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 순정 > 에 나오는 욕 배틀을 보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직업의 다양성'이다. 아, 그 옛날의 사라진 가게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자지 봉달이 아저씨는 저잣거리에 서서 일렬로 늘어선 상점'을 일일이 호명하는 것이다 : ① 술도가 ② 농약가게 ③ 고무신 장수 ④ 기름 파는 장수 ⑤ 떡 쪄서 파는 장수 ⑥ 말고기 장수 ⑦ 쌀 가게 ⑧ 소리사 가게 ⑨ 철공소 ⑩ 목공소 ⑪ 철물점 ⑫ 대장간 ⑬ 도장집 ⑭ 엿도가 ⑮ 고물상'이 달동네 저잣거리'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처음 듣는 낱말도 많을 것이다. 술도가는 술을 만들어 도매하는 집을 말하고, 소리사'는 얼마 전에 종적을 감춘 레코드 가게'를 말하며 엿도가는 엿 만들어 파는 가게를 말한다. 킁킁, 한 마디로 엿 먹으라는 거지. 그리고 철공소, 철물점, 대장간'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르다. 아마 요즘 어린이들은 쌀 가게'가 독립적 형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잘 모를 것이다. 여기에 두붓집, 국숫집 등등의 집집집'을 합치면 옛날에는 정말 다양한 가게'들이 골목에 포진했다. 그렇다면 현재는 ? 딱 세 가지 있다. 치킨집, 핸드폰 가게, 커피숍. 여기에 몇 가지를 더하면 피씨방, 교회...... 이게 다다. 이처럼 골목 상권'은 세월이 흐를 수록 다양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버렸다.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49739 술도가에서 엿도가까지 모두 나와랏 ! 中

 

 


 

 

 

 

 

올해의 사자성어 ㅣ 커. 피. 믹. 스

 

 

해마다 연말이면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올해 선정된 사자성어는 도행역시(倒行逆施)라고 한다.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 선정 과정이 궁금하여 살펴보니 < 올해의 사자성어 > 는 교수로 구성된 추천위원 27명이 1인당 2개씩 제시한 사자성어를 자체적으로 선정한 것을 바탕으로 33명의 교수들이 총 5개를 선정한 뒤 일반 교수들이 최종적으로 고르게 된다. 까놓고 말해서 순리'를 거스린 해는 이승만 정권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으니 올해가 순리를 거스린 해'라는 말이 그닥 와닿지 않는다. 순리를 거스리지 않은 해가 있었던가 ? 교수랍시고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사자성어' 가지고 말놀이 하는 것 같아 별 감흥이 없다. 싸움은 백성이 하고 최후 판결은 자신들이 해야 한다는 꼰대적 발상이라는 말이다. 내가 보기에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 커. 피. 믹. 스 " 다.  " 츼근 몇 년 사이에 휴대폰 가맹점 다음으로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가게가 바로 커피숍'이다.

 

이제는 로스팅, 블랜딩, 핸드 드립'이라는 용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어느새 대한민국은 커피 왕국이 되었다. < 백경 > 에 나오는 일등항해사 스타벅'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고전 속 인물일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한국인이 로스팅 커피'를 좋아하는 취향'에는 순수한 미덕보다는 부르디외가 지적한 불순한 의도'에 가깝다. 그들은 싸구려 대중적 기호에 맞는 프림 커피'에 대한 차별화를 위해서 드립 커피를 선호하는 것이다. 계급은 곧 취향'이다. 상위 계급일수록 고급 취향을 선택하게 된다. 개천에서 용 날 일은 이제는 없다. 신분 상승이 좌절된 현대인은 고급 취향을 공유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을 고급스럽게 치장한다. 커피 애호가'들이 이 글을 읽으면 발끈하겠지만 보잘것없는 한 낱 알라디너의 글에 발끈하지 말고, 박근혜에게 발끈하는 게 순리에 맞다. 사소한 것에 흥분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 글은 당신의 허세적 욕망을 지적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 가게의 다양성 " 이다. 자연과학자들이 지구 생태계가 건강한가 아니면 병들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 생명종의 다양성 " 에 있다. 해마다 2만 5천 종에서 5만 종이 사라지고 있다. 숫자가 줄어든 게 아니라 종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간단하게 계산해도 하루에 100여 종 이상이 지구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꿀벌도 조만간 멸종될 위험성이 높다고 하니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자는 인간이 될까, 아니면 바퀴벌레가 될까 ? 아무래도 바퀴벌레가 인간보다는 유리할 것이다. 최악의 환경에서는 몸집이 작을수록 생존 확률이 높은 법이니깐 말이다. 몸집이 크다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뜻이다. 가게도 < 종의 다양성 > 으로 설명할 수 있다. 다음은 성석제의 [ 도망자 이치도 ] 에 나오는 구절이다.

" 아아아, 지미랄 것, 너희 똥도 못 처먹는 개새끼들, 다 나와. 너 술도가 나와. 너 농약가게 하는 놈 나와. 너 고무신 장수 나와. 너 기름 팔아처먹는 놈 나오고 떡쳐서 파는 놈, 말고기를 소고리라고 속여 파는 놈 나와. 쌀 배달 하는 놈, 소리사 하는 놈 다 나와. 철공소, 목공소, 철물점, 대장간, 도장집, 문방구, 성냥공장, 엿도가, 고물상 나와라. 우체국, 경찰서, 읍사무소,세무서, 소방서 다 나오란 말이다. 개새끼들아, 나왔으면 일렬로 서. 이놈의 새끼들, 내 마누라하고 재미본 그 대가리들, 잘 놀게 내가 그냥 놔둘 줄 알았냐. 야, 너 흔들거리는 놈, 똑바로 서 ! 내가 땜장이라고 우습게 봤어. 사나이 봉달이를 우습게 봤다 이 말이야. 내가 오늘부터 너희 대가리에 헛구멍난 걸 몽땅 때우겠다 이 말씀이야. 너희 마누라들, 그 구멍도 다 때워버리겠어. 이눔의 새끼들, 똑바로 안 서 ! 차렷, 열중 쉬어, 차렷, 경례 ! "

 

- 도망자 이치도 中

 

 

내가 < 도망자 이치도 > 에 나오는 욕 배틀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직업의 다양성'이다. 아 ! 그 옛날, 사라진 가게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물자지 봉달이 아저씨는 저잣거리에 서서 일렬로 늘어선 상점'을 일일이 호명한다 : 옛날에는 ① 술도가 ② 농약가게 ③ 고무신 장수 ④ 기름 파는 장수 ⑤ 떡 쪄서 파는 장수 ⑥ 말고기 장수 ⑦ 쌀 가게 ⑧ 소리사 가게 ⑨ 철공소 ⑩ 목공소 ⑪ 철물점 ⑫ 대장간 ⑬ 도장집 ⑭ 엿도가 ⑮ 고물상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처음 듣는 직업군도 있다. 술도가는 술을 만들어 도매하는 집을 말하고, 소리사'는 얼마 전에 종적을 감춘 레코드 가게'를 말하며, 엿도가는 엿 만들어 파는 가게를 말한다. 그리고 철공소, 철물점, 대장간'은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르다. 아마 요즘 어린이들은 쌀 가게'가 독립적 형태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잘 모를 것이다. 여기에 두붓집, 국숫집 등등의 집집집'을 합치면 옛날에는 정말 다양한 가게'들이 골목에 포진했다.

 

그렇다면 현재는 ? 대형 마트'가 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다양성은 줄어들었고 몸집은 커졌다. 종이 줄어든 대신 특정 종의 몸집이 커졌다는 사실은 균형이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황소개구리'가 한국의 생태계를 파괴시킨다면, 이마트와 같은 대형 마트'는 지역 상권을 먹어치우는 괴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자질구레한 가게들을 밀어내고 깨끗한 인테리어로 골목 상권을 장악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드립 커피'가 계급에 대한 욕망을 반영했다면 커피 믹스'는 맛의 획일성을 강조하는 한국 문화가 반영된 소비 형태'다. 커피 믹스는 라면 스프'와 동일하다. 포장 용기를 뜯어 뜨거운 물에 넣으면 끝난다. 드립 커피가 슬로우'를 지향하고자 하는 욕망이라면 믹스 커피는 정반대로 패스트'를 지향한다. 속도를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현대인은 느림'을 갈구한다. 시스템과 욕망 사이에 벌어지는 이 구조는 고스란히 드립 커피와 믹스 커피로 나타난다.

 

올해는 커피 시장을 무섭게 치고 오르던 남양유업 사건'으로 시작해서 연말에 민주노총 사무실을 침탈한 경찰이 커피믹스 두 박스'를 훔쳐 나오다가 걸린 사건으로 마무리가 된 해'다. 웃기에는 민망한 풍경이다. 그놈의 커피가 뭐 그리 중요하다고 온통 이 나라는 커피가 대세가 되었다. 밥값보다 비싼 커피가 있는가 하면, 동전 세 개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은 자판기 커피 밖에는 없는 시대가 왔다. 돈 없는 자는 이제 배고프면 자판기 커피를 마셔야 한다. 또 누군가는 민주노총 사무실로 쳐들어가서 철도 노조원을 진압하기는커녕 커피믹스 두 박스만 기절시킨 채  커피믹스 두 박스에 수갑을 채워 나오다가 걸리기도 했다. 수배자와 커피믹스를 분간할 눈깔도 없는 그의 근시를 근심한다. 커피가 뭐라고, 시바... 커피가 뭐라고...  이래저래 올해의 사자성어는 커. 피. 믹. 스'다. 먹고 살기 힘든 시대가 왔다.

 

웅크릴 거, 이불 피, 쓰러질 미, 목숨 수. 踞 被 靡 壽 ! 이불 뒤집어쓰고 추위와 허기를 견디며 내일을 기다리다가는 봄이 오기 전에 쓰러져 죽기 딱이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그 어떤 것도 희망을 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명박과 박근혜를 증오하기 위해서 김대중과 노무현을 숭배하지는 말자. 그만큼 꼴사나운 짓도 없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를 신봉한 정권이었다. 철도청을 철도공사'라고 개명한 것도, 해군기지도, 한미 에프티에이도, 비정규직 악법도 그들 손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동 2013-12-26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달달한 맛에 먹는 믹스커피 ㅎ
제일 저렴하니깐 먹는 아메리카노 ㅎㅎ

어젠 로손"편의점에서 먹던 슬러시가 땡겨
아썸커피집에 가 슬러시를 찾았더니
"고갱님 프라페종류가 그것입니다" 하더군요
하아 어려워요 쩝.

제일 맛있는 커피는요
믹스컵히에 물을 조금만 넣고 저지방우유를 나머지 물만큼 붓고
렌지에 20초 돌리는 겁니다

엄바리"라 불러주thㅔ요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6 11:14   좋아요 0 | URL
제가 여름에는 냉커피 마신다고 왕창 만들어놔서 얼린 다음 야금야금 먹는데 하루는 너무 더워서 10흘에 걸쳐 먹어야 할 거 하루만에 다 먹다가 심장이 터진 적이 있습니다. 그나저나 저지방 우유를 넣어서 만든 커피는 제가 남양유업 사태 전에 항상 찾게 되던 그 프렌치카페' 맛이 날것 같군요.... 한번 시도를 해 봐야겠어요... 엄바리 님..

rtour 2013-12-26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저 많은 가게들을 경험했던 기억이 남아있으니 난 요즘 애들보단 행복할지도. 사물이 다양할수록 추억도 다양하고 삶도 다채로워지니까요. 이 글을 보니 올 연말이 더 씁쓸, 쓸쓸해지는군요.

어디로 가는지, 이 미친 바람은.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6 14:58   좋아요 0 | URL
종의 수는 줄어들고 대신 몸집은 거치며 소수의 종이 개체수를 늘리죠.
전형적인 자연 파괴 현상입니다.
대한민국이 그래요.
다양한 가게는 수가 졸어들고, 소수의 몇몇 프랜차이즈가 몸집을 거대하게 키우죠.
결국 소수가 다수를 장악하게 되비다.

수다맨 2013-12-26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행역시, 이런 사어(死語) 좀 안 썼으면 좋겠습니다. 괜히 네 글자 맞추려고 저런 말 쓴 듯한데, 그냥 역행(혹은 퇴행)이라는 말만 써도 충분한데 왜 이리 먹물 티를 내는지 모르겠어요. 여하간 커피믹스, 최곱니다 ㅎㅎㅎ
저도 며칠 전에 경향신문사에 간 적이 있는데, 하마터면 최루액 맞을 뻔했던 아찔한 기억이 생각나네요. 전경들 수천명이 차도고 인도고 다 막고는, 아주 난리를 치더군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6 14:59   좋아요 0 | URL
전 그날 버스가 그곳을 우회해서 지나갔습니다. 삥 돌아서 갔죠...
도행역시'인가 뭔가 듣도보도 못한 거 심판 내리듯..
아니 지들이 뭔가 한해를 상징적으로 하는 걸 지내들이 선정하고 난리입니까.
웃기는 놈들임.....

라주미힌 2013-12-27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스프레소에 딸랑구가 엄청 많이 남긴 산양분유를 믹스해서 먹었더니 속이 울렁거리더군요.
카제인나트륨도 없고 정말 몸에 좋을 것 같았는데
너무 믿었나봐요. 그 진한 것을...
분유는 강하고, 아이는 그 강한 것을 먹고 자라서 튼튼하나봐요.

잘 읽었어요.. 믹스가 생각나서.. 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7 09:20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분유가 사실 굉장히 강한 맛이에요.
뭔가 하여튼, 그 오묘한 질긴 맛이 있어요.
왜 진짜 꿀은 쓰잖아요. 강한 맛 때문인데
분유 가루를 먹다보면 뭔가 골이 띵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 늘 생각하죠. 아이들 강하구나 ! 이런 생각말입니다.

행인 2013-12-27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곰발님, 위에 웃기는 놈들임이 더 웃기네요 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처음으로 하는 거이니 복 많이 받을거임요
저는 이만 총총

곰곰생각하는발 2013-12-27 09:46   좋아요 0 | URL
웃기는 놈들이 정말 웃기기만 하면 다행인데 사실 웃기는 놈들은 대부분 웃기기는커녕 혐오감만 주니 문제입니다. 행인 님도 복많이받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