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소설 < 차가운 피부 > 를 읽다가 문득 로맹가리 단편 <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 > 가 생각났다. 두 주인공 모두 인간에 대한 환멸 때문에 세상의 끝‘으로 떠나는 사람들 이야기이기 때문. < 새들은... > 이 페루 해안가 작은 카페‘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 차가운... > 은 남극 근처 외딴 섬 등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오지 섬 기상관으로 복무하면서 1년 동안 책만 읽을 생각으로 섬에 도착하는데 첫날밤부터 주인공은 괴물의 공격을 받는다. 그는 괴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지고 온 책을 모두 불태운다. 괴테, 아리스토텔레스, 릴케, 스티븐슨, 마르크스, 시몽, 밀턴, 볼테르, 루소, 공고라, 세르반테스...... 맙소사 ! 위대한 유산은 자연 앞에 한갓 불쏘시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이 분서갱유 속에서도 태우지 않은 한 권의 책’이 존재했으니 바로 프레이져의 < 황금가지 > 였다. 문화인류학자이자 작가인 피뇰이 프레이저에게 노골적으로 오마쥬를 보낸 것은 확실하다. 소설은 흥미진진하다. 괴물과 인간이 싸우는 이야기보다 재미있는 것도 없다. 단점이 있다면 시작은 창대한데 끝은 미미하다는 점이다.
함익병, 미인은 잠꾸러기다 !
조카'가 내게 물었다. " 삼촌, 군대 재밌어 ? " 나는 눈을 흘기며 조카에게 대답했다. " 넌, 공부 재밌냐 ? " 이 말투에는 이주일 식 성대모사가 녹아들어서 " 콩나물에 고춧가루 팍팍 무쳤냐이 ~ " 처럼 들렸을 것이다. 조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군대도 마찬가지야. " 조카가 그 말을 한 이유를 안다. 그때 조카는 mbc 주말 예능 프로그램 < 진짜 사나이 > 를 보고 있었으니깐 말이다. < 진짜 사나이 > 속 병영 생활은 기똥차게 재미있다. 신입 입소식 때는 깜짝 몰래카메라로 감동시킨다. 고된 훈련 끝에는 진한 눈물이 흐르고, 우정이 꽃 피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넘쳐난다. 실제로 그럴까 ? 그럴 가능성은 제로'다. 군 자살자 수를 보면 병영 생활은 < 진짜 사나이 > 속 판타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능 다큐에서 티븨 속 " 리얼 " 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메라 앞에서 리얼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 군에 입소하게 되면 제일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은 군 시설에 대한 기밀 보안'이다. 간첩이 남한에 침투해서 제일 흔하게 하는 임무가 바로 군 시설을 파악하고 사진을 찍는 것. 그런데 < 진짜 사나이 > 는 이 모든 군대 내 시설을 화끈하게 보여준다. 홍보인가 아니면 누설인가, 애매모호한 지점이다. 대한민국은 분단 국가'다. 그렇기 때문에 일말의 주저 없이 " 강력한 군대 " 를 양성해야 된다는 말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세 말 하면 입 아프니깐 말이다. 하지만 강력한 군대를 위해서 군대 문화를 미화하면 안된다. < 진짜 사나이 > 처럼 군대 문화를 미화시키면 안된다는 말. 어제는 함익병 씨가 국민의 4대 의무인 국방, 납세, 근로, 교윽'을 이야기하면서 국방의 의무를 지키지 않은 사람은 그만큼 권리를 빼야 한다는 소리를 한 모양이다.
특히, 여성은 4대 의무 중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니 3/4권리만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서 " 70%만 챙겨라 ! " 라는 소리'다. 오, 독특한 발상이다. 허경영 이후 가장 날카로운 독설'이다. 정치에 뜻을 두었던 이명박, 원세훈, 김황식, 정운찬 기타 등등등등등등등'은 군 미필'이니 3대 의무'만 이행한 자. 그들은 자기 몫의 70%만 챙기면 된다. 이명박도 선거에서 얻은 총 득표수에서 70%만 챙겨야 한다. 박근혜는 어떤가 ? 박 대통령도 자신이 얻은 표에서 30%는 사표 처리한 후 결과를 지켜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 생각만 해도 씐난다 ! 누가 봐도 " 3/4권리 " 발언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은 < 의무 > 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 권리 > 를 보잘것없는 애물단지 취급을 한다. 일단 할 일 다하고 나서 권리를 주장하라고 말한다.
선과 후'가 분명하다. 누릉지를 먹으려거든 밥을 먼저 해야 한다는 소리다. 파업이 발생하면 노동자가 일을 하지 않아서 발생하게 된 손실부터 따진다. 안 봐도 딱이다. 하지만 권리는 의무를 이행하고 남은 냄비 속 누릉지가 아니다. 권리는 무시한 채 의무만 강요하는 사람은 독재자이고, 그 사람이 지배하는 사회는 독재 사회가 된다. 반면 의무보다 권리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인권'이다. 지적했다시피, 대한민국은 이미 과노동 국가'이다. 이 말은 곧 국민이 지나치게 국가가 호명한 의무에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의무(義務)라는 단어에서 핵심은 (務 : 힘쓸 무)에 있다. 이 한자는 力 : 힘 력'에 矛 : 창 모, 그리고 攴 : 채찍질할 복'으로 이루어진 한자'다. 이 세 가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대충 감이 올 것이다. 국가가 백성을 전쟁에 강제로 동원한 모양새다.
채찍질을 해서 백성이 창을 들고 싸우게 만드는 형국이다. 그래서 부수다, 무리하게 무엇인가를 하다, 힘쓰다'는 뜻이 된다. 함익병이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무에는 이런 속뜻이 있다. 한국 사회가 노동 과부하 사회라는 점은 이미 국민이 지나치게 국가가 호명한 의무에 혹사당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마당에, 함익병은 의무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채찍을 휘두르다가는 대한민국은 피로사회에서 기절사회로 전환되지 않을까 ? 그런데 그가 피부과 병원 원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가 한 속내가 읽히기도 한다. 피부의 적은 피로'다. 기절할 때까지 일하는 사회가 되면 신나는 사람은 피부과 병원 원장 밖에 더 있는가 ? 함익병이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노린 것은 피로였던, 였던, 였던 것이다. 사람들이 피로야, 가라 ! 라고 외칠 때 그는 피로야, 오라 ! 라고 외친다.
그가 쏟아낸 격정 토론이 환자를 유치하기 위한 꼼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꽤 실망스러운 결론이서 아, 아아.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부지런한 놈들은 대부분 밉상인 경우가 많다. 한때 허각보다 인기가 없었던 각하는 지금도 남들 다 잘 때 일어나서 황제 테니스를 치시겠지 ? 아,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