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말 한마디
" 알겠어요 ? 당신의 혀가 누나를 임신시켰다니까 ! "
ㅡ 올드보이 中
가정집에서 찌개'나 국거리'에 들어갈 파는 대부분 어슷썰기'를 한다. 왜 어슷썰기를 하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래 왔기 때문이다. 한석봉 어머니가 가래떡을 반듯반듯 통썰기 하면 이상하잖아 ! 하여튼, 요리에 취미'가 없는 사내들도 모처럼 피서지'에서 요리'를 할 때면 대부분 어슷하게 썬다. 그런데 곰탕'이나 설렁탕'을 파는 식당'에 가면 영락없이 십원짜리 동전 모양처럼 생긴 파( 통썰기 = 총총썰기 ) 가 나온다. 대파'를 한번이라도 썰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신체구조상 팔은 삐딱한 각도로 어슷썰기'를 해야지 편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반 가정에서야 대파 한 뿌리를 써는 일은 일도 아니겠지만 하루 종일 대량으로 대파를 썰어야 하는 식당에서는 왜 굳이 힘들게 총총썰기를 할까 ? 궁금증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장고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놀랍게도 맑스와 포드였다. << 생활의 달인 >> 이라는 인기 프로그램이 있다. 오랜 숙련으로 다듬어진 신기에 가까운 기술(자)를 찾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방송을 보다 보면 " 숙련 " 보다는 " 수련 " 에 가까운 감각과 몸짓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들은 도를 닦은 것이다. 이 방송에서 대파 썰기 달인이 나온 적 있다. 얼마나 빠른 시간'에 대파'를 써는가'가 그 달인에게 주어진 과제였다. 그가 그날 방송에서 선보인 방식은 대파 서른 뿌리'를 가지런히 모아서 커다란 중국 칼'로 한꺼번에 통썰기를 하는 거'였다. 다, 다.다.다.다.다.다.다 ! 순식간이었다. 칼로 " 썰다 " 라기 보다는 칼로 " 절단 " 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았다. 그렇다 ! 짧은 시간에 생산량을 최대치로 뽑으려는 욕망이 설렁탕 대파'에 투영된 것이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다.
그런데 << 생활의 달인 >> 이라는 프로그램은 겉으로는 평범한 서민의 노동 예찬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자본가 욕망을 충실히 반영한 근로 예찬'이라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생활의 달인'이 노동(자)에 접근하는 방식은 속도와 효율성이다. 우리가 감탄하는 순간은 한 사람이 열 사람 몫을 할 때이다. 한 사람이 대파 한 뿌리를 정성스레 써는 것은 가치가 없다. 이 방송은 속도에 대한 예찬과 피와 땀으로 이룩한 근로 정신을 찬양할 뿐이다. " 노동(자) " 과 " 근로(자) " 는 뜻이 같은 말처럼 보이지만 꼼꼼하게 살피면 오히려 반대말에 가깝다. 일할 로 勞, 움직일 동 動 으로 이루어진 < 노동 > 이라는 단어는 몸을 움직여서 일을 한다는 뜻이다. 방점은 움직일 動에 있다. 반면 < 근로 > 는 부지런할 근 勤 에 일할 로 勞 로 이루어진 단어'다. 부지런하다'에 방점을 찍는다.
노동량을 산출해서 크기 부호로 표현하자면 " 노동 < 근로 " 다. 국가가 < 노동자의 날 > 을 애써 < 근로자의 날 > 로 호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와 자본가가 요구하는 것은 평범한 노동자가 아니라 부지런한 근로자'다. 그들은 주부가 대파 한 뿌리를 어슷썰기'하는 것을 단순한 노동으로 폄하하지만, 생활의 달인이 대파 서른 뿌리를 단박에 통썰기하는 근로는 찬양한다. 이처럼 사고 방식이 삐딱하다 보니 머리에 쟁반 열 개를 쌓고 배달 일을 하는 노동자'만을 예찬하고 자전거 짐칸에 산더미 같은 짐을 쌓고 달려야 찬양한다. 자전거 짐칸에 짐을 산더미처럼 쌓고 달리면 과적이기에 불법이지만 자본가에게는 " 또.. 하 ~ 또... 하 ~ 아이고 의미 없다. " 가 된다. 자본가 입장에서 보면 과적은 짧은 시간을 투자해서 보다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방식이다.
그 결과가 세월호 침몰이라는 비극을 양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는 속으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 아이고, 의미 없다. " 과잉 노동을 찬양하다 보니 정상적으로 머리에 쟁반 하나를 올려놓고 배달하는 아줌마는 게으른 베짱이가 되기 일쑤다. 그런 것은 노동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 꼰대의 욕망 " 이 투영된다. 내가 말하는 꼰대는 쉽게 말해서 " 칼자루를 쥔 놈 " 이다. 여성보다는 남성, 동성애자보다는 이성애자, 맨발보다는 군화, 국민보다는 국가, 노동자보다는 자본가, 젊은이보다는 4,50대 늙은이가 칼자루를 쥔 자'다. 꼰대는 주류이기에 언어 또한 꼰대가 욕망하는 것을 반영한다. 男子 는 사내 남, 아들 자'로 이루어져 있다. 남자아이에서 성인 남성이 되어 가는 성장 코드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반면 < 女子 > 는 이상한 구조다. 이 단어만 놓고 본다면 여성 신체 절반은 남성 소유다.
한국 여성이 백인 남자의 애인이 되면 한국 남자는 가자미 눈깔이 되어 국산 장려 운동을 강조한다. 한국 여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짝은 한국 남자라는 인식이다. 그들은 신토불이를 주장한다. 한국 여성이여, 신나는 토요일 불타는 이 밤은 한국 남자와 함께 ! 에라이, 이 뻔뻔한 욕망. 영화 << 건축학 개론 >> 에서도 증명하였듯이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면 그 여자는 한순간에 " 쌍년 " 이 된다. 이 모든 것은 여성 신체를 독립적 주체로 보지 못하고 남성 소유물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오만'이다. < 착하다 > 는 말도 꼰대의 발상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착하다고 말하면 자연스럽지만 아들이 아버지에게 착하다고 말하면 어법 상 어색한 표현이다. 이때는 선하다는 표현을 써야 한다. 착하다는 웃어른이 아랫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이처럼 착하다는 어른 말을 잘 듣는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반영된 단어다.
반면 선하다는 낱말은 착하다는 뜻과 함께 도덕적 기준에 부합되어야 하는 조건을 가진 단어다. 종합하면 착하다는 말은 윤리적 판단 능력이 없어도 된다. 동네 바보는 착한 사람이 될 수는 있지만 반드시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 선하다 > 에는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부합될 때 사용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부모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하는 아들은 착한 아들일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적용되는 기준이다. 착한 사람은 yes만을 말하고, 선한 사람은 윤리적 판단 기준에 의해 no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방송 드라마나 리퀘스트 방송이 모두 착한 사람을 호명하는 자세는 꼰대의 욕망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꼰대는 착한 사람을 좋아하지 선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얼마 전, 강남 아파트 경비 노동자가 입주민의 지속적인 막말에 분개하여 분신을 시도한 사건이 발생한 적 있었다. 전언에 의하면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 입주민이 보기에 경비원은 하는 일 없이 아파트 관리비만 챙기는 베짱이라고 생각한 모양.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근로자가 아니라 단순히 밥을 축내는 노동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의학 상식으로는 화상에 의한 통증이 가장 고통이 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분신 후 한 달 동안 병원 침대에서 사투를 벌인 경비원은 태어나서 가장 고통스러운 한 달을 보낸 것이다. 분신은 다른 자살 행위와는 달리 사회에 던지는 강력한 항의'를 담고 있다. 그가 분신이라는 극단적 행위를 하면서까지 이 세상에 내뱉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 그는 자신에게 인간적 모멸을 준 입주자에게 진정어린 사과를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당신이 내뱉은 뾰족한 말 때문에 헛배 불렀다고, 사과하라고.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지목된 가해자는 끝끝내 사과를 거부하다가 경비 노동자가 죽고 나서야 여론에 떠밀려 장례식장을 찾았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 데, 그깟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진정성이 담긴 사과 한마디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 노동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자. 노동은 노동 그 자체로 숭고한 것이다. 우리가 << 생활의 달인 >> 을 보면서 과적과 과잉 노동 서사를 찬양했던 태도가 어쩌면 한 경비 노동자의 분신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한국인은 언제부터인가 노동자에게 보다 능숙한 숙련과 보다 과잉 친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요구했던 것과 똑같은 잣대로 같은 처지에 놓인 노동자를 대한다. 고객은 왕인가 ? 천만에 ! 고객은 자본가의 호갱일 뿐이다.
노동자여, 친절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피땀 흘리며 일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은 모두 자본가의 욕망일 뿐이니까.
어수선 통신 시리즈는 http://myperu.blog.me/220183406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