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동영상에 감동한 일본 팬'이 권순근을 위해 만든 헌정 애니'다.

 

 

권순근 동영상'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70년대 홍콩 무협 영화'에나 나올 법한 몸짓으로 드럼을 치는 권순근'은 < old >하지만 동시에 < odd > 했다. 그것은 뮤직'으로 무술'을 하는 퍼포먼스'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이 촌스러움에 열광했다. 처음에는 개 웃겨서 낄낄거렸지만 나중에는 열정에 감동하게 된다. 기타와 키보드 그리고 드럼 연주만으로 이루어진 단란주점 악극단 스타일은 묘하게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동영상 속 여가수'가 김수희의 < 너무 합니다 > 를 너무 잘 불렀다면, 이 통속이 주는 애상을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또한 이 동영상에 열광했다. 권순근에 열광했다기보다는 무대가 주는 묘한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이 무대는 일본의 괴짜 감독이자 내가 우상처럼 섬기는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자료 화면 나간다. 타란티노 이전에 스즈키 세이준'이 있었다.

 

 

 

 

영화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가 좋아했던 배우가 떠올랐다. 당신에게는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무명 배우이지만 나에게는 슈퍼스타'였다. 그 배우에 대한 이야기다.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내내 각인되는 배우'가 하나 있다. 아주 오래된 배우이니 낡은 얼굴이다. 가끔 죽음'을 생각할 때나 내 인생 밑바닥'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당혹스러워서 생각을 정리하고는 했다. 왜냐하면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기를 잘했던 배우도 아니고, 좋은 영화에 나왔던 배우도 아니었으며, 약방의 감초 역을 했던 배우도 아니다. 오히려 연기를 지지리도 못했던 배우였고, 언제나 형편없는 영화에 나왔던 배우였으며, 편집 당해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그런 배우였다.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나와 그 단역 배우를 잇는 연결고리나 공통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힘들 때면 이상하게 그 배우가 생각났다. 이쯤에서 독특한 것을 수집하는 오따꾸의 악취미’라고 농담을 한다면, 나는 당신 뺨을 한 대 치겠다. 이 감정‘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난, 아무 조건 없이 그 배우가 좋았다. 아니다, 수정하겠다. 사실 나는 그가 브라운관에서 사라지고 난 다음부터, 쑥도 아니면서, 불쑥 그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없다. 그냥 좋았고, 황홀했으며 낯익은 얼굴이었지만 아주 오래된 얼굴이었다. 내 기억에 그‘는 기골이 장대한 사내였다. 키는 컸고, 등은 굽었으며 얼굴의 광대뼈가 유난히 도드라진 얼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거인증’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랬을까 ?  그는 늘 악당이나 동네 건달‘을 연기했다. 연기를 해야 하는 배우에게는 치명적이랄 수 있는 발음도 정확하지 못해서 대사 전달력 면에서 낙제 점수’였고, 연기도, 아...... 형편없었다.  오로지 특이한 신체 조건만 가지고 연기를 하는 배우 같았다. 그가 맡은 역이란 고작 동네 처녀를 겁탈하거나 보스의 부하이거나 산속에 숨어사는 산적이거나 도깨비 역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악당 역’을 잘 소화하지 못했다. 연기‘를 실감나게 하지 못했었던 것이 아니라 악당 역’을 연기하는 것조차도 흉내 내지 못하는 착한 얼굴이었다.

 

배우란 기본적으로 가면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 운명을 가진 광대인데, 그는 가짜 가면놀이'를 힘겨워 했다. 천성이 착한, 사람이었다. 그는 가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면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너무 어린 나이’에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의 연기를 보면서 늘 이런 생각을 했었다. “ 엑스트라가 되지 말 것, 인기 없는 악당 연기를 하지 말 것, 차라리 매력있는 악당을 연기할 것, 발음을 똑바로 할 것,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에는 늘 가면을 쓸 것, 무능하게 살지 말 것, 그러니깐...... 내 아버지처럼 살지 말 것 ! ”

 

그리고는 그를 잊었다. 세월이 흘렀다. 누가 나에게 엑스트라'를 제안하면 거절했다. 가끔은 매력있는 악당 역'을 연기하기도 했다. 발음은 되도록이면 또박또박 토해냈다. 가면을 썼다. 무능했지만 무능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 은유적 표현이다. 나는 배우가 아니다. ) 굽은 등을 곱게 폈다. " 저는 새우가 아니라 갈치입니다 !  " 세상, 참 쉬웠다. 연기는 너무 완벽해서 무엇이 페이큐이고 무엇이 퍽큐이며 다큐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쉬운 연기를 그는 왜 하지 못했을까 ? 가면을 쓰고 악당 흉내를 내면 끝인데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외국 사진작가의 사진집'을 보았다. 거기에 그 배우와 닮은 사람들이 있었다.

 

기골이 장대한, 광대뼈가 유난히 도드러진, 등이 새우처럼 굽은 ! 다이안 아버스의 사진집에 나오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녀가 남긴 사진을 통해서 가면 없이 살아가야 할 운명을 가진 얼굴'을 보게 되었다. 묘한 죄책감이 등골을 스쳤다. 가면 사용법에 서툰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가면은 없었던 것이다. 설핏 아버지의 얼굴이 스쳤다. 이제는 알 것 같다. 가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얼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배우의 이름은 문창근‘이다. 2005년 뇌경색'으로 사망했다. 다음날 " 개성파 배우 문창근 뇌경색으로 사망 " 이라는 짧은 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누군가는 알아주었으면 한다. 당신을 장동건보다 더 멋진 배우'라고 기억하는 사내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난 당신의 사생팬이었다. 지금까지, 줄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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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09-07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바보같은 마음으로 '문창근'을 검색하면서 곰발님의 발가락 어디가 그 배우와 닮았나 보려고 년도를 추적하고
그로부터 8년후라면 얼핏 지금의 곰발님 나이가 아닌가, 어쩌고 하면서...뭐 그랬답니다. 아무리 이곳의 뻥과 허세가 8부능선을 까딱까딱 한다쳐도 마지막 고지에 우리가 모르는 진실이 있다는 믿음 하나로 님의 페이퍼를 정독했다는 얘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9-07 17:24   좋아요 0 | URL
스즈키 세이준이란 감독은 제작사에서 제작비를 정말 콩알 만큼 줬습니다. 문제는 1주일 안에 영화를 완성해야 하죠. 세이준인 선택한 것은 80%는 그냥 개판으로 만들자. 단, 한 장면만 기똥차게 만들자 주의였죠.
걸작은 이렇게 이 할'에 있는 것 같습니다.

새벽 2013-09-07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예전에 곰곰발님께서 좋아하는 영화, 배우 관련 포스팅하셨을 때도 임창정과 함께 문창근님 좋아하신단 글. 기억납니다.

외모만으로도 씬 스틸러이셨던 분이셨죠. 박중훈 데뷔작이던 깜보, 변강쇠부터 장선우 감독 데뷔작 성공시대 그리고 남부군, 모래시계까지. 그야말로 단역이셨지만 한 번 보면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배우셨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9-07 17:27   좋아요 0 | URL
전 이 배우가 이상하게 좋더라고요...
아무 생각 없이 옛날 영화 보다가 문창근 씨 나오면 마치 보물찾기에서
쪽지 찾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굉장한 배우죠....

만화애니비평 2013-09-08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tomanderson.blog.me/70098649624

허허허...애니메이션 영상...ㅎㅎㅎ

제가 좋아하는 케이온이란 작품이군요. 드러머가 리츠라는 여고생이라 잘 어울립니다. 기타가 유이짱~
깁슨 레스폴까지..ㅎㅎㅎ
키보드는 무기짱~ 건반이 Korg triton모델이네요/

대신 보컬은 베이스를 맡은 미오짱인데, 다들 그림체를 보니 남자가 그린 것 같네요. 작품에서 여자의 허벅지가
진짜 굵습니다. 저 허벅지에 봐라! 이것입니다. 위에 글은 오덕지는 글입니다..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9-08 13:49   좋아요 0 | URL
만애비 님 요즘 조용하신 것 같아요 이야, 뭐 애니 하니 바로바로 나오는군요.
진짜 오덕임 !!!! 만애비님 ! 어찌 잘 지내십니까 ? 언제 함 뭉쳐야죠. 빨랑 서울 오십시요..

만화애니비평 2013-09-08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사무실에 나와 일을 하는데, 안 풀려서 고민입니다. 요새 잔업과 외근이 너무 많아서 정신 없네요

서울은 11월 PISAF행사 때 갈 예정입니다. 요새 너무 바쁘다보니..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9-09 04:42   좋아요 0 | URL
잔업외 외근이라.... 참, 최악이군요 !
11월에 오시거든 함 모입시다.

히히 2013-09-09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소소한 일들이 사소한 일들에 딸려오지 않는 가을입니다.
작고 대수롭지 않았던 일들도 허투루 넘기지 못하고
가슴에 가득 품었다가 보내게 되네요.

유독 아버지에게만 얼마나 인정머리 없고 고요하였는지
가시고 나서 한참이 지나도 몰랐던 멍청이가
복에 겨워 그때서야 하늘로 고개 젖히고
"술꾼의 막내가 분수없이 넘친답니다."며
행복을 슬픔으로 만드는 아버지를 원망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9-09 04:44   좋아요 0 | URL
옛날 어르신치고 술 안 드시는 분 어디 있었습니까.
노동이 힘들면 술을 마시게 되어 있어요.
막노동판에서 왜 노동자들이 점심에 술을 마시나 했더니
안 마시면 힘들어서 일을 못 합니다.
술 기운에 일 하다 보니 그리 된 것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