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뽕짝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 시리즈

 

 

 

 

 

2화,  줄리엣이 아니라 줄리아

 

 

 

 

잘생긴 친구'가 있었다. 웃을 때 양쪽 보조개'가 들어가는 친구였다. 치명적 매력은 또 있었다. 눈 밑에는 초승달형 실리콘을 넣은 듯한 애교살이 유난히 발달했는데 그 친구가 < 아 > 도 아니고 < 어 > 도 아닌 < 애 > 매모호한 눈웃음을 흘리면 또래 여자아이들은 물론이고 누나에서 이모마저 흥분하게 만들었다. 방긋 웃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식당을 가면 서비스 안주가 한가득이었다. 이 친구 덕이다. 나이트클럽에 가도 부킹이 잘됐다. 방긋 웃는 친구 얼굴 때문이다. 같이 우르르 물려다니던 우리들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 남자 새끼가 얼굴로 먹고 사나, 시바 ! " 우리가 이 친구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말빨 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말빨은 이성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친구는 데리다를 들먹이고, 나는 삼류 공포영화 감독 계보'를 들먹이니 좋아할 턱이 없는 것이다. 변두리 쌍쌍 나이트클럽에 드나드는 낭자에게 한다는 소리가 피가 낭자한 영화 얘기라니 ! 하지만 엉망이 된 분위기는 미스터 방긋이 " 방긋 ! " 웃으면 해결되었다. 그가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하얗고 고른 치아'는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를 선사했다. 데리다를 닮은 친구와 나는 그 친구 앞에서 항상 열등감에 시달렸다. 심판이 보지 않는다면 수아레스 핵이빨로 등짝을 물고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화풀이를 미스터 방긋'에게 쏟아내며 조롱하고는 했다. 사내새끼가 기생오라비처럼 생겼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봐야 한다, 앎에 대한 열정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등등. 하지만 미스터 방긋은 이런 잔소리에도 여전히 방긋 ! " 야, 넌 왜 맨날 방긋 웃냐. 눈웃음 살살 치지 말라고 ! 이 세상 모든 예술 작품 속에 방긋 웃는 표정은 없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방긋 웃더냐 ? 예수가 방긋 웃으면 간지는 거기서 끝이야. 사내라면 자고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이마에 川 자를 그려야 한다. 네가 화류계 기생이냐 ? 모든 이에게 웃음을 팔게 ? " 내 말에 친구는 안색이 어두워졌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방긋 ! 사실 이 친구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얼굴만이 아니었다. 착했다.

 

의리도 강했다. 더군다나 친구들을 위해서라면 돈도 잘 썼다. 자크 데리다'를 이야기했던 놈은 자기가 돈을 쓸 때는 생색 내기를 좋아했다. 성질도 고약했고, 그리 좋은 친구는 아니었다.  반면 이 친구는 술자리에서 먼저 자리를 떠나더라도 미리 술값을 계산하고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내가 미스터 방긋'에게서 배운 것은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화를 하는 기술이었다. 대화란 강의'가 아니었다. 나는 친구에게서 한쪽에서 따발총처럼 쏟아내는 것이 좋은 입담은 아니라는 점을 배웠다.   미스터 방긋'은 우리랑 대화를 하거나 여자와 대화를 할 때 말보다는 추임새를 적재적소에 잘 넣었다.  " 그렇죠 ? 아, 아아 맞다. 맞아 !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하, 그래서 그런가 보다. 우와, 공감 백 개 ! "

 

그는 여자가 무슨 말을 하면 대부분 그 말에 맞짱구를 치며 즐겁게 대화 속으로 스며들었다. 반면 데리다와 나는 일방통행로였다. 누가 끼어들기라도 하면 인상을 썼다. 사실 상대방이 끼어들 공간도 없었다. 듣보잡에 가까운 로이드 카우프만 영화나 웨스 크레이븐 초기 영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깐 말이다. 아마도 상대방은 내 불알을 걷어차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미스터 방긋을 통해서 배운 것은 말을 잘 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자세'가 이성으로부터 호감을 얻을 기회가 많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이성뿐만 아니라 모든 대화의 기본 자세였다. 지루하거나 틀리더라도 말을 가로채서 말꼬리를 자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하는 말을 잘 듣고 있다는 자세'다.

 

그 이후, 나는 대화를 나눌 때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차례가 오면 말을 하지만 길게 하지는 않는 쪽을 택했다. 미스터 방긋에게서 배운 두 번째는 바로 이용복 노래 < 줄리아 > 였다. 어느 날 이 친구는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10월에 핀 코스모스처럼 흐드러지게 불렀다.  처음 듣는 노래였다. 물어보니 자기 아버지가 운전할 때 늘 듣던 노래라는 것이다. 이용복 핫 골든 베스트 테이프' 속에 이 노래가 있어서 아버지 차를 탈 때마다 듣는다고 말했다. 나는 이 노래를 듣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친구들에게는 라디오헤드나 모비 혹은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노래를 즐겨 듣는다고 말은 했으나 사실은 뽕짝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미스터 방긋은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뽕 맞은 표정으로 열창했다. 조인성이 영화에서 땡벌을 불러도 멋있듯이 이 친구 또한 아름다웠다. 나는 이 노래 도입부를 좋아했다. 자꾸 부르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 백 번 넘게 부르다 보니 지독한 음치인 나도 어느 정도 잘 부른다는 소릴 듣게 되었다. 다 이 친구 덕이었다. 이 친구는 모든 걸 잘했던 친구였다. 노래도 수준급이었고, 얼굴도 잘생겼으며, 모든 여성으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아서 도대체 몇 명의 여자와 뜨거운 밤을 보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착한 품성을 지녔다.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인간형이었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미스터 방긋을 " 무조건 " 좋아했다. 더군다나 이 친구 생애주기 가계도는 평균 90세를 자랑했다.

 

수명이 짧은 내 집안 생애주기 가계도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 데리다와 ) 나는 이 친구를 부러워하면서 동시에 내 우울한 얼굴에 심한 열등감을 느꼈다. 하지만 우리는 미스터 방긋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보고 나서야 컴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린 그 친구가 김태희 급 외모를 가진 여성과 결혼할 줄 알았다. 여자에게 워낙 인기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결혼식장에서 본 신부 모습은 내가 결혼식장에서 보아온 수많은 신부 중에서 가장 못생긴 외모였다. 아, 기분 좋았다 ! 미녀와 야수가 아니라 미남과 추녀였다. 세상은 공평하구나 ! 내 열등감은 비로소 사라졌다 -

 

라고 말할 줄 알았나 ? 아니다. 처음엔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내 친구는 정말 착한 놈이어서 외모를 중시하기보다는 예쁜 마음씨를 본 것이구나,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신부 집안은 그 동네에서 알아주는 부자였고, 신부는 외동딸이었다. 신부 측 부모는 작은 주유소를 몇 개 운영한다고.  자크 데리다와 나는 똥 씹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뒷풀이 장소는 예식장 근처 단란주점을 빌렸다. 미스터 방긋은 무대에 올라 줄리아'를 열창했다. 와와 !  다음 차례는 나였다. 나는 두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우 ! 여기저기서 야유가 쏟아졌다. 예상했던 반응이어서 당황하지는 않았다. 내가 부른 노래는 라디오헤드의 " creep " 이었다. 

 

걱정하지 않는다. 미스터 방긋이 있으니깐. 그가 남진처럼 환한 웃음을 짓자 와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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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3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외국어는 발음이 아니라 내용이다. 맞는 말이죠. 근데, 어디 들어 줄 만한 내용을 갖춘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래서 발음이라도 좋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마찬가지죠. 말빨로 여자 꼬시기 힘들죠. 근데, 잘 들어주기?? 나한테 말할고 싶은 욕구를 가진 여성이 있어야 말이죠. 나? 얼마든지 들어 줄 준비 되어 있죠. 적어도 여자 말이라면, 근데 못생긴 여자도 나한텐 별 말 안합디다.

결론? 그러니 님께서 말빨이라도 키우려 하신 건 잘~ 한 행동였단 얘기죠. 최선이란 얘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8-13 14:59   좋아요 0 | URL
비유가 아주 뛰어나십니다. 발음이 아니라 내용인데,
실제로는 내용보다는 발음이라는 말씀이죠 ?
말빨도 성격이 긍정적이어야 통하는 기술인데,
전 성적 자체가 우울해서 이것도 실력이 안 늘더군요...

마립간 2014-08-13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지 알려주지 않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님의 영어 연설, 대화를 들려줄 때 ; 우리나라 사람이 평가하면 발음을 듣고 영어를 못한다고 하고, 영어권 사람들은 문장을 보고 영어를 잘 한다고 판단한다고 합니다. - 영어 실력이 안 되어 발음으로 판단하는 우리나라 사람을 탓하기도 뭐하고...

곰곰발님의 지인은 이성과의 대화에서 데리다를 언급하시는군요. 저는 '제논의 역설'이나 '소피 제르맹'의 에피소드를 언급하는데,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법도 없었죠.

곰곰생각하는발 2014-08-13 15:0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데리다보다는 차라리 제논의 역설이 그나마 대중적이기는 합니다..
제 취향은 좀 마이너'적이어서 취향공유가 참 힘듭니다.
그렇다고 태극기 휘날리며 말하기 시작하면 뒷골이 아프기 시작하고.....

엄동 2014-08-1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스터 방긋 ㅋㅋ
맞아요 대화를 주도하는 건
언변의 마술이 아니라 경청과 적절한 리액션이죠

때때로
내뱉는 입과 사고하는 머리의 속도가 달라서
버벅대곤 했었는데.. 돌이켜보니 쑥쓰럽군요ㅎㅎ

저 일주일 휴가받아 알뜰하게 놀고 왔습니다.
단비같은 글들 보니, (얼마나 됐다고) 방갑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8-13 15:45   좋아요 0 | URL
이거 언젠가 네이버에 썼던 글입니다. 요즘 그냥 긁어다가 붙이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책도 안 읽히고......
가끔 그런 소외감 있잖아요. 신나게 애기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그새 아이폰 화면 들여다보고 있을 때
민망함...ㅎㅎㅎㅎ.

휴가 다녀오셔서 그동안 뜸했군요. 먼곳으로 다녀오셨나 봅니다그려....

노이에자이트 2014-08-13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용복 씨 노래는 번안곡도 많고 빠다 냄새가 좀 나서 그 당시 젊은이들이 좋아했죠.그런데 줄리아는 그 후렴 "줄리아 아아아아아아아 "하고 뽑는 대목이 굉장히 어려운데...그걸 잘 불렀다니 웃음 미남의 가창력이 상당했나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8-13 17:33   좋아요 0 | URL
전 이용복 씨 선그라스 끼고 나오길래 선그라스를 참 좋아하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시각장애를가지고 계셨더군요. 몰랐습니다. 글구보면 옛날에는 다 번안곡이었나 봅니다.

수다맨 2014-08-14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용복이 푸에트리코의 맹인 가수 호세 펠리치아노를 무척 흠모했지요. 아무래도 동병상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용복이 호세 펠리치아노의 노래를 다수 번안했는데 그 중에서 케세라ㅡ이 노래는 송창식하고 조용필도 자기 나름대로 번안해서 불렀지요ㅡ란 노래가 제가 느끼기에 일품인 것 같습니다.
이용복씨 노래가 따라부르기 의외로 어려운데 목청이 좋으신 친구분이 있었군요. 새삼 부럽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8-14 16:55   좋아요 0 | URL
d 아니... 수다맨 님이 어떻게 이용복을...... ㅎㅎ
옛날 노래 보면 다 번안곡이 많더군요. 저작권료는 지불했나 모르겠군요. 당연히 지불하지 않았겠지만....
케세라'라는 노래를 검색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