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0일, 그리고 죽음.
http://youtu.be/U_cCVMKWjEc
영화가 상영되기 전 영화제를 돕는 진행 요원이 단상에 올라 다음과 같은 경고 메시지'를 전한다. "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영화를 보시는 중 기절, 호흡곤란, 쇼크 등이 올 수 있습니다. 심장이나 호흡기 계통의 질환을 앓고 계시는 분이 계시다면 지금 일어나셔서 밖으로 나가셔도 좋습니다. 현재 밖엔 응급요원이 상주하고 있으니 이상이 있으시면 저희 진행 요원을 찾아주십시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 극장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불길하다. 몇몇은 밖으로 나간다. 순간 이곳저곳에서 작은 소란이 벌어진다. 장내 딤머'가 서서히 조도를 낮추면서 어두워지자 이내 영화가 상영된다. 상영되는 영화는 스탠 브랙헤이지의 ' The act of seeing with one's own eyes 이다.
전위 영화'를 찾아다니는 영화광들에게는 이미 전설이 된 영화'다. 십 년 전, 나는 전주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시체 공시소와 시체 부검실' 모습을 다룬 다큐 영화'였다. 시체 공시소 직원이 전기 드릴'로 사체의 두개골'을 절개하는 장면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 뇌수가 흘러나오더니 해부학 사진에서나 볼 수 있었던 뇌 내부가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한참 눈을 감고 있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체를 절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화도 거의 없다. 배경음악도 없다. 나레이션도 사용하지 않았다. 영화는 거의 무성영화나 다름없다. 온전히 내가 목격해야 하는 것은 절단되는 육체들이다. 상영 시간 내내 영화는 시체 해부 장면을 보여준다. 세로로 잘려진 육체들, 제거된 기관들, 두개골, 고인 피 그리고 페니스, 발바닥, 펴지지 않는 손, 구멍과 틈......
직원들은 적출된 기관인 간, 위, 심장 등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고 기록한다. 그뿐이 아니다. 두개골 크기도 잰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대사는 한 마디도 없다. 죽은 자와 죽은 자'를 해부하는 직원만이 있을 뿐이다. 가끔 도구를 내려놓거나 전기드릴'을 사용할 때 들리는 소음으로 인하여 이 영화가 무성영화는 아님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나는 이 침묵이 감독이 의도했다는 점을 알아챘다. 감독이 전해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 ( 내 기억은 틀렸다. 확인하니 이 영화는 무성 영화'가 맞다. 전기드릴 소리를 들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 서서히 적응이 된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화면을 주시했다. 파리'가 부검 중인 사체의 발 위'에 앉았다. 카메라는 이 부분을 확대한다.
이제 더 이상 육체는 파리의 간섭에 저항할 수가 없다. 영화가 끝났다. 깊은 숨을 내쉬었다. 두렵고, 끔찍하고, 속이 울렁거렸지만 혐오스럽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화 속 작업자'는 훼손한 신체를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었기 때문이었다. 죽은 자에 대한 산 자의 예의'가 느껴졌기에 혐오스럽지는 않았다. 갑자기 슬퍼지기 시작했다. 육체라는 것, 한때는 팔딱거리던 육체가 초라하게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니 쓸쓸했다. 덧없고 공허했다. 가장 강렬했던 이미지는 머리 가죽을 당겨서 해골이 나오는 그런 충격적인 이미지'가 아니었다. 가슴 아프게 목격한 신체는 죽은 남자의 시든 페니스였다. 이 이미지는 매우 강렬해서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스탠 브랙헤이지 감독은 죽음 이후'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가 맺는 계약, 그러니까 마지막 절차를 보여주려고 했다. < 흉터 > 가 과거에 있었던 일이 사실이라는 점을 일깨우듯이, < 죽음 > 은 한때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명백한 기록이 아니었던가 ?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목격하게 되는 것은 인간과 사회'가 맺는 계약이다. 사회는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 우리는 사회'라는 이름의 임대 아파트'와 부동산 계약을 맺었기에 기간이 만료되면 아파트를 비워야 한다. 하지만 이삿짐만 옮긴다고 해서 이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밀린 공과금과 기타 세부 사항 그리고 부동산 계약 시 명시해 놓은 조건이 이행되었는가를 확인한 후 아파트 키를 넘기게 되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무인도나 숲속에서 혼자 살지 않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사회와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우린 그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인간은 계약 기간이 끝나는 " 죽음 이후 " 에도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다. 우리는 이것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사실 인간의 죽음은 사적인 것 같지만 지극히 공적이다. 세상 모든 죽음'은 국가의 개입으로 이루어진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죽은 자'는 국가가 통제하는 것이다. 영화는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용기가 있다면 클릭해서 동영상을 보라. 당신이 잠든 사이에 벌어지는 절차와 과정이다. 짐 크레이스의 위대한 소설 << 그리고 죽음 >> 도 " 죽음 이후 " 를 다룬다. 정확히 말하자면 " 사후 세계 " 가 아니라 시체가 부패되는 과정과 사회가 사체를 안전하게 처리하는 과정을 건조한 필체로 다룬 소설이다.
감정 동요 없이 담담하게 써내려간 서술 덕분에 끔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소설을 읽다 보면 죽은 자의 장례를 치루는 것은 산 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란 생각이 든다. 설령, 죽은 자가 거처 없이 떠돌다 죽은 행불 처리자'라고 해도 말이다. 세월호 사고 100일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찾지 못한 영혼이 있고, 잊지 못해 우는 유가족이 있고, 동요하는 시민이 있다. 반면 그동안 숨죽이며 슬픈 척 눈물을 흘렸던 사람은 본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죽은 자에 대한 예의는 없다. 슬픈 현실이다. 국가는 장례 수습조차 할 수 없는 무능한 상태'에 빠졌다. 국가는 재난에 빠졌는데 무대에 올라 비상 시 요령을 설명하는 사람도 없고, 죽은 자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 공시소 직원도 없다.
유가족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엄마부대가 있는가 하면 단순 교통 사고와 다를 바 없다는 막말을 하는 정치인도 있다. 질이 좋지 않으면 사지 말아야 하는데 소비자는 장사꾼의 호화로운 입말에 다시 한번 속아서 넙죽 사다 보니, 장사꾼 입장에서 보면 소비자는 호구'다. 생각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면 약물 치료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임상 실험을 통해 밝혀진 특효약은 " 조까라마이싱 " 이다. 박근혜 정부, 참.... 좆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