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륭의 < 열명길 > 을 읽고 감명했다는 독자를 만날 때 문학평론가들에게는괴로워질 것이다. 소설의 첫머리에서 존 레논을 듣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문장을 볼 때 음악평을 쓰는 내친구는 괴로워진다는 말을 한다. 소설의 이곳저것에서 < 블레이드러너 > 를 논하고, 이유 없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장면이 인용되고, 내가 본 그 영화에 대해서는 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지루한 영화론을 읽어야 할 때, 나는 그냥 소설을 덮어 버린다.... ( 중략 ) # 사람은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쓰면 안 된다. “
영문과 교수들께서 먼저 영화에 대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마도 프레드릭 제임슨이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를 이야기하던 그 혀로 삼류 헐리우드 영화를 진지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그냥 농담인 줄 알았다. 소설가들이 영화의 기법을 소설에 도입하겠다고 나섰을 때 그냥 웃자고 하는 이야기라고 받아넘겼다. 시인들이 영화의 제목을 빌려 왔을때 그건 한 번 하고 말아야 할 유머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어야만 했다. "
- 도둑질하고, 도둑질당하고 ( 왜 한국 문학과 한국 영화는 서로 우정을 나눌 수 없는가
우리는 소설을 읽고 난 다음 아무렇게나 말하지 못한다. 조이스나 프루스트 같은 미로를 헤치고 나온 다음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친구들의 이름이 적힌 수첩을 들추면서 우리의 하루를 돌아볼 뿐이다. 세잔의 그림을 보고 난 다음 그 감흥을 아무렇게나 말하지 못한다. 브루크너의 제 8교향곡 3악장 아다지오에 대해서 방금 듣고난 다음에도 다시 한 번 더 듣고 말하겠다고 대답을 미룬다. 베케트의 무대는 거의 등장인물이 없는데도 무언가 보지 못한 것이 거기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영화는 보고 나오면, 그 영화가 난니 모레티건, 허우 샤오시엔이건, 제임스 캐머린이건, 데이비드 린치건, 임권택이건, 그게 누구의 영화건, 누구라도 영화관 문을 나서면서 방금 보고 나온 것에 대해서 금방 입을 연다.
- 필사의 탐독, 취화선
그는 사람들이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쓰면 안 된다고 했는데, 사실 이 말은 틀린 말이다. < 폭풍의 언덕 > 은 불꽃 같은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작가가 쓴 책이었다. 에밀리 브론테는 그 흔한 사랑 한 번 못하고 서른에 결핵으로 죽었다. 그리고 히치콕은 경찰이 무서워서 평생 운전면허증도 없었던 사내였다. 히치콕은 오히려 범죄의 세계를 잘 몰랐기 때문에 위대한 작품이 탄생한 것은 아닐까 ? 우리는 누구나 그 영화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다. 입장료를 내고 영화를 보았으며 티븨 수신료를 매달 내면서 < 주말의 명화 > 를 시청했다. 이 정도면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오로지 평론가의 몫인가 ? 웃으며 코 판다. 잇힝 ~
그가 가진 태도는 접어두고서라도 일단 쓸데없이 긴 나열, 불분명한 주어 설정, 그리고 미완성으로 끝나는 술어들의 나열은 읽기를 방해한다. 문장이 틀어지면 삭제하고 다시 써야 하는데 그는 삭제 대신에 완성되지 않은 문장을 그냥 쉼표로 남겨두고는 다시 다음 문장을 쓰기 시작한다. 결국은 완성되지 않은 문장들이 둥둥 떠다니다가 뜬금없이 마침표로 끝난다. 그것은 빵 봉지'를 뜯어 빵을 한 입만 베어물고는 식탁 위에 놓은 채 다시 다음 빵 봉지를 뜯어 한 입 베어무는 꼴과 다르지 않다. 먹다 만 빵들이 탁자 위에 널려 있다간 엄마한테 혼나요. 그는 개성적 문체라기보다는 차라리 세계 인명 사전식 보그체'에 가깝다. 끝없이 물고 늘어지는 수많은 이름들의 인용의, 인용의, 인용의, 인용이다.
- 정성일 문체 비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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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영화 전문가로 만들어 주겠다.
- 포스트 키노 키드의 불알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메뉴얼
영화 관람 행위를 교양 필수 과목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포스트 키노 키드'와 같은 전문가'가 되고 싶으시죠 ? 하지만 그 수많은 정성일 영화 목록을 다 채우다가는, 당신은 연애도 한번 못하고 모니터 앞에서 늙어 죽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섣불리 안 본 영화를 보았다고 말했다가는 수많은 포스트 키노 키드(들)의 집요한 질문에 당신의 < 발광 다이오드的 극성' > 은 이내 < 발열 요오오드的 산성 > 으로 조롱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다이오드'에서 요오오드'로 위상이 떨어질 생각을 해보십시요. 앞이 깜깜합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메뉴얼'만 습득하십시요.
1. 제임스 카메론을 경멸하십시요 : 키노 키드'들은 당신의 발광 다이오드적 극성'을 시험하기 위해 제임스 카메론 영화에 대해 질문을 던질 것입니다. 이럴 땐 과감하게 이렇게 대답하십시요. " 캬 ! 카메론'를 내게 묻는 거요 ? " 그리고 마지막에 화룡정점을 찍으십시요. " 카메론 영화는 초기작이 좋습니다. " 잘나가는 헐리우드 감독'에게는 무조건 최근작을 칭찬하지 말고 초기작에 대한 애정을 보이십시요. 백 프로 효과 봅니다.
2. 1단계를 통과했다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헐리우드 감독은 모두 후졌다고 말하는 순간 포스트 키노 키드'는 당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헛점을 잡는 순간, 그들은 " 발광 다이너마이트的 발성 " 으로 < 고래 > 도 아니면서 고래고래 큰 소리로 조롱을 할 것이며, < 노벨 > 도 아니면서 노발대발할 것이며, < 해 > 도 아니면서 해해 웃을 것입니다. 당신이 지지할 감독은 지나치게 상업적인 감독도 경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입증된 감독을 거론하는 것도 패착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십시요. 당신이 < 코헨 형제 > 를 좋아한다고 해서 키노 키드'들이 감동할까요 ? 이럴 때 준비했습니다. 꼭 명심하십시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십시요. " 난, 시나리오 작가 데이빗 마멧의 작품을 좋아하오. " 곳곳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올 것입니다. 데이빗 마멧, 탁월한 선택 아니겠습니까 ? 혹은 촬영 감독 고든 윌리스'를 거론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들은 디테일을 좋아합니다. " 그의 카메라는 빛을 포착한다기보다는 어둠을 사로잡습니다 ! " 촬영감독과 각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고수라는 의미'를 그들에게 전달할 것입니다. 포스트 키노 키드는 당신의 선택에 불알이 쪼그라들 것입니다.
3.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마십시요 : 21세기 키노 키드들은 타르코프스키'를 한물 간 감독 취급을 하니깐 말이죠. 타르코프스키'보다는 <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 을 뽑으십시요. 무조건, 무조건입니다. 2시간 내내 영화를 보며 졸았다고 해도 무조건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좋다고 하십시요. 팔 할은 먹고 들어갑니다. 단 이름을 거론할 때는 말을 더듬거리면 안 됩니다. 아, 아아..아차퐁 라세타쿤.... 이런 식으로 더듬거리면 차라리 거론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외우십시요. 달도 아니면서 달달 외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풀네임을 쉼표 없이 부를 때 당신은 발광 다이오드적 극성을 얻을 겁니다. 문학을 좋아하는 이'에게 릴케'라는 호명보다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라고 호명하는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4. 여기에 의외의 카드를 꺼낼 필요가 있습니다 : 매우 대중적인 영화 한 편을 거론하고는 이 영화가 내 인생의 영화라고 주접을 떨어보십시요. 잘 먹힙니다. 예를 들면 이소룡 영화라거나 주성치 영화가 좋다는 식입니다. 아, 아아아아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을 말하던 그 혀로 주성치 영화가 좋다거나 강우석 영화가 좋다고 해보세요. 당신은 편식 없이 골고루 음식을 섭취하는 착한 어린이가 됩니다. 여기에 개인적 서사를 살짝 넣으면 달달한 칵테일이 만들어집니다. 딱 한번 보았으면서도 수십 번 보았다고 말하세요. 끝입니다.
5. < 카이예 뒤 시네마 잡지 > 에 거론된 영화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 하지만 당신은 몰라도 됩니다. 쫄지 마십시요. 키노 키드들이 카이예 잡지를 들먹이며 알지도 못하는 영화를 말할 때 당신은 그저 먼곳을 응시하며 딱 한 마디'만 하십시요. 백 프로 효과 봅니다. " 좋은 영화는 우리 몸에 좋은 보약과 같지요. " 라거나 " 몸에 나쁜 음식은 달고, 몸에 좋은 음식은 입에 쓰죠.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 라고 말이죠. 이 말은 키노 키드들이 좋아하는 만병통치약입니다. 무조건 이 말 하면 다 본 것 같은 착시 효과를 주니 자주 써먹으십시요. 명심해야 될 것은 안 본 영화를 이야기할 때는 < 창 > 을 하는 사람이 아닌 < 북 > 을 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말할 때 얼씨구, 옳다구나, 그렇지와 같은 흥을 돋궈주는 역할로 물타기를 하십시요.
6. 너무 외국 영화'만 거론했나요 ? 이럴 땐 임권택 한번 건드려야죠. 무조건 좋다고 말하십시요. 한국적 미학을 완성했다고 그냥 말하십시요. 닝기미.. 한국 영화 보고 한국적 미학이라는데 무슨 말이 필요합니다. 안 그러면 따귀를 맞을 테니깐..... 한국 영화를 거론할 땐 항상 < 한국적 미학 > 을 거론하세요. 봉준호 영화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 한국적 미학을 완성한 감독이죠. 김기영 감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한국적 미학을 완성한 감독이죠.
7. 영화 이야기만 한다고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키노 키드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서양 어르신 이름을 쉴 새 없이 나불거릴 필요가 있습니다. 방도는 없어요. 그냥 외우십시요. 특히 들뢰즈 인용을 많이 하십시요. 꽤 좋아할 겁니다. 발터 벤야민도 아도르노와 함께 언급하시면 효과가 2배로 뜁니다. 지첵에 대한 언급을 가급적이면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즘 너무 인기가 높다보니 지첵'에 대해서 말하면 키노 키드들은 그들을 속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간간이 조르주 아감벤을 입에 담으세요. 환장합니다. 아감벤 철학이 쉽지는 않으니 그냥 < 호모 사케르 > 만 달달 외우세요.
이상 위의 메뉴얼을 숙지하시면 당신은 영화 전문가'가 됩니다. 명심하십시요. 타르코프스키'보다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입니다. 그의 풀네임은 당신에 대한 믿음을 한층 업그레이드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채플린보다는 키튼입니다. 세계 영화 베스트 텐'을 언급할 때에도 오손웰즈의 < 시민케인 > 이 좋다고 말하지 말고 < 악의 손길 > 이 좋다고 말하세요. 그래야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일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든 무조건 아키라'보다는 오즈'가 좋다고 말하세요. 키노 키드'에게는 오즈는 神과 같습니다. 정성일이 말했죠. < 동경이야기 > 를 하나를 보고 오즈'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이죠. 그러니 키노 키드 앞에서 < 동경이야기 > 는 금지어'입니다. 차라리 < 꽁치의 맛 > 이나 < 태어나긴 했어도 > 를 언급하세요. 그냥 안 보았어도 언급하십시요. 그들은 당나귀처럼 응앙 응앙 울 것입니다. 하여튼 이렇게 말하세요. " 오즈는 동양적 세계관을 담고 있죠. 좁고 낮은 다다미'는 넓고 높은 우주적 세계관을 담고 있습니다. " 이 얼마나 명쾌합니까. 이 메뉴얼을 숙지하셔서 포스트 키노 키드 불알을 쪼그라들게 만드십시다. 영화라면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얼토당토 목금토일요일은 짜파게티'를 자빠트립시다.
요약 >
1. 잘나가는 상업 영화 감독'은 신랄하게 비판하라. ( 관객 500만 넘으면 무조건 비판한다. 반드시 비판한다. 좋게 봐도 비판한다. 대중성은 적이다. )
2. 일반적으로 알려진 명감독의 대표작'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선택하라.
3. 무조건 초기작이 좋다고 우겨라. 초기작은 순수하고, 최근작은 타락했다고 말하라.
4. 영화 잡지 많이 읽고 거기에 인용된 횟수에 따라서 영화를 인용하라.
5.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을 더듬거리지 말고 자연스럽게 말하라. 이름이 긴 감독은 무조건 습득하라.
6. 안 본 영화도 본 영화처럼 말하라. 맞장구'를 쳐라.
7. 한번 본 영화도 서른 번 보았다고 우겨라.
8. 감동했다, 라고 말하지 말고 아프다, 고 말하라. 이로써 당신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영화 전문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