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몽테뉴를 권한다 :
끼니를 굶는다는 즐거움
몽테뉴는 16세기 인간이었지만 사실은 " 인류 최초의 20세기 인간 " 에 가까웠다. 그는 신이나 왕(권력)에게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 " 관종 " 이었다. 몽테뉴는 몽테뉴를 메뉴(글감) 삼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 라이프 스타일 " 을 창조한 최초의 현대인이었다. 그의 라이프 스타일을 살짝 엿보기로 하자.
나는 낮에는 잘 수가 없다. 식사시간 사이에는 아무런 간식도 먹지 않으며, 새벽에는 조반을 먹지 않는다. 저녁을 먹은 후에 어느 정도의 시간―약 세 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잠자리에 들지 않는다. 나는 단지 밤 휴식시간 전에만 동침을 하며, 서서는 하지 않는다. 나는 땀이 잘 배는 물건은 쓰지 않는다. 나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순수한 물과 순수한 포도주는 마시지 않는다. 나는 모자를 쓰지 않고는 외출하지 않는다. 그리고 식사 후에는 머리를 깎지 않는다. 장갑을 끼지 않는 것은 속옷을 입지 않고 나가는 것처럼 곤란한 일이고, 식사 후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씻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이며, 침대 위와 앞의 휘장이 없어도 그럴 것이다. 마치 이 모든 것들이 꼭 필요한 물건인 것처럼.
보셨는가 ? 위대한 몽 씨는 이토록 시시콜콜한 인간이었다. 독자 입장에서는 그가 간식을 먹든 안 먹든 " 안물안궁 " 이지만, 이 시시콜콜해서 쓸데없는 소리처럼 들리는 것들이 모여서 최초의 " 라이프 스타일 " 이 만들어졌다. 내가 << 수상록 >> 에서 주목한 대목은 " 새벽에는 조반을 먹지 않는다 " 는 문장이다. 서양에서는 원래 아침을 먹지 않았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힘든 농사일을 하기 위해 칼로리를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 빈민층은 농사철에는 아침을 먹곤 했다. 그렇기에 조반(아침 식사)은 몸이 허약하여 영양 공급이 필요한 어린이, 노인, 병자나 육체노동자들이나 먹는 것
이라는 생각 때문에 일반인은 아침을 먹지 않았다(설령, 먹는다 해도 사람들에게 아침을 먹는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았다. 왜 ? 쪽팔리니까). 헤더 안트 앤더슨의 << 아침식사의 문화사 >> 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아침을 먹는 것은 힘든 농사일을 하기 위해 칼로리를 충분히 섭취해야 하는 빈민층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는 아침식사를 일부에게나마 허락할 수 있는 근거였다. 하위층 농민과 육체노동자들은 고된 노동의 첫 몇 시간을 버텨 낼 에너지가 필요했으므로, 이들에게는 아침식사가 허락되었다. 또 어린이나 노인, 병자처럼 몸이 약해서 한낮의 식사 때까지 참고 기다리기 힘든 사람들은 죽 한 그릇으로 속을 채울 수 있었다. 결국 이유가 무엇이든 아침을 먹는다는 것은 비웃음을 사는 일이었다.
즉, 옛날 서양인은 가벼운 점심과 그보다 조금 더 충실한 저녁 만찬을 즐겼으니 요샛말로 " 16시간 간헐적 단식 : 16시간 금식 후 8시간은 먹는 방법(아침을 굶고 점심과 저녁만 먹는 방법) " 을 생활화한 부류였던 것이다. 몽테뉴가 식사 시간 이외에는 아무런 간식도 먹지 않는다고 말한 것을 보면 그는 간헐적 단식을 철저하게 지킨 21세기 간헐적 단식 전도사였다. 몽테뉴라는 위대한 간헐적 단식 전도사'가 있다고 해서 프랑스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는 조선시대 간서치 이덕무가 있었으니까 ! 도서관에서 책 구경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 청장관전서, 13권 >> 은 금은보화'였다.
이덕무는 조선의 몽테뉴이자 스티븐 킹'이며 빅토르 위고, 루쉰, 도스토옙스키였다. 그의 문장과 내용은 배운 자와 (권력을) 가진 자'만이 쓰고 해독할 수 있는 문체에서 벗어나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잡문이었다. 또한 계룡산에서 뜬구름이나 잡는 공자, 맹자'가 아니라 꽃, 지네, 빵 얘기를 하니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뒤늦은 후회이지만 지금은 절판되어 품절된, 솔출판사에서 출간한 13권짜리 << 청장관전서 >> 를 사두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는 중이다. 내가 이 책에 대해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이유는 " 쓸데없는 소리 " 를 잘한다는 데 있다.
지네가 닭을 산 채로 잡아먹는 방법과 카스테라 빵 만드는 요령도 나온다. 나는 이 쓸데없는 소리'가 좋다. 이덕무는 << 청장관전서 >> 에서 백성들은 하루에 평소 두 끼만 먹는다고 적는다. 내가 이 문장을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삼시 세 끼 신화에 어긋난다는 데 있다. 곰곰 생각하면 삼시 세 끼 신화는 허구다. 식사를 뜻하는 " 조석 " 이라는 단어가 朝 : 아침 조와 夕 : 저녁 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옛 조상은 오래전부터 두 끼만 먹었던 것이다. 생명사상가 다석(多夕) 유영모는 " 하루 세 끼 음식을 먹는 것은 짐승의 식사법이요, 두 끼는 사람의 식사이고, 한 끼 음식이 신선의 식사법이다. " 라고 말했다. 그의 호 다석(多夕)은 세 끼를 한 끼에 몰아서 먹는다는 뜻이다. 폭식의, 과식의, 몰빵의 선구자인 셈이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에는 하루에 두 끼만 먹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 삼시 세 끼가 영양학적으로 건강한 식습관이라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비만을 조장하는 산업(먹거리, 의료, 다이어트 분야)에 봉사하는 좆문가1)다. 소비가 중심이 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desire가 곧 needs이자 goods이다.
어제 유튜브에서 다이어트를 하는 여성의 일상 다이어트 식단을 엿보았다. 아침은 다이어트 저칼로리 식단, 아침 먹고 후식으로 과일, 아침과 점심 사이에 견과류로 간식, 점심은 다이어트 저칼로리 식단, 후식으로 과일, 점심과 저녁 사이에 저칼로리 간식, 저녁은 다이어트 저칼로리 식단, 후식은 과일 몇 점, 저녁 간식은 없어요. 저녁 늦게 먹으면 살찌니까요. 호호호. 맙소사 ! 나는 그 영상 밑에 댓글을 달았다. 당신에게 몽테뉴의 수상록을 권합니다.
1) 미국 개척사를 보면 미국은 19세기까지도 두 끼 문화가 정석이었다. 두 끼 문화에서 세 끼 문화로 발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 것은 켈로그'였다.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드라이 시리얼 문화가 본격적으로 정착한 50년대부터 미국 비만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영양학의 전문가들은 항상 결식이 과식의 주범이라며 비만의 원흉이라고 지적하지만 < 두 끼 시대 > 와 < 세 끼 시대 > 중 비만 인구가 더 많았던 시절은 언제였나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소비 사회의 핵심은 과소비'다. 먹거리 산업 입장에서 보면 두 끼'보다는 세 끼가 유리한 시장'이다. 다이어트 산업도 마찬가지다. 다이어트 산업은 고객의 체중을 감량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만 인구가 증가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산업이다. 세 끼로 몸을 불리고 헬스로 살을 빼십시오. 의료 산업은 ? 영양 과잉으로 인해 생기는 성인병이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세 끼로 병을 키우고 약으로 치료하십시오. 이들은 모두 세 끼 문화가 정착되어야지만 번성할 수 있는 산업이다. 현대인의 피곤은 결국 굶주림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많이 먹었을 때 발생한다. 굶으면 기운이 없다는 소리는 거짓말이다. 배가 부를수록 기운이 없다. 오히려 허기는 힘을 돋운다. 살찐 사람과 날씬한 사람 중에 누가 더 기운 없다는 소리를 자주 하는가. 권투선수는 링 위에 오를 때 살인적인 감량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평생 일일일식을 실천했던 유영모, 함석헌, 칸트는 모두 장수했다. 유영모는 91세, 함석헌는 90세, 칸트는 80세까지 살았다.