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박권일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고승덕 교육감 후보와 고씨의 딸 캔디 고 씨의 문제제기에 대해.
박권일 페이스북에서 " 글 따옴 "
캔디 고 씨는 고승덕 후보에게 심각한 신뢰의 위기를 불러왔다. 이건 그냥 사실명제다. 그녀의 주장과 별개로, 자녀돌봄의 소홀을 가지고 교육감 직무수행능력 여부를 단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여기에 답하기란 난감하다. 이를테면 어떤 평행우주에서 고승덕 씨는 매우 존경할만한, 그리고 일관성 있는 공적 활동을 해온 사람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자녀에게 아버지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했고(이런 상황은 진보 명망가의 가정사에도 드물지 않다) 자녀들 중 한 명이 선거국면에서 실명비판을 했다.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했을까?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봉건적 가치, 그리고 '정상가족'이라는 근대적 가치에 기반한 도덕적 단죄는 자체로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훗날 진보진영 후보에게 부메랑으로 날아올 수 있다.
비혼주의자, 무자녀가정, 동성부부 등 소위 정상가족 유형에 속하지 않은 어떤 사람을 두고 공직을 수행할 자격을 의문시하거나 심지어 그런 여론재판를 통해 사실상 공직수행자격을 박탈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회는 과연 고승덕이 교육감이 되는 사회보다 덜 끔찍한가? 개별사례의 차원에서 말한다면 정치가나 공직자를 향한 신뢰의 문제는 미묘한 데가 있다. 사적 영역에서의 작은 소문 하나가 공적 영역의 모든 잘한 일을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으며 실은 그 사적 영역의 문제가 그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적 영역에서 천박하고 비열한 사람이라도 공적 영역에서 놀라운 역량을 발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회적/시대적 맥락의 문제도 있다.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매장될 일도 프랑스에서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라면 몰라도 이번 경우 교육감이란 특수성 때문에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러나 이건 이상한 말이다. 일반행정가는 사생활에 문제가 좀 있어도 되지만 교육행정가는 절대 안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육을 교육자의 인격으로 환원시키는 한국사회 특유의 판타지에 기인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한국의 '교육'을 망쳐온 이유 중 하나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작동하는 이 '교육의 특권화/성역화'였다. 그 결과 만들어진 사회는 교육이 성역이 된 사회가 아니라 입시가 성역이 된 사회였다. 교육을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정치로부터 분리표백해 만든 사회가 고작, 입시에 찌든 아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자살하는 사회, 그 입시에서 잠시 해방되는 수학여행에서 바다에 빠져죽는 그런 사회였음에도. 캔디 고 씨의 발언을 둘러싼 풍경은 이렇게 한국사회의 어떤 사회적 합의를 무심결에 들춰낸다.
박권일이 자기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잘나가는 진보 논객이 쓴 글치고는 억지스럽고 허점이 많다. 그가 주장하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1. " 사적 영역 " 과 " 공적 영역 " 을 구분해야 한다. 2. 그러므로 가족 문제와 공적 수행 능력은 따로 분리해야 한다. 3. 서울시 교육감 후보 고승덕은 사적 영역에서는 좋은 아버지는 아니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좋은 교육감이 될 수도 있다. 4. 결론은 좋은 아버지가 아니라고 해서 교육감 자격이 없다는 지적은 옳지 않다. 박권일은 한국 사회가 " 뿌리 깊은 유교적 가족 판타지 사회 " 이기에, 정상가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정상가족( 예를 들면 : 비혼주의자, 무자녀가정, 동성 부부 )은 " 공직을 수행할 자격을 의문시하거나 심지어 그런 여론 재판을 통해 사실상 공직 수행 자격을 박탈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회 " 라고 지적한 후,
그들이 대중으로부터 차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주장은 박근혜에게는 예외'다. 박근혜는 비혼'이며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무자녀 1인 가정'이지 않은가 ? 그의 논리가 맞다면 박근혜는 여론 재판을 통해 공직 수행 자격 점수에서 불리한 점수를 받아야 하지만 선거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콘크리트 지지율을 떠나 무쇠 지지율이다. 그녀는 철갑을 두른 남산 위의 저 소나무'다. 한국 정치는 가족 측근 비리 문제로 논란이 된 적은 많아도 정작 비혼이나 무자녀 가정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적은 별로 없다( 내 기억으로는 없다 ). 박권일은 < 고승덕 논란 > 에서 대중이 사생활 문제를 지나치게 공적 수행 능력으로 확대 해석한다고 지적하지만 내가 보기에 << 고승덕 교육감 논란 >> 은 " 사생활 문제 " 가 아니라 " 도덕성 문제 " 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고승덕이 아들의 이중 국적 논란을 해명하기 위한 기자회견장에서 그가 흘린 눈물은 딸 캔디'가 폭로한 실체와는 180도 다르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가 아버지의 눈물을 보고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는 부분은 이 눈물이 가지고 있는 진위 여부를 어렴풋이 깨닫게 해준다. 가짜 눈물의 기쁨인가, 아니면 진짜 눈물의 공포인가 ? 이 간극은 사생활 문제인가, 아니면 도덕성 문제인가 ? 캔디가 자기 아버지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은 사생활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정치적 입장을 발표한 것이다. 문용린 후보가 이 문제를 두고 패륜'이라고 지적한 부분은 가족 구성원을 < 개별적 존재 > 로 인정하지 않고, 가족 조직 내 집단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패륜이 될 수 있나 ?
문용린에게 고 캔디는 " 내부고발자 " 요, " 가족 쿠데타 " 다. 박권일과 문용린은 둘 다 < 고승덕 논란 > 을 " 사생활 문제 " 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했다. 박권일이 들으면 기분 나쁘려나 ? 유권자가 후보자의 공직 수행 능력을 평가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도덕성 문제'이다. 가정을 소홀히 한 죄'는 "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매장될 일도 프랑스에서 그렇지 않을 수 있 " 지만, (가정에 충실한 적도 없으면서) 자상한 아버지를 연기하는 것은 프랑스에서도 매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박권일은 놓치고 있다. 가정을 소홀히 한 죄는 사생활 문제이고, 거짓 눈물을 흘리며 자상한 아버지인 척하는 것은 도덕성 문제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사소한 거짓말 하나로 공직자가 사퇴하는 일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는 흔한 일이다. 박권일은 맥락을 잘못 짚었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