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리 입말 사전
오소리 입말 사전 : 乙은 새다.
소율이 쓴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은 10년 동안 총 124부가 팔렸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팔린 책 가운데 100부'는 출판사가 사재기'를 해 충무로에 위치한 회사 창고에 쌓아두었는데, 그나마 화재로 소실되는 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비운을 겪었다. 결국은 24권 정도만 팔린 것이다. 그렇다고 24권이 다 팔린 것도 아니다. 사전을 집필한 소율 본인이 보관 및 선물용으로 구매한 책이 20권이니 실제로 팔린 책은 4부가 전부다. 그는 온몸을 바쳐 쓴 책-사전'이 외면받는 현실에 실망하여 자신이 선물로 나눠준 책을 모두 수거한 후 책을 불태운다. 천박한 독서 문화와 개 같은 독자를 향한 소리없는 항의였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소율은 술만 마시면 " 더러운 독자여, 언니의 독설 같은 책이나 읽다 죽어라 ! " 라고 외쳤다고 한다. 설상가상 이 책을 출간한 형설시공사도 화재로 재고를 쌓아둔 창고가 소실되는 바람에 인쇄 필름 원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잔인한 비극이다. 행운인가, 아니면 불행인가. 공교롭게도 나는 이 위대한, 절판된 책-사전'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동안 이 책을 소유한 책 주인을 찾아다녔다. 그들에게 나는 죽음의 사자였다. 그들은 오로지 이 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에게 살해되었다. 그렇다, 나는 에코의 < 장미의 이름 > 에 나오는 눈 먼 호르헤 수사'였다. 이 자리를 빌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책사전 : 소설과 사전이 혼합된 형식이다. 소율의 글쓰기에서 유래하였다
이 사전은 매우 독특하다. 기존의 사전 분류, 체계, 기표, 기의'를 180도 뒤집는다. 이 전복성은 지금까지 자리잡았던 언어체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보자. 민중사 판 국어사전에서는 < 희한하다 > 를 " 매우 드물거나 신기하다. " 로 정의하고 있으나, 형설시공사 판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에서는 < 희한하다 > 라는 형용사에 대한 정의를 " 히읗'이 연속적으로 3개'가 이어져서 보기 드문 형용사 " 라고 기술한다. 이러한 전복적 정의'는 단어가 맺고 있는 관계를 허물고 새로운 짝을 맺어준다. 민중사 국어사전'은 < 희한하다 > 와 비슷한 단어로 < 놀랍다 > 를 선택했지만, 형설시공사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은 < 희한하다 > 와 비슷한 단어로 < 두덜대다 > 라고 말한다. 디귿'이 연속적으로 3개가 나열된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 희한하다 > 라는 낱말과 비슷한말은 < 두덜대다 > 이다.
■ 두덜대다 : 남이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자꾸 불평을 하다
< 두덜대다 > 는 결국 < 혼잣말하다 > 와 상황이 유사한데, 우리는 흔히 < 혼잣말 > 하는 사람을 정신이 이상한 자 혹은 희한한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던가. 광인이란 본질적으로 타자와 소통을 거부한 채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odd 다. 그렇기 때문에 희한하다와 두덜대다는 한 뿌리이다. 소율은 < 희한하다 >의 뿌리말'까지 추적하여 기술한 것이다. 놀라운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은 단어와 단어가 맺는 관계를 새롭게 정의한다. 그는 지금까지의 단어는 < 갑 > 에 의해 쓰여진 불평등한 관계라고 지적한다.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이전'은 모두 갑의 시선으로 작성된 관계로, 갑은 철저하게 을을 조롱하며 파괴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 새되다 > 다. 싸이가 " 나 완전히 새 됐어 ! " 라고 외칠 때, < 새 > 는 몹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상태를 의미하는 부정적 언어'로 쓰인다. 그런데 왜 하필 많고 많은 짐승 중에서 < 새 > 인가 ?! 쥐 됐어, 소 됐어, 따위는 사용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 이러한 의문점을 소율은 명쾌하게 답을 제시한다. 이 사전이 1999년에 쓰여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율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다음은 사전에서 부분 발췌한다.
" 나, 완전히 새 됐어 ! " 에서 새 됐어'는 좆 됐어'라는 말을 순화한 것이다. < 좆 > 은 남성 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인데, 주로 부정적 의미로 신분이 미천하거나 비하할 때 쓰인다. 좆만 한 새끼, 좆 까라, 니미 좆이다, 8월의 물렁 좆, 좆도 없는 놈으로 활용되고, 존나, 졸라 등으로 변형되어 사용된다. 이 걸죽한 입말에서 좆은 새로 치환된다. 좆 = 새'다. 그렇다면 새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우리가 흔히 갑과 을'이라고 할 때 쓰이는 한자 乙에 정답이 있다. 乙이라는 한자 뜻은 새(bird)다. 새 乙이다. 결국 새 됐어, 좆 됐어, 따위는 乙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단어는 갑 중심이다. 21세기는 갑과 을이 대립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소율. 형설 시공사. 1999
甲은 갑옷 갑이고, 乙은 새 을'이다. 그러니깐 갑은 무거운 것을 의미하고, 을은 가벼운 것을 의미한다. 소율은 이 지점에서 가벼운 존재에 대한 갑의 무의식적 경멸을 읽는다. 대표적인 낱말이 벌레'다. 벌레는 가볍다는 이유로 하찮은 것으로 취급된다.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소율은 새 = 좆'을 동일한 범주로 묶은 후 언어적 폭력이 어떠한 방식으로 집요하게 이루어졌는가를 밝혀낸다. 여기서 남근과 좆'은 다르다. 남근은 권력을 의미하고, 좆은 권력이 거세당한 대상을 의미한다. 비주류다. 한국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갑은 좆을 새와 동일한 범주에 놓는다. < 새되다 > 가 목소리가 높고 날카롭다는 사전적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역설적으로 여성적인 남성에 대한 조롱처럼 읽힌다. 새란 여성성을 대표하는 대표적 짐승이 아니었던가. 이처럼 마초인 갑은 비주류를 항상 폭력적으로 다룬다. 그 흔저은 고스란히 사전에 침투하였다는 것이 소율의 주장이올시다.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은 놀랄 만한 책이다. 김훈이 쓴 < 칼의 노래 > 가 벼락 같은 축복이라면, 소율이 쓴 < 깻잎 오소리 입말 사전 > 은 개벽 같은 출현이라 할 만하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사전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지구가 멸망하는 날, 단 한 권의 책을 타임캡슐 안에 넣어야 한다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 책을 선택할 것이다. 위대한 책이다.
+■ 을씨년스럽다 : 을씨년은 '을사년(乙巳年)'이 변해 생긴 말이다. 을사년(1905년)은 우리나라가 강제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통감정치가 실시된 해다. 즉 을사보호조약으로 일본의 속국이 되었으므로 을사년은 민중들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해인 것이다.그래서 마음이나 날씨가 어수선하고 흐릴 때 '을사년스럽다'고 하던 것이 지금의 '을씨년스럽다'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