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브리 비어즐리
sex, comic book and chineses-style noodles jjamppong.
대한민국에서 가장 조용한 곳 가운데 한 곳이 바로 만화가게'이다. 도서관이야 떠들면 쫓겨나니깐 조용한 것이고, 교실도 떠들면 혼나니깐 조용한 것이다. 자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 만화가게 " 가 제일 조용하다. 만화가게에서는 남녀노소를 떠나 얌전하게 만화책만 본다. 검사이건, 동네 건달이건 닥치고 조용히 한다. 한 곡 더 부르려고 발악을 하며 마이크를 잡으려는 한국인의 승질머리'를 생각하면 감동적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도 이곳은 조용하다. 손으로 입을 가리며 히죽거리는 웃음소리'를 빼면, 가끔 컵라면 먹는 소리를 빼면...
이 고요는 몰입이 낳은 결과'이다. 대한민국 사람이 이토록 몰입한 적'이 있던가 ? 시인 이병률은 < 여전히 남아 있는 야생의 습관 > 에서 몰입'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서너 달에 한번쯤 잠시 거처를 옮겼다가 되돌아오는 습관을 버거워하면 안 된다
서너 달에 한번쯤, 한 세 시간쯤 시간을 내어 버스를 타고 시흥이나 의정부 같은 곳으로 짬뽕 한 그릇 먹으러 가는 시간을 미루면 안 된다
죽을 것 같은 세 시간쯤을 잘라낸 시간의 뭉치에다 자신의 끝을 찢어 묶어두려면 한 대접의 붉은 물을 흘려야하는 운명을 모른 체하면 안 된다
자신이 먹은 것이 짬뽕이 아니라 몰입이라는 사실도, 짬뽕 한 그릇으로 배를 부르게 하려는 게 아니라 자신을 타이르는 중이라는 사실까지도
- 詩 < 여전히 남아 있는 야생의 습관 > 전문
그런데 만화'는 한국에서 만큼은 푸대접 받는 예술 분야'이다. 어른들은 만화를 " 쫀드기, 눈깔사탕, 달고나, 뽑기, 아이셔 " 취급을 한다. 만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성적과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만화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다 그 놈의 " 대중적 친화력 " 이요,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그 " 몰입 " 때문이다. 만화를 보는데 굳이 사전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교양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평론가 정성일이 즐겨 인용하는 푸코데리다라캉지첵들뢰즈가타리맑스비트겐슈타인니체사드케에르케고르'를 몰라도 된다. 가,나,다,라'만 알아도 통하지만 가,나,다,라'를 몰라도 통한다. 바로 그것이 만화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친화력과 몰입의 정체성'이다. 남녀노소 모두가 상당히 좋아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만화가게에서 만화를 본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것과 똑같다. 일단 재미있고, 길어봐야 30분 안에 끝나고, 키에르케고르를 몰라도 대화가 통하며, 짜릿하고... 무엇보다 < 소리 > 가 밖으로 샐까봐 서로 조심하니깐. 아, 공통점이 너무 많은 것이다. 이처럼 섹스, 만화, 짬뽕의 공통점은 몰입이다.
- 안나 쉐흐바, 얼굴 시리즈.( 소더비 경매'에서 150원에 낙찰 )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만화는 심오하다. 만화는 분야 간 불통의 벽을 허문 장르적 실험이기도 했다. 20세기'는 각 분야'가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면, 21세기'는 ( 각 분야 간 ) 교류를 통해 동반 성장'을 했다. 이러한 상생이 바로 융합이고, 통섭이며, 퓨전, 짬뽕이며 건설적 합일'이다. 불통의 벽을 허물어서 공동 발전'을 모색하는 것. 어쩌면 만화는 최초의 융합'이었는지도 모른다. 만화는 이미 오래전에 문학과 미술을 끌여들였기 때문이다. 만화란 문학으로 읽는 그림이며, 그림으로 보는 문학이다. 그리고 활동 사진이며 동시에 영화'다. 오, 오오. 그리 생각하니 만화는 위대한 장르'다. < 페르세 폴리스 > 은 잘빠진 르포보다 훌륭하고, < 니코폴 > 은 만화가 철학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 니코폴은 현재 중고 시장'에서 100,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씐난다 ! 배 고플 때 팔 생각이다. ) 학습 만화가 만화의 전부'인 대한민국에서는 결코 이해하지 못하리라.
자, 이래도 만화'가 불량식품인가 ? 내가 교육부장관이라면 일주일에 세 시간'은 만화 수업을 진행하도록 교육법을 개정하겠다. " 오늘 수업은 후루야의 < 이나중 탁구부 > 를, 내일은 이토준치의 < 소용돌이 > 를, 다음날은 이희재의 < 간판스타 > 를 공부하겠습니다.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닥치고 나가세요 ! " 아마... 나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게 바로 만화가 주는 몰입이다. , 짬뽕이다 !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만화가 아니라 몰입이다.
후루야의 < 이나중 탁구부 > 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 엽기 코드의 선구적 작품 > 이라 할 수 있다. 하루키가 즐겨 사용하는 " 자두 " 보다 후루야의 " 위행위자 " 가 더 강력하다. ( 부끄러워서 자위 대신 자두'라 쓰는 나를 용서해 달라. 여러분은 자두라 읽고 자위'라 생각하라. ) 어느 문학 모임에서 < 두더지 > 를 두고
"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과 쌍벽'을 이루는 걸작... " 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가 쌍욕'을 먹을 뻔했지만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는 점점 도스토예프스키를 닮아간다. 후루야여 ! 영광있으라. 하루키의 자두는 고상하고, 후루야의 자두는 저질이 되는 기준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그런가 하면 < 닥터 슬럼프 > 는 똥'이 얼마나 친근한 오브제인가를 일깨워준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한다. 그동안 나는 똥을 경멸했었다. 하지만 이 만화를 읽고 나서 < 똥 > 을 사랑하게 되었다. 만화에서 똥이 등장할 때마다 나는 자지러지게 우스면서 코 팠다. 잇힝. 이제는 한가인 앞에서도 똥이라는 단어에 대해 자신있게 똥똥거리며 말할 수 있다.
- 오브리 비어즐리의 작품이 예술 작품이라는 데에는 모두 동의한다. 하지만 만화가'가 그린 몇몇 만화가 예술이라는 데에도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인간은 더러운 것'을 혐오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더러운 것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사랑을 확인한다. 여고생들은 우정을 과시하기 위해서 친구가 씹던 껌을 씹기도 한다. 그것은 더러운 것을 교환함으로써 우정을 증명해 보이려는 심리'이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남녀 간 성 행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성이란 서로의 타액을 교환하는 행위이다. 그러니깐 똥'은 사랑이다. 만화가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 소용돌이 > 는 미학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작품이다. 강렬한 명암의 대비와 간결한 선화 그리고 장식적 소용돌이는 19세기 오브리 비어즐리'을 연상케 한다. 이토 준치'는 한마디로 끝내준다. 두 말 하지 않으련다. 세 말 하면 입 아프니 내 말 새겨듣기 바란다. 만화 우습게 보다간 큰코 다친다.
끝으로 절규 신데렐라'를 소개하며 끝을 맺겠다. 먼 곳에서, 16년 동안 만화의 성지인 일본에서 일본 만화가들과 맞짱을 뜨며 열심히 싸우고 있는 내 친구인 순정 만화가'에게 경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