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제대 후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6개월 동안 일한 경험에 비추어보면 당신이 사는 천장은 온통 나무토막, 빵 봉지, 우유 펙, 스티로폼'이 섞인 칸막이라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시멘트 공구리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공사 현장에 널부러진 온갖 것들을 다 채운 후 공구리'를 치기 때문이다. 농담이라고 ?! 맙소사. 당신이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은 곱게 자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막노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당신만 모르는 것이니 말이다. 더 충격적인 장면도 본 적 있다. 인부들이 바빠서 현장에서 싼 똥을 치우지도 않고 공구리를 친 경험도 있다. 그러니깐... 음, 윗층과 아랫층 사이엔, 나와 당신 사이엔 누군가의 똥이 있다.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에서는 아파트'가 세련된 주거 환경'이 되었을까 ?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건설업자들 입장에서 보면 가장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 바로 아파트 건설이다. 땅 위에 집을 짓고, 그 집 위에 다시 집을 짓는다. 여기에는 아파트 생활'을 현대적인 문화 생활 이미지'로 세뇌시킨 국가 정책도 큰 몫을 차지했다. 박정희가 보기엔 이 좁아터진 땅덩어리에서 아파트보다 효율적인 주거 환경'은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인은 개인보다는 집단 속일 때 안정을 찾는 민족이지 않던가 ? 그들은 < 집단 - 속 > 과 < 집 - 단속 > 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아파트가 안전한 주거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할렘을 의미했던 주거 공간이 대한민국에 수입되면서 고급화로 둔갑한 이유에는 국가와 짜고 친 건설업자의 숨은 공로가 있었던 것이다. 공로라기보다는 음모에 가깝지만 말이다. 하여튼... 눈물이 앞을 가린다.
- 공간은 정치적이다 中

대한민국 군집생태학 : 바캉스와 아파트 그리고 산악회.
내가 자주 한국인 비판'을 해서 듣는 당신은 질릴 만도 하지만 한국 문화'는 까도 까도 대책이 없는 양파'와 같다. 배 부른 소리하고 자빠졌네, 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한국인 특유의 군집성'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인은 남들이 하면 자기도 따라하는 습성을 가졌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습성을 가진 것은 아니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 습성은 < 천성 > 보다는 < 습속 > 에 가깝다. 그러니깐 " 군집생태학 " 은 독특한 남조선 사회 규범이 만든 현상이다. < 있어 > 보일려고 군집, 생태, 습속'을 거들먹거렸지만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떼거지 근성'이다.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자들에게 이 사회는 답이 없어서 답답한 사회이며, 갑이 왕초 노릇을 해서 갑갑한 사회'이다.
바캉스 문화'는 갑갑하며 답답한 군집성'을 제대로 보여준다. 물에 발 한번 적시겠다고 해운대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은 기이한 풍경을 연출한다. 백 만 인파가 한꺼번에 몸을 담그니, 그들 인파 중엔 몰래 물속에서 오줌을 싸는 얌체'도 있을 터, 어쩌면 해운대 바닷물이 유독 소태인 이유는 오줌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방관자 입장에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에 대한 비판이다. 며칠 전 가족 여행'을 떠났다. 서울에서 출발해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네비게이션 여자'는 6시간 동안 목이 터져라 외쳤다. 어찌나 친절한지 전방이 과속 방지 턱이 있다고 알려주시기도 하고, 단속 카메라가 있으니 주의하실 필요가 있다고도 말씀하셨다. 내 아들이 있다면 며느리 삼고 싶었다. 요 며칠 사이로 700만 인파가 바캉스를 떠났다고 하니 대이동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한 표현이다. 가족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8월 한여름 빨랫줄 위에 걸린 빨래처럼 바짝바짝 말랐다.
고생해서 도착했으니 제대로 놀아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것일까 ? 강행군은 이제부터'였다. 첫째 날은 a 계곡에서 놀았다. 둘째 날이 되면 본격적으로 놀기로 한다. 아침 6시에 아침을 먹고 9시에 b 계곡에 가서 놀고, 오후에는 c 박물관으로 간다. 휴가지에서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다. 셋째 날도 아침 6시에 밥을 먹고 9시에 d 휴양림으로 떠난다. 잠시 후, 나비 전시관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런 일은 계곡 반복된다. 이것은 휴가(休暇) 가 아니라 수행( 遂行)이다. 수행을 그대로 뜻풀이 하자면 " 생각하거나 계획한 대로 일을 해냄 " 이다. 그러니깐 내 가족'은 휴식을 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업무를 수행한 것이다. 고생해서 왔으니 볼거리 잔뜩 보고 가자는 주의'다.
본다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감각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 본다는 행위 > 자체가 < 여행의 모든 것 > 이라고 판단하면 오산이다. 계획대로 진행되는 코스 여행'에서 얻은 만족은 말 그대로 자신이 계획한 임무'를 얼마만큼 실천했는가, 에서 오는 만족일 뿐이다. 즉, 휴가'가 아니라 일의 연장'이다. 그 사실'을 알아야 한다. 최근 며칠 사이에 떠난 700만 인구'는 남이 바캉스를 떠났으니 그냥 따라하다가 도로에서 좆망한 경우'다. 남들 다 하는데 안 하면 소외감을 느끼니 떠난 것이다. 여기에서도 군집 본능은 작동을 한다.
군집 본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곳은 < 아파트 > 다. 어느 유명한 프랑스 사회학자'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강남 아파트 단지'를 보고 던진 " 여기가 한국의 할렘가'입니까 ? " 라는 질문'은 서구 사회에서는 아파트'라는 집단 주거 형태'가 실패한 주거 공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집단 주거 공간은 서구 주류 사회에 안착하지 못했고, 그 빈터를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된 것이다. 아파트'는 실패한 도시 행정의 표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부를 상징하는 주택이 되었다. 백성은 정부와 건설업자이 배포하는 농간'에 속았지만 사실 속은 것만은 아니다. 한국인 특유의 떼거지 근성'이 아파트 현상을 부추긴 측면이 강하다. 한국인은 집단 속에 있어야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주거 공간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은 안전'이다. 한국인에게 있어서 아파트는 < 집 - 단속 > 과 < 집단 - 속 > 욕망을 모두 충족시키는 주거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 < 집단 - 속 > 이 가장 안전한 < 집 - 단속 > 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아파트'가 집단 속'에서 보호를 받으려는 어른 욕망'이라면 노스페이스 교복化는 애들 욕망이다. 아파트와 노스페이스'는 같은 말이다. 누가 당신에게 아파트와 같은 뜻을 가진 문장을 고르라고 하면 < 집단 주거 공간 > 대신 자신있게 < 노스페이스 > 라거나 < 블랙야크 > 라고 당당하게 말하라. 물론 교육부가 원하는 정답은 아닐 수 있으나 내가 보기엔 아파트와 노스페이스'는 동일어'다. < 블랙 야크 > 의 청소년 버전인 < 노스페이스 > 또한 집단 속'에 안착함으로써 보호를 받으려는 심리가 작동한 결과이다. 애들은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노스페이스를 입는다. 같은 이유로 < 노스페이스 > 의 19금 버전인 < 블랙 야크 > 도 같은 심리가 작동한다. 그들은 혼자 산에 오르지 않는다. 산악회'로 뭉친다. ( 김영삼이 만든 히트 상품은 금융실명제가 아니라 산악회'다. )
산에서 명함을 주고받을 수는 없으니 등산복은 명함을 대신한다. 머리어깨무릎발무릎발'에 장착한 풀 옵션 등산 장비'는 그 사람의 명함을 대신한다. 선수는 척보면 안다. 장비를 보면 관우나 유비를 생각해야 하나, 몇몇 산악회 속물들은 장비'를 보면 그 사람이 가진 재산 보유 현황을 파악하기에 정신이 없다. 비싼 놈에게 끌리는 법. 88올림픽 때 급조된 코리아나는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지만, 산악회 속물들을 손에 손 잡고 선을 넘어서 우리 모두 하나 되는 모텔에 간다. 이처럼 한국인 특유의 체면과 허세 그리고 군집성이 결합하여 탄생한 것이 깔맞춤 등산 패션이다. 정작 환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군집생태학이다.
이러한 군집 욕망'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파시즘은 이 군집성'을 토대로 뿌리를 내린다. 2002년 월드컵 광장 응원 문화'가 보여준 열기'는 대한민국 사회'가 파시즘에 매우 쉽게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자발적 동원력은 우려할 만한 현상'이다. 그들은 집에서 몇몇과 함께 응원을 하기보다는 광장으로 나온다. 집단의 힘'을 과시하고 싶은 까닭이다. 획일화된 응원과 거대한 함성이 주는 웅장함을 맛 본 이들은 이 군집의 형태에 중독될 것이다. 나는 붉은 악마가 보여주는 이 군무'를 보면 항상 레니 리펜슈탈의 < 의지의 승리 > 가 생각난다.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 이상적인 사회'는 건강한 개인주의'가 발달한 사회'이다.
여기서 개인주의와 개인 이기주의'를 혼동하면 안 된다. 개인주의는 공동체를 중시하는 토대 위에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태도이지만 개인 이기주의'는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이기주의'가 집단化가 진행되면 집단-이기주의'로 빠지게 된다. 이 집단 이기주의'가 확장된 버전이 국가 이기주의'이다. 국수주의, 나아가 전체주의'가 태동하게 된 시작은 바로 이기주의'이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개인이기주의는 집단 이기주의로 빠지고, 이 집단과 군집은 결국 국가 이기주의'인 국수와 전체주의'를 만든다.
집단/전체/국가'가 쏟아내는 획일된 메시지'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좋은 예'가 있다. 베토벤의 아름다운 명곡 < 엘리제를 위하여 > 는 국가 폭력에 의해 난도질 당한 명곡이다. 음악 다방이나 인테리어가 그럴싸한 경양식집에서 언제나 단골 메뉴처럼 흘러나왔던 < 앨리제를 위하여 > 는 어느 순간 청소차나 분뇨차'를 떠올리게 만든다. 국가의 강요된 메시지'가 만든 진풍경이다. 점심 시간에 이 클래식이 흘러나온다면 당신은 식욕을 잃을 것이 분명하다. 베토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한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국가 권력은 베토벤을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 이 얼마나 무서운 세뇌'인가 ? 이 얼마나 간단한 세뇌인가 ?
싹수가 노랗다면 뽑는 것이 제격이듯이, 잘못된 습속부터 바로잡아야지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김수영 시인이 말했다. " 나는 왜 작은 일에 분개하는가 ? " 맞는 말이다. 작은 일에 분개해야 한다. 가짜 정치인은 늘 큰 일'에만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그러한 것은 모두 가짜'다. 내가 안철수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거대 담론만 가지고 원론적인 말만 하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바다가 아닌 작은 냇가'에서 놀 필요가 있다. 바다에서 거창하게 다량어'를 잡을 생각 말고 냇가에서 가재를 잡을 생각을 해야 한다. 모든 불행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우리 모두 쪼잔한 사람이 되자.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