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은 쩨쩨한데 문장은 짱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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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의 종류 ] 에는 네 가지'가 있다. 기행문, 논설문, 기록문, 전기문 따위라고 지레짐작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런 분류는 사지선다형 중고교 시험 문제를 출제할 때나 쓰이는 갈래'다. 트루먼 카포티의 << 인 콜드 블러드 >> 는 기록문인가 아니면 문학인가 ? 경계가 모호하다. 소설인 듯 소설 아닌 소설 같은 소설도 있고, 전기인 듯 전기 아닌 소설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 글의 종류 >> 는 다음과 같다.
ㄱ. 재미없는 내용을 재미없게 쓴 글
ㄴ. 재미없는 내용을 재미있게 쓴 글
ㄷ. 재미있는 내용을 재미없게 쓴 글
ㄹ. 재미있는 내용을 재미있게 쓴 글
재미 [ 명사 ] 아기자기하게 즐기운 기분이나 느낌 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희노애락'이다. 너무 슬퍼서 눈물이 앞을 가리는 " 눈가리고 아웅하는 소설 " 이나 불합리한 현실을 고발하여 독자를 분노하게 만드는 " 불쏘시개로 들쑤시는 소설 " 을 읽고 나서 " 이 소설 재미있어 ! " 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한 표현처럼 들리지만 한국인은 이 복잡다단한 감정을 < 재미 > 라는 단어 하나로 퉁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 한식이 세계화에 실패하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언어 습관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서양 음식은 계량화된 레시피'가 바탕이 된다. 소금 몇 그램, 설탕 몇 그램, 맛술 두 스푼 따위로 말이다. 하지만 한식은 이 모든 것을 " 적당히 " 로 퉁친다. 소금 얼마나 넣을까요 ? - 적당히 ! , 설탕 얼마나 넣을까요 ? - 적당히 ! , 맛술 얼마나 넣을까요 ! - 적당히 ! 여기에 더하여 " 맛의 비결은 손맛 " 이라고 하면 게임은 끝난다. 한식이 세계화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청개구리 언어 습관이라고 할까 ? " 시원하다 " 라는 표현도 " 재미있다 " 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뜨거운 열탕 속에 몸을 담그거나 뜨거운 국물을 삼킬 때 나도 모르게 나오는 소리는 상황과는 정반대'다. " 시원하다 ! " 대한민국 청소년이 기성 세대에 대해 불신하는 이유는 어릴 때부터 이어져 온 학습 효과 때문이다 - 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같은 맥락으로 " 죽다 " 도 있다. 사랑 앞에 죽도록이 붙으면 그 사랑은 다른 사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밉다 뒤에 죽다가 결합된 " 미워 죽겠어 ! " 도, 맛과 죽다가 결합된 " 맛, 죽인다 ! " 도 모두 ! 이처럼 한국인은 포지티브를 말할 때 자주 네거티브를 사용한다. 글쟁이는 재미있는 내용을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글쟁이가 재미있는 내용을 재미있게 쓸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자랑으로 내놓을 수는 없다. 작가에게 그것은 기본에 해당되니깐 말이다. 야구 선수가 공을 잘 잡는다고 훌륭한 선수가 될 수는 없다. 공도 잘 쳐야 한다. 여기에 재미없는 내용을 재미있게 쓸 수 있는 옵션을 갖추어야 밥 먹고 살 수 있는 작가로 태어난다. 반면 보통 사람들은 재미있는 내용을 재미없게 쓰거나 재미없는 내용을 재미없게 쓴다. 재미없는 내용을 재미없게 쓴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정직한 태도'다. 재미없는 내용을 재미없게 쓴다는 데 그 누가 손가락질을 할 것인가 ? 작문 실력이 형편없는 자에게 돌 던질 자 앞으로 나와라, 시댕아 ! 하지만 글쟁이가 재미없는 내용을 재미없게 쓰거나 재미있는 내용을 재미없게 쓰면 욕을 먹어야 한다. 그런 작가는 자격 미달'이다.
작문 실력이 형편없는 작가에게 돌 던질 자 앞으로 나와라 ! 라고 말한다면 나는 짱돌 들고 앞으로 나가겠다. 모 시인이 있다. 내가 이름을 말하면 모두 " 아 ! " 라고 대답할 것이다. 꽤 알려진 시인'이다. 블로그 이웃 가운데 한 분이 그 시인이 쓴 글을 발췌해서 인용했다. 물론 출처를 밝혔다. 그런데 그 시인으로부터 경고성 메일이 도착했다고 한다. 저자 동의 없이 글을 올리면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되므로 당장 글을 삭제하라는 메시지'였다. 삭제하지 않을 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단다. 전문을 옮겨 적은 것도 아니고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도 아니며, 출판을 목적으로 쓴 글도 아닌데 한 줄 인용했다고 저작권 위반 운운하니 화딱지가 난 거라 ! 이웃은 포털 사이트 고객 센터에 위법 여부를 문의했다.
메시지가 도착했다. 포털 사이트 고객 응대팀이었다. "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 문의하신 내용에 대한 답변입니다. 고객님은 출판을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며 출처를 밝혔으므로 저작권법 위반이 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여담입니다만, 그 작가에게 당당하게 이렇게 말씀하십시요. 개똥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 청양고추 먹고 똥구멍에 불 나라 ! 라고 말이죠. 이상 ○○○ 포털 사이트 고객 응대 팀이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 그런 이유로 이름 석 자 알게 된 시인'이었다. 가끔 이 시인 이름을 거론하며 글을 쓰면 30분 안에 다녀간 흔적을 남긴다. 그러니깐 하루 종일 자기 이름으로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다. 신문 칼럼에 이 시인 이름을 자주 본다. 칼럼 내용은 늘 거창하다.
불의에 주먹 불끈 쥐게 된다거나, 작은 사랑에 감동을 받았다거나,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고개를 외면하지 않으리 따위를 말한다. 인성은 째째한데 문장은 거창하다. 차라리 " 고기 앞에서 고개를 외면하지 않으리 ! " 라고 말했다면 비난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미없는 내용을 재미없게 써서 고민인 평범한 이웃이 좋은 글이라 생각하고 한 줄 따온 것을 가지고도 저작권 위반 운운하며 째째하게 굴던 인정머리 없던 시인은 어느새 만주 벌판에서 말 달리는 선구자가 되어 목에 핏대를 세운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글을 잘 쓴다는 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작가에 대한 선망이 없다. 모든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다.
짱짱한 담론을 가지고 싸우는 놈보다는 째째한 담론을 가지고 싸우는 김부선이 더 멋있어 보인다. 아파트 문화는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나라를 구한다는 이름으로 목숨 걸고 싸우지 말고 아파트 난방비 비리 같은 째째하지만 중요한 싸움을 해라 글 잘 쓰는 놈 믿지 마라 ! 팔 할이 꾀죄죄한 오징어'일 뿐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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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 할이 꾀죄죄한 오징어일 뿐이리.... " 라는 문장은 사실 내가 만든 말장난'이다. 팔 할 = 8할, 일 뿐 = 1푼, 이리 = 2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