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대자보 :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

 

 

그나저나 겨울 밤,  눈이 오니 향숙이 생각나네.

향숙이 생각나네.

집에 안 들어간다며 데킬라 시켜달라 캐서 내 심장이 뛰었지.

" 데킬라 한 잔에 얼마인 줄 아냐 ? " ( 농담이다.)

네가 데킬라 잔에 레몬 털고 쪽 빤 다음

내 손등에 소금 뿌려 핥았을 때,

내 심장이 벌떡벌떡 뛰었지, 향숙아 !

보고 싶다, 탐스런 멜론 두 개 꼭지 따서 열어볼라 했더만

니가 느닷없이 집에 간다 했을 때

갑자기 화내서 미안하다. 향숙아 !

희끗희끗한 손거스러미 같은 실밥이

네 머리에 붙어 있는 거 보고 마음 아팠다.

이 글 보거든 연락해라 ! 데킬라 한 잔 마시자 !

데킬라  레몬 털고 쪽 빤 다음

내 손등에 소금 뿌려 핥아다오.

향숙아 ! 보고 싶다.

넌 데낄라 마셔라. 난 독한 술 대신 네 입술을 핥으마.

고대에 대자보 붙었더라.

배운 놈이 올린 글이라 울컥하더구나.

모두들 안녕하시냐고 비장하게 묻는데,

생선 칼질이나 하는 나는 자꾸 민주와 정의, 불의와 용기 따위는 생각 안 나고

향숙이 니 생각만 나더라.

이 오빠는 시인은커녕 시장 모퉁이에서

시들어 빠진 생선이나 팔고 있다.  

하여튼... 건투를 빈다. 구로동 재봉틀집에서 밤

늦게까지 미싱 돌리던, 내 사랑 향숙아.

오늘,  너의 안녕을 묻는다.

 

 

 


 

 

 

 

 

나는 고려대 대자보 같은 비장한 선언문'에 감동한 적 없다. 대자보'에 걸 수 있는 권리도 배운 놈이나 할 수 있는 사치, 3년 전이었나 ? 새벽 5시 넘게 술을 마시고 집에 오다가 붕어빵 손수레에 매달린 쪽지를 본 적이 있다. 쪽지는 아니고 라면 박스 종이를 뜯어서 유성 매직'으로 쓴 글이었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 죄송해요. 밀가루 값이 올라서요. 부득히 붕어빵을 세 개에 천 원에 팔게 되었읍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아, 그 문장을 생각없이 읽다가 펑펑 울었다. 대자보에 비장하게 걸린 문장보다 라면 박스 종이를 뜯어 써내려간 그 문장이 항상 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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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3-12-14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신용 선생님 시 "청계천 시편3"이 생각납니다. 거기에 나오는 춘심이라는 여자가 곰곰발님이 쓴 '봉숙'이란 분과 겹쳐지네요.
관념어로 누벼진 글보다 소박한 언어로 깊은 울림을 자아내는 글들이 요즘 들어 더욱 보고 싶습니다. '나는 내 그걸(좆) 세울 수 없었다ㅡ 찰스 부코스키 [팩토텀]' 라는 문장이 저에겐 차라리 신선하고도 쓸쓸한 감동을 줍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4 17:11   좋아요 0 | URL
갑자기 찰스 할아버지가 여자들에서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매력적인 여자일수록 두려웠다. 라고 했던가요 ?
하여튼...

그나저나, 아... 이 노래 듣다가 누가 생각났습니다.
데킬라 즐겨 마시던 여자 생각이 났습니다.

향숙아 ! 잘 지내고 있냐 ?

rendevous 2013-12-14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 작가가 나는 압도적인 미모의 여성에 두려움을 느낀다, 비슷한 말을 팟캐스트에서 했던 게 기억납니다.
김선우 작가였던 것 같은데 과거 학생운동도 서울권, '배운 놈'들이(이렇게 보니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걸리는 표현이긴 한데 일단 넘기고) 했다, 이런 식의 말씀을 하신 적 있는데.... 감동한 적 없다는 말씀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데 이 외침이(저는 텍스트의 관점이라기보다 목소리의 관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배운 자의 언어로 말해진 것에 초점을 맞춰 '감동'의 관점으로 접근한 것이 대자보 '사건'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는지 조금 의심스럽습니다(물론 모든 글이 사건의 핵심을 관통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무거운 주제일수록 오히려 다른 무게감으로 다루는 페루애님의 공력이 반영됐다고 생각은 하지만)

조금 멀리 보면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청춘의 병든 안녕 선고에 대한 반격으로 읽히기도 하고, 그렇게 배운 자의 언어로 말해지긴 했으나 날 것의 생생한 아픔, 분노가 느껴져서 아프기도 하고... 페루애 님 말씀 좀 더 듣고 싶어서 주절주절 대고 갑니다.

rendevous 2013-12-14 18:15   좋아요 0 | URL
근데 알라딘은 제가 쓴 댓글 어떻게 확인해야 하죠? 네이버 me처럼 뜨면 편할 텐데 ㅜㅜ 찾기가 힘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4 23:32   좋아요 0 | URL
< 안녕들 하십니까 > 열풍'은 일종의 " 인정투쟁 " 처럼 보입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글도 < 안녕하십니까 > 에 대한 반론이라기보다는 제 나름대로의 < 안녕하십니까 > 에 대한 응답하라 ! 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냥 아프네요. 저는 언제부터인가 문장이 주는 힘에 대해 늘 회의적이게 되었습니다.


+

댓글 확인하는 기능이 없어요. ㅎㅎㅎㅎㅎ 저도 없어서 한참 고생했습니다.

rendevous 2013-12-14 23:51   좋아요 0 | URL
알맹이라고 할 수 있는 비판적 사유가 부족한 상태에서 거친 감정만 넘치는-그만큼 고통이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 일종의 선동류가 되지 않으려면 이럴 때일수록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 의미에서 페루애 님의 '삼천포'적 글쓰기를 지지하는 1인 ㅎㅎ

혁명 이후의 일상에 주목하라는 지젝의 말-멈춰라, 생각하라 컨퍼런스도 다녀왔거든요^^-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

봉숙이 딱 페루애 감성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4 23:57   좋아요 0 | URL
바로 제가 지적하는 말입니다. 비판적 사유가 부족한 상태에서 감정 과잉만 오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응답하라와 안녕하십니까' 현상은 결국 인정 투쟁'이 아닌가 싶습니다.
봉숙이 듣다가 바로 이거다 싶더군요. 저의 감수성임...
봉숙이 듣다가 향숙이 생각나더군요. 데킬라 조하했거든요.
참, 연말이니 편린과 함께 셋이 함 모입시다. 고대 보니까 그곳에 국수먹고꼴뚜기'인가 ? 있더군요.
거기서 시간 내서 한 잔 하십시더...

rendevous 2013-12-15 00:00   좋아요 0 | URL
쓸 때마다 이모티콘이 변해서 계속 쓰고 싶어지는 ㅎㅎ

제가 탑밴드 2 보러 충주도 갔다 오고 나름 열혈시청했는데 장미여관 잘 되는 모습 보니 뭔가 기분 좋더라고요 ㅎㅎ 탑밴드도 나름 공중파였는데 흥행에 실패 ㅜㅜ 무한도전 파급력이 대단하긴 대단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5 00:08   좋아요 0 | URL
아마 대한민국 연애인들은 ( 가장 핫한 톱스타도.. )
무한도전 출연을 로또 맞은 것으로 생각할 겁니다.
무한도전이 특유의 서민적 정서이니
여기 한번 나오면 무조건 스타되죠.....
장미여관 참 좋았어요. 사실 무한도전에서 부른 곡은 사실
장미여관스럽지 않았잖아요....
그나저나 탑밴드 보러 충주까지 가다니..

rendevous 2013-12-15 00:11   좋아요 0 | URL
KBS에서 버스 제공해줘서 보러 간 거였어요 ㅎㅎ 패자부활전인가? 제가 응원하는 해리빅버튼이 떨어지고 트랜스픽션이 올라가서 슬프긴 했지만 ㅜㅜ 3초 정도 공중파 타서 뿌듯했다는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5 00:15   좋아요 0 | URL
난 지금 모든 것은 빛난다 읽고 있는데 이 책 의외로 좋군요.
기회되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겨울날은 시집 읽기 좋으 밤이죠.

좋은 시집 있음 몇 권 추천해주세요...

rendevous 2013-12-15 00:38   좋아요 0 | URL
모든 것은 빛난다 읽었어요 ㅎㅎ 제가 팟캐스트 애청자인데 신형철 평론가(페루애 님의 비판을 자주 듣고 계시긴 하지만 ㅎㅎ)의 추천으로 읽었는데 역시 좋더라고요 ㅎㅎ 저는 요즘 진은영 시인을 짝사랑하는...

최근 읽었던 것 중에 좋았던 시집은 이영광 - 나무는 간다, 아픈 천국/ 신해욱 - 생물성/ 김행숙 - 타인의 의미/ 비스와바 쉼보르시카 - 끝과 시작 정도 인 것 같습니다 ㅎㅎ 아, 이병률 시인의 눈사람 여관도 좋았어요. 정말 미칠 듯이 좋은 그런 강렬함은 없는데 은은하게 사람을 매료시키는 ^^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5 01:14   좋아요 0 | URL
신해욱 생물성 참 좋죠. 저도 그 시집 좋아서 몇 분 드리고는 했습니다.
신해욱의 에세이 비성년 이라는 글도 좋습니다.
추천함... !!!

이병률 시인도 시 좋죠. 이 양반, 뭔가 샌치한 그 느낌이 있음.. 느끼하지도 않고 말이죠.
반면에 전 김소연 시인이나 남진우, 권혁웅 시 읽으면 왜 이런 게 시가 되나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미래파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황병승은 좋더군요. 걸물임....


rendevous 2013-12-15 01:36   좋아요 0 | URL
내일은 프로! 육체쇼와 전집 아직 못 봤지만 미당문학수상집 앞부분만 조금 봤는데 정말 감동 ㅜㅜ 김소연 시인은 마음사전이란 에세이 정말 좋던데요 ^^ 말씀하신 세 시인 시집을 아직 못 읽어봐서 말씀드리기 어렵긴 한데 이장욱 시인은 정말 좋아해요 ~

신해욱 시인, 천운영 시인, 조해진 소설가 등등이 쓴 누구나, 이방인 이란 여행 에세이 봤는데 그것도 재밌게 읽었어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5 01:40   좋아요 0 | URL
천운영이 시도 쓰기 시작했군요 ? 그 바늘의 천운영 말씀하시는 겁니까 ?
그런 거 같네... 흠흠 찾아봐야지. 전 천우녕 별로 안 좋아함....

마음 사전 좋아하시는 군요. 전 마음사전때문에 김소연 벼로 라고 생각했는데.. ㅋㅋㅋㅋㅋ

rendevous 2013-12-15 01:54   좋아요 0 | URL
앗 실수 ㅎㅎ 천운영 소설가. 사실 마음사전도 읽어본 건 아니고 김영하 책 읽는 시간에서 들은 부분에 한한 건데... 그 부분은 좋았어요 ㅎㅎ 혹시 아직 조해진 소설가의 작품 못 읽어보셨다면 로기완을 만났다와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추천이요~

2013-12-14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12-14 23:33   좋아요 0 | URL
다음주에 저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망년회가 다음주에 잡힐 거 같든데, 친구들 망년회'때문에 어찌 될지는 잘 모르겠네요. 조만간 오쉬프 모임 있을 겁니다. 그때 함 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