 구경한다. 통진당은 해산되었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통진당은 뜨거운 물 속에 빠져 죽은 낙지 신세'였다. 이것은 공포 정치를 강화하기 위한 공개 처형 방식과 유사하다. 누구든 까불면 죽는다는 메시지'다.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는 가게 주인도 나쁘지만, 사실은 그것을 원하는 손님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가게 주인은 영악하고 가게 손님은 멍청하다. 헌재에 의한 통진당 해산이 엉터리라는 사실은 법학에 대한 교양뿐만 아니라 논리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석 가능하다. 하지만 가게 손님은 낙지의 고통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뜨거운 물 속에 빠져 죽어가는 낙지를 보며 슬픔보다는 싱싱한 해산물이라는 기표와 기의'를 받아들일 뿐이다. 하긴 영화나 보면서 정치적 감각을 키운 영화 마니아'가 제대로 된 당대의 고통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는 안제이 바이다 영화나 캔 로치 영화에 대해서는 두 손을 번쩍 들며 지지하지만 정작 자신이 발 디디고 있는 당대의 노동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 판타지(스크린) " 에 감동할 뿐이지 " 리얼리티(현실) " 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조현아 땅콩 회항에 대한 언론 보도'도 조 씨 남매가 저지른 죄보다 과한 측면이 있다. 언론은 죄를 보도하는 역할을 하는 매체이지 죄를 심판하는 사법부가 아니다. 그런데 종편은 물론이고 지상파 방송은 온통 포청천이 되어서 조 씨 남매를 심판한다. 인민 재판을 떠올리게 한다. 언론이 조 씨 남매의 악행'을 단순히 냄비 속 낙지처럼 볼거리로 치부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언론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즐기지는 말아야 한다. 이처럼 한국인은 점점 잔인하게 변했다. 하지만 명심하자. 당신도 언젠가는 냄비 속 낙지가 될 수있다는 점을 말이다.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것은 " 시각적 쾌락 " 이다. 유식하게 말하자면 과시적 전시 효과'다. 냄비 속 낙지를 보며 즐거워하는 것도 시각적 쾌락이 병적으로 흐른 탓이다.
한국인의 시각적 욕망을 들여다보면 과잉되어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더욱이 수컷의 시각적 욕망은 꽤나 까다롭다. 한국 남성이 원하는 여성상은 청순 글래머이거나 베이글녀'이다. 글래머'이되 남성에게 순종적이어야 좋은 여자'이다. 글래머'이지만 남성에게 순종적이지 않는 여자는 좋은 여자가 아니다. 속이 보이는 뻔뻔한 수컷의 욕망이다. 베이글녀도 마찬가지다. 몸은 성숙하되 얼굴은 베이비'여야 한다. 롤리타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는 민망하니깐 내세운 논리가 베이글녀'다. " 동안 열풍 " 도 뜯어보면 롤리타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욕망이다. 그리고 허버지를 꿀벅지'라고 욕망하는 부분에서는 식인 욕망마저 느껴진다. 이처럼 여성을 외모와 몸매로만 보는 것도 병적인 시각적 쾌락의 몰입 혹은 전시효과의 극대화'라 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엔 죽어가는 낙지를 보며 낄낄거리며 박수치며 웃는 손님이나, 청순 글래머 혹은 베이글녀를 호명하는 좆의 욕망이나, 통진당 해산 사태를 보며 박수치는 젊은 20대 우파의 욕망이나 모두 동일하다. 한마디만 하련다. 소설가 박민규와 시인 류근의 말풍선을 섞어서 흉내 내겠다. " 시바, 조낸 조까라마이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