쩨쩨하게 살자 !
10. 사노라면 + 사이코
들국화는 이렇게 노래한다 :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밑천인데 /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 비가 새는 작은 방에 새우잠을 잔데도 / 고운 님 함께라면 즐거웁지 않더냐 / 오손도손 속삭이는 밤이 있는 한 /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좍 펴라 /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이 노래를 듣다가 문득 옛 청춘들에게는 그래도 희망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 나기도 했으나 어디 요즘 개천에서 용 나는 경우 있었던가 ? 강남 아이들이야 천만 원짜리 " 강남 족집게 과외 " 한 번 받으면 성적이 대나무 죽순처럼 죽죽 오르니 강북 이무기가 용써봐야 용이 되지는 않는다.
기껏해야 용쓰는 이무기 정도가 될 뿐이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강남 드래곤들이 어학 연수를 다녀오는 동안 강북 이무기들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정을 넘기는 순간 유통 기한을 넘겨서 폐기처분해야 될 삼각 김밥과 우유로 허기를 달래야 한다. 이러한 < 차이 > 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계급을 만든다. 그리고 이 계급은 < 차별 > 을 낳는다. 전인권은 담배와 소주로 숙성한 목소리로 " ......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 라며 맨발의 청춘을 위로하지만 요즘 청춘들에게 이 가사는 " 날이 새면 애가 타지 않더냐 " 처럼 들린다. 이제 "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 " 시대는 지났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빚을 지고 시작하는 마당에, 씨부럴 ! 무슨 얼어죽을 놈의 한밑천인가. 빚이 한밑천이냐 ?
당신이 나에게 반지하 삼십 촉 알전구 불만 세력(루저)이 쏟아내는 한심한 낙담이라고 조롱해도, 나는 그 말에 딱히 반론을 제기할 생각이 없다. 나 또한 타워펠리스에서 이백이십 뽈트, 으리으리한 집에 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헤헤. (됐고!) 옛'부터 남자는 쩨쩨하게 살지 말고 당당하게 살 것을 주문했다. 남자는 먼곳을 바라봐야지 코앞에 있는 일에 신경을 쓰면 쪼잔하다는 소릴 들었다. 김수영 말마따나 사내새끼'가 전쟁터에 나가 총 들고 싸우지 않고 "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개키고 있 " 으면 "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 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 쩨쩨하게 사는 모습은 사내새끼가 쪽팔리게 사는 모습 " 이다. 남자답지 못한 행동이니 가슴을 쫘악 ~ 펼치라고 주문한다. 전형적인 한국 식 성 역할 주문이다. 그래서 수컷들은 통 크게 논다. 월세 살아도 차는 중형 세단으로 뽑고, 술은 룸살롱 가서 아가씨 젖가슴을 주물러야 뽀대가 난다. 물론 모든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도 이에 동조한다. 몸치장하는데 많은 비용이 드니 남성이 데이트 비용을 전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분빠이요, 셈셈이다. 여자 또한 한국 식 성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여성이 생각하는 < 분빠이와 셈셈 > 의 데이트 비용 논리는 오히려 성평등을 거스른다. 스스로 시소를 기울이고서는 기울어졌다고 징징거린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사내새끼가 데이트 비용 따위 가지고 쩨쩨하게, 쪼잔하게, 옹졸하게 군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 쩨쩨한 인간이다. 손가방이나 들어 주고, 모든 데이트 비용을 감당하고, 중형 세단을 모는 게 대장부다은 사내라면 기꺼이 쩨쩨한 인간으로 남겠다. 한국 남성들에게< 쪽 > 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 쪽 " 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기에 " 쪽 " 은 팔아도 된다. 그런데 한국인은 쪽을 팔지 않기 위해 양심을 판다. 정작 중요한 것은 양심인데 말이다. 웩 더 독, 몸통이 꼬리를 흔드는 꼴이다. 한국 식 깡패 느와르 영화는 쪽을 팔지 않기 위해 양심을 파는 양아치의 몰락을 다룬다. 깡패는 자릿세 명목으로 말을 듣지 않는 포장마차 주인을 몽둥이로 두들겨 팰 정도로 양심이 없는 놈들이지만 쪽팔린 짓은 안 하려고 한다. ( 이 나이 먹고 나가 하리 ? ) 쪽에 살고 쪽에 죽는다는 면에서 그들은 쪽생쪽사다. 그렇다, < 쪽 > 은 양아치들이 애지중지하는 가치다. 양심만 팔지 않는다면 쪽 팔고 쩨쩨하게 살아도 된다. 가슴 쫘아악 펼치고 살 필요도 없다. 당신은 공작새가 아니지 않은가 ?
" 쩨쩨하다 " 는 형용사는 새가 짹짹거리는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 쩨쩨하다 > 와 < 짹짹하다 > 는 서로 닮은꼴이다. " 쩨쩨한 남자 " 라는 표현 속에는 이상하게 새처럼 조잘대는 남성 이미지가 엿보인다. 사실 남자에게 새'처럼 생겼다고 말하면 그것은 남성 모독에 해당된다. 새 같은 남자는 계집애 같은 남자애를 연상시킨다. 결국 쩨쩨한 남자'라는 표현에는 계집애 같은 남자'라는 이미지를 풍긴다. 영화 사이코'에서 베이츠 모텔 사무실은 온통 내장 없는 새의 거죽 껍데기들로 진열되어 있다. 이 지점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바로 쟈넷 리'가 연기한 메리언 크레인이라는 이름이다. 그녀는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불사조 이름과 똑같은 피닉스에서 왔다. 더군다나 크레인'은 학'이다. 그녀는 이미 내장 없는 신체가 되어 박제가 될 운명인 것이다.
히치콕은 영화 < 사이코 > 를 블랙 코미디'라고 말하고는 했는데 마리온 크레인'이라는 이름은 " marry on crane " 처럼 읽힌다. 아마도 히치콕은 그녀의 이름을 생각하고는 낄낄거렸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마리온'은 결혼하지 않은 여자'로 설정되지만 그것은 단지 60년대 검열을 피하기 위한 자체 검열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영화 오프닝에서의 정사 장면은 뭔가 불법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기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타락한 아이의 어머니'이면서 새이다. 노먼은 메리언 크레인과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면서 끊임없이 조잘거린다.
" 당신, 당신은 새처럼 먹는군요... 어쨌거나 나는 새처럼 먹는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그건 실제로는, 말, 말,말,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왜냐하면 새들은 정말 엄청나게 먹어대거든요. "
새는 주로 멍청한 여성들을 조롱할 때 쓰였다. 심술궂은 어린 여자를 거위라고 하거나 새대가리라는 식이다. 짹짹거리다는 곧 잔소리'다. 그러니깐 엄청나게 먹어댄다는 말의 속뜻은 쉴 새 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다는 속뜻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쉴 새 없이 자신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어머니'에 대한 불만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노먼 베이츠야말로 쉴 새 없이 짹짹거린다. 그는 남성적이기보다는 새처럼 가늘고 불안하며, 쉴 새 없이 짹짹거리며 조잘거리는 쩨쩨한 남성 이미지가 강하다. 그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노먼 베이츠(남성 육체)를 지배하는 사람은 죽은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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