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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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이버 블로그를 닫은 이유는 조카 때문이었다. 조카가 놀러왔을 때, 로그인 한 상태에서 컴퓨터를 켜 놓고 나간 게 화근이었다. 프로필 사진에 내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으니 빼도 박도 못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누구는 블로그를 " 과시용 " 으로 사용했으나 나는 주로 " 치료용 " 이었다. 내 블로그는 개인 일기장이나 다름없었다. 불편했다. 내 폐부를 낱낱이 드러낸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스무 살 무렵 알콜치료소에 갈 뻔했던 일이나 정신과 치료를 오랫동안 받았던 경험 그리고 포르노는 주로 CUM 계열을 즐겨 본다는 것까지 적나라하게 적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네이버 블로그를 접고 알라딘에 터를 잡았다. 네이버에서는 하지 못했던 말을 이곳 페이퍼에다 하련다.
내 블로그 이웃과 얽힌 끔찍했던 일 때문에 그동안 네이버 블로그에서는 그 일을 차마 말하지 못했었다. 4년 전 일이었다. 경희대 근처 술집에서 떡이 되도록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지갑을 열어보니 택시비는커녕 동전 몇 개와 버스카드 하나가 전부였다. 여름이 갓 지난 이른 가을'이었지만 밤이 되니 제법 쌀쌀했다.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 트럭이 눈에 띄었다. 파란 방수포를 덮고 자면 따스할 것 같았다. 잠시 눈만 붙이자 ! 방수포를 올렸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자 셋이 취해서 방수포 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놀랐던 마음은 이내 웃음으로 바뀌었다. 요실금 환자처럼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 혹독한 밤에 나와 똑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마치 새벽 세 시에 불 켜진 창문을 보았을 때 느끼게 되는 동료애'라고 할까 ? 너 - 깨어 있고, 나 - 깨어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트럭에 올라 그들 옆에 누워 함께 잠을 잤다. 꿀 같은 단잠이었다. 트럭 안은 따스하고 평화로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 눈을 떴다. 붕 떠 있는 듯한 느낌, 비행기를 탈 때 느꼈던 멀미를 느꼈다. 조심스럽게 방수포를 걷었다. 맙소사, 놀랍게도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것도 벌건 대낮이었다. 나는 달리는 트럭 안에 있었다. 트럭은 남해를 향해 토끼를 쫓는 굶주린 늑대처럼 달리고 있었다. 여러 사실을 종합하니 답은 나왔다. 아, 내가 잠든 사이에 트럭 운전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남쪽을 향해 밤새 달린 것이었다.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황당하기는 했으나 기분은 좋았다.
먼 훗날, 낄낄거리면서 오늘을 추억하리라. 좋은 이야깃거리 하나 생긴 것에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 옆을 보니 간밤에 정신줄 놓고 잠을 자고 있던 사내들은 여전히 세상 모르고 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구야. 다시 웃음이 나왔다.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생각하니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 옆에서 자고 있는 사내를 흔들어 깨웠다. 잠을 방해하지 말라는 뜻인가 ? 사내는 팔을 휙 돌렸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 트럭이 급하게 좌회전을 했기에 팔이 젖혀졌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시 그를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사내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지나친 음주로 인해 사망한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급하게 다른 사람을 흔들어 깨웠으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구석에서 죽은 듯 잠을 자는 사람도 같은 반응이었다. " 뭐지 ?! " 순간,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잠을 자고 있는 게 아니라 죽은 시체였던 것이다. 이 트럭은 시체를 싣고 달라는 차였다. 나는 두려움에 덜덜 떨었지만 달리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트럭은 시속 200KM로 달리고 있었으니깐 말이다. 여기서 뛰어내렸다가는 즉사할 것이 뻔했다. 트럭이 휴게소로 진입하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트럭은 멈추지 않고 더욱 속력을 내며 달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 드디어 트럭이 멈췄다. 이때다 싶어서 뛰어내릴려고 했으나 조수석에서 사람이 내리는 소리가 들려서 포기했다. 일단 시체들과 함께 죽은 척해야 했다. 방수포를 살짝 걷어 밖을 보니 하얀 건물이 보였다.
건물 구조로 보아 병원인 듯했으나 이미 오래 전에 버려진 병동'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누군가 다가오더니 방수포를 천천히 열어젖혔다. 나는 잽싸게 눈을 감고 죽은 척했다. 방수포를 올린 사내가 낮게 말했다. " 형님, 우리가 어제 얼라들 작업한 게 네 놈이었단가 ? 세 놈이었나 ?! 잘 모르것네. 약빨에 취해서 무덤에서 한 놈 더 건진 것 갔소. "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게 아니다. 낄낄거리고 웃는다면 당장 웃음을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타인의 불행 앞에서 웃는 거 아냐 ~ 나는 내가 겪은 내용을 말할 뿐이다. 거짓말이라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 나는 할 수 없이 죽은 척하며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었다. 죽은 척하는 살아있는 생태처럼 말이다.
시체 3구와 함께 내가 실려간 곳은 텅 빈 방이었다. 지난 밤, 시체를 운반했던 운전수와 조수는 네 개의 거치대에 우리를 각각 내려놓았다. 수술실에서나 볼 수 있는 거치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 병원이었던 건물이 확실했다. 여기서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일까 ? 불안감이 엄습했다. 지금이라도 벌떡 일어나 살려달라고 애원할까 ? 애원하면 살려줄까 ? 그럴 가능성은 없다. 나는 유일한 목격자이자 생존자이니 말이다. 고릴라처럼 생긴 운전수가 첫 번째 거치대에 올려진 사내 옷 주머니를 뒤졌다. " 양아치 새끼 ! "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운전수는 사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쩽그랑 ! 바지를 벗기면서 주머니에서 떨어진 동전이 소리를 냈다. 먼 훗날, 시체가 발견되더라고 신분을 숨기기 위해 옷을 벗기는 것 같았다.
옷은 죽은 자의 신분을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니깐 말이다. 두려웠으나 떨면 안 됐다. 조수라는 사내가 와서 내 옷을 벗겼다. 수치심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조수가 말했다. " 음마, 이 놈의 새끼 ! 토실토실하요. " 사내는 내 다리를 올려 엉덩이를 손으로 벌렸다. 뭐하는 거지 ?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설마, 설마, 설마....... 사내가 운전수에게 외쳤다. " 아따, 성님 ! 성님은 첫 번째 놈이 맘에 든다요 ? 난, 요놈으로 하것소. 음마... 희멀건 게 통통하니 ! 아따, 요놈 똥구멍이 국화무늬일세. " 그렇다, 그놈들은 시간屍姦을 즐기는 악마였다. 아, 아아. 어쩌란 말이냐. 저 놈이 내 몸을 뚫고 들어올 것이다. 나는 결정을 해야 했다. 괄약근에 힘을 주어 공격을 방어할 것이냐,
아니면 힘을 풀어 받아들여야 할 것이냐. 사람은 죽으면 괄약근이 풀어진다. 그 사실을 이 녀석들이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괄약근에 힘을 주는 순간 내 정체는 발각될 것이 분명했다. 풀자..... 그때 느닷없이 엉덩이 쪽에서 묵직한 통증이 몰려왔다. 야마떼 구다사이..... 내 몸을 파고드는 아픔. 얼마나 지났을까 ? 별로 말이 없던 운전수가 낮게 소리쳤다. " 동상, 이제 그만하오 ! 이제 곧 고객들 올 시간이오 " 고객? 고객들 ?! 누가 여기에 더 온다는 말인가 ? " 네크로필리아 " 가 떼거지로 몰려온다는 뜻일까 ? 그렇게 죽음 같은 시간이 흐르자 한 무리가 시끄럽게 떠들며 수술실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실눈을 떠 상황을 주시했다. 그들은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남녀가 섞여 있었다.
오고가는 말을 종합하니 그들은 의대생인데 성적이 좋지 않아 낙제를 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돈을 내고 불법으로 유통되는 시체를 가지고 해부 실습 과외를 하는 것이었다. 운전수와 조수는 시체 장사꾼이었다. 그들은 불법으로 해부용 시체를 납품하면서 납품 전에 성욕을 해소했던 것이다. 맙소사, 첩첩산중이라더니...... 살아 있지만 죽은 듯 살아 있는 내 몸을 저주했다. 내 죄는 술 마시고 한뎃잠을 잔 것밖에는 없다. 이제 곧 산 채로 해부용 사체가 될 팔자였다. 눈을 떠 살려달라고 해도 살려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핀셋으로 내 양물을 툭툭 건드리기도 했다. 아, 아아. 그럴 순 없어.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와중에서 내 성욕은 강렬하게 타올랐다.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강하게 발기했다 ! " 어머 !!! " 여자가 외마디소리를 질렀다. 나는 발딱 일어나 모든 일을 고백하고 살려달라고 빌 생각이었다. 그때 무리 가운데 나이가 많은 듯한 남성이 잘난 척하기 시작했다. " 사체의 혈관 속에 방부액을 주입하며 발기세포가 확장되지. 그래서 해부실습실 남자 사체 성기는 살아 있을 때보다 우람해. 박테리아가 많이 모이는 부분이 바로 입과 성기 부분이거든. 남자의 경우 페니스와 음.... 불알이 대단히 커져 ! 놀랄 일이 아니야. " 이 말에 여자가 되물었다. " 얼마나 큰데요 ? " " 불알이 멜론 크기 정도 돼 ! " # 여자는 낮게 신음했다. " 잠시만 ! 이 사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 어디서 보았더라 ? 맞다, 곰곰발 !
나, 이 사람과 네이버 블로그 이웃이야. 근데.... 왜 여기에 누워 있지 ? " 여자는 의대생답게 맥을 짚기 시작했다. 뛰고 있었다. 당연하다, 난 살아 있는 시체니까. 여자가 손으로 내 눈꺼풀을 열어젖혔다.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둘이서 눈싸움 하고 있으니 죽을 맛이었다. 여자가 웃었다. 여자가 웃자 나도 따라 웃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연기를 해야 했다. 동공이 흔들리면 안된다. 눈물을 흘려서도 안된다. 시간이 흘렀다. 31초쯤 ?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박근혜가 흘린 눈물이나 내가 흘린 눈물이나 모두 똑같았다. 슬퍼서 운 것도 아니요, 무서워서 흘린 눈물도 아니었다. 단순히 " 눈깔 " 이 아파서 흘린 눈물이었다. 여자가 소리쳤다. " 곰곰발, 살아 있네. 살아 있어 ! " 한순간 수술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결국 나는 발각되고 말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불행은 발생하지 않았다. 침묵 서약을 하는 조건으로 나는 지옥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여자 의대생이 말했다. " 곰곰발 씨, 내가 당신 블로그 예의주시할 거예요. 허튼소리 끄적이다가는...... 호호호. "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저 끝, 괄약근 밑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공포를 잊을 수가 없다. 이 고백은 오늘 처음한다. 믿어 줄 이도 없을 것이다. 믿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정황이 사실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술 마시고 아무 데서나 잠을 자지 마라. 한뎃잠에 골병든다. 경험자로서 당신에게 충고한다. 지옥을 맛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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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시가 된 부분은 메리 로취의 << 스티프 >> 에서 인용 발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