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과 간첩.
김지운 감독의 뽀다구 나는 건달 복수극 < 달콤한 인생(클릭) > 에 대한 내용을 40자 이내로 요약하라고 하면 : 질문은 내가 한다. 묻는 말에 답이나 해라 ! 영화 속 보스(김영철)은 부하(이병헌)에게 질문을 던진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병헌은 영리해서 질문에 척척 답을 한다. 그는 보스가 듣고 싶은 답만 말한다. 보기에 좋았어라, 보스는 그를 후계자로 점찍어 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부하는 보스의 질문에 궁색한 대답만 하게 된다. 보스는 균열을 감지한다. 대답이 궁색하다는 사실은 꿍꿍이가 있다는 소리다. 묻는 질문에 답을 못한다는 것은 양아치 세계에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짓. 영하의 영화 에세이 < 굴비 낚시, 김영하의 영화 이야기 > 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몇 년 전 박헌수 감독이 만든 < 진짜 사나이 > 라는 영화에서 주연인 권해효가 조폭 두목 김학철에게 무지하게 얻어터지는데 그 이유는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안했기 때문이다. 두목 김학철은 계속 묻는다. " 너는 누구냐? " 권해효도 지지 않고 대답한다. " 나는 진짜 사나이다. 태양보다 뜨겁고..... ( 어쩌고 저쩌고) ... " 그래서 권해효는 계속 맞는다. 이 장면은 이 땅의 질문과 대답의 권력관계에 대해 의미심장한 사색들을 가능하게 한다. 우선 질문자는 매우 딱딱한 문어체로 질문을 던진다. " 내가 묻는다. 너는 누구냐 ? " 답변가가 건방지게도 질문자의 말투를 그대로 따라하면, 즉 " 나는 진짜 사나이다 " 식으로 대답하면 매우 맞는다. 질문자는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때린다. (30쪽)
< 달콤한 인생 > 속 보스도 마찬가지다. 보스는 부하가 숨긴 " 꿍꿍이 " 를 듣고 싶은데 " 엉뚱이 " 만 내놓는다. 슈퍼 갑인 보스 입장에서는 원하는 답이 아니니 답답하고 갑갑하다. 보스는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하지만 이병헌의 몸값이 말해주듯이 그는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을 하드-바디'가 아니다. 그는 제거'될 뻔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아서 보스에게 복수를 한다. 단 둘이 남은 상황에서 부하는 보스에게 총을 겨루며 질문을 던진다. " 왜 그랬어요 ? " 상황이 바뀐 것이다. 이제 질문은 부하가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보스가 해야 한다. 이 영화를 자세히 뜯어보면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 서사'와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어흥,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잡아먹지롱. 이제 보스는 궁색한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양심은 팔아도 쪽 " 팔리는 " 짓은 하지 못하는 보스는 속으로 생각한다. 닝기미, 조또 !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 개그콘서트 < 깐죽거리 잔혹사 > 에 나오는 보스처럼 낮게 " 애들이 많이 다쳤어... " 라고 말하며 은근슬쩍 넘어가야 하나. 이리저리 궁리를 모색할 때, 부하는 재차 질문을 던진다. " 말해봐요. 정말 날 죽이려고 했나요 ? " 이 질문에 대하여 보스는 ① 무서워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며 침이 마르지만 ② 애써 태연한 척 연기를 하며 ③ 성난 부하를 다독이기 위해 세 가지 유형 중 하나를 제시해야 한다. 첫째, " 죽이려고 했다. 애들이 마아니 다쳤어.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눔아 ! " 둘째, " 동상 ! 내가 사랑하는 동상을 죽이려고 했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 말어. 그러는 거 아니야. " 셋째,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침묵. 그런데 보스는 yes 라고 해도 죽고, no 라고 해도 죽고, 대답하지 않아도 죽는다.
왜냐하면 부하는 이미 보스를 죽이기로 결심을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보스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답을 듣고 나서 결정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형수의 최후 진술을 듣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은 일종의 유예, 사형수를 위한 예우'다. 사형수가 아무리 그 자리에서 감동스러운 참회를 한들 결과는 뒤집어지지 않는다. 영화 < 달콤한 인생 > 은 바로 " 이미 결정된 질문 "이 갖는 폭력성'을 보여준다. 요즘 시쳇말로 어마무시한 질문이다. " 질문과 대답 " 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쪽은 질문을 던지는 쪽이다. 유우성 간첩 조작 사건'은 이미 결정된 질문 앞에 무력한 인간을 다룬다. 국가 권력은 질문을 던진다. " 당신, 간첩이오 ? " 이 질문에 대해 유우성과 유가려 남매는 답을 해야 한다. yes 아니면 no 혹은 침묵. yes라고 말하면 당연히 간첩이 되지만, 간첩이 아니라고 말해도 간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답을 거부해도 간첩이 된다. 왜냐하면 이미 국가 권력은 국가 조직의 희생양으로 그들을 선택해서 호명했기 때문이다. 호명하는 순간 이미 그들은 간첩이 된다. 새누리당이나 조중동이 선거철만 되면 꺼내드는 카드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서 모순에 봉착하게 만드는, 유사 소크라테스 대화법'이다. 의혹 제기'는 1면에 싣고 그에 대한 의혹 당사자의 해명은 끄트머리에 담는다. 결국 유권자는 악의적인 의혹 제기만 머릿속에 남고 해명은 쉽게 잊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네거티브 전략이다. 이처럼 권력을 가진 자는 질문 사용권을 독점한다. 한국 사회는 소수가 질문을 독점하는 구조다. 한국 사회에서 질문의 질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유독 대답은 눈부셔야 한다고 어거지를 부린다. 그래서 대답을 해야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질문에 대해 그럴싸하게 대답해야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결국 늘게 되는 것은 처세술이다.
내가 당신에게 묻는다, 답하라. " 말해라. 왜 그랬나 ? " 당신의 궁색한 변명을 듣고 싶다. 총은 내가 가지고 있다
fire
덧대기
달콤한 인생'은 퀴어영화'다. " 복수 " 에 방점을 찍지 말고 두 남자 간 " 질투 " 로 풀어내면 퀴어'로 읽힌다. 보스는 부하'를 사랑한다. 문득, 새끼손가락 걸며 사랑의 맹세를 하던, 저 속내를 알고 싶다. 그래서 부하를 유혹할 팜므파탈을 그에게 보낸다. 부하는 이 치명적 유혹을 견딜 수 있을까 ? 눈빛이 흔들린다. 마음을 빼앗겼다는 뜻이다. 질투에 눈이 먼 보스는 부하를 제거하기로 한다. 다, 사랑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