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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비평  부록에  대하여 :







독해를 독점하려는 전문가에게





나는 살아오면서 남에게 험한 욕을 한 일이 없다


- 살인자의 기억법, 51쪽









미국의 물리학자이며 뉴욕대 교수인 앨런 소칼은 1996년 미국 문화 연구 전문지 < 소셜 텍스트 > 에 << 경계선을 넘나들기 : 양자중력의 변형 해석학을 위하여 > 라는 논문을 싣는다. 


각주가 100개 이상 달리고 참고문헌만 200개가 넘는,  넘나 읽기 어려운 논문이었다. 하지만 이 논문은 앨런 소칼 교수가 며칠 동안 도서관에서 이 책 저 책 뒤지며 휘뚜루마뚜루 짜집기한 아무말 대잔치였다. 의도적으로 만든 엉터리 논문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논문이 엉터리라는 점을 지적하는 지식인이 아무도 없었다는 데 있다. 왜 ?!   이 논문의 저자인 앨런 소칼은 과학 분야에서 매우 명망 높은 전문가였기에 어느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앨런 소칼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종신 교수이자 뉴욕대학교 종신교수이기도 하다). 


그가 비판하고 싶었던 목적은 전문가의 지적 사기였다. 전문용어나 참고문헌을 제멋대로 인용하고는 제대로 된 결론도 내지 못한 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적 사기극은 < 소칼 사건 > 으로 불리며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계를 붕괴붕괴 직전까지는 아니어도 프랑스 좌파 지식인을 붕가붕가하게 만들었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것은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용어'였다. 전문가들은 비전문가와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 애매한 전문 용어를 의도적으로 구사하는 버릇이 있다. 이 간극이 심할수록 전문가의 권위는 높아진다. 


쉬운 예를 들자면 : 법조계에서 사용하는 법정 용어가 대표적이다. 세종대왕이 나랏말쌈이 듕국과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 해서 만든 한글로 작성된 법조문이지만 법조인이 아니라면 법률가의 자문을 얻어야만 해석이 가능하다. 그것은 사법 독점 권력과 권위를 강화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현상은 문학평론가에게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지적 허세'다. 신형철과 함께 문학동네 쌍철 중 한 명인 권희철은 김영하의 << 살인자의 기억법 >> 을 비평하면서 " 눈에 띄는 단점이 있다면 너무 잘 읽힌다는 것이다 " 고 말한다.  그리고는 " 이 책이 쉽게 읽힌다면, 


당신은 이 책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빛의 제국 』에 대한 김영하의 코멘트) " 라는 김영하의 말을 다시 인용하면서 강조한다. 권희철은 전문가의 해석 도움 없이 읽을 수 있는 독자의 독해력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이 소설을 쉽게 읽은 독자를 나무란다. 나는 살아오면서 남에게 험한 욕을 한 적 없었는데 권희철의 해설을 읽다가 갑자기 험한 욕이 튀어나왔다. 그는 문학을 법률가의 자문을 얻어야만 해석이 가능한 법조문 따위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동안 평론이랍시고 싸질러놓은 권희철의 난해한 비평을 읽을 때마다 앨런 소칼이 휘뚜루마뚜루 작성했던 아무말 대잔치 논문과 그것에 반응하는 전문가 사회가 떠오른다. 


의미 없는 말을 나열하는 문장과 그 문장을 독해하려고 똥을 쌌던 전문가와 전문가의 권위에 주눅이 들어서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독자가 얽혀서 만들어내는 그 지적 사기 말이다. 책 본문 뒤에 붙는 문학평론가의 부록은 일종의 출판사가 독자에게 주는 전문가의 (조언) 공짜 서비스다.  말이 좋아 서비스이지 그 작품에 대한 해석의 독점권 선포나 다름없다. 독자가 그 전문가의 독해를 거부하면 권희철에게 이런 소리 듣기 쉽다. " 이봐요, 독자 양반 ! 이 책이 쉽게 읽힌다면 당신은 이 책을 잘못 읽고 있는 것입니다아. 나, 서울대 나온 남자야 !!! " 주눅 들 필요 없다. 당당하게 말하라. 조팝에 볍씨 쌈 싸 먹는 소리하지 마세요. 


" 전문가들은 우리를 불구로 만든다. " 이반 일리치의 말이다. 전문가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그 사회는 무능력한 사회'다. 공자는 말했다. 공짜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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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20-01-15 0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록으로 딸려오는 그런 글을 뭔가 있는가 싶어서 읽을때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뭔 개소리여 하며 읽지 않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1-16 13:02   좋아요 0 | URL
소설 뒤에 붙는 해설 볼 때마다 전자제품 사용설명서 생각이 납니다. 열정도 없고,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수다맨 2020-01-17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해설이 필요한 소설집/장편소설은 크게 두 가지라고 봅니다. 하나는 문학사적 평가가 완전히 끝나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이것이 왜 불후의 명저가 되었는지를 작가론적 비평사적 의미에서 고찰하는 해설)이고, 다른 하나는 박상륭이나 이인성처럼 일반 독자들은 도저히 읽어내기가 어렵기에 평론가의 도움이 필요한 관념소설(작가의 난해한 서사 전략과 창작 방법론을 알기 쉽게 짚어주는 해설)들이지요.
막말을 하자면 김영하나 박민규, 김애란의 글에 해설을 다는 것은 작가 칭찬(에 더해 자기 학식 자랑하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1-18 20:06   좋아요 0 | URL
한국 문학 출판 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아니 무슨 신작에 해설이 붙습니까 ? 수다맨 님 말씀대로 문학사적 평가가 끝나서 그것을 비평적 관점에서 다룬 해설이라면 100번 환영합니다. 그런데 신작에 해설이 붙는다 ?! 이게 무슨 궤변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