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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살인 ㅣ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5월
평점 :
오리엔트 특급 살인 : 명탐정 포와로'는 독자를 속였다 !
- 내 제안에 잘못된 것이 도대체 뭐가 있죠 ?
- 개인적인 일입니다만, 나는 당신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래체트 씨.
오리엔트 특급 살인 中
http://blog.aladin.co.kr/749915104/6291705
우리는 소설가의 < 말 > 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더군다나 탐정 소설인 경우, 탐정이 내린 추론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독자인 당신은 셜록 홈즈나 포와로가 내놓은 결과에 대해 절대적 신뢰를 보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엉터리 결론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삐에르 바야르는 이 사실을 상기시킨다. 무슨 말인가 하면 소설 속 홈즈와 포와로는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고는 의기양양하게 end를 고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는 점이다.
< 오리엔트 특급 살인 > 이라는 추리소설을 예로 들자면 포와로는 범인들에게 감쪽같이 속는다. 포와로가 속았다는 것은 곧 이 책을 쓴 애거서 크리스티'도 속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물며 독자라고 안 속을 수 있나. 지금부터 나는 < 오리엔트 특급 살인 > 에서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가 자신이 만들어놓은 캐릭터들에게 어이없이 속는 진풍경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 오리엔트 특급 살인 > 은 모두가 아는 내용이다. 형식은 밀실 트릭이라 할 수 있다. 폭설로 정지된 열차.1등실 객실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그리고 범인은 12명 가운데 1명...
모두 다 아는 내용이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스포일러 유출이고 나발이고, 호들갑은 떨지 말자. 함정은 " 1/N " 에 있다. 우리는 늘 이런 밀실 트릭에서 범인을 < N 명 가운데 1명 > 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서 < ~ 명 가운데 1명 > 이 아니라 < 12명 모두가 범인 > 인 트릭을 만들어낸다. 그 유명한 " 오리엔트 특급 살인 트릭 " 이다. 소설 마지막에 밝혀지는 결말은 < 식스 센스 > 를 능가하는 반전이었다.애거사, 떼돈 버셨다. 브라보, 크리스티 여사'에게 영광 있으라 !
그런데 포와로는 범인들에게 속았(을 수도 있)다. 물론 독자인 우리도 속았(을 수 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포와로는 래체트'가 신변 보호를 요청하자 단번에 거절한다. 거절 이유는 상당히 의외다. 레체트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란다. 단지 그 이유 하나가 전부다. 포와로는 그가 이유없이 미운 것이다. 추리'란 논리 싸움인데 이 논리 싸움에 감정이 들어가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다. 포와로는 시작부터 탐정이 가져야 할 기본적 자세를 버린 것이다. 포와로'는 레체트 앞에서 당신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제안을 거절한다는, 매우 무례한 말을 한다. 래체트 씨에게는 치욕이었으리라. 마음의 상처를 입었으르라. 그런데 이 마음의 상처'는 곧 진짜 상처가 된다. 다음날 그는 칼에 찔려 죽는다. 자상은 12 곳이었다. 난도질이었다.
포와로는 이 살인사건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래체트 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래체트는 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길은 살인범을 잡는 것이다. 그런데 일이 묘하게 꼬인다. 1등실 승객 12명'은 모두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다. 알리바이'는 alius ( 다른 ) + ibi ( 거기에 ) 를 합친 것으로 " 다른 + 장소에 " 라는 뜻이다. 그러니깐 용의자가 살인이 일어난 장소'에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알리바이'다. 현장부재증명/現場不在證明'은 곧 타소존재증명/ 他所存在證明'을 의미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 장소A에 내가 없었음/부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장소 B에 내가 있었음/존재'를 증명 " 하면 된다. 그렇다면 다른 장소에 당신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대상은 누구인가 ? 바로 누군가가 당신을 보고 있었다는 설정'이다. 그것은 응시다. 알리바이란 2명 이상이 (살인현장이아닌) 다른 장소에 함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혼자일 때는 성립이 될 수 없다. < 오리엔트... > 에서 12명의 용의자가 모두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12명 각자가 다른 장소에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줄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논리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12명 가운데 1명이 살인을 했다면 1명은 반드시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살인을 할 때는 반드시 혼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2명 모두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적어도 살인자 1명과 더불어 그를 돕는 공범 1명 이상'이 이 사건에 개입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와로는 초점을 < 범인 > 이라는 단수에서 < 범인들 > 이라는 복수에 맞춘다.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12명 모두 범인이라는 것이다.
살인자들이 최후 진술에서 밝힌 살인 동기는 죽은 래체트'는 악당 가운데 최고 악당이요, 죽어 마땅한 놈이었다는 진술이었다. 그는 아이 유괴범이며 살인자. 그리고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간 자였다. 결국 1등실 12명은 모두 이 사건과 관계된 사람들이 모여서 죽은 아이'의 복수를 대신하기 위한 모인 것이었다. 그것은 순수한 복수였다. 죽은 영혼을 달래기 위한 응징이었다(라고 살인자들은 진술한다.중요한 것은 이 진술의 신빙성'이다. 거짓말이 늘수록 신뢰는 무너지는 법이다. 양치기 소년처럼 말이다. ) 그런데 놀랍게도 포와로는 살인자(들)가 늘어놓는 변명을 듣고는 이 사건을 덮기로 한다.
이 지점에서 포와로는 수사를 망친다. 왜냐하면 12명의 승객이 모인 이유는 반드시 인간적인 복수심 때문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죽은 아이의 할머니(백만장자)가 12명에게 살인에 대한 보수를 지불하기로 하고 청부살인을 지시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 그러니깐 12명은 돈을 위해서 모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포와로는 슬픈 얼굴로 진술을 나열하는 살인자들이 고백하는 말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12명은 첫 페이지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페이지 끝까지 거짓말(들)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크레타 섬 사람들인 것이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은 결국 끝에 가서도 거짓 변명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포와로는 이 거짓말쟁이들이 마지막에 하는 말도 끝까지 의심했어야 했다. 억울하게 죽어간 어린 아이에 대한 복수라는 이 비장한 서사'는 거짓말쟁이가 하는 또 다른 거짓말'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포와로는 그걸 믿는다. 왜 ? 정답은 처음부터 래체트가 싫었으니깐. 12명의 마지막 진술은 또 다른 대응 시나리오였을 것이다. 포와로는 속는다. 그는 이성과 논리로 사건을 풀어나가기보다는 감정적으로 이 사건을 풀어나가다가 그들에게 속은 것이다. 포와로가 떠났을 때, 남은 12명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엔 반전이 하나 숨어 있다. 과연 포와로는 그들에게 속았을까 ? 그는 속지 않았을 수도 있다. 속는 시늉을 할 뿐이다. 죽은 척하는 생태처럼 말이다. 얼어죽은 동태는 정말 얼어서 죽은 것인가 ? 아니면 죽어서 동사한 것이가 ? 그는 자기합리화'를 위해 사건을 미해결 상태'로 방치한다. 왜냐하면 이 살인 사건에 대해 포와로는 절반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포와로는 래체트를 " 교활한 짐승 " 이라고 판단했었다. 하지만 다른 이가 래체트 씨를 보는 판단은 전혀 다르다. 어떤 이는 래체트를 " 매우 품위 있는 " 사람이라고 말한다.
포와로가 래체트에게 가지는 선입견'은 결국 래체트를 죽음으로 몰고갔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범인이 열차 안 승객이라고 생각해 보라. 포와로의 명성을 생각하면 끔찍한 짓이다.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홧홧할 것이다. 그래서 포와로는 이 사건을 죽은 아이에 대한 인간 복수극이라는 살인자들의 진술을 믿는 척하는 것은 아닐까 ? 포와로는 결국 자신의 실수를 숨기기 위해서 사건을 은폐하고자 한다. 래체트가 죽어 마땅한 놈이 되는 순간 자신의 실수는 용납이 된다. 핵심은 거기에 있다. 그러니깐 포와로가 사건을 덮는 것은 얼핏 인간적인 처사 같지만 사실은 은폐하려는 몸짓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비겁하고, 비겁하고, 비겁하고, 비겁하고, 비겁하고, 비겁한 사람인지도...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 우리는 모두 속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