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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 하루 - 두려움이라는 병을 이겨내면 선명해지는 것들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1년 2월
평점 :
좋은 사람이 좋은 에세이를 쓴다
소설가는 굳이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소설은 어차피 " 구라의 세계 " 이니 구라쟁이가 빛을 발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도둑보다 도둑놈 심보를 잘 아는 이는 없지 않은가 ! 그렇기에 소설가의 사람 됨됨이로 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꽤나 웃긴 일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문학 작품에 있어서 좋은 태도보다 앞서는 것은 좋은 문장이다.
반대로 에세이는 사정이 다르다. 좋은 에세이스트가 갖춰야 할 것은 좋은 문장보다 좋은 태도에 있다. 평소에 갑질하는 사람이 갑질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다면 그 칼럼이 좋은 칼럼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조지 오웰의 에세이를 으뜸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평소 작가가 실천한 " 삶에 대한 좋은 태도 " 에 있다. 내가 하루키 문학 작품을 좋아하지는 않으나 하루키 에세이는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이유도 평소 작가의 건강한 생활 태도에 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에세이를 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 나뒹구는 에세이는..... 팔 할이 쓰레기'다.
직설하자면 : 신달자(with유안진st)나 김미경 류의 에세이는 좋은 글이 아니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고, 입증보다는 간증에 집착하고, 교사보다는 선생이 되어서 ㅡ 질(선생질) 을 남발한다. 이런 책들은 서로 다른 사연을 제각각 이야기 하고는 있으나 내 눈에는 모두 다 똑같은 내용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 말 그대로 천편일률( : 천 권의 책이 모두 한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음. 죽 모든 사물이나 글에 차이점이 없이 똑같음)적이다. 하 _ 하는 한숨을 내쉬다가 결국에는 하악질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 알고 보니 고양이였엉 ?
지금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책을 읽는 이도 있다는데 이런 책 읽고 나서 사람-되기는커녕 하악질을 남발하는 고양이가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독자를 고양이로 만드는 책은 나쁜 책이다. 이화열 에세이집 << 지지 않는 하루 >> 는 신형철의 지적대로 한국식 에세이의 나쁜 관습이 말끔히 제거된 책이다. 동정이나 연민을 이용해서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고, 자신의 불행을 쓰빽따끌한 간증의 서사로 이용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좋은 생활 태도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좋은 태도와 함께 좋은 문장도 돋보인다.
이 책 첫 번째에 수록된 < 트라디시옹 > 이란 에세이는, 박완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구슬 같은 작품이다. 이 글이 너무 좋아서 열 번은 읽은 듯하다. 작가는 빵집에서 트라디시옹이라는 프랑스 전통 빵(바게트와 비슷한 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 사이, 이런저런 생각과 대화가 오고 간다. 주문한 빵이 나오고 그는 따스한 빵을 겨드랑이에 끼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냄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 오늘도 빵 머리를 뜯고 만다 ". 집에 오면 제품 사용설명서 같은 남편이 기다렸다가 한마디 한다. 이에 아랑곳할 그녀가 아니다.
파먹힌 빵 한 귀퉁이를 잘라주며 말한다. " 오늘은 진짜 더 맛있어. 얼른 먹어봐. " 일상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일상적인 풍경을 묘사한 글이지만 묘하게도 감동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빵 만드는 사람의 기분처럼 빵 가게 빵 맛은 매일 똑같은 맛이 아니다. 하지만 단골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끔은 망한 트라디시옹을 감수한다. 만약 매일 완벽한 빵을 산다면 완벽한 맛에 대한 경탄은 당연함과 식상함으로 바뀔 터이니.
음식 맛의 민감한 변화에도 노발대발하는 백종원이 읽었다면 고기를 씹다 뱉는 버릇처럼 이 책을 냅킨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렸을지도 모른다. 이건 아니쥬 ! 이건 초심을 잃은 거유. 소비자가 뭔 잘못이래유 ? 그래유,안 그래유 ? 그에게는 " 단골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끔은 망한 트라디시옹을 감수 " 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공장에서 찍어내서 슈퍼마켓에 파는 바게트의 일정한, 천편일률적인 맛보다는 가끔은 단골 가게의 망한 트라디시옹을 옹호한다. 그래야지 " 오늘은 진짜 더 맛있 " 는 빵을 먹는 즐거움을 덤으로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에세이를 읽는 내내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 이 떠올랐다. 레이몬드 카버가 생활 에세이를 쓴다면 아마도 이런 문장과 분위기였을 것이다. 평소 좋은 책은 맛있는 초콜릿이 든 과자 상자와 비슷해서 아껴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유감스럽게도 하루 만에 다 읽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으련다. 좋은 책과 초콜릿 상자의 차이점 중 하나는 좋은 책은 텅 빈 초콜릿 상자와는 달리 다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저자의 쾌유와 건투를 진심으로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