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토록 슬펐을까 ?
이웃이 전한 말을 옮긴다 : 택시를 탔다, 늙은 택시 운전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자신을 고아'라고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고아는 아니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유일한 살붙이인 형마저 세상을 떠나 혼자가 됐다고 했다. 여자는 타자에 대한 간소한 예의와 슬픔에 대한 간결한 예우 차원에서 택시 운전사를 위로했다.
슬프시겠어요. - 아니요, 별로 슬프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살갑게 지내지 않으셨나 보군요 ? - 아니요, 어머니를 좋아했습니다. 인자하신 분이었지요. 하지만 슬프지는 않더군요. 산다는 거.... 고해 아닙니까. 그렇다면 세상에서 유일한 피붙이였던 형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슬프셨겠네요. - 아니요, 별로 슬프지 않았습니다. 형님과는 살갑게 지내지 않으셨나 보군요 ? - 아니요, 우린 의좋은 형제였습니다. 하지만 슬프지는 않더군요. 산다는 거.... 고해 아닙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슬프지는 않으셨겠네요 ? - 아니요, 슬펐습니다. 다른 가족과는 달리 아버지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군요 ? - 아니요, 아버지를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왜 슬퍼하셨나요 ? - 사실...... 아버지와 내가 많이 닮았거든요.
초상집에서 가장 크게 우는 사람은 다름 아닌 불효자인 것처럼, 늙은 택시 운전사는 늙은 아버지의 초라한 죽음에서 자신의 죽음을 본다. 자기 연민은 자기애'다. 정신과 의사가 내게 충고했다. " 지나친 자기애는 결국 자기 혐오라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 의사는 창백한 내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 볕은 아주 좋은 보약이죠. " 그가 내게 내린 처방은 산책이었다. 볕 좋은 오후, 나는 집을 나와 산책을 했다. 불현듯 내가 머물렀던 집을 바라보았다. 내가 없으니 빈집이 되었네. 안쓰러워서 산책을 멈추고 되돌아갔다. 빈집에 갇혔다. 속초에서 만났던( 본 적은 없다. 그가 살았던 방을 보았을 뿐이다. ) 병든 사내가 생각났다. 그때, 나는 그 사내 때문에 많이 슬펐다. 얼굴 본 적 없다.
방을 내놓은 집주인이 전한 사연이 전부였다. 불면증으로 인해 잠이 오지 않으면 자전거를 타고 종종 그 집 앞에 가서 넋 놓고 있다 오고는 했다. 계약 기간이 채 끝나지 않은 빈집'에 갇힌 사내, 나는 왜 그때 그 사내에게 끌렸을까 ? 어쩌면 저 늙은 택시 운전사가 고해성사처럼 내뱉은 말 속에 정답이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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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육 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동해바다와 청초호가 보이는 터에 집을 얻었다. 방 하나에 작은 거실이 딸린, 지붕 낮은 달방이었다. 집 앞 넓은 공터를 텃밭으로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의지'가 그를 이곳에 머물게 했다. 입주 조건은 보증금 없이 다달이 세를 내는 달방 계약이었으나 사내는 이 년치 세/貰'를 일시불로 지급했다. 그가 살아갈 날보다 많은 나날이었다. 그가 그 공터에서 처음 한 일은 돌을 고르는 일이었다. 온갖 채소를 길렀다. 하루가 다르게 밭은 푸르렀다. 내가 그 집을 보러 갔을 때, 텃밭은 온갖 풀이 웃자라 있었다. 집주인은 내게 육 개월 세를 일시불로 줄 것과 육 개월이 지나면 그때부터 다달이 세를 줄 것을 요구했다. 전세도 아니고 월세도 아니고, 그렇다고 달방 계약도 아니었다. 이상해서 캐물으니 주인은 이 집에 살았던 사내에 대해 털어놓았다. " 풀도 주인 손길 탄다는 거 아우 ? " 주인은 웃자란 풀을 보며 말했다. 사내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이곳에 머문 지 반년도 되지 않아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내가 그 집을 갔을 때, 그 집은 아직도 그가 세를 내고 있는 기간이었다. 육 개월 일시불은 죽은 세입자 가족에게 전달할 모양이었다. 내가 그 집을 얻는다면 나는 죽은 자와 계약 잔류 기간 동안 동거를 해야 했다. 방은 아담했다. 쪽창은 해가 기우는 빛을 받아 바닥에 쏟아냈다. 붉은 기운이 돌았으나 온기는 없는 빛이었다. 망설이다가 끝내 돌아섰다. 어젯밤, 꿈에 그 집이 보였다. 텃밭은 작은 채소들이 가지런히 자라고 있었다. 텃밭을 가꾼 모양새로 보아 솜씨 좋은 농부 같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 텃밭은 온통 돌밭이었다. 나는 그 집 앞에서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