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과 김경욱
만우절이면 항상 하는 일이 있다. 물론, 여의도 국회에 불이 났다고 119에 전화를 거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만우절이 되면 항상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를 보게 된다. 공교롭게도 4월이 시작되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를 보았다. 2009년도에는 낙원동 아트시네마에서 " 장국영 추모 영화제 " 를 해서 < 아비정전 > 과 < 화양연화 > 를 보았고, 작년에는 모 출판사가 장국영에 대한 책을 발간하면서 마련한 장국영 기획 특별 상영전을 보기 위해 광화문에 있었다. 왕가위 영화제도 장국영 기일에 맞춰 상영되고는 했기에 4월 하면 장국영이 떠오른다. 그러니깐 4월 1일에 나는 항상 장국영 영화를 보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장국영 추모 영화는 상영된다. 극장 스크린은 아니지만 케이블 영화 전문 티븨에서 특별 기획전'을 연다.
내가 장국영 추모 영화제를 돌아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낯익은 얼굴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들도 나처럼 장국영을 기리기 위해 영화관을 찾아 떠도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이가 있다. 소설가 김경욱'이다. 그 또한 장국영 열혈 팬'이다. 작년 장국영 추모 영화제 때에는 모 극장 로비에서 장국영과 관련된 책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었다. 그때 내가 산 책이 김경욱의 < 장국영이 죽었다고 ? > 라는 소설집이었다. 책을 사서 극장 로비 의자에 앉아 책장을 넘기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 장국영 좋아하시나 봐요 ? "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수수하게 생긴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소설가 김경욱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시치미를 떼고는 이렇게 말했다. " 네, 평소 김경욱 소설을 열심히 읽습니다.
그래도 한국 문단에서는 김경욱을 따라올 자 없지요. " 사내의 눈빛이 밤하늘 위에 뜬 인공위성처럼 반짝반짝반짝반짝거렸다. 그 다음은 대강 아시리라. 제, 가, 김, 경, 욱, 입, 니, 다 ! 그가 먼저 순댓국에 소주 한 잔 어떠냐며 물었다. 이럴 땐 반응 속도를 살짝 늦춰야 한다. 나는 시계를 쳐다보며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가 말했다. " 낮술 좋죠 ! " 우리는 낙원상가 옆에 있는 이모네'에서 술을 마셨다. 그는 문학판에 대해 말했고, 나는 영화판에 대해 말했다. 결론은 둘 다 개판이라는 거 ! 그때 낮술이 인연이 되어서 우리는 종종 만난다. 만나면 항상 장국영에 대한 이야기로 말머리를 시작한다. 그는 내가 아비정전을 41번 보았다고 했을 때 " 41번이나 ?! " 라고 놀라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여기서 잠시 사전적 의미로써의 < 이나 > 에 대한 이야기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 이나 : ( 수량이나 정도를 나타내는, 받침 있는 체언이나 부사어 뒤에 붙어 ) 수량이 크거나 많음, 혹은 정도가 높음을 강조하는 보조사. 흔히 놀람의 뜻이 수반된다 ㅣ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인용 " 그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도 < 장국영이 죽었다고? > 라는 단편을 쓰기 위해서 그 정도 보았다고 고백했다. 글 쓰는 동안 느낌을 공유해야 했으니깐, 느낌 아니깐. 그날 < 아비정전 > 에 대한 영화 이야기로만 몇 시간을 보냈다. " 왜.... 아비가 자신을 낳은 친엄마가 그리워서 엄마를 찾아가는 장면 있잖아요 ? 그런데 엄마한테 빵꾸 먹잖아요. 아, 시바. 그때 아비가 한 말이 기억에 남아요. 커튼 너머로 아들을 훔쳐보던 엄마를 의식하며 아비는 고개를 홱 돌려 떠나죠. 그리고는 이런 소릴 하잖아요. 엄마가 기회를 주지 않았으니 나 또한 엄마에게 기회를 주지 않겠다고...... 아, 시발 ! 여기서 포텐 터집디다. "
내가 눈을 갸르스름하게 뜨며 말하자 김경욱에 캬, 소리를 내며 장단을 맞췄다. " 건달이란 양심은 팔아도 쪽은 안 팔지 않습니까. 씩씩하게 뒤돌아서 걷죠.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운다. 시바... 이런 태도로 말이죠. 그런데 빠른 걸음으로 걷는 장국영의 뒷모습을 감독은 슬로우모션으로 잡아서 가둡니다. 결국 빠른 걸음으로 그 장소를 빠져나가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엄마네 집에 머무는 거죠. 행동은 씩씩하게 멀어지는 거지만 마음은 그래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머무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더군요. " 우리는 그날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술을 마셨다. 화장실에서 오줌을 눌 때 김경욱이 내 코가 삐뚤어졌다며 바로잡아주었다. " 왜 술에 취하면 코가 삐뚤어질까요 ? " 그가 말을 하며 오줌을 누다가 그만 바지에 잔뜩 흘렸다.
내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 코가 얼굴의 중심 아닙니까. 코가 삐뚤어졌다는 건, 그러니깐... 음, 그래. 맞아. 중심을 잃었다는 거죠. 중심 잃고 비틀거리니 코가 삐뚤어졌다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 글구 보면 우리 조상들 참.... 굉장히 과학적 사고를 가진 분들이에요. 아니, 닝기미 바지저고리 입던 그 시대에 이런 과학적 사고를 하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 그가 내 말을 듣더니 낄낄거리며 소리쳤다. " 아 ! 그래서 코가 삐뚤어졌다고 하는군요 ? ㅋㅋㅋㅋㅋ. 이거 제가 좀 써먹어도 됩니까 ? " 안 된다고 농을 치자 그가 다시 한 번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는 지금도 골방에 쳐박혀서 소설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는 부지런한 작가이니 말이다. 우리가 화장실에서 이런저런 만담을 하고 있을 때 불현듯 한 사내가 나타났다. 놀랍게도 장국영이었다 !
우리가 깜짝 놀라서 동시에 장국영이다, 라고 소리쳤더니 그가 웃으면서 " 저, 장국영 아닌데요 ? " 라고 말했다 - 라고 할 줄 알았지 ? 아니다, 그는 진짜 장국영이었다. 중국말로 쏼라쏼라 했는데 우리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와 김경욱은 동시에 같은 말을 쏟아냈다. " 이거 꿈이로구나 ! " 장국영이 나와 김경욱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 찌찌뽕 ~ " 눈을 떴다. 어제 마신 술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코를 만져보니 삐뚤어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 동사서독과 화양연화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900531
■ 브루스 윌리스와 장국영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792976
■ 아비정전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515267
■ 소년다운 고집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724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