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다, 맑음
1. < 오, 수정 > 까지는 좋았다. < 돼지 > 와 < 강원도 > 를 거쳐 < 수정 > 까지 오는 단계'는 신선했다. < 돼지 > 는 챠이 밍량'의 모더니즘 영화를 떠올렸고, < 강원도 > 는 전작인 < 돼지 > 와는 다른 노선을 걷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 수정 > 또한 < 강원도 > 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홍상수는 재능있는 팔색조구나 ! 그는 승승장구했다. 내가 홍상수 영화가 싫어지기 시작한 계기는 <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이후부터였다. 이 영화 이후에 나온 영화들은 모든 것이 다 비슷비슷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홍상수에게 돌아왔다. < 옥희의 영화 > 에서부터 감독은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에릭 로메르와 브레송의 흔적이 보였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흐리다 맑음이었다. 내가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테이블 위에 놓인 술병이 3,4병 정도 비워져 있을 때부터다. 이때부터 남녀의 수작'은 시작'된다. 슬쩍 살짝 건드려본다. 소주 4병을 비웠을 때 " 나, 너 좋다 ! " 라고 말하는 것은 순정을 가장'한 고백이다. 모텔 가서 섹스 하자'는 말이다. 나는 이 장면들이 참...... 좋다. 참새도 아니면서, 참외도 아니면서 참, 참... 참깨도 아니면서 ! 솔직히 고백하자면 잘생긴 재벌 2세 주인공이 술도 취하지 않은 채 맨정신으로 " 나, 너와 자고 싶다 ! " 라고 말하는 따위의 장면을 보면 헛웃음이 나온다. 얼마나 자신감이 넘쳤으면 맨정신으로 자자고 말하냐. 재벌 2세들은 든든한 벡이 있으니 그런 소리'를 술 취하지 않고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요, 달려드는 여자들이 넘치고 넘쳤으니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다. 야, 이눔의 새캬 ! 나처럼 불알에 정액이 잔뜩 고여서 썩어봐라 ! 자신감은 바닥을 친다. 언감생심, 술 취하지 않고서는 감히 내뱉을 수 없는 고백이다. 하여튼 하이틴 로맨스 소설에 등장할 법한 개간지 쿨 마초 가이의 당당한 섹스 어필을 좋아하지 않는다. 홍상수 영화는 소주 3,4병이 비워질 때, 그때부터 화면이 좋아진다.
2. 최승자 시인은 말했다. 터널은 끝에 가서야 환해진다고 말이다. 그런 영화들이 있다. 별다른 감흥 없이 담담하게 영화를 보다가, 아니 시큰둥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전율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마치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애인 때문에 잔뜩 화가 났다가 저 멀리서 뛰어오는 애인을 발견하고는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경험이다. 울르 그로스바드 감독의 < 조지아 > 라는 영화가 그렇다. 마지막 장면은 압도적이다. 제니퍼 제이슨 리'가 허름한 선술집에서 노래를 할 때, 그토록 평범했던 영화가 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했다. 잘 만든 마지막 장면'은 약속 시간에 늦게 온, 생글거리는 애인과 비슷하다. 흐리다 맑음이다. 퍼시 아들론의 < 연어알 > 도 마지막 장면이 압도적이다. 평범했던 영화는 느닷없이 끝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어쩌면 영화는 마지막 5분을 위한 전주곡인지도 모른다. 가장 빛나는 대상은 늘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니 말이다. 조용필은 언제나 마지막에 등장하지 않던가 ?
3. 좋아지는 계기가 있다.밤 늦게 시험 공부할 때면 항상 정은임의 영화음악실을 라디오로 듣고는 했다. 그 시간에 들을 프로는 그 방송이 탁월했다. 정은임을 좋아했다기보다는 라디오 프로듀서와 방송작가'가 짠 프로그램이 좋았던 것이다. 당시 나는 아나운서와 라디오 디제이'는 앵무새에 지나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왠지 영혼은 없고 그저 대본대로 읽는 것에 지나지 않는, 그런 존재. 감정이라고는 없는 그런 존재 말이다. 어느 날이었다. 정은임은 리버피닉스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울었다. 콧물 삼키는 소리가 종종 멘트를 삼켰다. 목소리는 부들부들 떨렸다. 방송사고에 가까웠다. 생방송도 아니었으면서 프로듀서는 왜 편집을 하지 않았을까 ? 아마도, 그는 이 방송사고가 주는 진실함이 좋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정은임이란 아나운서'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최초로 좋아한 방송인'이었다. 임을 향한 행진곡을 처음 들었던 방송도 정은임의 영화음악실이었다. 당시 빨갱이들이나 부르는 노래인 줄 알았는데 라디오에서 그 음악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뿐이 아니었다. 볼세비키 인터내셔널歌도 이 방송을 통해서 듣게 되었다.
4. 인생이 언제나 흐리다 맑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 가끔은 맑다가 흐림'이 되기도 한다. 나는 정성일 열혈 팬이었다. 없는 형편에도 키노 잡지는 꼬박꼬박 모았다. 지금도 키노 잡지'는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저 현란한 문장과 톡 쏘는 어투, 그리고 놀랄 만한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정성일이 쓴 글을 대부분 이해를 할 수 없었으나 나는 이 이해불가능을 개인적 소양 탓으로 돌렸다. 어릴 때부터 국영수'만 빼고는 꽤 잡학다식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정성일이 쓴 글은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정성일을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판단은 내 실수'였던 것 같다. 정성일은 글을 잘 쓰는 평론가가 아니었다. 쉬운 문장도 어렵게 쓸 줄 아는 독특한 재능을 가졌을 뿐이다. 필사의 탐독'을 읽다가 그만 헛웃음이 나왔다. < 필사의 탐독 > 은 < 필사의 난독 > 이었다. 첫사랑을 그리워하다가 10년 후에 만났을 때의 그 느낌이다. 기억 속 그 사람은 반짝반짝 빛났으나 다시 만난 첫사랑은 오징어'가 되어 있을 때의 당혹감. 그런 당혹감이 들었다. 그가 만든 < 카페 느와르 > 는 심형래가 만든 < 디 워 > 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트뤼포를 꿈꿨던 정성일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영화는 괴상했고 문장은 이상했다. 날마다 맑은 날만 있던가 ? 흐리다 맑은 날도 있고, 맑다가 흐린 날도 있는 법이다.
5. 나는 실베스타 스텔론'이란 배우를 매우 싫어했다. 아트 시네필 행세를 하던 시절이었으니 스탤론을 좋아할 턱이 없었다. 연기는 얼마나 못했던가 ? 그가 나온 영화들은 얼마나 뻔뻔했던가 ? < 람보 2 > 이후로는 그의 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정성일이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 자본적의적 욕망이 전이된 스텔론의 하드 바디'는 조르주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적 육화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식민지적 욕망에 다름 아닙니다. 총알은 빗발치지만, 어찌된 영문입니까 ? 총알은 그의 신성한 몸을 피해 다닙니다. 이 이상한 헐리우드의 팍스 아메리카에 당신도 동참하실 겁니까 ? "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 후, 나는 우연히 종로 피카디리'에서 < 록키 발모어 > 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종로에서 약속을 잡았는데 너무 일찍 간 탓에 시간을 때울 요량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결과였다. 영화를 본다는 생각보다는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듯하다. 도대체 나이 60에 권투 영화라니 ? 무슨 꿍꿍이일까 ? 선수 대신 권투 코치로 등장해서는 화려했던 과거에 대해 꿈꾸듯 말하겠지. 영화를 시작되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보다가 그만 눈물이 터졌다. 스텔론은 너무 늙고 힘 없어 보였다. 몸은 둔했고 말도 둔했다. 하지만 그는 진짜 연기를 하고 있었다. 말도 어눌하고 몸도 어눌했으나 그는 늙은 나이에 비로소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너무 늦은 만학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웠다. 그때부터 나는 스텔론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날은 흐리다가 맑은 날이었다
6. 내가 < 쇼생크 탈출 >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그렇고 그런, 따분한 헐리우드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처음부터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냥 재미있는 할리우드 탈옥영화’라고 생각했다. 돈 시겔의 걸작 < 알카트라즈 탈출 > 에 대한 오마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 쇼생크 탈출 > 보다는 < 알카트라즈 탈출 > 이 더 좋았다. 재미있다고 해서 모두 다 좋은 영화는 될 수 없다. 궁금하지 않았다. 저녁 7시가 되면 쨍 하고 불 밝히는 창문처럼 말이다. 어느 누가 초저녁 불 밝힌 창'을 궁금해 할까 ? 우연한 기회에 이 영화를 몇 번 더 봤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 3시에 불 켜진 창문처럼 모든 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앤디는 어떤 사람일까 ?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보게된 곳은 석수역에 위치한 < 내 안의 너’ > 라는 모텔 403호실’에서 였다. 그날 나는 애인과 함께 벌거벗고 뒹굴었다. 창 밖에는 장맛비’가 쉴 새 없이 내렸다. 나는 여자의 봉긋한 젖가슴과 촉촉한 동굴을 좋아했다. 그리고 여자가 새빨간 혀’로 내 젖꼭지를 아릿하게 깨물 때도 좋았다. 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된 강아지’가 어미 젖을 찾듯이 말이다. 침대시트는 흠뻑 젖었고 우리는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티븨’에서는 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앤디를 연기한 팀 로빈스’가 말했다. “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여기 있는 일하는 동료들에게 시원한 맥주 한 병 마실 수 있도록 해 주신다면...... “
장면이 전환되면 옥상의 죄수들은 땡볕 아래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신다. 나는 그토록 행복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여자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한 모금 마신 후 침대에 누워 있는 나에게 다가와 자신의 입 속에 있는 맥주를 내 입 속에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우리 헤어지지 말자, 아프지 말자,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영혼이 되자. 나는 방긋 웃었고 여자도 방긋 웃었다. 우린 모두 이 영화를 좋아했다. 아니, 여자는 원래 이 영화를 좋아했었다. 우린 이 영화를 함께 서너 번 더 보았다. 세월이 흘렀고 우린 헤어졌다. 헤어졌다기보다는 내가 그녀 곁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녀는 감옥이었고 나는 죄수였다. 이 영화는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보았고, 두 번째는 우연한 기회에 보게되었으며, 세 번째도 깊은 밤 새벽에 잠을 뒤척이다가 티븨’를 켜고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그렇게 네 번째, 다섯번째, 여섯 번째’로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일곱 번째 보게 되는 순간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되며 스무 번’을 넘기면 영원한 걸작’이 된다. 그 여자와의 만남도 그랬다.
처음 보았을 때 그 여자는 그냥 좋은 여자였다, 두 번째 보았을 때는 예의 바른 여자였고, 세번째 보았을 때는 조금 쓸쓸해 보였다. 네 번째는 많이 쓸쓸해 보였고, 다섯 번째는 적당히 쓸쓸해 보였다. 그리고 일곱 번째 보던 날, 나는 그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마스터피스’였다. 처음부터 보자마자 좋아지는 영화’가 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 거울 > 이라는 영화가 그렇다. 갈대’를 흔들리게 만든, 그 느닷없이 다가온 바람의 속도가 좋았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더 이상 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처음에는좋았으나 다시 보면 실망을 하게 되는 영화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처음에는 싫었으나 나중에좋아지는 영화도 있다. < 카사블랑카 > 가 그렇다. 옛 애인은 이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영화가 끝날 때마다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했다. “ 카사블랑카여, 영원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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