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말과 은갈치의 고장이다. 8월에 잡힌 은갈치는 얼마나 고소했던가 ! 그물이 아닌 낚시로 잡은 은갈치 상품은 한 마리에 5만 원에 팔리니 은'보다 가격이 높아 서민들은 비싼 은갈치를 금갈치'라고 부른다. 가격이 비싼 금갈치'이다보니 어부는 금갈치 보기를 금같이 한다. 하지만 똑같은 어종과 크기라 해도 그물에 잡힌 갈치'는 은갈치'라는 이름 대신 먹갈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물 속에서 이리저리 몸부림치다 보니 빛나는 비늘이 다 떨어져나가 먹빛을 보이기 때문이다. 가격 또한 절반 이하로 팔린다. 이처럼 상처 받지 않고 잡힌 놈이 비싼 몸값을 자랑하고 맛도 좋다. 청춘도 마찬가지다. 상처받지 않고 자란 놈이 더 행복한 삶을 산다. 이명박이 젊은이들에게 공장 가서 고생 좀 해 봐야 한다고 지껄일 때, 그리고 김난도가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마굿간도 아닌 곳에서 말 털며 고래도 아니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칠 때 우리는 그들에게 빅엿을 날려야 한다. 천 번을 몸부림치거나 흔들린 놈은 은갈치'가 될 수 없다. 당신은 먹갈치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은갈치가 5만 원에 팔릴 때 당신은 시장에서 절반 가격에 팔린다. 멸치도 정치망에 걸린 놈보다는 죽방림'에서 잡힌 놈이 비싸게 팔린다. 이처럼 상처 입지 않은 몸은 귀하게 팔린다. 그게 진실이다. 그러니 흔들리지 마라. 젊어서 고생 사서 하지 마라. 꼰대의 말은 민들레'에게 줘라
- http://blog.aladin.co.kr/749915104/6519276 히틀러와 시인 中
고래 뱃속에서 : 한 우울만 파라.
한 달 전 일이다. 가게에 손님이 없어서 레오니드 치프킨의 <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을 읽고 있는데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와서 갈치를 8토막 내달라고 주문을 했다. 생선장수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생선을 8토막 내달라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가끔 개나 고양이에게 주기 위해 생선을 사 가는 손님도 있기는 하지만 8토막 내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내게 낮게 속삭였다. " 과히 듣던 대로 말솜씨 못지 않게 칼솜씨도 뛰어나시네요. 토막낼 물건이 하나 있어요. 뼈가 억세기도 하고....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죠. 처리하는데 천만 원 드릴께요. " 나는 순간 그 여자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아차렸다.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일이라. 뼈가 억센 물건이라. 망설이고 있는 사이 여자가 다시 낮게 속삭였다. " 저도 알라디너'예요. 곰곰발 님 글 보고 찾아왔습니다. "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왼쪽 눈 부위가 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다. 화장으로 감추기는 했으나 실핏줄이 터진 눈동자를 감출 수는 없었다. 갑자기 연민이 느껴졌다. 때리는 남편을 피하기 위해 밀었다가 남자가 넘어지면서 날카로운 모서리에 머리를 찧어 죽었으리라. 나는 그녀를 따라 나섰다. 집은 으리으리했다. 그런데 대문은 보이는데 집은 보이지 않았다. 집 대신 시커먼 민둥산 하나가 있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커다란 고래㉢의 등이었다. 마당에는 죽은 고래가 있었다. 그녀가 말한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란 죽은 고래를 부위별로 나누는 일이었던 것이다. 너무 커서 십 년은 걸릴 것 같았다. 계산해 보니 내 품값은 한 달에 십만 원도 안 되었다. 하루 품값은 3000원이었다. 닝기미,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다. 칼 들고 설치는 게 내 운명 아니었던가. 고래 지느러미를 자르는 데에만 꼬박 13일이 걸렸다. 마지막 날엔 눈이 내렸다. 여자는 내가 일하고 있는 동안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어제였다. 고래 이빨 하나를 제거하기 위해 전기톱이 동원되었다. 일하는 틈틈이 배가 고파서 살점을 뜯어먹었다. 분리한 살점들은 모두 다음날 고래 고기 시장으로 은밀히 유통되었다. 여자가 랜턴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캄캄한 고래 뱃속으로 나를 안내했다. 순간 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것은 본능적인 감정이었다. 그때였다. 주위가 환해졌다. 랜턴 빛이 아닌 다른 빛이었다. 그것은 황금이었다.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여자는 웃으면서 말했다. " 내 남편은 포경선 선장이었어요. 그가 고래를 잡았어요. 행운이었죠. 고래가 보물선을 삼켰으니까요. " 상기된 내 얼굴과는 달리 여자는 차분했다. 여자는 나를 더욱 깊은 쪽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여자의 남편이었다. 여자가 말했다. " 죽은 남편을 처리한다는 것은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죠. " 여자가 다가오더니 내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손으로 힘껏 내 불알을 쥐었다. " 실망이에요. 당구공보다 작군요... " 우리는 고래 뱃속에서 섹스를 했다. 여자가 신음소리를 냈다. < 아 > 라고 한마디하면 < 아 > 는 고래 뱃속에서 떠돌다가 메아리가 되어서 < 아아아아아 > 가 되었다.
그리고 절정에 다다른 여자가 < 아아아아 > 라고 외치자 <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가 되어 돌아왔다. 우리는 온종일 섹스만 했다. 배가 고프면 고래 살점을 떼어다가 와사비와 간장에 찍어 먹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시장 한구석 모퉁이 생선 가게 생선 장수로 돌아왔다. 배를 갈라 내장을 훑어 내고 토막을 내서 팔았다. 생선 장수는 생선을 토막 내서 팔아야지 고래 뱃속에 있는 금화나 옮기면 안 되었다. 그녀가 내게 원했던 것은 고래를 토막내는 것도 아니었고, 남편을 처리하는 것도 아니었다. 금화를 옮기는 작업이었다. 그 일은 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금융업 종사자들의 몫이었다.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생선 배를 갈라서 내장을 훑고 저녁에 올린 요리 종류에 따라 토막을 내는 일이었다. 가정이 행복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길게 토막을 내달라고 요구하고, 불행해 보이는 얼굴일수록 생선을 짧게 토막내기를 원했다.
대화가 없는 가족은 각자 생선 한 토막을 가져가서 젓가락질을 하지만 화목한 집은 여자가 일일이 가시를 바르고 살을 발라 사랑하는 식구 숟가락 위에 올려주기에 굳이 짧게 토막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생선을 짧게 토막내 달라고 하는 손님에게는 유독 친절하게 굴었다. 덤으로 꽁치 하나를 얹어주기도 했다. 내가 시장에서 일하면서 깨달은 것 하나는 바로 행복한 사람은 수박을 자주 산다는 점이었다. 수박이란 혼자서는 먹을 수 없는 과일. 온가족이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먹어야 비울 수 있는 과일. 수박을 자주 산다는 것은 가족 간에 대화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아주 사소하고, 구석진 모퉁이에서 일을 해도 깊이 보면 다 보인다. 나는 시장에서 일하고부터 비로소 프리다 칼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말년에 유독 수박이 있는 정물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명예가 아니라 가족의 탄생이었다. 그녀는 간절히 아이를 원했지만 아이는 태어나지 못했다. 그녀가 그린 수박은 가족에 대한 어떤 열망처럼 느껴졌다. 나는 시장에서 생선을 판다. 비록 비린내나는 일터이지만 향기 좋은 포장지 같은 일터를 부러워하지는 않는다. 나는 사물을 깊게 보는 눈을 가지고 있고, 불행한 여자에게 꽁치 하나를 덤으로 주는 마음도 가지고 있다. 나는 이 직업이 좋다. 한 우물만 파는 게 옳다. 종종 시인이 소설을 내거나 소설가가 시집을 내는 경우가 있다. 소설가 한강이 시집'을 냈다는 소식도 들린다. 백이면 백 실패하게 된다. 소설을 잘 쓴다고 시를 잘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서로 다른 언어로 창작을 하는 것이다. 소설은 " 쓰다 " 라는 동사가 잘 어울리고, 시는 " 짓다 " 라는 동사가 안성맞춤이다. 물론 " 소설을 짓 " 거나 " 시를 쓸 " 수도 있지만 소설은 쓰다'와 이어져야 하고 시는 짓다'와 이어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문학평론가는 문학평론가만의 문장이 있다. 그 문장으로 시를 쓰면 꼰대가 된다. 권혁웅이나 남진우의 시㉤는 계룡산 뜬구름 위에서 뒷짐을 진 채 이승 아랫것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바라보는 자세처럼 보인다.
그것을 두고 < 성찰 > 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내가 보기에는 성찰'보다는 < 해찰 > 에 가까우니 말이다. 하여튼 문학평론가가 시 쓴답시고 끄적거려서 좋은 작품 나온 거 못 보았고, 훌륭한 소설가가 시를 쓴다고 해서 소설에 버금가는 뛰어난 시를 쓴 경우 또한 보지 못했다. 한강의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 에서 제공하는 미리보기로 시 몇 편을 읽어보다가 구매를 포기했다. 내가 보기엔 소설 쓰다가 불필요해서 솎아낸 문장을 따로 모아놓은 노트 같았다. 권혁웅의 < 애인은 토막난 순대처럼 운다 ㉦> 를 두고 언어 유희'라고 하면 안 된다. 그건 그냥 말장난'이다. 시를 읽는 독자에게 그 시가 쉽게 쓰여진 것처럼 보일 때, 그것은 더이상 시가 아니다. 가끔 고래 뱃속에서 사랑을 나눴던 그녀는 나를 찾아와서 갈치를 산다. 그리고는 금화 하나와 고래 고기를 놓고 간다. 금화 한 개는 지금 시세로 따지면 천만 원이 넘는다. 내가 파는 것은 은갈치가 아니라 금갈치다.
+
㉠
★★★★★
생각보다 재미있다. 걸작이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이런 식으로 만난다는 것은 행운이다.
㉡
★★★★
이 소설 원제가 An unsuitable job for a woman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
㉢
★★★★★
이 소설이 압권이라는 데 동의한다.
㉣
★★★★
나름, 그림이 많아서 좋다. 다이안 아버스 평전에 사진이 없어서 곤혹스러웠던 악몽은 적어도 할 필요 없을 것같다.
㉤
★
중세 수도사 같은 코스프레는 좀 집어쳤으면 좋겠다. 계룡산 뜬구름 위에서 속세를 내려다보는 근심어린 시선은 뭔가 좀 묵시론적인 에스에프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십자가를 짊어진 고독한 지식인의 모습이 엿보인다. 좋은 의미가 아닌 나쁜 의미로....
㉥
㉦
솔직히 시집 좀 읽다가 덮었다. 유희와 말장난 사이. 뭐, 권혁웅이나 남진우 시를 좋아하시는 분들의 취향을 조롱하는 건 절대 아니다. 서로 취향이 다를 뿐이다. 내가 책 파는 사람도 아니고 굳이 눈치 보며 글을 쓸 필요는 없지 않을까 ? 까놓고 말해서 내가 신랄하게 까는 이유는 문학평론가들이 주례사 비평만 늘어놓기 때문에 그렇다. 함민복이나 김신용 시인에게는 시집 인세'가 중요한 수입원이니 그렇다고 쳐도 남진우나 권혁웅은 대학교수라는 안정적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깐다고 해서, 시집이 안 팔린다고 해서, 곤궁해지는 경우는 없을 것 아닌가 ? 그래서 맘 놓고 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