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번개 모임 후기 2 부.

 

표명희와 기형도 씨.

 

 

 

 

   

 

 

 

 

 

http://blog.aladin.co.kr/749915104/6845977 1 부 : 표명희와 장개동 씨.

 

내가 경찰서에서 하루 종일 조서를 작성했다고 하니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좀 복잡하다. 자신을 기형도라고 속여서 내 피 같은 돈을 갈취한 장개동'이 불쌍하여 경찰서를 나서는 길에 사식으로 돼지 국밥'을 넣어주었다.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안되는 말랑말랑한 신파 때문이 아니다. 죄를 미워하면 반드시 그 인간도 미워해야 옳다. 하지만 죄를 미워한다고 해서 밥 먹을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 하는 건 옳지 않다. 그래서 돼지 국밥을 넣어준 것이다. 그는 왜 기형도를 사칭했을까 ? 하긴, 허무맹랑한 부활론'에 깜빡 속은 내가 잘못이지. 그때였다. 경찰서 문을 나서려는 찰나 누가 다급하게 불렀다. " 이봐요, 투 베어 원 풋 ( 곰곰발 ) !!! " 뒤돌아보니 강력계 최만식 경사'였다. " 이봐요, 투베어원풋 ! 일이 묘하게 꼬였수다. 장개동, 그 자식.. 장개동이 아니올씨다. "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장개동이 장개동이 아니라면 장개동은 헛것이란 말인가 ? 최만식 경사를 주위를 살피더니 내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 그 사람, 기형도가 맞습니다. 지문 조회한 결과, 그는 20년 전에 사망한 기형도'로 나왔습니다. 그... 러니깐, 그는 장개동인 척 연기를 한 것이죠잉 ! " 최만식 경사의 말은 이명박이 터진 입으로 자신을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이라고 고백했을 때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다. 푸베어원풋 씨 ! 조서를 다시 작성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기형도 시인은 일이 확산되는 걸 원치 않습니다. 나는 뭍 위에 오른 문어처럼 다리에 힘이 없어서 흐느적흐느적 다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기형도는 마침 국밥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의 시 < 장미빛인생 > 에서 마지막 연에서 " 나는 인생을 혐오한다 " 라고 끝맺던, 어떤 혈서 같은 고백이 떠올랐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담당 형사가 잠시 외근 중이라 나는 경찰서 안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문득 전날 선물 받았던 표명희의 소설 < 내 이웃의 안녕 > 이란 소설집이 생각났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책을 읽을 마음은 안 생겼지만 소설 표제작으로 쓰인 " 내 이웃의 안녕 " 이란 단편을 읽어보기로 했다.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307호, 위층 사람들이 이사를 왔다. 그들이 오면서 새로운 사실이 하나 밝혀졌다. 이전에 살았던 사람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는 것. ( 단편 내 이웃의 안녕 中, 109 )

 

나는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오면 노란 색연필로 밑줄'을 굿는 버릇이 있는데 소설 첫 문장부터 마음에 들어서 밑줄을 친 적은 김훈의 < 칼의 노래 > 이후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느낌이 좋았다는 소리다. 소설 속 화자인 207호는 307호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오면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된다. 새로 이사온 사람이 끽연가'라는 점이다. 307호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오면서부터 그때부터 담배 연기 냄새가 207호로 스며드는 것이니 합당한 추론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207호 남자는 새로 이사를 온 307호 남자를 통해서 그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 사람(새로 이사를 온 사람)을 통해서 거기에 없는 사람(이전에 살았던)이 비흡연자'라는 사실을 먼저 언급한다는 점이다. 어떤 대상을 통해서 타자의 부재'를 인식하는 방식은 부재를 통해서 존재를 인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거울 속 나(존재)를 통해서 죽은 아버지(부재)를 떠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재하는 자는 끊임없이 존재하는 자와 연결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말처럼 산 자는 죽은 자 때문에 고통 받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빈곤에 의한 개인의 자살은 개인적 죽음이 아니라 공동체적 위협이 되어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이다. 207호 남자가 307호의 흡연을 통해 지금 거기에 없는 남자의 비흡연'을 먼저 언급하는 인식은 지금 거기에 있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의미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거기에 없는 자에 대한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희미하나마 공동체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207호 사는 남자 이름이 " 빈 " 이라는 것은 그 또한 비워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 표명희는 이 짧은 첫 문장에서 모든 것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이 사실만 보아도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다들 아시다시피 첫 문장이 좋으면 결과가 좋은 법이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아파트라는 집단 주거 형태를 통해서 현대인의 소통 단절을 다룬 작품은 많다는 점이다.  결국 익숙한 코드 진행은 뻔한 이야기여서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 단편은 그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몇 가지 반전을 준비한다. 새로 이사를 혼 307호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아니다. 207호는 107호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 의심 > 이란 의심을 할 수록 점점 확증으로 견고해지는 법 ! 그것은 마치 야한 생각을 할 수록 견고해지는, 딱딱해지는 페니스와 비슷하다. 의심과 비슷한말은 의혹이 아니라 발기하는 페니스'다. 그리고 < 페니스 > 의 반대말은 종교적 < 믿음' > 이다.  207호 남자는 담배 연기 냄새를 통해서 107호의 존재와 부재를 인식한다.

 담배 연기'라는 무형의 물질성'을 통해 107호를 인식하게 되는 방식은 지극히 유물론적'인데 작가 표명희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7호 남자는 담배 연기 냄새 대신 시체 썩는 냄새를 맡는다. 그는 107호의 고독사를 의심하지만 아파트 경비의 증언에 의하면 107호는 야반도주를 했다고 한다. 107호는 텅 비어 있는 것이다. 207호는 거기에 없던 자를 통해 거기에 없던 자의 존재를 인식했듯이, 107호 또한 거기에 없던 부재를 통해 거기에 있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바로 이때 새로 이사를 온 307호 여자가 207호 남자를 방문한다. 담배 연기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는 하소연이다.

■ 형설 시공사에서 출간된 오소리 깻잎 입말 사전'에 의하면 의심의 비슷한말은 남근이다. 의혹을 받고 있는 대상의 허물을 벗기고자 하는 욕망이 바로 의심인데 의심이란 그 대상의 허물을 벗기고자 할수록 점점 확증으로 변해 견고해진다. 남근도 마찬가지다. 수컷이란 대상을 벌거벗겨서 온갖 음란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페니스는 의심처럼 점점 견고해진다. 딱딱해진다. 그러므로 의심과 남근은 유사한 구조를 가진 단어'다. 반면 남근의 반대말은 믿음'이다. 믿음이란 그 대상을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숭고해진다. 발기가 페니스로 유입된 피의 혈량이라면 숭고한 믿음은 심장으로 피가 유입된다. 심장이란 혈액을 몸 전체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근육 기관이고 페니스가 발기하는 현상은 피가 유입된 결과이다. 그래서 옛부터 성직자들은 숭고한 심장을 지키기 위해서 금욕적 삶을 살아야 했다. 피가 남근에 쏠리면 그만큼 심장은 차가워진다. < 오소리 깻잎 입말 사전 > 은 꽤나 엉터리인데 저자인 소율의 마법 같은 입질'을 듣다 보면 설득 당하게 된다. 믿음의 반대말은 발기'다.

 

어찌된 일인지 207호의 손에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담배가 쥐어져 있다. 이 지점에서 작가 표명희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명확해진다. 그것은 " 부재의 전이 " 이다. 이 부재는 실직과 고독 그리고 빈곤이 야기한 표류하는, 인성이 물성으로 전이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107호 남자가 실직과 빈곤으로 인해 어느 순간 사라졌듯이 실직과 곧 닥쳐올 빈곤으로 앞날을 걱정하는 207호 남자도 107호 남자와 유사한 과정을 겪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전이는 207호에서 307호로 전이될 것이다. 이 단편은 꽤나 복잡한 듯한 관계를 매우 치밀하지만 간략한 수식으로 보여준다. 영리한 설정이다.

내가 이 단편을 다 읽을 즈음에 조서 담당 형사가 도착했다. 나는 담당 형사에게 선처를 부탁했다. 나는 담당 형사에게 그가 내 카드를 훔친 것이 아니라 내가 쓰라고 주었다고 거짓말도 했다. 형사는 이 뻔한 거짓말에 감동을 해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담당 형사를 위로하기 위해 어깨를 토닥이며 외쳤다. " 우리 모두 이웃이잖아요 ! " 여기저기서 울지 마 ! 울지 마 ! 울지 마 ! 라는 응원이 들렸다. 최만식 경사도, 마약 담당 오종팔 경위도, 강력계 반장 최고환 씨도 울지 마, 를 외치다가 그만 울음이 터졌다. 마치 요실금 환자가 야금야금 몸 밖으로 내보내듯, 그들 눈에도 눈물이 살짝 번지는 것이었다.  결국 기형도는 내 선의 때문에 풀려나왔다. 그는 지금 내 방에서 하룻밤을 묵고 있다. 적어도 내 이웃인 기형도 씨는 오늘 하루 동안만큼은 " 안녕 " 하다.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말이다. 그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시취가 풍겨서 나는 잠시 미간을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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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1-26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에서 흠칫했어요. 읽다보니 담배가 땡기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6 07:16   좋아요 0 | URL
우현 님 항상 이 시간에 퇴근하시는 거 같습니다 ?

비로그인 2014-01-26 07:54   좋아요 0 | URL
저녁 여덟 시 반에서 아침 여덟 시 반까지 일해요. 오늘은 휴일이라 내내 잤어요.

르미에르 2014-01-26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글이 구라인 증거.
서울에 사식으로 돼지국밥을 넣어줄만한 경찰서 없음.

돼지국밥은 서울에서 레어템.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6 07:16   좋아요 0 | URL
왜 서울을 얕잡아보십니까 ! 국정원에 고발하겠습니다.

르미에르 2014-01-26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이고...국정원...하나도 겁안남.

일본 어디 닌자가문에 단체로 연수라도 좀 보내고 싶네요 -_-;
미행만 하면 들켜...어휴 어디 쪽팔려서...;;

얼마자 감시자들을를 봤는데 당췌 영화에 몰입이 안되서 짜증나 죽는줄 알았음.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6 14:24   좋아요 0 | URL
국정원을 2차 디스하시는군요.
에르 님을 국보법으로 다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감시자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 나온 국정원은 뭐 세계 최강이죠.
현실은 시궁창인데 말입니다.
마치 유니클로가 세계 명품인 것처럼 선전하는 꼴...

마지막행인 2014-01-26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오소리 깻잎 입말 사전 > 은 꽤나 엉터리인데 저자인 소율의 마법 같은 입질'을 듣다 보면 설득 당하게 된다. 믿음의 반대말은 발기'다.




그럼 오소리 깻잎 입말 사전에 발기한다. 고 하면 오소리 깻잎 입말 사전을 믿는 건가요 의심하는 건가요.
모순이 생기네요.

오시리 깻잎 입말 사전이 모순임을 밝힙니다.

총총.

(아, 그 행인 맞음요 헷갈리실까바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6 14:31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오서리 입말 사전이고,
오시리 입말은 짝퉁입니다.
오시리 입말 사전은 모순입니다.

깊이 파면 다치는 관계로 자세한 내용 언급은 피하겠습니다.

도망가는행인 2014-01-26 14:4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때리실라고요? 훌쩍.


멀리가야지.

멀리 안 나오셔도 됩니다.

총총총...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7 03:39   좋아요 0 | URL
요즘은 날이 풀려서 나들이 하기에 좋은 날씨이니 대문까지
마중나갑니다.

mira 2014-01-26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훈훈하게 끝나는군요. 독특한 글 읽기 너무 좋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1-27 03:40   좋아요 0 | URL
이것저것 섞는 게 제 취향이라서요...
어느 것이 뻥이고 어느 것이 진실인지 가려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