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덕과 비빔밥
며칠 전, 전화상담원에게 폭언( 욕설과 함께 성희롱 )을 일삼은 40대 남자가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40대 남자는 " 고객 " 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서비스업 " 직원 " 을 괴롭혔다. 처음에는 서비스 불만을 말하는 척하다가 느닷없이 " 이년, 저년, 쌍년, 올해는 갑오년 ? " 이라며 기선제압을 한다. 상대방 여직원이 정신을 못 차리고 당황하는 사이, 그는 음란한 말풍선을 띄우기 시작한다. 알파벳 W, X, Y를 쏟아낸다. 남자는 < W, X, Y > 말풍선을 상대 상담원에게 보낼 때마다 자신의 남근이 풍선처럼 팽팽하게 부풀어오르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알다시피 전화상담원은 고객이 아무리 욕을 하더라도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없다는 고객 대응 메뉴얼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요즘 이런 뉴스는 너무 흔해서 이제는 관심조차 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이 뉴스가 매우 흥미로웠다. " 진상 고객 " 이었던 남자는 1년에 무려 10,000번이나 전화질'을 했던 것이다. 만만한 것에 대한 집요한 공격과 습관성 음란 ! 대략 하루 30번'이다. " 3분 통화 " 라는 기본 에티켓만 지켜도 하루에 평균 90분 정도 통화했겠지만, 그가 " 용건만 간단히 " 라는 기본 에티켓을 지켰을 리는 없다. 고객이 전화를 끊기 전에는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는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살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우, 대단한 열정'이다. 그 시간을 다른 데 활용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 이 시간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가 불알을 만지작거리면서 음란 전화를 하는 대신 그 시간을 운동이나 공부 혹은 독서에 투자했다면 근사한 사내새끼가 되었을 것이다.
인생은 짧고 시간도 짧다. 시간을 헛되이 사용하면 안 된다. 그런데 고승덕 교육감 후보를 보면서 " 시간을 헛되이 쓰면 안 된다 " 는 통념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승덕은 학창시절에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 비빔밥 " 만 먹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제법 인기가 높아서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고승덕과 비빔밥이라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널리널리 퍼졌다. 그가 보기엔 가족들이 식탁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보내는 시간도 비효율적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다음은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 팔도식후경 >> 이라는 코너에 연재된 글 가운데 " 비빔밥의 유래 " 에 대한 내용이다.
비빔밥 유래에 대한 설은 다양하다. 첫째 궁중음식설. 조선시대 왕이 점심에 먹는 가벼운 식사로 비빔이란 것이 있는데, 그 비빔이 비빔밥의 유래라는 것이다. 둘째 임금몽진음식설. 나라에 난리가 일어나 왕이 피란을 하였는데, 왕에게 올릴 만한 음식이 없어 밥에 몇 가지 나물을 비벼 낸 것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셋째 농번기 음식설. 농번기에는 다들 바빠 구색을 갖춘 상차림을 준비하기 어려우니 그릇 하나에 여러 음식을 섞어 먹게 되었다는 설이다. 넷째 동학혁명설. 동학군이 그릇이 충분하지 않아 그릇 하나에 이것저것 비벼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다섯째 음복설. 제사를 마치고 나서 상에 놓인 음식으로 비벼 먹은 것에서 비롯하였다는 설이다. 여섯째 묵은 음식 처리설. 섣달 그믐날에 묵은 해의 음식을 없애기 위하여 묵나물에 밥을 비벼 먹은 것에서부터 비빔밥이 유래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빔밥 유래에 대한 설이 많은 것은 어느 설이건 그 근거가 희박하다는 뜻이다. 밥과 반찬이 있으면 자연스레 비벼서도 먹게 되어 있으니 어디에서 유래하였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이다. 한민족이 밥을 지어 먹었을 때부터 비빔밥은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 네이버캐스트 제공, 황교익 글'에서 일부 발췌
고승덕이 책상에서 먹었다는 비빔밥은 " 농번기 음식설 " 에 해당한다. 후딱 먹고 얼릉얼릉 공부나 하자는 속내'다. 효과는 단박에 나타났다. 그는 승승장구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까닭이다. 그런데 < 시간 > 을 무조건 이해득실 차원으로만 접근하는 방식이 옳은 것일까 ? 시간을 단순히 효율성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자본가 태도가 아닐까 ? 아내와 함께 요리도 하고, 아이와 함께 냇가에서 물놀이 하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 가족 쿠데타 " 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현대 사회의 효율성 신화 비판은 <<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 라는 책에서 잘 다루었다 ). 그가 공부/일 하느라 바빠서 먹었다는 < 고승덕 비빔밥 > 은 " 패스트푸드 " 에 해당한다.
패스트푸드를 흔히 정크푸드'라고 하니, 그가 먹었다는 < 고승덕 비빔밥 > 은 정크푸드'다. 웰빙을 생각하는 새누리당 출신 의원치고는 꽤나 좌파스러운 입맛'이다. 요즘 새누리당이 즐겨 사용하는 전략은 눈물이다. 박근혜가 울고, 정몽준이 울고, 고승덕이 울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가수가 무대에서 슬픈 발라드를 부를 때 관객보다 먼저 울면 그 가수는 실력 없는 가수'다. 방귀가 잦으면 똥을 싸고, 눈물이 잦으면 짜증이 난다. 누구는 시간을 헛되이 사용해서 비난을 받고, 또 누구는 시간을 헛되이 사용할 줄 몰라서 비난을 받는다. 가끔은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고승덕 후보에게 묻고 싶다. " 밥은..... 먹고 다니냐 ? " 출세의 신에게 너무 무례한 표현이라면 다시 정중하게 묻겠다. " 식사하셨어요, 별일 없으시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