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판도라 + 감기, 연가시

양반 댁 장례 때 상주 대신 돈을 받고 울어주는 " 곡비 " 라는 극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이 직업은 정 소모뿐만 아니라 육체노동의 강도도 높아서 며칠 밤새워 울고 나면 하루 정도는 앓아누워야 했다. 애닳고 크게 우는 울음소리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라,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초상 앞에서 목놓아 운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  하지만 곡비는 혼을 놓아 목놓고 울었다. 아이고! 아이고 !! 아이고 !!! 곡비는 두성과 흉성과 가성을 자유롭게 오가며 남들과는 다른 단조의 화려한 비애를 창조했다. 초상집을 제외하고는 일상에서 목놓고 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서 곡성 없이 초상을 치르는 경우도 흉이 아니다. 울어도 기껏해야 숨죽여 소리 없이 울 뿐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 재난 영화에서는 그 옛날 곡비들이 떼창으로 운다.  영화 << 판도라, 2015 >> 는 등장인물 모두 곡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에브리바디 크라잉 게임. 버스 안에서도 통곡을 하고, 체육관 안에서도 통곡을 하고, 거리에서도 통곡을 한다.  대사의 절반이 통곡이고 나머지 절반은 절규다. 참말로 그 절규가 뭉크하다. 여기에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슬픈 배경음악이 24시간 풀-가동되면 게임 오버. 울고 싶은 아이에게 뺨 때린 꼴이다. 지금 당장 울어, 어서 !!!  이것은 재난물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통곡물에 가깝다. 이런 영화는 " 팝콘에 콜라 " 보다는 " 현미에 우롱차 " 가 제격이다.  모두 다 우는데 나 홀로 울지 않으니 내가 마치 후레자식이 된 듯한 기분이 들지만 어쩌겠는가. 저런 개 같은 영화를 보면 화가 나는데 말이다.  재난 영화 속 캐릭터들이 이성보다 미친 감성에만 호소하며 대성통곡할 때마다 참말로 짜짜로니하다. 미춰버리겠습니다아. 돌고래 창법을 자랑하는 고음 가수가 서로 잘났다고 성대 대결을 펼친다고나 할까 ?  재난 앞에서는 감성보다는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개 같은 신파가 대중에게 먹힐까 ?  



2 윤이형에게 이상문학상이란 ?!

지난해 이상문학상을 받은 작가 윤이형이 절필을 선언했다. 김금희, 이기호, 최은영 등 일부 우수상 수상 작가의 수상 거부로 촉발된 이상문학상 출판사 갑질에 대해 윤이형이 이에 동조하여 수상 반납 및 절필 선언함으로써 절정에 다다른 모양새다. 그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글에서 "이상문학상을 돌려드리고 싶다"며 "부당함과 불공정함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 이라고 적었다. 이어 " 그런데 돌려드릴 방법이 없다 " 며 " 그래서 그 상에 대해 항의할 방법이 활동을 영구히 그만두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결정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많은 문인들이 지지 의사를 표시하며 함께 연대할 것을 도원결의한 상태이다. 그런데 나는 윤이형의 뜬금없는 절필 선언이 과잉 액션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 이상문학상 대상작인 경우 상금이 3,500만 원이다. 문학동네소설상, 대산문학상, 한겨레문학상 상금(5,000만 원)에 비해 낮은 금액이지만 오늘의작가상과 이효석문학상(3,000만 원), 한국일보문학상과 작가세계문학상(2,000만 원)에 비하면 높은 금액이다. 하지만 이들 문학상은 모두 장편 소설이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원고지 100매 내외의 단편을 선정 기준으로 삼는 이상문학상 수상작 상금으로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대상 수상과 함께 상징 권력을 획득하기에 무조건 출판사의 착취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반면, 이상문학상 우수작인 경우는 상금이 300만 원인 점을 감안하면 3년 간 저작권 유보 계약에 불만이 있을 수는 있다). 이 지점에서 내가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은 작가들이 왜 금전적 불이익에만 항의를 하느냐는 점이다. 지난 10년 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2010~2019년) 10편 중에서 이상문학상을 주관하는 출판사 문학사상의 문예지 < 월간 문학사상 > 을 통해 발표된 작품이 6편이나 된다는 점이다. 2019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윤이형의 << 그들의 첫 번째 고양이와 두 번째 고양이 >> 역시 < 월간 문학사상 2018.11 > 에 발표된 작품이다. 반면에 문학사상과 경쟁 관계인 대형 출판사(문학동네, 창작과비평)를 통해 발표된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정리하자면 문학사상사는 주로 월간 문학사상을 통해 발표된 작품 위주로 뽑되 나머지 작품은 경쟁사가 아닌 군소 출판사를 통해 발표된 작품만 골라 선정한다는 점이다. 윤이형은 저작권과 관련하여 그 부당함과 불공정함에는 뒤늦게 분노하면서 정작 심사 과정에서의 부당함과 불공정함에는 왜 아무 말도 없는 것일까 ?  말해보세요. 문학적으루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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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20-02-03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문학상은 2005년도였나 그걸 사서 읽고는 관심을 끈 기억이 납니다. 단편에도 상을 주고 이러네? 하며... 윤이형이란 분은 잘 모르겠는데, 재미있는 소리를 했나보네요. ㅎㅎ 뜬금포로 왜 저러나 싶긴 하네요. 검색을 해서 보니 작년에 대상을 받은 것 말고도 몇해 전에도 꾸준히 이상문학상우수상 뭐 이런 것들을 받은 모양인데...

동인문학상은 아직도 있나보네요. 김영하 작가도 받은 적이 있군요. 한국문학에는 관심을 끈지가 15년이나 지나서 잘모르는게 많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2-04 11:55   좋아요 0 | URL
이젠 문학상의 권위가 싹 다 죽었죠. 이제 플렛폼이 새롭게 바뀌었듯이
이제 한국 문학을 좌지우지했던 레거시 문학상도 죽음을 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작가들도 잘 알고 있죠.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는 꼴이죠. 솔까말 한 나라를 대표하는 문학상이 단편소설이어야만 한다는 것도 웃긴 일이죠.

2020-02-04 0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2-04 11:52   좋아요 0 | URL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겁니다. 문인이 불의에 싸우려고 하면 펜을 들어야지 절필이라니요 ! 그리고 이상한 이상문학상의 관행을 모르고 있었다니요. 전 오래 전에 알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 10편 중에서 이상문학상 주관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문예지 월간 문학사상에서 6편이나 선정된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심의 과정에서 수작이 들어갔다는 것인데 그것에 대한 불공정함에 대한 반성은 없어요. 솔까말 원고지 100매로 상금 3,500백만 원에 보이지 않는 상징 권력까지 얻었다면 결코 손해보는 일은 아니죠. 느닷없이 피해자 코스프레라니....

수다맨 2020-02-04 12: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작가들의 심정에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저 또한 곰곰발님과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이들은 왜 금전적 불이익(+저작권)에만 그렇게 예민해 하는가?‘
말씀하신대로 심사의 불공정함이나 오직 단편(만)으로 과다 상금 및 상징 권력 획득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 작가들이 공식적으로 이의 제기하는 모습을 거의 못 본 것 같습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후자(심사 문제, 과다 상금, 상징 권력 등등)에 대해서 언급해 보았자 작가들이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았으면 보았지, 이득 볼 일은 조금도 없거든요.

잘못된 관행으로 인해 작가에게 원하지 않은 불이익이 돌아간다면 이는 개선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봅니다. 단 작가들이 개개인들의 금전적 이익과 관련된 문제 말고도 좀 더 윤리적, 사회적인 문제에도 저렇게 목소리를 냈으면 합니다. 이를테면 친일문인을 기념하고 반민주/반노동을 교묘히 부추기는 신문사가 주는 문학상에 대해서 비판하는 작가들은 별로 못 본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2-05 00:07   좋아요 1 | URL
상을 주는 대신 저작권을 묶어두는 방식을 지금에서야 알았다고 쉴드를 치는 윤이형 작가가 저는 이해가 안 갑니다. 이것을 어떻게 모를 수 있습니까 ? 이런 관행은 나와 같은 문학 문외한도 알고 있었던 사항이었는데 말입니다. 최근 10년 간 이상문학상 대상 작품 중 6작품이 문학사상 문예지를 통해 발표된 작품입니다. 이것만 봐도 심의의 불공정이죠. 그것을 지적하는 이는 없어요. 골때리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