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 가시'는 원래 동그란 잎이었다고 한다. 사막에서의 불볕'을
견디기 위해서는 몸을 말아서 면적을 최소화해야 했다. 그 몸짓이 굳어서 가시'가 되었다. 그러니깐 딱딱하고 날카로운 가시'는 생존을 위한 위악적
선택이었던 셈이다. 기둥선인장을 키운 적이 있다. 1미터가 넘는 선인장'이었다. 꽃집에 들렸다가 볕만 주면 무럭무럭 자란다는 말'에 계획에도
없는 선인장을 사가지고 왔다. 선인장은 느리게 성장했다. 꽃을 피운 적도 없고 잎이 돋아난 적도 없으니, 짐승으로 치자면 느리고 조용한 나무늘보
같았다. 언제부터인가 느린 것이 좋아졌다. 거대하면서 행동이 느린 것은, 날렵하지 않은 것은, 아름답다.
바닷거북이, 낙타, 개복치, 거리의 노숙자, 고래, 기둥선인장, 문창근, 대왕문어, 기린, 파이프오르간, 하마, 해바라기, 코끼리,
바오밥나무, 악어, 곰 그리고 괴물들 : 프릭스, 샴쌍둥이, 다운증후군 환자'들은 속도에 자신의 열정을 쏟지 않는다.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며,
그것이 부질없는 열정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 어느 경우든 머뭇거리는 시간은 인간의 얼굴에 새겨* " 지는 법이다.
흉터에는 신기한 힘이 있다. 과거가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 어쩌면 선인장 가시'는 잎의 흉터인지도 모른다.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679020, 선인장 中
" 가시는 장미의 결심이다* "
- 제목 출처 : 존 버거,『 A가 X에게』,열화당.
물방울은 가장 낮고 먼 곳인, 끝에서 고인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떨어지는 낙과(落果)는 없듯이, 물방울은 보다 낮은 곳으로 모여 있다가 물오른 때를 기다려 스스로 바닥으로 떨어진다. 비록 자신이 머물렀던 끝이 날카로운 원뿔 모양의 예각이었다 해도 그 각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항상 둥글다. 이쯤에서 우리는 물과 유리'는 서로 다른 성질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유리는 유리에서 분리되는 순간 날카로운 끝으로 모습을 드러내지만, 물은 물에서 분리되는 순간 부드러운 원(圓)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동그라미는 시작도 끝도 없으며 모서리가 없어서 각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니 물의 반대말은 유리'이다. 김기택 시인은 < 유리에게 > 라는 시에서 " 언제고 깨질 것 같은 너를 보면 / 약하다는 것이 강하다는 것보다 더 두렵다 " 고 고백한다.
네가 약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작은 충격에도 쉬이 꺠질 것 같아 불안하다
쨍드랑 큰 울음 한 번 울고 나면
박살난 네 몸 하나하나는
끝이 날카로운 무기로 변한다
큰 충격에도 끄덕하지 않을 네가 바위라면
유리가 되기 전까지 수만년
깊은 땅 속에서 잠자던 거대한 바위라면
내 마음 얼마나 든든하겠느냐
깨진다 한들 변함없이 바위요
바스러진다 해도 여전히 모래인 것을
그 모래 오랜 세월 썩고 또 썩으면
지층 한 무늬를 그리며 튼튼하고 아름다운
다시 바위가 되는 것을
누가 침을 뱉건 말건 심심하다고 차건 말건
아무렇게나 뒹굴어 다닐 돌이라도 되었다면
내 마음 얼마나 편하겠느냐
너는 투명하지만 반들반들 빛이 나지만
그건 날카로운 끝을 가리는 보호색일뿐
언제고 깨질 것 같은 너를 보면
약하다는 것이 강하다는 것보다 더 두렵다
- 시집 < 태아의 잠 >, '유리에게' 전문
시인은 " 유리 " 라는 물성을 통해 위악적 태도를 읽는다. 시인은 " 투명하고 반들반들 빛이 나 " 는 유리가 사실은 " 날카로운 끝을 가리는 보호색 " 이라고 말하지만, 반대로 끝이 날카로운 무기'로 변한 조각은 " 투명하지만 반들반들한 빛 " 이며 " 작은 충격에도 쉬이 깨 " 지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 또한 가능하다. 어쩌면 유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날카로운 끝으로 저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같은 이유로 장미는 꺾이지 않기 위해 " 가시 " 로 자신을 보호한다. 그것은 일종의 보호색이며 위장 그리고 저항이다. 장미는 가시가 있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가시가 있기에 처절한 것이다. 장미 가시란 (꺾인다는 것에 대한)불안'이 낳은 일종의 뇌종양이다. 불안의 고름이 밖으로 새어나와 종유석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생긴 경화(硬化)가 바로 가시'다.
이처럼 힘이 없는 것들은 종종 날카로운 끝으로 세계에 저항한다. 육식 동물'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딱딱한 뿔로 저항하는 초식 동물처럼 말이다. 시집 < 바늘구멍 속의 폭풍 > 에 수록된 시 < 가시 > 에서 시인은 날카로운 끝이 가지고 있는 불안을 읽어낸다.
가지가 되다 말았을까 잎이 되다 말았을까
날카로운 한 점 끝에 힘을 모은 채
가시는 더 자라지 않는구나
걸어다닐 줄도 말할 줄도 모르고
남을 해치는 일이라곤 도저히 모르는
그저 가만히 서서 산소밖에 만들 줄 모르는
저 푸르고 순한 꽃나무 속에
어떻게 저런 공격성이 숨어 있었을까
수액 속에도 불안이 있었던 것일까
꽃과 열매를 노리는 힘에 대한 공포가 있었던 것일까
꽃을 꺾으러 오는 놈은 누구라도
이 사나운 살을 꽂아 피를 내리라
그런 일념의 분노가 있었던 것일까
한뿌리에서 올라온 똑같은 수액이건만
어느 것은 꽃이 되고
어느 것은 가시가 되었구나
- 시집 < 바늘구멍 속의 폭풍 >, 시 '가시' 전문
가시는 " 꽃과 열매를 노리는 힘에 대한 공포 " 가 낳은 결과'이다. 그것은 " 살의(殺意) " 가 아니라 " - 살이 " 에 대한 욕망이다. 돌이켜보면 이 뾰족한 끝'은 < 유리 > 와 < 가시 > 에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끝이 존재한다. 반들반들한 유리가 박살나면 끝이 날카로운 무기가 되듯이, 사람 또한 사람에게서 멀어지면 끝이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서 " 날카로운 한 점 끝에 힘을 모은 채 " 살아가게 된다. " 꽃을 꺾으러 오는 놈은 누구라도 / 이 사나운 살을 꽂아 피를 내리라 / 그런 일념의 분노 " 만 남는다. 둘이 하나가 되었던 몸이 다시 둘로 나뉠 때, 그렇게 사랑이 끝날 때, 물방울이었던 몸은 어느새 깨지기 쉬운 유리가 되거나 가시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집 [ 바늘구멍 속의 폭풍 ] 을 관통하는 것은 분리에 따른 불안'이다.
< 가시 > 가 꽃을 꺾일 것 같은 불안을 다루었다면 시 < 새 > 는 새장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불안을 다룬다. " 새장 " 은 기본적으로 새가 날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도록 고안한 장치'이다. 먹이는 항상 몇 걸음만 옮기면 쉽게 얻을 수 있기에 새장 속 새는 날개 대신 다리로 이동한다. 이 습속에 익숙해지면 새는 어느 순간 " 새장 문을 열어놓아도 날지 않고 / 닭처럼 모이를 향해 달려갈 수 있을 때까지 걷는다 " 결국 새는 새장 속 공간이 전부가 된다. 새장 문을 열어놓아도 날지 않기에 그것은 자발적 감금 상태이다. 새'가 새장 속에서 배운 것은 걷는 행위가 아니라 불안'이다. 새는 자유를 버리고 평화를 얻었으나 동시에 불안도 얻었다. 새장과 새는 하나가 되어 서로 달라붙는다. 새는 내내 " 끓어지면 모든 것을 잃을 것 같던 / 끊기지 않으려고 오랫동안 그렇게 조심하고 조바심쳐왔던 / 끊어질까봐 소리 한번 내보지 못했던 / 언제나 떨림과 미열과 잔뇨감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 시, 실직자 부분 ) "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 끓어지면 모든 것을 잃을 것 같던 " 공포는 이 시집을 관통한다. < 파리 >라는 시는 천장에 붙어서 죽은 파리에 대해 묘사한다. 시인은 " 겨우내 꼼짝없이 붙어 있었 - " 던 파리를 통해 자리에 연연하는 집착'을 본다. 그것은 새가 새장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불안과 비슷하다. 반면 < 뱀 > 이라는 시'는 파리나 새장 속 새와는 달리 자유롭게 허물을 벗는 뱀을 통해 자유를 본다. "가벼워라 아아 편안하여라 "라고 말한다. 뱀은 살가죽을 뚫고, 살가죽을 뚫고, 살가죽을 뚫고, 살가죽을 뚫고 나와서 자유를 얻는다. 파리가 자리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어리석은 존재라면 뱀은 벗고 벗어서 " 기꺼이 화사한 꽃비늘이 " 된다. 뱀은 떨어져나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뱀은 관계로부터 독립적이다. 뱀은 물방울과 같은 성질을 가진 짐승이다. 물방울에서 벗어난 물방울이 모태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채 여전히 물방울로 분리되듯이,
뱀에서 허물 벗은 뱀도 허물을 벗기 전의 그 모태를 그대로 간직한다. 또한 우로보로스 신화 속 뱀은 자기 꼬리를 입으로 물어 원형을 만든다는 측면에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서 각이 없는 물방울과 유사하다. 반면에 인간은 분리에 대한 불안을 간직한 존재다. 그래서 사랑하던 사람이 변심을 하여 자신의 곁을 떠나는 순간 가시'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성정을 탓할 일은 아니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가시'를 숨긴 존재이니깐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끝도 함께 자란다. 다만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를 뿐이다. 인간에 대한 모든 신뢰 안에는 뾰족한 가시도 함께 자라는 법이다. 가시가 가장 뾰족할 때는 꽃이 만개했을 때가 아니었던가. 숨을 잃어도 좋을 만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랑하는 감정과 비례해서 칼날 같은 가시도 함께 자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끝은 강하기보다는 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