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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사회 -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한다
엄기호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평점 :
'편'을 강요하고 '곁'을 밀어붙이는 사회.
옛날에는 마땅한 장난감이 없어서 땅에 선을 긋고 놀이를 했다. 땅에 선을 긋고 하는 놀이는 종류가 다양한데 공통점은 동그라미 안에 있으면 보호를 받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깐 원은 울타리 비스무리한 것이었다. 울타리 밖에서는 늑대들이 호시탐탐 어린 양들을 노리지만 동그라미 안으로 침범할 수는 없었다. 왜 ? 그거시 바로 " 게임의 법칙 " 이니깐 말이다. 그래서 힘이 약한 친구는 동그라미 안에 있고 힘이 센 친구들은 원 밖으로 나가 용감하게 늑대와 싸우고는 했다. (아, 옛날이여) 놀이를 하기 전에 동그라미를 그릴 때는 나뭇가지를 손에 쥔 동무가 꼭지점이 되어서 360도 회전하면서 나뭇가지로 땅을 긁었는데, 중심을 잘 잡으면 콤파스로 그린 것 같은 꽤 정교한 동그라미가 그려지고는 해서 아, 하며 해, 맑게 웃고는 했다. (아, 옛날이여)
그 시절, 아이들은 신나게 놀았다, 엄마가 " 개동아, 저녁 먹어라 ! " 라고 소리를 지르지 않는 이상. 내가 뜬금없이 어릴 적 놀이로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인간이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 곁 > 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나'를 꼭지점으로 해서 팔을 뻗어 360도 회전을 하면 생기게 되는 동그라미'가 바로 " 곁 " 이다. 그 공간 만큼은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영토권을 주장할 수 있다. 만약에 낯선이가 느닷없이 다가와 동그라미 안으로 들어오면 당신은 본능적으로 한 발 물러나 경계 태세를 갖추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왜냐하면 늑대는 원 안에 절대 들어올 수 없다는 게임의 법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이 동그라미 영토권은 법으로도 보호를 받는다. 만약에 늑대 한 마리가 동의도 없이 k양의 영토권 안으로 침범해서 추근덕거리면 그것은 최소한 성희롱이 적용되고
강도에 따라서는 성추행과 성폭행이 된다. 이처럼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동그라미'를 무례하게 침범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날 뿐더라 범죄적 기본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 이 영토권 보호가 모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예외상태가 발생한다. 바로 옷을 벗어 벌거숭이가 될 때이다. 섹스는 기본적으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영토권을 침범하는 행위'다. 이 예외상태를 섹스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이는 이 영토권에 대해 서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사랑하는 연인끼리 " 똑똑, 네 영토권 안으로 내 팔을 뻗어 10분 간 젖가슴을 만져도 되겠니 ? 응답 요망 " 이라고 하지는 않지 않나. 남자는 이미 처녀지(영토권)을 정복한 상태다. 사랑은 " 영토권의 예외상태 " 다. 영화 < 렛 미 인 > 은 바로 이 " 영토권 " 을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다. 소년은 소녀가 사는 영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문을 외워야 한다. " 똑똑, 네 영토 안으로 들어가도 되니 ? ( let me in ) "
그런데 불행하게도 아주 다른 방식으로 예의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있다. 영화 < 쉰들러리스트 > 에서 나치 군인들은 유태인을 가스실로 몰아넣을 때 옷을 모두 벗긴다. 그리고는 학살을 시작한다. 영화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이었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집단 학살 현장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사진 속 희생자들 또한 모두 옷이 벗겨진 채 시체더미를 이루었다. 학살자들이 그들을 죽이기 전에 옷을 벗기는 이유는 벌거숭이로 만듦으로써 문명화된 인간이 아닌, 단순한 벌거벗은 생명'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옷을 벗긴다는 행위는 인격에서 비인격'으로 만드는 기표다. 고문도 마찬가지'다. 고문 피해자가 제일 두려워하는 말은 " 옷 벗어 ! " 라는 소리'다. 벌거숭이가 되는 순간 고문은 시작된다. 옷을 벗는 순간 동그라미는 사라진다. 동그라미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영토권이 사라진다는 의미이고 곁이 사라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 옷 > 이라는 상품은 체온을 유지하거나 꾸미는, 옷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기능보다는 오히려 영토권(곁)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기능성 상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옷을 벗어 벌거숭이가 되면 영토권이 사라지니 옷을 입으면 영토권이 생기는 것 아닌가. 비싼 옷일수록 동그라미는 조금 더 커진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곁'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가 동그라미나 영토권이라고 표현한 < 곁 > 은 화폐 거래가 가능한 산업'이라는 생각으로 확장되었다. < 곁 > 을 만드는 옷을 사기 위해 소비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옷뿐인가 ?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투자하는 데이트 비용도 알고 보면 곁을 얻기 위한 오랜 투자가 아닐까 싶다. 데이트 비용은 결국 타인의 영토권을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얻기 위한 투자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고 들어가니 < 곁 > 은 섹스 산업, 공포 산업과 함께 잘 팔리는 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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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하고 시작하려 했으나 서론이 너무 길어 길을 잃었다. 엄기호의 < 단속사회 > 에 대해 짧게 언급하는 선에서 매조지하자. < 단속사회 > 는 사회 현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기보다는 전작에서 다 하지 못했던 말을 속편 형식으로 쏟아낸 느낌이 든다. < 단속사회 > 는 마치 <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2 > 처럼 읽혀진다. 새로운 내용이 없고 전작에서 했던 주장들을 중언부언하는 느낌이어서 곰삭은 맛이 없다. 그래서 흥미롭지 않다. 그는 한국 사회를 " 단속 " 이라는 열쇳말'로 풀어내려고 시도했으나 왠지 겉돈다는 느낌이 든다. 차라리 " 곁의 사회학 " 이라는 주제로 접근하는 편이 묵직한 통일성을 주어 무게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를 " 곁을 밀치는 사회 " 라고 표현했는데, 내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 곁을 밀어붙이는 사회 " 다. < 밀치다 > 와 < 밀어붙이다 > 는 뜻이 전혀 다르다. " 밀치다 " 는 < 떼다 > 에 방점을 두지만 " 밀어붙이다 " 는 < 붙다 > 에 방점은 찍는다.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사람과 사람 간 간격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다는 데 있다. 이 과밀도가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한다. 그런데 엄기호는 이 과밀도가 주는 현상은 외면한 채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독립적 영토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엄기호의 지적과는 달리 한국인은 무례하게 타인의 곁으로 붙는다. 아가씨를 끼고 마시는 술 문화와 만연한 성 범죄는 바로 곁으로 붙으려는 욕망 때문에 발생한다. 엄기호는 바로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가 < 곁 > 을 " 진정한 소통을 위한 공간 개념 " 으로 선택한 단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 곁을 밀친다 " 라는 표현보다는 " 곁이 부재하는 사회 " 라고 해야 제대로 된 진단이다. 한국 사회는 혈연, 지연, 학연 따위를 연연한다. 심지어는 주거 형태마저 서구 사회에서는 실패한 모델이라고 폐기처분한 공동주거형태(아파트)를 선호하지 않은가 ! 한국인은 마치 난자를 향해 붙는 정자(들)을 닮았다. " 뭉침 " 이 과도한 사회이다.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는 측면에서 < 자석 사회 > 요,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한국 사회는 분리 불안 장애 사회'다. 그러므로 이제는 밀어내어 < 곁 > 을 여유롭게 둘 필요가 있다. 엄기호의 판단은,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