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과 꼬리의 정치학

육식 동물은 뿔이 없는 반면 대형 초식 동물들은 (대부분) 뿔이 있다. 반면 육식 동물은 송곳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의 치아처럼 초식 동물은 치열이 가지런하다. 종합하면 <뿔 > 은 날카로운 이빨 대용으로써 사나운 육식 동물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한 방어용 무기'라 할 수 있다. 비약하자면, < 뿔 > 은 초식 동물의 상징'이요, 약자의 징표이다. 그런 측면으로 보자면 뿔 달린 악마'는 사실 이미지의 배반이라 할 만하다. 뿔이 달렸다는 사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피 냄새에 환장하는 짐승 같은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나약한 인간'이라는 역설이 가능하다. 송곳니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가시처럼 독한 발톱에 자신의 연약한 모가지를 지키기 위해서 뿔이 자라는 것이다. 이처럼 뿔은 약자가 운명적으로 간직해야 할 주홍글씨 A다.
다들 아시겠지만 나는 몇 달 전부터 뿔이 달리기 시작했다. 내 머리에만 뿔이 달린 것은 아니었다. IMF 이후,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소외된 자'들은 머리에 뿔이 달리기 시작했다. 용산 망루에 오른 서민들은 쥐뿔 만한 뿔로 테러 진압조와 싸웠으나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고, 철도 노동자 또한 5000명이라는 경찰과 싸우기에는 초라한 뿔이었다. 뿔은 이빨을 이길 수 없었다. 내가 처음 뿔이 달렸을 때 사람들은 모두 나를 괴물이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뿔은 약자의 징표였다. 내 머리에서 자라는 뿔은 제멋대로 자라서 1미터가 훌쩍 넘었다. 사람들은 이 뿔이 악마의 뿔이 아닌 단순한 초식동물의 뿔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내 얼굴에 침을 뱉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뿔을 자를 수밖에 없었다. 아프지는 않았다. 그래도 녹용인지라 하루 술값은 되었다. 눈물이, 아.... 앞을 가렸다 !
머리 꼭대기'에서 자라는 게 뿔이라면 엉덩이 끄트머리에서 자라는 것은 꼬리'다. 인간은 꼬리를 버리고 사람이 되었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많고 많은 기관 중에 왜 하필 꼬리였을까 ? 한때 내 이름은 곰곰생각하는발. 내가 내린 결론은 꼬리라는 기관은 몸속에 있는 심장(마음) 과 뇌(생각)가 몸 밖으로 돌출된 예'라는 것이다. 그러니깐 꼬리는 제 2의 심장이요, 제 3의 뇌'다. ( 꼬리는 제 2의 마음이요, 제 3의 생각이다. )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고 하니.... 꼬리는 감정에 충실한 신체 기관'이다. 화가 날 땐 꼬리를 세우고, 반가우면 꼬리를 흔들고, 무서우면 가랑이 사이로 숨긴다. 감정의 " 형상화 " 라 할 수 있다. 속마음을 그대로 전하는 꼬리는 의도적으로 조작을 가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짐승은 꼬리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짐승들이 평생 동안 서열 싸움'을 하는 이유는 바로 꼬리 때문이다.
우두머리'를 넘볼 놈들은 꼬리를 내리지 않는다. 그런 놈들은 곧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놈이다. 그것은 일종의 선전포고 ! 운명의 그날이 오기 전까지 우두머리와 도전자는 서로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리고는 말한다. " 하와이 가라 ! " 만약에 이 말에 기가 죽는다면 꼬리를 내리고 하와이 내가 간다잉. 잇힝 잇힝 ~ 이라며 뒤로 물러날 것이다. 하지만 모두 다 하와이를 가고 싶지는 않을 터, " 네가 가라, 하와이 ! " 라고 말하는 순간 대결은 시작된다. 짐승들의 세계에서는 몰래 등에 칼을 꽂는 행위는 벌어지지 않는다. ( 간혹 연대'에 의해서 우두머리를 쫒아내는 경우는 있으나 어디까지나 인간의 조상인 원숭이나 하는 짓이다. 프란스 드 발의 ' 침팬지 폴리틱스 ' 를 참고할 것. ) 깨끗하다, 그들은 지저분하게 칼질하지 않는다. 지면 승복하고, 이긴 자는 피의 보복을 하지 않는다.
이게 다 꼬리의 정치학'이 낳은 룰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 꼬리'가 사라졌다. 솔직히 말하면 퇴화한 게 아니라 인간 스스로 잘라버린 것이다. 인간이란 지구상에서 가장 간사한 새끼들. 오로지 있는 그대로만을 표현해야 하는 이 지긋지긋한 꼬리를 잘라버림으로써, 거짓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속마음을 숨기고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세상은 온통 이상한 놈들이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뻐꾸기를 날리면 사람들은 와와 했다. 반면 말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우우 했다. 이성에게 인기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거짓말'을 말할 때에만 하하 하고, 진실을 말할 때는 화, 화화'를 냈다. 어디 그뿐인가 ? 선거철만 되면 정치가들은 온갖 거짓 공약으로 권력을 쥐었다. 이명박은 사대강이라는 거짓말을, 오세훈은 뉴타운이라는 거짓말로 화려한 왕관을 썼다.
누군가가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은 빨갱이가 되었다. 이 세상은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영웅이 되는 사회가 되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꼬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발생한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는 하하 웃지만 뒤에서는 등에 꽂을 칼을 벼린다. 꼬리가 사라지고나서부터 진정한 마초'도 사라졌다. 추잡과 주접이 난무하는 세계가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동물의 왕국을 본다. 꼬리를 바짝 세운 두 마리의 늑대가 죽을 각오로 싸운다. 하와이, 네가 가라잉 ? 컹컹. 내가 와 하와이 가노 ? 네가 가라, 하와이. 컹컹. 싸우다가 진 놈은 꼬리를 내린다. 아름다운 순간은 지금부터다. 죽일 듯이 싸웠던 승자도 상대방이 꼬리를 내리면 더 이상 물지 않는다. 그게 늑대의 처절한 룰이다. 싸움에서 이긴 놈은 상대방이 꼬리를 내리는 순간 절대 물지 않는다. 비록 그 놈이 힘을 길러서 다시 도전한다고 해도 말이다. 얼마나 멋진가 !
늑대의 맞짱에 비하면 인간은... 양아치에 가깝다. 누군가는 칼질 하는 행위를 유식하게 권력 투쟁이라고도 하지만 미화하지 말자. 그것은 권력투쟁이 아니라 칼부림'이다. 언제부터인가 간사한 놈들이 세상을 평정했다. 날마다 우아한 드레스코드를 선보이는 각하'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놈은 하와이 갈 각오를 해야 한다. 그동안 나는 " 하와이 " 가 어떤 곳인가에 대해 늘 의문을 품고는 했다. 하와이'는 어디에 있는 곳일까 ? 마르케스의 상상적 영토'인 마콘도'나 킹의 으시으시한 캐슬록'과 같은 유토피아인가 ? 이 의문은 곧 풀렸다. 하와이는 " HOW WHY " 였다. 의문을 던지는 놈은 처형된다 ! 정치를 하는 놈들이 내뱉는 애국심에 대해 HOW나 WHY 라고 묻는 놈은 하와이 간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면 하와이 간다.
누군가가 하우 와이' 라고 묻는 순간 머리에 뿔 달린 빨갱이'가 되어 하와이로 유배를 떠나야 한다. 꼬리를 숨긴 놈들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뿔'을 생산한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정치 시스템이다. 하와이는 유배지'이다. 흑산의 영문 표기법이 바로 하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