魚水船.
속초에 있을 때 배를 탔다. 모텔 달방 생활을 하다 보니 먹고 사는 게 궁했다. 술자리에서 평소 친분이 있던 분이 소장으로 있는 속초 인력 사무소'를 찾아가서 뭍에서 품을 팔 일 없냐고 물었더니 사무소 소장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 어촌 마을 와서 뭍에서 일하는 게 뭐가 있는겨. 알래스카 가서 냉장고 수리공 하겠다는 거랑 뭐가 다른겨. 그런겨, 안 그런겨 ? 그건 아프리카 가서 보일러 파는 겨. " 그는 갈치잡이 배가 일손이 딸린다며 내게 배를 탈 것을 권했다. 뱃일을 한 적이 없어서 손사래를 쳤더니 그는 갈치잡이 배는 다른 어종과 달리 낚시를 드리웠다가 미끼를 물면 걷어올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일반 강태공이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했다. " 다른 일에 비해 쉬운겨. 내 장비 빌려둘 테니 낚아보는겨. 7대 3 어떤겨 ? " 결국 나는 갈치잡이 배를 탔다. 첫 번째 한 일은 꽁치를 미끼로 사용하기 위해 토막내는 일이었다. 이제 해가 지고 캄캄한 밤이 오면 갈치가 몰려오리라.


낚시대 하나에 낚시 바늘이 보통 대여섯 개씩 달려있어서 낚시대 하나에 일반 낚시대 여섯 대를 내린 꼴이었다. 낚시대를 드리우고 미끼를 물 때만을 기다렸다. 내 옆에서 자리를 잡은 탈북자 출신 리만춘 씨'가 말을 걸었다. " 갈치 어떻게 자는 줄 아십니까 ? 꼿꼿이 서서 잡네다. 왜 사람들 빡빡하게 붙어서리 자는 걸 칼잠이라 아니 합니까 ? 갈치가 그리 잡네다. 서서 말입네다. 가만 보고 있자면 꼭 우리네 신세 같습디다. 내래... 남한 내려올 때, 통통배 바닥에서 저리 왔시오. 사람이 빡빡해서리 앉을 수도 없었디요. 서서 잠을 자고, 서서 밥 먹었습네다. 갈치 보면 자꾸 서럽습네다. 선생님은 어찌 그리 곱게 생겼습네까. 내래 남자새끼, 아이고 죄송합네다. 거친 입말이 붙어서리.... 선생님은 남자가 어찌 그리 피부가 희고 곱습네까 ?
김정은 아새끼 볼따구마냥 희고 곱습네다. " 나는 웃으며 말했다. " 아니에요. 허우대만 멀쩡하지 속은 썩었습니다. 피멍울 많이 들었지요. " 그가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 그렇습네까 ? 아니 선생님은 개구리 배때기마냥 뽀야서 고생 없이 산 줄 알았다요. 그게 아닌가 봅네다. " 나는 말없이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캄캄한 밤이었다. 갈치는 보름달이 뜨지 않는 캄캄한 밤에만 잡힌다고 했다. 피멍 든 세월. 생강처럼 아린 사랑. 그녀 없으면 앞이 캄캄하던 그 세월. 나는 내 왼쪽 손가락 약지에 걸린 반지를 만졌다. 그동안 살이 많이 빠졌다. 반지가 헐렁한 것을 보니 말이다. 그녀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으나 차마 울지 못했다. 리만춘은 눈치를 살피다가 말을 이었다. " 갈치잡이 배 타면 좋은 게 하나 있습네다. 갈치회 맛 좋더군요. 그 맛에 배를 타디요. 선생님은 왜 갈치를 그물로 잡디 않고 낚시로 잡는 디 아십네까 ? 낚시로 잡아야디 몸이 성합네다. 미끼 물면 우리가 냅다 걷어올리니 그놈들도 몸부림칠 일이 거의 없디요.
내래 듕국에서 18개월 동안 도망만 다녔습네다. 공안 당국이 날 숨겨둔 조선족 인민 네 집에 한두 번 찾아온 게 아니라요. 그때 슴정 아무도 모를 기야요. 속이 썩어 문드러디디요. 차라리, 국경선 넘다 걸려서 뒈졌으면 이런 고생 안 하지 않겠나, 그런 마음도 나중에는 듭데다. 내가 그물로 갈치를 잡는 배도 타 봤시요. 낚시로 잡는 갈치보다 그물에 갇힌 갈치는 색깔이 먹빛 입네다. 그물에 갇히니 살려고 죽기살기로 몸부림치지 않았겠시요 ? 그러니 비늘 다 떨어지고 속이 껌게 썩은 겁네다. 그러니끼니, 사람들은 낚시로 잡은 갈치를 은갈치라 하고, 그물로 잡은 갈치를 먹갈치라 하니 합네까. 은갈치 비싸서리 금갈치라 한다면서요 ? 먹갈치는 싸게 팔리고 말입네다. 내래.... 그 마음 알 것 같시요. 먹갈치 마음 말입네다. 속이 까맣게 타는 거 말입네다. 선생님, 말 안 해도 전 알 거 갔습네다.
우리 같은 사내들은 여자들 도망가면 엿이나 먹어라, 하고 훌훌 털지만 속정 깊은 사람들은 속이 까맣게 타디요. 암, 그렇고 말고요. 내게도 북에 두고 온 애인 있시요. 려옥'이라는 여자디요. 그 여자 생각만 하믄... 눈물이 앞을 가립네다. " 그때였다. 낚시대가 휘어지며 물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리만춘이 외쳤다. " 선장님 !! 입질 옵네다 !!!!!!!!!!!!!! " 그것을 신호로 정신없이 입질이 쏟아졌다. 갈치떼가 몰려온 것이다. 우리는 정신 없이 갈치를 낚았다. 갈치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은은한 은빛은 눈부셨다. 우리는 잡는 즉시 목을 따 아이스박스에 넣었다. 그렇게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캄캄한 밤에 갈치를 낚았다. 하루에 평균 백 마리씩 잡았다. 그만큼 힘든 노동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 약지에 끼워져 있던 반지가 그 과정에서 빠져버렸다. 바빠서 빠진 줄도 몰랐다. 갈치를 걷어올리다가 바다에 빠트린 모양이었다. 영원하자며 서로 나누던 커플 반지였다.
나는 현재 인왕 시장에서 어수선이라는 생선 가게'에서 생선 장사를 한다. 가까운 친척이 하던 가게인데 몸이 아파 일을 할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나와 내 사촌이 가게를 꾸려나간다. 사촌이 어시장에서 생물을 받아 좌판에 얼음을 깔고 아침 장사를 하면 나는 점심에 나와 나머지 장사를 한다. 그리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삼일 전이었다.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사랑하던 여인의 부고'였다.
그녀는 죽기 전에 반지를 빼서 내게 주라고 했다고 한다. 친구는 그 말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한 것이다. 그를 늦은 저녁에 만났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나는 친구에게서 그녀가 끼던 반지를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눈이 왔다. 첫눈이었다. 잠시 건물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한없이, 울었다. 다음날 몹시 아팠지만 가게 일을 쉴 수는 없었다. 그날 그날 들어온 생선을 팔지 못하면 손해가 컸기 때문이었다. 생선 토막을 내면서 생각했다. 내가 잃어버린 반지를 당신은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있었구나. 한쪽이 없으면 아무 짝에도 필요 없는 의미. 잃어버린 반쪽....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와서 갈치를 8토막으로 내서 손질해 달라고 주문했다. 화장을 짙게 한 여자였다. 하지만 폭행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실핏줄이 터진 눈동자를 감출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싱싱한 갈치 하나를 꺼내서 토막을 내는데 갑자기 툭 하는 소리가 났다. 종종 갈치 몸에서 낚시 바늘 같은 것이 발견되기도 한다. 갈치는 식성이 좋아서 반짝거리는 것은 무조건 삼기는 습성이 있다. 낚시 바늘을 꺼내려다 그것은 낚시 바늘이 아니라 반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잃어버린 반지였다. 안쪽에 새겨진 이니셜은 내 이름이었다. 여자가 내게 말했다. " 칼솜씨가 뛰어나시네요. 토막낼 물건이 하나 있어요. 뼈가 억세기도 하고....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죠. 처리하는데 천만 원 드릴께요.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717847
나는 어수선'이라는 생선 가게에서 생선 장사를 하는 생선 장수'다. 8월이 제철인 갈치는 11월이 오면 또다시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8월 갈치와 11월 갈치는 맜있다. 찬바람이 불면 전어가 맛있고, 첫눈이 오는 날씨에는 갈치가 맛있다. 제철이다. 누구나 한때, 모든 이는 제철이 있다. 어수선으로 오시라. 꽁치 한 마리는 덤으로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