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전집 3 (양장) - 바스커빌 가문의 개 셜록 홈즈 시리즈 3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백영미 옮김, 시드니 파젯 그림 / 황금가지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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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커 가(街)의 사냥개 :

홈즈의 숙적은 모리어티'가 아니라 코난 도일이었다.

 

 

- 전에 써 두었던 글인데 정리하면서 삭제 버튼을 누르려고 했으나 단지 이 글에 투자한 시간이 아까웠다는 이유로 옮겨본다. 분량이 많은 글을 누가 읽을까 걱정되어서 " 딱 ! " 절반 정도는 삭제하고 몇몇 부분은 글을 첨가해서 올린다. 이 글에 대한 아이디어는 대부분 피에르 바야르의 < 셜록 홈즈가 틀렸다 > 에서 빌렸다. 그나저나 이곳저곳에다 칼질을 했더니 비문이 팔 할'이다.

 

 

 

 

 

 

 

 

 

불우(不遇)가 불후(不朽)가 되는 경우가 있다. 고흐나 포우가 겪었던 불행한 삶이 대표적이다. 사후의 빛나는 명성은 생전에 겪었던 불행과 겹치면서 예술적 아우라를 발산했다. 코난 도일의 유년은 불우했다. 아버지는 알콜중독자여서 평생 정신병원을 들락날락거리다가 생을 마감했고, 어머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하숙을 해야 했다. 하지만 불우한 삶은 여기까지 ! 가난한 살림에 보탬이 될까 하고 쓴 < 주홍색 연구 > 는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부와 명성을 안겨주는 계기가 되었다.  단편 형식으로 스트랜드 매거진에 연재된 홈즈의 활약은 대중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예상치 못한 명성이었다. 그것은 마치 살림살이에 작은 보탬이 되고자 곰 인형에 눈을 붙이는 부업을 하다가 느닷없이 곰돌이 인형의 달인으로 명성을 쌓는 꼴이었다.

 

명탐정 홈즈 캐릭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코난 도일은  명탐정 홈즈로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에 대해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는 이 남성 짝패 탐정물'을 스스로 " 초보적 형태의 소설 " 이라고 말했을 만큼 셜록 홈즈를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는 홈즈의 명성 때문에 자신이 진정으로 쓰고자 했던 (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 역사 소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은 대중작가'가 아니라 세익스피어 같은 대문호'가 되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그는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에 집중하기 위해서 시리즈인 홈즈'를 죽이기로 한다. 코난 도일의 전기를 쓴 파트릭 아브란에 의하면 그는 소설 속 인물인 홈즈'를 지겨워 한 것이 아니라 혐오하고 경멸했다고 한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 도일'은 [ 마지막 사건 ] 에서 그를 죽인다. 뭐, 작가가 소설 속 인물을 죽이겠다는 데 막을 자'가 누가 있으랴. 소설가의 지위'란 창조주요, 소설 속 가상 인물인 홈즈는 그 창조주가 만든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것을....  하지만 일은 ( 더럽게 ) 묘하게 꼬인다. 홈즈가 죽자 영국 사회는 패닉 상태'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거리 곳곳에 조기를 다는가 하면, 사람들은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아 홈즈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영국 왕실에 편지를 써서 홈즈의 귀환을 종용했으며, 공공연하게 도일을 혐박하기 시작했다. " 흥. 도일 개새끼 ! 말미잘, 해삼, 멍게,  3일 동안 산소 공급이 안 된, 수족관에 갇혀 지낸 개불 자식 !  부와 명성을 안긴 명탐정 홈즈를 죽이다니, 배은망덕한 놈 ! 응징하리라 ! 쿠아아아앙 " 

 

 

홈즈는 어느새 실존 인물이 되어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니 어느 누가 홈즈'를 살리려고 하는 작가가 어디에 있겠는가 ! 어찌 되었든, 코난도일은  초월적 아버지인 슈퍼스타 셜록 홈즈'를 살려야 한다는 협박에 시달렸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지켜볼 코난 도일'이 아니었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셜록 홈즈의 명성에 얼룩을 남기고 싶어했다. 홈즈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고, 엉덩이를 까서 채찍을 휘두르고 싶었다. 단, 독자들이 알아차리면 안 된다. " 홈즈에게 얼룩을 남기기 " 혹은 " 홈즈에게 모욕 주기 " 는 아주 은밀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홈즈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 바스커빌 가(家)의 개 > 를 쓴다.

 

그런데 사실 이 작품은 홈즈의 귀환이 아니라 홈즈가 죽기 전'에 벌어졌던 살인 사건'에 대한 왓슨의 회고 형식을 빌린 형태'였기 때문에 홈즈가 생환한 것은 아니었다. 홈즈는 여전히 모라이티 교수와 함께 낭떨어지에 떨어져 죽은 채였다. 그러니깐 < 바스커빌 가의 개 > 은 죽은 홈즈를 추억하는 왓슨'의 회고록인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편법에 지나지 않았다. 도일은 이미 자신의 통제 영역에서 벗어난 초월자 홈즈의 귀환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홈즈를 살리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역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도일은 모짜르트가 되고 싶었지 살리에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도일은 이 소설에서 ,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홈즈라는 캐릭터에게 사망선고를 내린다.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 바스커빌 가문의 개 > 텍스트'는 지금까지 당신이 알고 있었던 홈즈에 대한 모든 우상화 작업'을 단번에 파괴시킬 만큼 충격적이며, 무시무시하고, 어어어어어어어마어마한 음모로 가득하다. 그것은 홈즈를 바라보는  도일의 질투'가 낳은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꾸며진 복수극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진정한 셜록키언이나 홈즈키언이라면 읽기를 멈추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한때 흠모했던 영웅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홈즈가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한 탐정이며, 오류와 자기독선에 빠진 사람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독자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말이다. 가능하냐구 ? 

 

가능하다 !

 

 

 

까막눈'인 나에게 원작 The Hound of the Baskervilles' 는 바스커 마을의 사냥개 / The Hound of  Basker   ville' 로 읽혔다. 그러니깐  Basker를 마을 지명으로,  villes village' 로 읽은 것이다. 이런 오해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스커빌'이라는 성이 그리 흔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 등장 인물의 이름이 헨리 바스커빌 경'이다. ) 이것은 코난 도일'이 의도적으로 작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불러오게 한다. 도일은 왜 그 흔하고 친근한 이름을 버리고 바스커빌'이라는 이름을 주요 모티브'로 삼았을까 ? 이런 고민을 하다가 보면 해답은 의외'로 쉽게 풀린다. Basker'는 가운데 철자 s'가 빠진 Ba ( s ) ker'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 그리고 village street' 로 치환하는 것은 어떤가 ? 이 두 단어는 모두 지명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었던가. 이 두 단어를 조합하면   Ba ( s ) ker  street '가 나온다.

 

결국 소설 제목 < 바스커빌 家의 개 > 가 숨겨 놓은 암호를 풀면  사람을 연속적으로 죽인 악마 같은 개(hound)가 사는 소굴은 < 베이커 街' > 라는 뜻이 된다. 베이커 거리(스트리트?!) 라면 현재 홈즈의 현 거주지가 아닌가 ! 맙소사 !!!!  코난도일은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숭배하는 홈즈를 사냥개 / hound '로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사람을 물어뜯어 죽이는 무시무시한 미친 개'로 말이다. 홈즈, 도일에게 제대로 찍혔다 ! 창조주인 자신을 넘어서 초월자'가 된 홈즈를 바라보는 소설가의 증오가 이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이로써 아버지의 자리를 탐한 홈즈'는 도일에게 상징적 살해를 당한다. 탐정과 사냥개의 동일시'는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자주 쓰이는 직유이다. 코난 도일의 첫 번째 홈즈 시리즈인 < 주홍색 연구 > 에서 도일의 분신인 왓슨은 홈즈의 첫인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 홈즈는 ) 감탄과 중얼거림, 휘파람, 격려와 희망을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는 혈통 좋고 잘 훈련된 개를 생각나게 했다. 수풀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달려갔다가 다시 왼쪽으로 달리고, 흔적을 찾으면 흥분해서 줄곧 끙끙대는 개 말이다.

 

 

 

잘난 " 홈즈에게 모욕 주기 " 는 대중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진행되었다.  홈즈'를 사악하고 불길한 식인 개'로 묘사함으로써 홈즈의 명예를 더럽힌 도일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2차 " 홈즈에게 목욕 주기 " 를 시도한다. 이 방식은 1차의 방식'보다 강도가 쎄다 !  이 상징적 거세 행위는 홈즈에게 개새끼'라고 욕하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한마디로 무시무시하다 !!!!!! 우선  이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 바스커빌 가문의 개 > 에 대한 대강의 줄거리를 습득해야 된다. 물론, 내가 이 장'에서 사건의 개요'를 자세하게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독자는 너무 게을러진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친절한 금자 씨'가 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 3부를 작성하는 동안 나가서 대강의 줄거리를 읽고 오라 ! ) 

 

 

 ■

 

 

홈즈는 이 살인 사건의 핵심을 " 개'를 살인의 도구로 활용한 자 " 의 소행으로 본다. 그리고 범인으로 곤충학자 잭 스태플턴'을 지목한다. 그런데 잭 스태플턴은 도망치다가 안개 자욱한 늪에 빠져 죽음으로써 자백을 받는 데는 실패한다. " 바스커빌 가문의 개 " 사건은 이렇게 범인의 자백 없이 마무리가 된다. 대신 홈즈가 범인의 자백 대신 추리로 마무리된다. 홈즈의 발화를 빌려서 구술된 사건의 전모'는 전지전능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는 홈즈의 추론과 정언'을 거역할 힘도 없을 뿐더러, 그의 논리를 의심한다는 것은 반역을 꾀하는 것과 같다. 그가 하는 말은 곧 진리이므로, 잭 스태플턴'은 " 지옥의 개 " 를 이용해서 바스커빌 가문의 씨'를 말리려고 했던 악마이다. 그런데 셜록홈즈'는 매우 기초적인 수사 방향을 놓쳤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것이다. 수사의 기본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이고 손해를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따지는 것부터 시작된다. ( 여기서 이득이란 물적, 정신적 차원을 의미한다. )

 

다들 아시다시피, 사건으로 인하여 이득을 보는 사람이 범죄자일 확률은 매우 높다. 왜냐하면 사건 발생으로 인하여 손해를 보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계획적인 범죄'를 저지르기란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홈즈는 이 사실을 무시한다.  홈즈가 범인으로 몰았던, 그래서 늪에 빠져 죽게 만들었던, 잭 스태플턴은 공교롭게도 이 범행으로 인하여 이득을 볼 것이 별로 없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홈즈는 그를 범인으로 몰아서 죽음으로 내몬다. 자세한 설명은 후에 하겠지만 그는 절대 범인이 아니다 ! 어찌 되었든 홈즈가 사건 종결 선언을 했으므로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지만 범인은 잡는 데는 실패했다. 홈즈는 이 사건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범해서 어느 범죄자의 완전 범죄를 도운 꼴이 된다. 이 얼굴 없는 살인마'는 홈즈를 이용해서 자신의 완전 범죄'를 완성시킨 최초의 살인자'이다. 과연, 숨겨진 살인마는 누굴까 ?

 

 

 

 

사건은 종결되었다.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이다. 자,  홈즈가 발화하는 텍스트의 권위'를 버리자.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신뢰하지 마라.  이젠 텍스트의 권위에 도전하여 새롭게 사건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수사의 기본적 자세를 떠올려 보자. 이 사건 ( 3명이 죽었다. 찰스 바스커빌 경, 탈옥수 셀든 그리고 잭 스태플턴 ) 그 후를 떠올려 보자. 홈즈가 떠난 바스커빌 대저택의 미래는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까 ? 어마어마한 대저택의 상속자인 젊은 헨리 바스커빌 경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 있다. 더군다나 그는 독신'이다. 이 대부호'가 장가를 가지 않았을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누구와 결혼을 했을까 ? 텍스트 안에서만 고찰하자면 그 행운의 주인공은  잭 스태플턴의 아내 베릴 스태플턴'이다. 소설은 내내 베릴과 헨리 경의 은밀한 러브 라인'을 지속시킨다. 더군다나 소설에서 베릴은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으로 묘사한다. 

 

 

 

그녀는 내가 만나본 어느 영국 여성보다 더 가무잡잡한 피부에 새까만 머리, 새까만 눈동자를 가졌다. 그러나 그녀는 키가 훌쩍 컸을 뿐만 아니라 늘씬하고 우아했다. 또 이목구비가 반듯하여 민감한 입매와 아름답고 열정적인 검은 눈동자가 아니라면 차가운 인상을 줄 정도였다. 완벽한 육체와 우아한 드레스 덕분에 그녀는 인적이 드문 황무지에서 마치 기묘한 환영처럼 보였다.

 

 

베릴은 키가 크고, 늘씬하며, 우아하고, 반듯하며, 아름답고, 열정적이며, 완백한 육체를 가져서 마치 기묘한 환영처럼 보인다고 서술되고 있다. ( 사실 베릴은 살인자 스태플턴의 아내'인데 여동생'이라고 사람들을 속인다. ) 위의 인용문은 왓슨과 베릴이 처음 황무지에서 만나는 장면인데,  베릴은 느닷없이 왓슨에게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한다.

 

 

 

오빠는 ( 잭 스태플턴, 사실은 자신의 남편 ) 바스커빌관의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경고다. 베릴이 처음 만난 왓슨에게 잭 스태플턴이 바스커빌 가문의 주인이 되고 싶은 사악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폭로한 참뜻은 무엇일까 ?    이것은 베릴의 입을 통해서 이 사건의 범죄자를 폭로한 것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텍스트의 절반도 되지 않은 상화에서 소설 속 등장 인물은 미리 살인자를 폭로한 것이다.  추리소설은 진짜 범인은 은폐해서 독자들이 범인을 알아차릴 수 없도록 만드는 장르인데 이 작품은 시작부터 베릴의 입을 빌려서 잭 스태플턴이 바스커빌 가문의 재산을 노린다고 고백한다. 있을 수 있는 일인가 ?  마지막에 범인의 이름을 호명하는 것이 이쪽 업계 ( 추리소설 )의 룰임'을 감안한다면, 배릴이 누설한 폭로는 매우 이상한 방식이다. 이것은 마치 영화 식스센스 1/3 지점에서 " 브루스 윌리스는 유령이에요 ! " 라고 속삭이는, 옆 좌석의 재수없는 관객과 같다. 코난 도일은 왜 이런 무모한 발설을 했을까 ?  정답부터 말하자면 잭 스태플턴은 이 사건의 범인이 아니란 사실을 코난 도일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여자, 수상하다 ! 재미있는 사실은 왓슨이나 홈즈나 이 여인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홈즈는 이 여자를 신뢰하는 것일까 ?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이 연쇄 살인 사건으로 인해서 최대의 이익을 보는 사람은 바로 베릴 스태플턴'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남편은 죽었고 ( 텍스트 안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그럴 것으로 추정되는 ) 헨리 경과의 행복한 결혼 생활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살인자의 모습을 정확하게 본 사람은 마부다. 마부는 얼굴 전체를 덮어 변장한 살인자를 유일하게 목격한 인물인데 그가 홈즈에게 설명하는 살인자의 몽타쥬는 다음과 같다.

 

 

한 마흔 살쯤 되어 보였고 나리보다 10센티미터쯤 작은 중간 키였습니다.

 

마부가 묘사하는 범인의 생김새는 무시해도 좋다. 분장한 얼굴이 마흔 정도의 남자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범인이 마흔 살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분장이란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로 자신의 얼굴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상대방에게 정반대로 알릴 때 사용하는 기술이다. 남자인 경우 여장을 하고 여자인 경우는 남장을 하거나, 젊은 사람은 노인으로 분장하고 왕은 거지로 분장을 하는 식이다. 그게 바로 분장의 기술'이다. 그러므로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입으로 보이는 사내'로 분장한 범인을 목격한 마부의 진술과는 정반대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이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 서른에서 마흔 사리오 보였고 키가 작았으며 글발에 말끔하게 면도를 한 " 스태플턴은 분장한 범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키는 숨길 수 없는 결정적 증거이다. 얼굴을 다른 사람처럼 분장을 할 수는 있지만 키를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스태플턴을 작은 키의 소유자라고 한다면 마부가 묘사하는 살인범의 몽타쥬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 아닐까 ? 

 

오히려 마부의 몽타쥬는 베릴과 비슷하다. 위에 인용된 문장을 보라. " 그녀는 키가 훌쩍 컸을 뿐만 아니라 늘씬 " 했다고 하지 않던가 ?  왜 홈즈는 잭 스테플턴과 베릴 스태플턴의 이같은 결정적 차이를 놓쳤을까 ? 결정적 증거였는데 말이다. 마부는 이 정체불명의 사람이 마차에서 내리면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자 홈즈와 왓슨은 긴장을 하며 마부를 재촉한다. 그런데 마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기상천외하다

 

 

 

- 사실 그 신사 분은 자기가 탐정이라고 했습죠. 그리고 아무한테도 자기 애기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요.

- 언제 그런 말을 하던가 ?

- 갈 때 그랬습니다요.

- 다른 말은 더 안 했나 ?

- 성함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셜록 홈즈라고 하던뎁쇼 ?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범인은 이미 홈즈가 마부를 찾아와서 자신에 대해 물어볼 것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범인 입장에서는 자신의 모습과는 정반대인 모습으로 분장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홈즈가 마부를 찾아와서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란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 생얼 " 로 돌아다닌다는 것은 쉽게 납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홈즈라고 조롱해서 홈즈롤 도발한다. 그는,  왜 도발했을까 ? 결과적으로 홈즈는 이 이상한 사람의 커밍아웃을 기점으로 호기심을 가진다. 결국 살인자는 홈즈를 불러들인 것이다. 다시 묻자. 왜, 그랬을까 ? 답은 하나다 !  홈즈가 개입되어야지만 자신의 범죄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홈즈의 개입은 잭 스태플턴에게 있어서 유리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으로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잭 스태플턴은 그 마부가 본 살인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서서히 하나로 좁혀진다. 그렇다, 범인은 베릴'이다. 그녀가 모든 것을 조작한 것이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 분장의 기술 > 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정반대로 알리고자 하는 속임수라면 " 마흔쯤 된 사내 " 의 반대는 " 이십대 여성 "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더군다나 호리호리하고 키가 큰 신체 조건은 베릴의 신체 조건과 유사하다. 이러한 모든 정황을 보면 범인은 그녀다. 그런데 홈즈는 그 사실을 놓친 것이다. 코난도일은 이 작품을 통해서 홈즈의 치명적 실수를 유도했다. 그의 실수는 결국 무고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악당이 승리하도록 방치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셜록홈즈에게 2번의 상징적 살해'를 한 것이었다. 도일은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이자 창조주가 되어버린 초월자'를 살해함으로써 홈즈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리고 그는 멋지게 성공했다. 왜냐하면 홈즈가 아무리 명성을 쌓아 보아야, 그는 한갓 죄 없는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서 죽게 만든 실패한 탐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셜록키언들만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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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1-29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셜록키언었던 적이 없습니다. 셜록키언이 되어야 할 순간에 스피노자와 같은 생각을 가졌죠. (실재와 완전함에 대해 나는 양자가 동일한 것으로 생각한다.) 왜 현실은 소설과 다른가?

공학에서 행정이라는 단계를 거치면서 효율은 떨어집니다. 추리의 정확성이 90%단계를 7단계만 거치면 정답의 확률이 50% 아래로 내려가죠. 70%의 정확성이라면 2단계만 걸쳐도 50%아래입니다.

저는 아이와 함께 명탐정 코난 만화를 보는데, 사건의 정보로 범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단지 작가가 지목한 범인을 찾아내죠.

바스커빌 가문의 개 ; 다시 읽어야겠군요.

마립간 2014-01-29 09:55   좋아요 0 | URL
http://dvd.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368804084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9 12:06   좋아요 0 | URL
책을 다 읽었다고 셜록키언인가요.. 후후후후...
셜록키언은 정말 집요하게 파고드는 양반들입니다. 홈즈가 무엇을 좋아하고
몇년도에 이런 사건이 있었고.. 그러니깐 홈즈를 실존 인물처럼 느끼고 따르는 사람이
셔록키언이니 저도 셜록키언은 아닙니다. 그저 책을 다 읽은 사람일 뿐.....

홈즈'가 헛점이 많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죠.
설록키언들은 오히려 숨은 그림 찾기처럼 말도 안 되는 추리를 찾아서
그것을 또 공유합니다. 그러면서 즐기시더라고요... ㅎㅎㅎㅎㅎ

이 책과 함께 바야르의 셜록 홈즈가 틀렸다, 도 함께 읽어보세요. 매우 재미있습니다.

요하네스 2014-01-29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런 글을 분량이 많다고 외면하는것은 독자로서 비도덕적이다.

이전에 발견되지 않은 실존의 다른 단면을 제시 하지 않는 문학은 비도덕적이다라는
(전집 사시는 기념으로) 쿤데라를 좀 패러디해봤습니다.


이 덧글 쓰려는데 사정이 생겨서 이제서야 축하 덧글 쓰는김에 이전글로 돌아와서 본래 목적을 달성해보았소... 페루애 보르헤스. 언젠가 허심탄회하게 긴 편지를 쓸 날을 기다려왔는데요. 다행히 요즘은 정신적 황폐화에서 좀 벗어나서 언어로 생각을 표현하는데 좀 수월해졌으니 정말 조만간 글로 그간 못드린 말씀 전해드리겠소..

구겐하임, 이 단어로 제 정체를 알아차리시다니. 그걸 기억해주시니까 정말 마음이 뿌듯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9 21:10   좋아요 0 | URL
클레어 님이 글의 진가를 아시는구려. 길게 쓰다 보니 주부와 술부 호응이 전혀 맞지 않아서 고칠까 하다가 에이 귀찮아서 그냥 올렸어요. 이젠 그런 것도 귀찮아 하는 나이인가 봅니다.
좋게 보아주시니 고맙군요. 구겐하임 하면 무조건 클레어 아니겠습니까 ? ㅎㅎㅎㅎ.
다행히 정신적 황폐화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았다고 하니 다행이구랴.
섬세한 감각의 소유자인 클레어에게는 환경이 바뀐다는 것 또한 스트레스로 작용할 겁니다.
어서 빨리 소식 전해주시구랴.... 기다립니다.

난 당신의 애독자요 !

하인츠 2014-01-29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글 정말 좋았어요. 사실 이런 글 계속 써주셨으면 했는데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9 21:11   좋아요 0 | URL
고맙소, 클레어 !

비로그인 2014-01-29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이런 비하인드가 있었군요.
워낙 오래전에 읽은 책들이라 가물가물하지만 홈즈랑 모리어티랑 폭포에 빠뜨려 죽여놓고 나중에 다시 부활시킨 단편도 기억나는데 이런 꼼수를... 기회 되면 바스커빌 가의 개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9 21:13   좋아요 0 | URL
워낙 유명한 사건이어서 널리 퍼진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건
뭐 거의 코난 도일을 모르는 영국인은 없었어요.
그런데 이 양반이 인기를 얻다보니 정치에 눈길을 돌려서
두 차례 선거에 나가는데 아주 초라한 득표로 떨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깐 영국인은 코난도일을 존경한 게 아니라 홈즈 자체를 좋아했던 거예요.
이 일화만 보아도 코난 도일이 왜 홈즈를 증오했는 가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