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킹은 킹이다 !
떡 줄 놈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실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 춘향이는 변학도에게 몸을 줄 생각이 추호도 없는데, 변학도'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화려한 비단 음경가리개'로 갈아입는 꼴이다. 곰곰생각하는발 씨'가 그렇다. 그는 미리 근사한 수상 소감 전문을 작성한 것이다. 소설을 쓰기도 전에 말이다. 당선자들은 수상 소감으로 " 문학이여, 영광 있으라 ! " 를 외치며 자신을 키운 것은 팔 할'이 문학이라고 고백한다. 왜, 그런 뻔한 거짓말을 하나 ? 문학이 당신을 키웠다면 당신을 키운 부모는 시다바리'인가 ? 그런 건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문학 대신 부모를 하와이에 보낼 위인이다. 너무나 상투적인 당선 소감문에 질려버린 곰곰생각하는발 씨'는 소설을 쓰기도 전에 미리 수상 소감'부터 적었다. 가급적이면 건방지게, 쿨하게, 나를 키운 것은 팔 할'이 부모이고, 일 할은 영화였으며, 나머지 일 할'은 문학이었노라고 고백하리라.
" 원, 투, 쓰리... 아아아, 아아아, 마이크 테스트, ( 삐이이익 ) 원투쓰리 강냉이, 아주 공갈 염소똥 십 원에 열두 개... 아, 아아아 ! 이 자리를 빛내주신 문청 여러분. 제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훌륭한 선배로부터 후대에 빛날 벼락 같은 작품이라는 칭찬 릴레이'보다는 " 해법수학 " 이나 " 성문기본영어 " 처럼 잘 펼려서 돈 걱정을 하지 않는 작품을 쓰는 것이 제 목표올시다. " 이렇게 수상 소감을 작성하고는 혼자서 낄낄 웃는다. 아, 통쾌하다 ! 그렇다, 제임스 조이스'가 되느니 스티븐 킹'이 되겠다. 킹이 쓴 책을 읽으며 얼마나 재미있었나 ! 그런 그가 < 유혹하는 글쓰기 > 라는 소설작법 창작론" 을 썼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박장대소하게 된다. 오이도행 전철 안에서 무릎을 치며 읽다가 웃겨서 침을 흘린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글쓰기에서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
고향 찾아 삼만리" 라고 쓰면 될 것을 굳이 " 시원적 원형의 광명'을 찾아 떠나는 오이디푸스적 맨발의 고행 " 이라고 쓴다는 것이다. 이런 문장을 쓰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 먹물 " 이다. 그나마 " 먹물 " 이면서 " 먹물 " 이라고 말하는 문어는 계급에 대한 커밍아웃'이므로 봐줄 만하다. 문제는 꼴뚜기이면서 문어 행세'를 한다는 점이다. 킹 할아버지가 보시기엔 심히 좋지 않다. 거짓'은 문장을 망치는 첫 번째 요소'이다. 나는 창작론이 이토록 재미있다는 사실에 혀를 내두르며 읽고 있는데 결정적 문장이 내 눈에 들어왔다. ( 나는 이 책을 2006년에 읽었다. ) 바로 이 문장이다.
나는 등장 인물의 신체적 특징이나 옷차림 따위를 시시콜콜하게 묘사하는 방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 특히 의류 명세서 같은 소설은 정말 지긋지긋하다. 옷에 대한 설명을 읽고 싶으면 차라리 패션 상품 카탈로그를 보겠다. )
이 지점에서 독자는 우우, 하지 말고 와와, 해야 한다. 혹은 우와, 라고 말해도 좋다. 그렇다 ! 바로 이 지점이 킹의 소설작법이 다른 국문과 교수가 쓴 소설작법'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일반적 소설 작법은 대부분 이렇게 쓸 것이다. " 등장 인물의 신체적 특징과 옷차림'은 등장 인물의 캐릭터 구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므로 반드시 세밀하게 구축할 것 ! " 나는 < 보봐리부인 > 을 읽다가 미쳐서 죽을 지경까지 간 적이 있다. 나는 보봐리를 읽는 내내 차탈리'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세부 묘사는 보봐리 부인의 벌거벗은 몸에 대한 집요한 세밀화였지, 옷 입은 보봐리 부인의 풍경화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옛날옛적 옷'을 상상하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플로베르가 매우 훌륭한 작가라는 점을 안다. 다만 내 취향은 아닐 뿐이다. 나는 복장도착자는 아니다.
이 책에서 킹 할아버지'는 그답게 뻔한 " 문장 강화 훈련 " 을 시키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작법 책이 플롯이 중요하다고 강조할 때, 킹은 플롯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플롯은 개나 줍시다 ! 이처럼 이 책은 시니컬한 조롱이 대부분이다. 받아쓰기 몇 번 한다고 해서 세익스피어가 된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소설을 쓸 것이다. 킹 할아버지'가 미쳤다고 자기 밥그릇을 넘볼 호랑이 새끼'를 키우겠는가 말이다. 프로야구 타격왕'은 절대 현역 시절에 " 타격교본 " 따위를 쓰지 않는 법이다. 은퇴 후라면 모를까. 그런데 그가 마지막 즈음에 쓴 문장 하나'가 묘하게 가슴을 울린다. 부끄러워서 그랬는지, 그는 별 수식 없이 빠르게 쓰고는 조용히 지나간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종이에 옮겨놓은 낱말은 단 한 개도 없었다. 더러는 우정 때문에 했던 일도 있지만 - 출판계의 용어로는 상부상조라고 한다 - 그것은 아무리 깎아내려도 좀 유치한 물물교환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글을 쓴 진짜 이유는 나 자신이 원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써서 주택 융자금도 갚고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냈지만 그것은 일종의 덤이었다. 나는 쾌감 때문에 썼다.
그렇다. 그는 오르가슴을 위해서 글을 쓴 것이다.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좋아서 쓰다 보니 돈도 생기고 명예도 생긴 것이다. 특별히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쓴 것도 아니고, 어떤 사명감을 위해 쓴 것도 아니다. 지구는 독수리 오 형제'가 지키고, 대한민국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킨다 ! 킹은 그냥 좋아서 쓴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들어 보았던 고백 중에서 가장 소박하면서 감동적인 것이었다. 오, 오오오르가슴을 위해서 썼다니 ! 하루키가 자위하려고 씁니다, 라고 고백한 것보다 좋다. 마지막으로 킹이 남긴 조롱으로 끝을 맺겠다.
나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글을 써보려고 하는 사람들을 기꺼이 격려해주고 싶지만, 그렇다고 세상에 나쁜 작가란 없다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 미안하지만 세상에는 형편없는 글쟁이들이 수두룩하다.
+
http://myperu.blog.me/20144553474 : 사진에 대한 글들...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87511 : 정성일 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