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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황금빛 유혹 ㅣ 다빈치 art 9
신성림 지음 / 다빈치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붕어 : 실패한 모든 사랑은 목에 걸린 가시다.

집이 쫄딱 망했다. 정확한 기억을 복기할 수는 없지만 그 많던 짐들은 단칸방으로 이사를 하면서 매우 단촐한 살림으로 변해 있었다. 좋게 말하면 이사'이고, 나쁘게 말하면 도주'였다. 우리 가족은 그 겨울밤에 신나게 달린 것이다. 야호 ! 야밤도주인 것도 모르고 말이다. 단칸방으로 이사하기 전까지는 강남 은마 아파트에 살면서 출퇴근 가정부까지 둔 넉넉한 생활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단칸방으로 쫒겨난 식구들은 칼잠을 자야 했다.
아, 갈치처럼 모로 누워 잠을 자야 하다니. 이제와서 부끄러울 게 뭐가 있나. 어머니는... 음, 그러니깐, 그게, 음, 험험, 에에... 복부인이셨다. 당시에 부동산 투기'가 기승을 부렸는데 어머니는 아파트를 사고 팔고 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버셨던 것 같다. 쉽게 번 돈은 쉽게 날리는 법, 욕심이 화를 불렀다. 그때 빚쟁이들 돈은 제대로 갚으셨나 모르겠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 사실을 묻지 않았다.
이사를 간 곳은 변두리 촌구석 농촌 마을'이었다. 마을에는 유독 고목이 많았는데 여름만 되면 송충이들이 비처럼 떨어지고는 해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런가 하면 이웃집 아저씨'는 병색이 깊어 보였다. 늘 기침을 달고 사셨다. 아저씨는 평상시엔 어두운 방 안에서만 지냈는데 기운'을 조금 차리면 늘 낚시 도구를 챙겨서 근처에 있는 저수지를 향하고는 했다. 아저씨의 유일한 스포츠이고 외출이었다. 솜씨가 꽤 좋으셨던 모양이다. 어망에는 늘 붕어들이 가득했다. 아저씨는 씨알이 좋은 붕어는 어머니'에게 주었고 나머지 붕어로는 붕어즙'을 만들어 약처럼 복용하셨다. ( 낚시를 하지 않는 날에는 산에 가서 뱀을 잡으시고는 했다. )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좋은 이웃이었다. 당시 쌀도 궁하던 살림이어서 붕어'는 매우 훌륭한 반찬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아마, 서로 먹겠다고 다투며 허겁지겁 먹은 모양이다. 붕어 가시'가 내 목에 걸린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목에 가시가 걸렸는데 그것을 미련하게 방치하다가 119에 실려갔던 모양이다. 죽다 살아났다는 말은 거짓말이고, 그냥 꽤 아팠나 보다. 호되게 당하고부터 나는 붕어나 붕어 요리'만 보면 헛구역질이 났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때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남아서 강력하게 반응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웃 아저씨는 그리 오래 살지 못하셨다. 어느 날이었다. 나는 깊은 밤, 통곡 소리에 깨어났다. 그땐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저씨의 죽음을 알아차렸다.

지금도 아저씨를 생각하면 집 밖에 걸려 있던 어망이 생각난다. 내 목구멍을 넘기지 못한 가시처럼 그해를 넘기지 못한 아저씨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붕어 비린내가 떠올랐다. 내가 목격한 첫 번째 죽음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 나는 붕어에 대한 묘한 포비아'를 가지고 있었다. 공포라기보다는 헛구역질이 났다. 정확히 말하면 공포는 아닌 것 같다. 붕어'는 조금 더 확산되어서 나중에 금붕어'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게 되었다. 아, 이 빌어먹을 붕어 새끼들 !
내가 붕어'에 대하여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는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때문이었다. 첫사랑 여자가 있었다. 그녀가 일본에서 보내온 선물이 일본어로 된 구스타프 클림트 화집'이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였다. 내 취향은 클림트보다는 에곤 쉴레'였으나 클림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그림을 보고, 보고, 보고, 보았다. 그런데 그림 중 하나'가 계속 내 심기'를 건드렸다. 벌거벗은 세 여자'가 있는 그림인데 세 여자 사이에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다. 볼 때마다 속이 울렁거렸다. 그림 속 생선'이 내 속을 뒤집어놓은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그림의 제목이 바로 < 금붕어 > 였다. 일본어에 까막눈이다보니 일본어로 된 책을 보아도 알 턱이 없었다. 내 속이 울렁거렸던 이유다. 이러한 특이 증상은 세월이 흐르면서 나아졌다. 이제는 붕어'를 보면 속이 울렁거리지는 않는다.

첫사랑은 무뚝뚝한 여자였다. 나는 토말에서 자주 앓았다. 그럴 때마다 아무도 모르게 손톱이 자라듯 손금'이 자랐다. 부끄러웠다. 그후 황량한 이리 하나가 바람결에 소식을 전해와서 페루'로 향했다. 리마에서도 나는 시름시름 앓았다. 그곳에서 마추픽추 사진이 담긴 여행엽서'와 몇 장의 편지'를 도쿄에 있는 그녀에게 보냈다. 가을이 오면 하드커버 책 페이지 사이사이에 꽃잎을 넣어 말리듯, 나는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마른 칼을 접어 보냈다. 어쩌면 그 칼은 도착하기도 전에 바스락 바스락 부서져 티끌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도 가끔 편지를 보냈으나 편지는 오지 않았다. 수취인불명'이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린 모양이었다. 술에 취하던 어느 밤, 나는 편지를 담은 상자를 들고 언덕에 올랐다.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서 분지르자 고사목 가지들이 경쾌하게 부러졌다. 담배를 한 모금 피웠다.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그냥 언덕길'을 내려왔다. 아직도 나는 그 편지들을 간직한다.
두 번째 사랑은 오래 사귀었으나, 결국은 헤어졌다. 세월이 약이려니 생각했다. 몇 년이 지났으니 이젠 잊혀질 만도 하다. 그러나 잊고 있다가도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기억은 유년 시절의 통증을 잊었지만 몸은 종종 그 통증'을 기억해내고는 했다. 목구멍 깊숙이, 옹이처럼 박힌 그 생선 가시'를 기억해낸다. 환각통'이다. 그렇게 떠오를 때가 있다. 실패한 모든 사랑은 목에 걸린 가시다.

기형도 시인은 나무는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를 가득 피웠다고 썼다. 아, 나는 기형도처럼 멋진 문장을 쓸 수는 없어서 김밥은 황폐한 재료를 숨기기 위해 돌돌 말린 김밥 위에 깨를 잔뜩 뿌렸다고 썼다. 김밥이 다 거기서 거기지만 김밥 속 재료가 부실하면 할수록 깨가 잔뜩 묻어 있다.
고급 재료가 듬뿍 들어간 김밥보다는 당근, 단무지, 시금치가 전부인 꼬마김밥에 깨를 아낌없이 뿌린다. 그것은 마치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이파리를 피우는 나무의 방식과 같다. 이처럼 저렴한 음식에는 깨 인심이 후하다. 어쩌면 기형도 시인은 시장 한 모퉁이 좌판에 쪼그리고 앉아 꼬마김밥을 먹다가 시상이 떠오른 것은 아니었을까 ? 김밥은 황폐한 재료를 숨기기 위해서.... 라고 하기엔 창피하니깐 나무의 은유를 끌어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고소한 참기름이 발린 김밥에 잔뜩 묻은 깨를 볼 때마다 내 生을 스치고 지나간 사랑했던 가난한 사람들이 생각난다. 엄마의 싸구려 인조 모피가 생각난다. 결혼식과 장례식 때에만 입는 장롱 속 아빠의 검은 양복도 생각난다. 가난한 몸이 부끄러워서 아낌없이 쏟아내는 황홀한 사치가 생각난다. 철없던 시절, 잔뜩 뿌려진 깨를 부끄러워한 적이 있었다. 실패한 모든 사랑은 목에 걸린 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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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나는 삼천포의 명수다. 쓸데없는 소리'가 팔 할이다. 붕어 가시에 목이 걸린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사랑이야기로 빠지는가 하면 죽방멸치 이야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김난도'가 튀어나오는 형식'이다. 처음부터 내가 삼천포로 빠진 것은 아니었다. 한때 내가 입에 달고 다닌 소리는 " 요점만 말해 ! " 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것은 비과학적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삼천포를 경멸했어 !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고부터 절실히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는 직장 생활은 모두 요점만으로 이루어진 세계란 점이었다. 이것 하세요, 저것 하세요 ! 그때부터 삼천포가 그립기 시작했다. " 화가는 바람을 그리기 위해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그린다. " 윤희상 시인의 말이다. 마찬가지다. 나는 실패한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목에 걸린 가시에 대해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삼천포, 그리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