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와 붉은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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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시즌이라 축구에 대한 책 2권이 출간되었다. 신간평가단 도서로 추천할 생각이다. 축구란 무엇일까 ? 이 자리에서 고백하련다. 나는 축구를 즐겨 보는 편이 아니다. 기껏해야 월드컵 경기 할 때나 본다. 그렇다고 새벽에 일어나 월드컵 중계를 챙겨 보는 것도 아니다. 동시간대에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 경기와 월드컵 결승 경기 중계가 서로 겹친다면 일말의 주저없이 야구를 선택하는 쪽이다. 두 말 하지 않으련다. 나는 축구보다는 야구가 좋다. 관중 동원수'만 가지고 평가하자면 한국 축구는 국민 스포츠이기는커녕 비인기 종목'에 가깝다. 의아해 할 필요 없다. K리그 축구 경기 관객수와 한국 프로야구 관객수를 비교하면 답은 나온다. 국내 프로 축구 평균 관중수가 고작 7000명 남짓'이다. 대규모 야외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야구와 축구에 비해 규모가 작은 실내 경기장을 갖춘 국내 프로 배구 평균 관중수가 3000 ~ 4000명이고,
프로 농구 관중수가 4000~ 5000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프로 축구 평균 관중수가 고작 7000명 정도라는 것은 초라한 성적이다. 한국인은 철저하게 국내 축구를 외면했다. 관심이 없다 보니 국내 리그 축구 경기를 중계하는 지상파 방송사도 별로 없다. 스포츠 방송 시청률'을 놓고 보면 축구 중계 방송 시청률( 국내 클럽대항전 )은 다른 스포츠 종목 시청률에 비하면 애국가 시청률 수준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월드컵 시즌'만 되면 축구장 한번 간 적 없는 사람들이 붉은 옷을 입고 광장으로 모인다. " 붉은 악마 티셔츠 준비하셔셔셔여여여 ? 뿔 달린 소품도 준비하셔셔셔셔 ! " 이기면 < 파우스트 > 처럼 영혼이라도 팔 자세로 기뻐하고, 지면 < 베르테르 > 처럼 슬픔에 젖어서 박연폭포 같은 눈물을 흘린다.
2002년 올림픽 때 한국 지식인 사회는 붉은 악마 응원 문화를 " 민주적 열망이 투영된 광장 문화의 빛나는 얼 " 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지만 내가 보기에 붉은 악마 응원단'은 " 한철에만 반짝하는 양극성장애 " 환자 같았다. 축구는 내셔널리즘이 강한 스포츠로 대리전 양상을 띤다. 축구는 곧 국가'요, 선수는 병사'이며, 승리는 승전'이다. 한국인이 국내 클럽 축구 대항전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반면에 국가 대항전만 되면 흥분하는 이유는 축구가 다른 스포츠 종목에 비해 내셔널리즘 성격이 강한 스포츠로 인식하는 데 있다. 나는 모든 스포츠를 개인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장소'로 이해하기 때문에 " 국가 승리 " 를 위해 목숨을 내놓겠다는 애국적 으름장과 응원단 후원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 마케팅'에 동참하는 붉은 악마 응원단의 순수를 믿지 않는다.
박세리는 출세를 위해 양말을 벗었을 뿐이고, 김연아는 꿈을 위해 돌았을 뿐이고, 박찬호와 류현진 또한 부와 명예를 위해 공을 던졌을 뿐이다. 그들은 < 애국자 > 라기보다는 그저 성실하고 실력 있는 < 운동선수 > 일 뿐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애국심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축구선수 박주영이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후 인터뷰를 한 적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군 면제'라는 목표를 위해서 선수들이 모두 하나된 마음으로 열심히 뛰었습니다 ! " 말실수인가 ? 아니다, 솔직한 속내'다. 그는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은 것이다. 올림픽 경기에서 메달을 따면 군 면제'가 이루어지니 한국 선수들은 다른 나라 선수들에 비해 동기 부여'가 뚜렸했기에, 좆빠지게 뛰었고, 결국 동메달을 땄다. 하지만 박주영의 솔직한 인터뷰는 나중에 낙인으로 작용했다.
그가 국가 대항전 경기'에서 부진할 때마다 사람들은 < 대한민국을 위해서... > 가 아니라 < 군 면제를 받기 위해서... > 열심히 뛰었다는 박주영이 한 말을 기억하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제사에는 관심 없고 젯밥에나 관심 있는, 사리사욕에 눈 먼 놈이라는 비난이다. 한국인이 듣고 싶었던 말은 " 애국심 " 이지 " 사적 욕망 " 이 아니었다. 그런 그들에게 묻고 싶다. 운동선수가 독립운동가냐고 말이다. 오, 불쌍한 박주영 ! 나는 영동대로 한복판에서 두 팔 벌려 외치리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아아아아아 ~ 나는 축구'가 따분한 스포츠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 11명의 축구선수 " 를 " 11척의 거북선 " 으로 생각하는 대리전 양상은 불편하다. 리우 데 자네이로'는 명량 해협이 아니다. 거북이처럼 뛰다가는 욕 먹기 딱이다. 콩트는 콩트일 뿐이고,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다.
매미의 생애주기는 소수로 이루어져 있다. 3, 5, 7, 13, 17년마다 지상으로 나와 열흘(혹은 길게는 한달) 남짓 신나게 울다가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3년 주기 매미, 7년 주기 매미, 17년 주기 매미'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깐 매미는 소수를 좋아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
이를 설명하는 가장 그럴듯한 수학이론에 따르면, 이 매미들의 생애 주기는 매미들이 출현하는 때에 맞춰 나타나 양껏 매미들을 포식하는 그들의 천적과 관련이 있다. 생애 주기가 ‘소수’인 매미는 ‘합성수’ 주기의 매미보다 포식자를 만날 확률이 훨씬 낮다. 말하자면 소수 생애 주기를 지닌 매미들이 살아남고 합성수 주기 매미들은 도태될 확률이 높다. 예컨대 100년 동안 생애 주기 7년인 매미와 생애 주기 6년인 포식자가 같은 해에 마주칠 확률은, 7의 배수와 6의 배수가 만나는 42년째와 84년째 단 두 번뿐이다. 그러나 생애 주기 8년인 매미와 6년 주기의 포식자는 24년마다 마주치며, 생애 주기가 9년인 매미들은 6년 주기의 포식자들과 18년마다 마주친다. 결국 오랜 세월 동안 매미들은 포식자들과 마주치는 확률을 낮추기 위한 경쟁을 벌여왔고 거기서 진 쪽은 도태당했다.
- 한겨레 2012.6.29일 기사 내용에서 발췌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했던가 ? 그렇다면 매미도 한때'다. 4년마다 나와서 열흘 남짓 울다가 사라지는 붉은 악마를 볼 때마다 매미가 생각난다. 2003년 미 코네티컷주에 출몰해서 1조 마리의 알을 까고 죽은 17년 주기 매미는 죽은 듯이 지내다가 2020년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테고, 4년 주기 붉은 악마 매미'도 심드렁하게 일상을 조용히 보내다가, 국내 클럽 경기에는 관심도 없다가 2018년 6월이 오면 슬슬 깨어나 시끄럽게 울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매미는 나무에 매달려 울고, 붉은 악마 응원단은 광장에서 베르테르처럼 운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대기업 홍보 수단으로 전락한 붉은 악마 응원단이여, 이젠 흩어져라 ! 그냥 동네 닭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닭다리나 뜯으며 소박하게 대한민국을 응원하자. 어설픈 훌리건 흉내는 이제 그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