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랑한 것은 강신주의 지혜가 아니라 강신주의 성공이다.
영화 < 트루먼쇼 > 와 < 식스 센스 > 의 공통점'은 극중 주인공(들)이 자신이 누구인가, 를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끝에 가서야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과정은 사뭇 다르다. < 트루먼 쇼 > 는 주변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짐 캐리를 속인 것이고, < 식스 센스 > 는 브루스 윌리스 스스로 자신을 속인 결과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 브루스 윌리스는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보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들었다는 말이다. 브루스 윌리스가 자신이 " 헛것(유령) " 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이유는 자신이 선택한 취사 선택의 결과였던 것이지 이웃이 그를 속였기 때문은 아니다. 관객 또한 브루스 윌리스의 "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전략 " 에 말려들었다. 이처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 왜곡된 정보를 얻기 쉽다.
어리석은 경감과 똑똑한 탐정은 범죄 현장'에서 서로 다른 것을 본다. 어리석은 경감은 범죄 현장에 나열된 " 보이는 정보 " 만 선택한다. 반면 똑똑한 탐정은 " 은폐한 정보 " 를 찾는 데 힘을 쓴다. 왜냐하면 범죄 현장에 나열된 증거들은 역으로 범인에 의해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관객인 우리가 쉽게 별다른 의심없이 브루스 윌리스를 믿었던 까닭은 그가 입은 의사 가운(gown) 때문이다. 그는 학계가 인정한, 성공한 아동 심리학 박사이다. 그가 입은 가운'은 일종의 명품 브랜드'다. " 아르마니 " 양복을 사는 사람은 절대 매장 직원에게 이 옷이 " 얼마니 ? " 라고 묻지 않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그것이 바로 명품의 품격'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믿음이 바로 명품이 가지고 있는 미덕이다. 같은 이유로 우리가 브루스 윌리스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권력과 그 권력에서 오는 권위 때문이었다.
그의 말에 대해 의심을 하며 딴지를 거는 놈은 배, 배배배배배배배신, 배반형, t, tttttttttttto 부정사'다. 오늘날, 유행처럼 번지는 토크쇼에서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세태를 진단하고 처방을 내릴 때 시청자들이 별다른 의심없이 그 처방전을 믿는 이유는 그들이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렇다. 복덕방 할아버지가 장기를 두며 늘 하던 잔소리'도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티븨에 나와 똑같은 소리를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전자는 지긋지긋한 잔소리'가 되고 후자는 그럴듯한 처방전'이 된다. 같은 말인데도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것은 " 꼰대의 잔소리 " 가 아니라 " 별 볼 일 없는 꼰대의 잔소리 " 다. 반대로 " 별 볼 일 있는 꼰대 " 가 하는 말은 그것이 잔소리'라고 해도 경청해서 듣게 된다. 결국 젊은이들은 < 성공하기 위해서는 별짓을 다하는 속물 > 을 꼰대'라고 정의를 내리며 경멸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손가락질은 자신에게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공한 놈이 하는 소리는 모두 영양가 있는 충고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강신주 현상이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강신주가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사람과는 달리 듣기 싫은 소리를 솔직하게 말한다고 해서 그의 화법을 < 돌직구 > 라며 좋아하지만 사실 당신이 열광하는 것은 그가 내린 정확한 진단 때문이 아니라 성공한 철학박사'가 내뱉는 권위 때문이다. 여기에는 < 성공 > 이라는 명함과 < 박사 > 라는 명패'가 그가 던진 말을 그럴듯하게 포장할 뿐이다. 그가 강의를 통해서 일관되게 하는 말은 " 솔직해져라 ! " 라는 진단이다. 아버지가 은퇴 후 자신을 간섭한다며 아버지의 은퇴 생활을 잘 꾸리도록 도울 방법을 묻는 여성 상담자에게 강신주는 아버지를 사랑하냐고 묻는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귀찮다는 것이다. " 아버지를 사랑하나요 ? " 라는 뼈아픈 말에 여성은 눈물을 흘린다. 강신주는 위로보다는 채찍을 드는 사람'이다. 그는 확실히 말 속의 뼈를 파악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 아버지의 은퇴 생활을 잘 꾸릴 방법... " 을 알려달라는 말에는 이타성'보다는 개인주의'가 깔려 있다는 사실을 강신주는 꿰뚫어 보았다. 하지만 그는 결정적 실수를 한다. 개인주의'를 이기적인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전혀 다르다. 강신주가 놓친 것은 바로 그것이다. 강신주가 강의 내내 주장했던 것은 바로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자기 감정에 충실하자, 라는 소리는 개인주의와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그는 지금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전국민이 보는 힐링캠프에 나와서 개인사를 말할 수 있는 용기에는 기본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딸의 애정을 전제로 한다. 딸이 가지고 있는 혼돈은 환경이 바뀌었기에 오는 소란( 아버지의 은퇴 전과 은퇴 후 )일 뿐이지 그것을 두고 너는 단 한번이라도 아버지를 사랑한 적이 있느냐고 꾸짖는 것은 촛점이 어긋난 것이다. 비록 상담을 신청한 여성의 속내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효의 이타성'에는 못 미치지만, 나의 평안을 위해서 아버지와의 관계 개선을 묻는 개인주의 성향을 보이지만 이것을 두고 이기적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그는 솔로몬 왕이 아니다. 그가 내린 처방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소리'여서 언제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소리이다. 다만 당신은 별 볼 일 없는 자가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 흘려 들었을 뿐이다. 당신이 사랑한 것은 강신주의 지혜가 아니라 강신주의 성공이다.
+
여성의 사연에 대해 강신주가 느닷없이 아버지를 사랑하냐며 < 孝의 문제 > 로 전환한 이유에는 그가 질문을 오독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하자면 : 그는 < 은퇴한 아버지가 자꾸 문자를 보내고 간섭을 하는 > 것에서 치매 이미지를 떠올렸을 것이고, < 은퇴 이후 생활을 잘 꾸밀 수 있는 계획 > 에서는 그런 아버지를 양로원에 보낼 계획을 꾸미는 이미지를 연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무의식이 느닷없이 튀어나와서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귀찮아서 아버지를 양로원에 보낼 계획을 꾸미는 딸 이미지를 연상한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