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이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 자기 앞의 생 > 이란 책을 발견했다. 내가 그동안 이 책을 읽지 않은 이유는 아동 청소년 책'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나는 꽤나 어려운 소설을 읽었다. 로브그리예, 사르트르, 까뮈,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읽기 어려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던 시절이었다. 마치 구하기 힘든 영화'만 찾아다니는 컬트 마니아의 영화 목록'처럼 말이다. " 이런 내가 그 흔해빠진 청소년 소설 나부랭이'를... "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 자기 앞의 생 > 을 읽었다. 그러다가 그만 눈물을 쏙 빼게 되었고, 그 후 며칠 동안 도서관에 비치된 로맹가리/에밀아자르의 소설'은 모두 읽게 되었다. 너무 급히 읽은 탓일까 ? 내가 읽은 로맹 가리의 소설들은 각자의 소설'이 아닌 6권'으로 된 한 편의 장편 소설'로 기억되었다. 말이 좋아 " 기억 " 이지, 사실은 " 뒤죽박죽 " 이었다
-10년 전에 읽은 책 中
김애란 장편소설 < 두근두근내인생 > 에 대한 반응이 좋다. 독자는 물론이거니와 평단 또한 칭찬 일색이다. 놀라 다시 본다, 라는 성석제의 기막힌 40자 평이 있는가 하면 요즘 잘 나가는 젊은 평론가는 역시 김애란이라며 엄지 세 개‘를 올린다. 하지만 이 착한 가족극은 몇몇 눈에 띠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많은 작품이다. 그녀가 내놓은 단편집에 비하면 이번 장편소설은 기대 이하’다 ! 소설 속 주인공은 모두 피터팬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처럼 보인다. 주인공 부모에게는 세월에 따른 자각의 과정이 없다. 17살 때 고속버스에 올라타서 34살 때 버스에서 내려온 인물 같다.
문제는 고착으로 인하여 이 아이들의 사회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이다. 사회성이 결여되었으니 등장인물들은 모두 명랑하고, 유쾌하며, 긍정적이다. 사회에 대한 인식은 계급에 대한 자각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명랑한 아이들에게는 그러한 성숙한 비판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대책 없는 무비판성‘은 작가로써 치명적 결점이다. 그녀는 거리’를 은폐한다. 꼴랑 보여주는 것은 골목길이다. 거리가 사회화된 영역이라면 골목길은 사회화가 거세된 낭만적 장소이다. 심각할 때는 심각할 줄 알아야 하는데 심각할 때도 주인공들은 웃는다. 으, 하하하하하 ! 내가 보기엔, 김애란의 < 두근두근... > 은 3분 발성법으로 1시간짜리 창‘에 도전한 느낌’이 든다. 그것은 마치 3분짜리 콩트를 60분 분량으로 늘린 것 같은 느낌이라는 말이다.
- 두 권의 소설, 삼부녀와 두근두근 내 인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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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소설 : 자기 앞의 生 vs 두근두근 내 인생.
흉터에는 신기한 힘이 있지. 과거가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거든. 흉터를 얻게된 사연은 결코 잊을 수 없지. 안 그런가?
- 모두 다 예쁜 말들 中
내가 문학에 대해 일관되게 유지했던 냉정한 태도'를 종합해서 판단하자면, 에밀 아자르 혹은 로맹 가리의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올시다, 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에밀 아자르 혹은 로맹 가리'가 쓴 소설을 대부분 열심히 읽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눈물 콧물 다 짜내며 읽었으니 로맹 가리는 내 문학적 취향에서 예외'라고 해 두자. 모든 < 취향 > 에는 이해 못할 구석이 존재하는 법.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자르 식 성장 스토리'를 모두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글빨 하나만큼은 끝내줬던 김애란'이 제 2의 에밀 아자르 혹은 로맹 가리'를 꿈꾸며 야심차게 준비한 첫 번째 유사 아자르 성장 소설인 < 두근두근 내 인생 > 은 눈 뜨고 코 베일 정도'로 후져서 하품이 나왔다. < 모모' > 나 < 아름' > 이나 둘 다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 두근두근 내 인생 > 에서 보여준 아름이'는 설정만 아이'일 뿐이지 어른'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름이처럼 지나치게 깔끔한 성장통은 뭔가 수상한 성장통'이어서 읽는 내내 울화통이 터진다.
반면 모모'는 불안한 성장통을 겪는다. 이 불안정한 성장통은 마치 흰자위는 푸석푸석 익었지만 노른자위'는 채 익지 않은" 계란후라이 " 상태와 같다. 어느 부분은 푹 익고 어느 부분은 설익었다. 우리가 겪은 성장통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조숙과 미숙이 겹쳐지는 과정이 질풍노도의 시기'가 아니었던가 ?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아...... 나는 < 후라이 > 라는 잘못된 외래어 표기'가 주는 50년대 올드한 느낌'을 좋아한다. < 프랑스 > 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보다 < 불란서 > 라는 단어가 주는 그 촌스러운 50년대 근대적 언어 감각을 좋아한다.이처럼 < 프라이 > 가 이음새 없이 봉합된 깔끔한 흉터'라면 < 후라이 > 는 어깨에 남은, 촌스러운 불주사 흉터 같다. 이 불주사 흉터'는 공감과 위로를 전달하는 아이콘'이다. 쉽게 말해서 블로그 < 공감 > 버튼이요, 트위터 < 무한 RT 요망 > 메시지요, 페이스북 < 좋아요 > 버튼'이다.
우연히 타인의 어깨에서 발견하게 되는 불주사 흉터'는 말로 설명을 할 수는 없으나 뭔가 인간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미스코리아 출신 미녀의 어깨에 남은 불주사 흉터'는 잘난 년이나 못난 년이나 모두 촌년이라는 묘한 위로'를 선사한다. 그것은 얼룩'이요, 금이다. 로맹 가리 소설 속 아이들은 그러한 공감과 위로'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남의 이야기이지만 내 이야기'이다. 불주사 도장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시대적 아픔 ( ? ) 을 공유할 수 있는 것과 같다. " 맞아, 맞아. 불주사, 그땐 너무 아팠어 ! " 하지만 김애란이 < 두근두근.... > 에서 보여준 아름이'에게는 불주사 흉터'가 없다. 그냥 아름이가 불쌍할 뿐이다. 그는 17살'이란 타이틀만 얻었을 뿐 지리산 안골 계곡에서 100년 동안 수양에 매진한 도사 같다. 그는 " ~ 했도다 ! " 대신 " 했어염 ! " 이라고 혀 짧은 소리를 할 뿐이다. 그가 독자에게 주는 위로'는 말뿐이다.
나는 아이'다운 아이'에게 끌리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어른다운 어른'에게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 ~ 답다 > 라는 이데올로기는 가부장 중심 사회가 만든 폭력적인 시선일 뿐이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하며,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사고'는 주인이 노예를 길들이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답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어른답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 다시 한 번 묻자. 아름답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정말 여자답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 계통과 계열을 분리하고 솎아서 동종의 군집을 만다는 상상력은 폭력'에 가깝다. 아이는 아이답지 않아도 된다. 어른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도 되고, 여자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워도 된다.
내가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은 < 아이어른'> 이거나 < 어른아이' > 이다. 이상적인 인간형은 어릴 때는 < 아이어른 > 이었다가 어른이 되면 < 어른아이 > 가 되는 사람이다. 반면 어릴 때는 아이다운 아이였다가 어른이 되면 어른다운 어른 ( 남자다운 남자가 되거나 여자다운 여자가 되는 ) 이 되는 사람은 답답하고 갑갑한, 지나치게 체제순응적 인간이다. 말뿐인 말장난이 아니다. 빈말도 아니다. 말뿐인 말장난을 원하거든 텅 빈 마굿간으로 가라. 이 세상 모든 아웃사이더'는 자신이 가진 몸보다 정신이 너무 빠르거나 늦은 경우이다. 오후 3시처럼 말이다. 성장과 성숙'은 비슷한 말 같지만 다른 말이다. 오히려 반대말'이다.
누가 성장의 반대말은 무엇이냐고 묻거든 병신처럼 < 저성장 > 라고 말하지 마라. 이 뻔한 답변은 당신이 눌변'이란 사실을 당신 스스로 대변할 뿐이다. 성장은 몸이 커지는 것을 말하고, 성숙은 심장이 커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깐 전자는 < 밖 / 껍데기 > 를 보는 시선이며, 후자는 < 안 / 내면 > 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선이다. 결국 성장 이데올로기란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라는 껍데기'만 중시하는 가치'다. 이명박이 졸라 천박한 이유는 바로 성숙'보다 성장'을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경제 성장이 아니라 사회적 성숙이다.
■ 같은 이유로 이 시대에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에 방점을 찍는 애국심이 아니라 세계 시민에 방점을 찍는 인류애'다. 잘 갖춰진 인류애'라면 애국심은 개나 줘도 된다. 누누이 말하지만 애국심은 타자'에게는 파시즘이 될 수 있다.
키 큰 남자와 식스팩에 젖가슴이 터지는 여자는 껍데기에 미친 년이고, * C.S.I 에 무조건 페니스가 발기하는 놈도 껍데기에 미친 놈이다. 그들은 모두 외양만을 본다. 모모는 몸은 느리게 성장했으나 심장은 빠르게 성숙한 아이'이다. 흰 자위는 푹 익었으나 노른자위는 설익은 계란 후라이'의 시기'이다. 이 불균형'은 고독'을 낳는다. 아이다운 아이는 < 고독 > 을 모르고, 어른다운 어른은 < 순수 > 를 잃어버린다. 그러니깐 어른다운 아이'가 고독을 느끼고, 아이다운 어른이 순수를 간직한다. 모모는 어른 흉내를 내지만 이 위악은 한계를 지닌다. 모모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것이다. 하지만 아름이'는 가짜다. 아름이는 어른이 요구하는 이상적 아이'에 가깝다. 그러니깐 김애란은 어른의 욕망을 아이'에게 투영한 후 낄낄거리거나 흑흑거리며 즐기는 것이다. " 아름 " 을 " 아름답게 " 만들면 그것은 매우 뻔뻔한 어른의 욕망'이다. 타인의 고통'은 결코 아름답다고 말하면 안 된다. < 두근두근 내 인생 > 이란 소설이 존나 후진 이유이다.
■ CSI 형 체형 : C컵 가슴에 S 라인 그리고 I 처럼 늘씬한 몸매'를 가진 여성을 말한다. 내가 막 지어내 조어인데 마음에 든다. ■ AbO형 체형 : A는 하체 비만이고, b는 복부비만이며, o는 총체적 비만인 체형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이것도 내가 막 지어낸 조어인데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